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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 칼럼 11] 세상은 거대한 언어의 거울...문자와 사물과의 관계...

  • 이상규 교수 기자
  • 입력 2026.06.19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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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언어와 사물 사이에 깊게 파인 홈


세상은 거대하고 고요한 언어로 비치는 거울이다. 이 거울에 비치는 온갖 물상은 인간이 호명하는 빠롤paroles로 넘쳐난다. 이 거대한 자연의 거울, 그 거울에 반사된 빠롤을 이미지 부호 곧 문자로 만들어내는 주인은 사람이다.  사물과 언어, 그리고 사물과 담론 사인에는 ‘패인 홈‘이 있어 지역과 문화 집단 사이에 언어가 달라져 보인다.  영어에서 유성음 사이에 낀 무성 자음이 유성화되듯이 인류의 언어 사이에 유성음화라는 공통적인 유사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언어집단에 따라 계급이나 지식의 정도 차이에 따라 소리의 변별력의 차이를 보여준다. 곧 지리적 방언과 계급적 사회방언으로 구분된다. 미국에서 “apple”을 “아플” 또는 “애플”로 발음되는 현상은 계급차이를 상징한다.


푸코가 “말과 사물”에서 인간은 누구나 말을 한다는 유사성을 지니지만 개별언어는 각기 다르다고 한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지역적 혹은 사회적 언어 변동이나나 문화적 정치적 차이가 누적되어 언어 차이를 낳게 된다. 영어와 한국어 그리고 독일어와 중국어처럼 다르지만 공통적인 언어 속에는 매우 비슷한 빠롤의 유사성의 원리가 내재하고 있다. 장소성이 인접한 말은 유사성을 갖는다. 개인어가 모여 방언을 이루고 다시 한 언어를 형성한다. 다시 개별 언어가 모여 친밀한 페밀리라는 어군Language Family이 형성된다. 한 언어는 수동적인 영향을 주고받으며 끊임없는 변화를 거쳐 공동체계를 이룬다. 표준어나 표준어는 변화의 속도를 늦출 뿐 언어적 본질과는 중요한 관계가 없다. 개별언어 사용자의 인식의 틀에 따라 달라질 뿐인데 방언의 차이를 옳고 그르다고 함부로 예단해서는 않된다.


푸코는 AI시대를 예측한 빠롤의 유사성을 어휘신경망 조직으로 예측한 포르타가 쓴 “자연의 마술”이라는 책에서 인용한 대목이 눈에 띤다. “생장의 측면에서 보면, 식물은 야생 동물들에 적합하다. 그리고 감정에 따라 보면, 야생 동물은 인간에 적합하다. 이 인간은 그 지성에 의해 나머지 하늘의 별들과 일치된다. 이러한 연결은 정확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제1원인으로부터 최하 수준의 비천한 사물들에 이르기까지 상호 연속적인 연결로써 팽팽하게 당겨진 하나의 밧줄인 양 나타난다. 이런 방식으로 자신의 빛들을 방사해서 우리가 그 지점을 만지기만 해도 그 지점이 나머지를 떨어 울리게 하고 움직이도록 하는데 이른다.”


우주만물이 인간을 중심으로 여러가닥의 빠롤이라는 줄로 엉켜있다는 상상이다. 오늘날 NNL거대인공지능의 어휘망을 언어의 본질인 유사성의 뭉치라는 말이다.  그런데 인간은 언표적 언어가 아닌 상황 인식을 통하여 외부 대상 세계에 적응하면서 살아간다. 이를테면, 천둥번개와 먹구름 덮인 하늘의 지각을 통하여 소나기가 내릴 것을 미리 알고, 제비가 날아오는 것을 보고 봄이 왔다는 것을 추론할 수 있으며, 사이렌 소리로 비상사태를 알게 되며, 표정이나 목소리를 통하여 다른 사람의 기분이나 심리 상태를 헤아린다. 푸코는 이러한 인간의 인식 능력을 에피스테메episteme라고 정의를 내린다. 이 인식의 장은 인식 기호(자연적 기호 및 관습적 기호)를 저장하고 풀이하는 능력을 말하는데, 기호 가운데서 언어적 기호는 인지 전략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 까닭은 언어를 통한 상징적 표상이 가장 기본적이고 강력한 인지 수단이기 때문이다. 언어는 인지 연구의 핵심적 연구 대상이므로, 루차이어(Lutzeier 1992 : 63)에서는 언어학을 인지과학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문명의 발전과 함께 음성 언어와 문자 언어 사이의 자연스러운 관계가 역전되었다. 서양 전통에서 문자 언어, 철자, 감각적 문자 표기 등은 언제나 정신, 호흡, 태초의 말씀, 로고스의 바깥에 존재하는 육체와 물질로 간주되어 왔다. 그리고 영혼과 육체의 문제는 문자 언어의 문제에서 파생되었을 텐데 그 반대로 문자 언어의 문제는 영혼과 육체의 구분에서 그것의 은유를 빌려 온다. 이 문자 언어는 감각적 질료와 인위적 외재성 즉 한 벌의 '옷'과 같다. 때때로 사람들은 음성 언어가 사고의 겉으로 걸치는 한 벌의 옷이라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했다. 후설, 소쉬르, 라벨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문자 언어가 음성 언어의 옷이라는 사실을 회의해 본 적이 있는가? 소쉬르에게조차 문자 언어는 정도에서 벗어난 옷이고, 타락과 분장의 의류이며, 마귀를 쫓아내야 할, 즉 푸닥거리해야 할 가면이다. "문자 언어는 소리언어의 시선을 가리고 있다. 문자 언어는 한 벌의 옷이 아니라 변장된 옷이다." 이상한 '이미지'. 문자가 '이미지'와 외부적 '형상화'라면 이러한 대리 표기가 순수하지 않은 것이라고 짐작해 볼 수 있다. 바깥쪽은 안쪽과 하나의 관계를 맺고 있는데, 그 관계는 늘 그렇듯이 단순한 외재성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바깥쪽의 의미는 늘 바깥쪽을 벗어나서 갇혀 있는 안쪽에 있었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언어과학은 자연적 관계, 그러니까 음성 언어와 문자 언어 사이의 단순하고 본원적인 관계, 다시 말해 안쪽과 바깥쪽의 관계를 되찾아야 한다. 언어과학은 바깥쪽과 안쪽 사이의 관계를 퇴폐화했던 역사와 타락 이편에서, 그 절대적인 신선함과 근원의 순수성을 회복해야 하는 즉 보조 기억술과 살아 있는 기억에 비유한다. 문자를 망각이라고 한 이유는 문자가 로고스 자체를 벗어난 것이자 중개이기 때문이다. 로고스는 문자와 관계없이 그 자체로 남아 있을 것이다. 문자는 로고스 속에서 영혼에 존재하는 의미가 자연적 일차적으로 현전하는 것을 은폐한다. 

 

문자의 폭력은 영혼에 무의식으로 다가온다. 또 이러한 전통을 해체하는 것은 그것을 전복하고 문자를 순수하게 하는 것에 주안점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차라리 문자의 폭력이 일종의 순수한 언어에 도래하지 않는다는 이유를 밝히는 데 있다. 문자의 근원적 폭력이 존재한다. 그 이유는, 언어란 점증적으로 그 모습이 드러나게 된다는 의미에서, 무엇보다도 에크리튀르이기 때문이다. '찬탈'은 이미 시작되었다. 정당한 권리라는 의미는 귀환이라는 신화학적 효과로 나타난다. '과학과 예술'은 이러한 폭력에 그 거처지를 선정했으며 그것들의 '진보'는 망각을 신성시하고 영원하게 만들었으며 '풍속을 타락시켰다. 

 

이상규 국어학자.jpg

 

필자 이상규 교수는 국내 최고의 국어국문학자이다. 국립국어원 원장과 국어정책학회 회장, 경북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를 역임하고 현재 경북대 명예교수, 국가미래연구원 이사로 고향 대구에서 집필과 후진 양성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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