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는 과거의 풍경화가 아니라 현재적 실존의 해석이다
- 문명의 계급 구조에서 한글 창제와 조선 지식인 사회의 권력까지 -
신이 지배했던 서양과 예제(禮制)와 성리학적 도학이 지배했던 동양은 서로 다른 문명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회의 작동 원리라는 측면에서 보면 두 세계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종교와 도덕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사회의 질서를 정당화했으며, 그 질서의 밑바닥에는 신분과 계급에 따른 차등적 권력 구조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근대에 들어 과학이 발달하고 이성주의가 확산되면서 신의 권위와 성리학적 질서는 점차 약화되었다. 그러나 그 자리에 평등한 인간 공동체가 완성된 것은 아니었다. 자본과 시장이 새로운 사회적 질서를 형성했고, 부와 권력의 불평등은 다른 모습으로 지속되었다.
오늘날 세계는 하나의 행성 위에서 소통하는 공동체를 지향한다. 정보와 지식은 국경을 넘어 흐르고, 인류는 보편적 권리와 평등한 삶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개인 간의 경제적 격차는 물론 국가 간의 부와 군사력의 격차도 여전히 크다. 자유시장의 자율성을 중시하는 질서와 국가의 개입을 강화하는 질서가 경쟁하는 가운데, 시장의 자유조차 국가 권력과 자본의 힘에 따라 다르게 작동한다. 평등은 인류가 공유하는 이상이지만, 현실에서는 권력과 자본을 둘러싼 경쟁이 그 이상을 끊임없이 위협한다. 군비 경쟁과 국가 간 대립이 지속되는 오늘의 세계는 문명이 발전했다고 해서 인간 사회의 근본적인 모순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님을 보여 준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과거의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에도 적용된다. 역사는 단순히 지나간 시대의 모습을 복원하는 작업이 아니다. 어떤 사회가 무엇을 성취했고 무엇을 잃었는지, 그 성취와 몰락의 이면에 어떤 권력과 계급의 관계가 작동했는지를 묻는 과정이기도 하다.
조선 후기의 풍경을 떠올려 보자. 짚신을 신고 갓을 썼던 시대에 먼 길을 떠나는 사람은 여벌의 짚신을 준비해야 했다. 신분과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은 가죽신을 신었겠지만, 가난한 백성과 하층 군관의 생활은 달랐다. 조선 후기 군사와 민생의 빈곤을 보여 주는 기록과 그림을 마주하면, 국가의 통치 질서와 백성의 실제 생활 사이에 놓인 간극을 생각하게 된다. 곳곳에서 일어난 민란과 동학농민운동 역시 이러한 사회적 모순과 무관하지 않았다. 물론 조선의 몰락을 빈곤 하나로 설명할 수는 없다. 지배 체제의 경직성, 재정과 군사 제도의 문제, 국제 질서의 변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사회의 변화 요구를 수용하지 못한 기득권 질서가 근대적 전환을 가로막았다는 사실은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결국 조선의 근대화는 외세의 침략과 식민 지배 속에서 주권을 상실하는 비극으로 이어졌다. 그렇다면 과거의 문명은 실제로 얼마나 발전했으며,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그 발전을 판단해야 할까?
얼마 전 시민단체 이사회에 참석했을 때였다. 회의장 뒤편에 열두 폭의 십이지신상 탁본 병풍이 둘러쳐져 있었다. 자축인묘로 이어지는 신상들의 옷차림과 장신구를 살펴보다가 특히 신발에 눈길이 머물렀다. 신라의 인물들이 보여 주는 복식과 무장 모습은 내가 머릿속에 그려 온 조선 후기의 가난한 군관들과는 사뭇 달랐다. 신라의 군사적·문화적 역량을 오늘날의 기준으로 단순하게 평가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 병풍은 과거의 문명을 하나의 고정된 발전 단계로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생각하게 했다.
신상들이 들고 있는 큰 칼의 형태도 흥미로웠다. 손잡이 끝에 고리가 달린 환두대도와 닮은 모습이었다. 이어 병풍 옆에 놓인 말 탄 신라 토기 모조품을 살펴보았다. 말안장 뒤쪽에 솥처럼 보이는 기물이 실려 있었다. 기마 인물과 무기, 이동에 필요한 물품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그것들은 당대의 생활 방식과 기술, 군사 문화, 그리고 다른 지역과의 교류를 추적할 수 있는 단서다.

물론 칼의 형태가 닮았다는 이유만으로 흉노 문화의 직접적인 영향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말안장 뒤의 기물을 흉노의 솥과 동일한 계통으로 보려는 해석도 비교 자료와 제작 시기, 출토 맥락을 검토해야 한다. 그러나 바로 그러한 의문이 역사를 탐구하는 출발점이다. 유물은 과거의 정답을 말해 주는 물건이 아니라, 우리가 기존의 역사 서술에 던질 새로운 질문을 제공한다.
회의가 끝난 뒤 나는 병풍과 기마형 토기의 모습에 관해 참석자들에게 잠시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시 생각했다. 역사는 과거에 완성되어 박제된 풍경화가 아니라, 오늘의 우리가 과거와 대화하면서 그 의미를 새롭게 구성하는 해석의 풍경화가 아닐까.
오늘은 한글날이다. 이 질문은 자연스럽게 훈민정음 창제와 조선 지식인 사회의 역사로 이어진다. 세종은 1443년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1446년 그 원리와 사용법을 설명한 『훈민정음』을 반포했다. 오늘날 우리가 흔히 『훈민정음 해례본』이라 부르는 책은 세종의 어제 서문과 예의, 해례, 정인지의 서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해례 부분에는 정인지·최항·박팽년·신숙주·성삼문·강희안·이개·이선로 등 집현전 학자 여덟 명이 참여했다. 이는 국가유산청의 해례본 해설에서도 확인되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의 이름을 기록하는 것과 이들이 실제로 어떤 지적 역할을 수행했는지 밝히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해례본에 이름이 함께 실려 있다는 사실만으로 각 학자의 구체적인 집필 분량이나 담당 영역을 확정할 수는 없다. 제자해와 초성해·중성해·종성해·합자해·용자례의 각 부분을 누가 주도했는지, 학자들 사이에 어떤 연구와 토론이 있었는지, 문헌에 드러나지 않은 협업의 과정은 무엇이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오늘날의 저자 개념을 그대로 적용하기보다 당대의 편찬 관행과 문헌의 구조를 함께 검토해야 한다.
이 문제는 계유정난 이후 조선의 권력 변동과도 연결해 생각해 볼 수 있다. 수양대군과 안평대군의 대립, 그리고 1453년 계유정난 이후 벌어진 정치적 숙청은 조선 지식인 사회의 운명을 바꾸었다. 박팽년·성삼문·이개 등은 훗날 사육신으로 기억되었다. 이들의 정치적 선택과 최후를 살펴보면 학문과 문학의 성취가 권력의 변화와 무관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집현전의 여덟 학사를 모두 안평대군을 중심으로 한 동일한 정치 집단으로 보거나, 『조선왕조실록』의 평가가 특정 학자들을 일률적으로 폄하했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인물마다 정치적 행적과 관계가 달랐으며, 실록의 기록 역시 해당 인물의 활동 시기와 기록의 맥락에 따라 개별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그럼에도 정치적 승자와 패자의 차이가 후대의 기억과 평가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질문하는 일은 충분히 의미가 있다.

내가 주목하는 지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한글 창제라는 위대한 문화적 성취를 세종 한 사람의 천재성만으로 설명하거나, 반대로 집현전 학사들의 공헌을 일률적으로 확대하는 것으로는 그 역사의 복잡성을 충분히 드러낼 수 없다. 창제의 주체와 해설의 집필자, 국가의 정책과 학자들의 연구, 문자에 대한 당대의 인식과 이후의 정치적 변화를 함께 살펴야 한다. 『훈민정음 해례본』의 구성과 용어, 음운학적 설명의 차이를 연구하는 일도 이러한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다. 다만 문체와 용어의 차이가 곧 여러 사람이 나누어 집필했다는 직접적인 증거가 되는 것은 아니므로, 판본과 문헌의 구조를 면밀하게 비교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한글 창제의 역사에서 더 넓게 바라볼 문제도 있다. 조선은 뛰어난 문자를 창제했지만, 그 문자가 사회 전반의 지식 생산과 공적 소통을 지배하는 문자로 자리 잡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한문 중심의 지식 질서가 강하게 유지되었고, 지식과 권력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도 신분에 따라 크게 달랐다. 문자를 창제하는 일과 그 문자를 통해 사회의 지식 구조를 바꾸는 일은 서로 다른 과제였던 셈이다.
정조 시대의 문예 진흥과 정약용을 비롯한 실학자들의 학문적 성취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다시 살펴볼 수 있다. 정조는 학술과 문예를 장려했지만, 그 시대의 지식 체계가 성리학적 정치 질서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정약용 또한 기존 유학의 문제를 비판적으로 재해석하면서 새로운 제도와 사회 운영의 가능성을 모색했다. 그를 단순히 성리학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인물로 규정하기보다는, 유교적 지식 체계 안팎에서 어떤 전환을 시도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는 편이 역사적 실상에 가깝다.
근대에 들어 신문과 새로운 문자 문화가 등장한 과정도 마찬가지다. 최초의 국한문 혼용 신문을 둘러싼 논의에서는 발행 주체와 창간 시기, 실제 지면의 문자 사용을 구분해야 한다. 일본인 이노우에 가쿠고로의 역할을 언급하려면 해당 신문의 서지 자료와 당시의 출판 기록을 통해 그가 무엇을 간행했는지 먼저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근대적 언론의 형성이 조선 내부의 자생적 노력만으로 이루어진 것도, 외부의 영향만으로 이루어진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는 새로운 지식과 기술의 유입, 정치적 이해관계, 문자와 독자층을 둘러싼 갈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결국 신라의 유물에서 조선의 짚신으로, 십이지신상의 칼에서 훈민정음의 문자 체계로 이어지는 관찰은 서로 무관한 역사적 일화가 아니다. 그것들은 모두 문명의 성취를 무엇으로 평가할 것인지, 그 성취를 가능하게 한 사회적 조건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후대의 역사 서술이 누구의 목소리를 중심에 놓아 왔는지를 묻는다.
문명은 화려한 유물이나 위대한 인물의 업적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 문명이 축적한 지식이 누구에게 허용되었는지, 새로운 생각을 받아들이는 통로가 얼마나 열려 있었는지, 권력의 변화 속에서 어떤 인물이 기억되고 어떤 인물이 잊혔는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 과거의 유물은 그러한 질문을 오늘의 우리에게 되돌려 준다.
한글날에 훈민정음의 위대함을 기리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 위대함을 기념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창제와 해설에 참여한 사람들의 역할을 더 정밀하게 밝히며, 문자의 창조가 사회적 지식과 권력의 구조를 어떻게 바꾸었는지 되묻는 일 또한 필요하다. 역사는 과거의 영광을 반복해서 찬양하는 일이 아니라, 과거의 성취와 한계를 함께 읽어 오늘의 사회를 성찰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역사는 지나간 시간의 풍경화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질문할 것인가에 따라 끊임없이 새로 그려지는 현재적 실존의 풍경화다. 한글날의 의미도 그 풍경 속에서 다시 살아날 수 있다. [글=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국립국어원 원장-한국국어정책학회 회장-경북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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