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 재판 출석 모습)
[굿리더뉴스=남상채 기자] 법원이 검찰의 ‘쪼개기 기소’ 관행에 제동을 걸었다. 이로써 향후 형사사법 절차에 적지 않은 파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연어 술 파티’ 의혹을 둘러싼 국회 위증 혐의로 기소된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가 선고됐고, 대북 지원 사업과 관련한 직권남용 등 혐의에 대해서는 법원이 검찰의 공소권 남용을 인정해 직권으로 공소를 기각하는 이례적인 판단을 내렸다.
수원지법 형사11부(부장판사 송병훈)는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선고 공판에서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위반(위증) 혐의로 기소된 이 전 부지사에게 징역 4개월을 선고했다.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는 무죄,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위계공무집행방해·지방재정법 위반 혐의는 공소기각 판결을 내렸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이른바 ‘연어 술 파티’ 의혹이었다. 검찰은 이 전 부지사가 국회 청문회에서 수원지검 청사 내에서 술자리가 있었다고 증언한 내용이 허위라고 보고 위증 혐의로 기소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검사실에 있었던 관련자들의 진술은 일관되거나 상호 부합하는 반면 피고인의 진술은 일관성이 부족해 신빙성이 떨어진다”며 유죄를 인정했다.
국민참여재판 배심원단의 판단은 팽팽하게 갈렸다. 배심원 7명 가운데 4명은 유죄, 3명은 무죄 의견을 냈다. 국민참여재판의 배심원 평결은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재판부는 통상 이를 중요한 참고자료로 삼는다. 이번 사건에서도 재판부는 배심원단의 의견을 존중하면서도 독자적인 법률 판단을 통해 유죄를 선고했다.
반면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배심원 7명 전원이 만장일치로 무죄 의견을 냈다. 검찰은 이 전 부지사가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과 공모해 이른바 ‘쪼개기 후원’을 받았다고 주장했으나, 배심원단은 “범죄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 역시 이를 받아들여 무죄를 선고했다.
이번 판결에서 법조계의 가장 큰 관심을 끈 부분은 대북 묘목·밀가루 지원 사업과 관련한 직권남용 등 혐의에 대한 공소기각 결정이다.
공소기각은 일반적인 무죄 판결과 다르다. 무죄가 혐의에 대한 실체적 심리 끝에 범죄 사실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의미라면, 공소기각은 기소 절차 자체에 중대한 위법이 있다고 판단해 본안 심리에 들어가지 않거나 더 이상 재판을 진행할 수 없다고 선언하는 결정이다.
재판부는 검찰이 관련 사건인 신명섭 전 경기도 평화협력국장 사건을 먼저 기소하면서 이 전 부지사를 공범으로 적시한 점을 문제 삼았다. 당시 검찰은 이 전 부지사를 별도로 기소하지 않은 상태였음에도 공소장에 공모 관계를 적시해 사실상 유죄 취지의 판단을 받게 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기소도 되지 않은 피고인이 타인의 형사재판에서 먼저 유죄 취지의 판단을 받도록 한 것은 방어권을 심각하게 침해한 것”이라며 “명백한 공소권 남용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수원지법 전경)
수원지법도 별도 설명자료를 통해 “검사가 신명섭 전 국장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이 전 부지사와의 공모관계에 관한 객관적 혐의가 없어 피고인을 인지하지 못했음에도 공범으로 적시해 결과적으로 피고인이 다른 사건에서 유죄 판단을 받게 된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법원이 검찰의 이른바 ‘쪼개기 기소’를 공소권 남용으로 명시적으로 인정한 사례는 극히 드물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판결이 별건 수사와 분리 기소 관행에 대한 중요한 사법적 경고가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배심원단의 판단은 재판부와 달랐다. 배심원들은 대북 지원 사업 관련 혐의의 실체에 대해서는 만장일치로 “관련 법령에 위배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지만, 검찰의 기소가 공소권 남용에 해당한다는 데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배심원단은 사실상 무죄 취지 의견을 냈고, 재판부는 절차적 위법성을 이유로 공소기각을 선택하면서 결론에 이르는 법적 경로가 달라졌다.
선고 직후 이 전 부지사 측은 즉각 항소 의사를 밝혔다. 변호인단은 “40분에 걸친 국회 증언 가운데 단 1분 정도 언급된 술 반입 문제만 떼어내 억지로 기소한 사건”이라며 “술자리가 있었다는 사실 자체는 일관되게 진술해 왔고 날짜에 대한 기억만 불명확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거짓말 탐지기 조사에서도 진실 반응이 나왔고, 피고인 본인의 기억 속에는 실제 존재하는 사실을 증언한 것”이라며 “이를 고의적 위증으로 처벌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반발했다.
변호인단은 공소기각된 직권남용 등 혐의에 대해서도 항소 방침을 밝혔다. 이들은 “배심원단이 실체적 혐의에 대해 사실상 만장일치 무죄 판단을 내린 만큼, 항소심에서는 단순한 공소기각이 아니라 명시적인 무죄 판결을 받아내겠다”고 밝혔다.
향후 항소심에서는 ▲연어 술 파티 관련 위증죄 성립 여부 ▲검찰 공소권 남용 인정의 타당성 ▲공소기각 결정 유지 여부 ▲정치자금법 위반 무죄 유지 여부 등이 핵심 쟁점이 될 전망이다.
한편 이 전 부지사는 이미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 등으로 징역 7년 8개월의 실형이 확정된 상태다. 이번 사건에서 선고된 징역 4개월은 항소심 결과에 따라 최종 형량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번 국민참여재판은 지난 8일부터 주말을 제외하고 열흘간 이어졌으며, 매일 오전부터 밤늦게까지 진행되는 이례적인 일정 속에 진행됐다. 재판부는 선고에 앞서 “10일 동안 파란 하늘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피고인에게 한 점 억울함이 없는지 살펴준 시민 법관들에게 깊이 감사드린다”며 배심원단에 감사의 뜻을 전했다. [굿리더뉴스=남상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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