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는 하고 싶지 않아, 더는..
민음사에서 기획한 한글날 기념 책 『한글』에서 배시은 시인의 「더는 하고 싶지 않아 더는」을 읽었다. 이 문장을 두 묶음으로 줄이면 무엇이 될까.
문자를 습득한다는 것은 어쩌면 문자와 헤어지는 일인지도 모른다. 글을 다 떼었다고 말할 때, 우리는 글과의 이별을 선언하는 것일까. 한글을 다 뗐으니 이제 한글과 헤어져도 되는 것일까. 그렇다면 한글은 헌글이 되는 것일까.
나 또한 평생 한글을 우려먹으며 살아왔다. 한글에 미련이 많은 사람처럼 내내 한글 이야기를 하고, 한글을 붙들고, 한글로 세상을 설명하려 했다. 이제는 나도 그만해야겠다. 배 시인의 말처럼 “더는 하고 싶지 않아, 더는.”
이 문장을 다시 두 글자씩 다섯 묶음으로 나누어 본다. 그러다 문득 두 묶음으로 줄이면 무엇이 남을까 생각한다. ‘덧정 없다’, ‘뵈기 싫다’쯤 될까. 한글에 대한 미련을 털어내겠다는 말이면서도, 그 말을 다시 한글로 적고 있는 나 자신이 우습다.
나 역시 배 시인처럼 한글을 가지고 많은 일을 했다. 어쩌면 한글이 할 수 없는 일까지 한글을 통해 하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번 한글날, 미국 의회도서관 소장본이라는 신경준의 『훈민정음 도해』 자료를 구해 읽고 있다. 이미 신경준의 이른바 『저정서』, 『운해』, 『훈민정음 운해』, 『운해 훈민정음』 등 여러 이름과 이본으로 전해지는 자료들이다. 덧정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마지막으로 그 해석과 내용과 체제를 분석해 보겠다고 마음먹었다.
바로 그 순간 배시은 시인의 문장이 눈을 찔렀다.
“더는 하고 싶지 않아, 더는.”
한글이 할 수 없는 일은 무엇일까. 외국어와 두문자, 여러 문자의 혼용과 혼태가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시대다. 한글은 온갖 것을 받아 적고, 낯선 언어를 끌어안고, 새로운 세계를 표현하는 도구가 되었다. 그러나 한글로 적을 수 있다는 것과 한글로 온전히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한글이 할 수 없는 일은 너무나 많아서, 그 불가능의 목록조차 한글로 다 적을 수 없을지 모른다.
배시은 시인은 이렇게 썼다.
“한글로 시를 쓴다는 것은 한글이 할 수 없는 일을 계속 한글에게 맡기는 일이다. 그리고 그 일이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 모습까지 바라보는 일이다. 그럼에도 내가 가진 단 하나의 무기가 있다면, 그것은 한글일 것이다.”
참 신선하다. 교수들의 글과는 달리 막히지 않는다. 어려운 이론을 앞세우지 않는데도 생각은 깊고, 문장은 몸의 호흡을 따라 흐른다. 특히 한글이 할 수 없는 일을 한글에 맡긴다는 역설, 끝내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까지 바라보면서도 한글을 유일한 무기로 삼는다는 태도가 오래 남는다.
나는 평생 한글을 설명하려 했다. 한글의 원리를 밝히고, 그 가능성을 넓히고, 한글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왔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한글이 할 수 없는 일까지 한글로 해결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 문자의 가능성을 말하면서 문자의 한계를 잊고, 한글을 사랑하면서 한글에 너무 많은 것을 요구했던 것은 아닐까.
이제 그만하겠다고 마음먹은 날, 나는 다시 한글을 읽고 있다. 신경준의 오래된 문헌을 펼쳐 놓고 한글의 기원과 체제를 생각한다. 배시은 시인의 문장을 읽고는 그 문장이 품은 불가능의 의미를 헤아린다. 그만두려는 마음마저 한글로 적고 있으니, 한글과의 이별은 아무래도 쉽지 않겠다.
어쩌면 한글을 다 배운다는 것은 한글과 헤어지는 일이 아니라, 한글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함께 배우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오늘은 이렇게 적어 두자.
더는 하고 싶지 않아, 더는.
그런데도 나는 또 한글로 적고 있다.
필자 이상규 교수는 국내 최고의 국어학자로 국립국어원장-한국국어정책회장-경북대 국어국문학자를 역임하고 현재 경북대 명예교수로 고향 대구에서 집필과 후학 양성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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