시월의 마지막 산행길에
단풍이 익어가는 오솔길
나뭇잎마다
저마다의 노래를 매달고
바람은
오래된 가을을 흔들고 있다
빛깔 고운 파라솔 아래
한 사나이가 외로이 앉아 있다
기타는 곁에 잠들어 있고
그의 손에는 작은 화면 하나
세상을 보지 않은 채
화면 속 세계를 넘기고 있다
산은 온통 붉고 노란데
그의 눈동자에는
화면의 빛만 출렁인다
기타는 아직
노래를 기억하고
숲은 들려줄 이야기가 많은데
노래하던 사나이
돌아올 길을 잃었는가
단풍보다 더 깊은
망각의 숲으로
산행을 떠난 것인가
시월의 가파른 숲길에서
마지막 잎새가 떨어지기 전에
우리가 놓친 것은
오색으로 물든 풍경이 아니라
시간 속에 함께 걸어온
우리 자신의 얼굴이 아니던가
<해설> - 잃어버린 우리 자신의 얼굴 -
김한식 시인의 「시월의 마지막 산행길」은 가을 산행에서 마주친 한 사나이의 모습을 통해 현대인이 무엇을 바라보며 살아가는지 묻는 작품입니다. 단풍이 붉고 노랗게 물든 숲속, 기타를 곁에 둔 사나이는 작은 화면에 시선을 빼앗긴 채 앉아 있습니다. 기타는 잠들어 있고, 숲은 여전히 노래하고 있지만 정작 노래하던 사람은 외롭게 화면의 세계에 갇혀 있습니다. 이 장면에는 현대 문명에 대한 해학적인 풍자와 함께 인간 소외의 쓸쓸함이 배어 있습니다.
특히 “기타는 아직 노래를 기억하고 / 숲은 들려줄 이야기가 많은데”라는 구절은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기타와 숲은 저마다의 기억과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지만, 인간은 그것을 들을 감각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돌아올 길을 잃었는가’라는 물음은 산길을 되돌아오는 문제를 넘어, 자연과 타인,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돌아가는 길을 잃어버린 현대인의 초상을 드러냅니다.
마지막 연에서 시인의 시선은 한 사나이에게서 우리 모두에게로 향합니다. 우리가 놓친 것은 오색으로 물든 풍경만이 아닙니다. 분주한 일상과 화면 속 정보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동안,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시간의 의미를 헤아리는 능력, 곧 우리 자신의 얼굴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묻습니다.
이 시는 기술 문명을 거부하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문명의 편리함 속에서도 세계를 직접 느끼고, 타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자는 성찰입니다. 마지막 잎새가 떨어지기 전에 우리가 되찾아야 할 것은 가을의 풍경이 아니라, 그 풍경 앞에 온전히 서 있는 인간의 얼굴입니다. [글&시=감한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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