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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양삼일] 손가락 하트의 반란: K-POP은 어떻게 콜롬비아 청년들의 정치 언어가 되었나..

  • 콜롬비아=양삼일 기자
  • 입력 2026.06.07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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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Petro 대통령, Ivan Cepeda 좌파 대통령 후보, Aida Quilcue 인테헤나 출신 부통령 후보)

 

[콜롬비아=양삼일] 손가락 하트의 반란: K-pop은 어떻게 콜롬비아 청년들의 정치 언어가 되었나

 

2026년 5월 31일, 콜롬비아 대통령 선거 1차 투표가 끝났다. 결과는 대이변이었다. 강력한 우파 아웃사이더 아벨라르도 데 라 에스프리에야(Abelardo de la Espriella)가 43.73%를 얻으며 1위로 올라섰다. 중도 지형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자리에서, 좌파 연합 '역사적 연대(Pacto Histórico)'의 이반 세페다(Iván Cepeda)가 40.91%로 바짝 추격했다.

6월 21일 결선 투표를 앞두고 양극단으로 찢긴 선거전이 뜨거워지던 6월 초, 뜻밖의 장면이 나타났다. BTS 팬덤 아미(ARMY)와 스트레이 키즈 팬들이 좌파 후보 세페다 지지를 공식 선언했다. 현지 블루 라디오(Blu Radio)와 국영 방송 RTVC가 긴급 보도를 냈다. 머리가 희끗한 중진 정치인들이 카메라 앞에서 손가락 하트를 만들었다. 좌파 캠페인 영상이 분홍빛 필터로 도배되었다.

이 폭발적 에너지에는 현실적 배경이 있다. 2026년 10월 2일과 3일, BTS는 보고타 에스타디오 엘 캄핀(Estadio Nemésio Camacho El Campín)에 선다. 콜롬비아 역사상 첫 BTS 공연이다. 그 소식이 이미 현지에 돌고 있던 6월 초, 팬덤의 결집력은 자연히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 정치인들이 손가락 하트를 만든 것은 그 에너지를 정확히 읽었기 때문이다.

우리 재단은 오랫동안 한국과 라틴아메리카 사이의 문화예술교류에 힘써왔다. 솔직히 말하면, K-pop은 우리 재단의 주된 관심 밖이었다. 철저한 상업 시스템이 낳은 자본의 산물. 그게 전부인 줄 알았다. 지금도 그 본질 판단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보고도 믿기 힘든 이 장면이 우리의 오랜 판단을 사정없이 흔들었다.

비주류 청년들의 디지털 광장

 

라틴아메리카 대중음악 시장은 오랫동안 미국과 유럽의 음악 산업, 그리고 지역 주류 장르가 지배해 왔다. 레게톤, 살사, 록. 이 공고한 구도에서 K-pop은 처음에 철저한 주변부였다. 어린이들, 소녀들, 비주류 팬덤의 음악.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 비주류성이 결정적 무기가 되었다.

K-pop 팬덤에는 젊은 여성과 유색인종, 성소수자들이 상대적으로 많이 참여한다..오랫동안 가톨릭 문화와 마초이즘의 영향이 강하게 남아 있는 라틴아메리카 사회에서, 이들은 종종 목소리를 잃은 채 살아야 했다.다정하게 눈을 맞추며 스스로를 아끼라고 노래하는 한국의 아티스트들은 그 자체로 거대한 문화적 해방구였다. BTS의 "Love Yourself", "Speak Yourself"는 단순한 유행가 가사가 아니라, 자기 존재를 처음으로 긍정해 준 언어였다.

세페다 지지 영상에 등장한 분홍빛 필터는 그 자체로 선명한 선언이다.분홍색은 오랫동안 성소수자 공동체와 연대의 상징 가운데 하나였다. K-pop 팬덤이 콜롬비아의 소외층과 성소수자의 감성을 대변하는 안식처가 되었음을 시각적으로 보여준 장면이다.

2019년과 2021년으로 이어진 콜롬비아 대규모 반정부 시위(Paro Nacional)는 결정적 전환점이었다. 청년들은 거리뿐 아니라 디지털 공간을 점령했다. K-pop 팬들은 보수 정부의 여론 조작 해시태그를 아티스트 영상으로 도배해 무력화하는 '해시태그 정화' 전술을 펼쳤다. 이것은 2020년 트럼프의 털사 집회를 무력화했던 전 세계 K-pop 팬덤의 디지털 게릴라전과 정확히 같은 문법이었다. 그 연대의 경험은 훗날 구스타보 페트로가 집권하는 시대적 분위기를 만드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저항의 노래는 어떻게 이동하는가 : 무정파 독자노선의 계보

1960-70년대, 칠레의 비올레타 파라(Violeta Parra)와 빅토르 하라(Víctor Jara), 아르헨티나의 메르세데스 소사(Mercedes Sosa)가 누에바 칸시온(nueva canción) 운동을 이끌었다. 민요에 날카로운 사회 비판을 입혀 군사독재에 맞섰던 노래들. 빅토르 하라는 피노체트 쿠데타 직후 고문 끝에 살해당했다.

이 저항의 음악은 국경을 넘어 일본으로 흘러들었다. 당시 일본의 전공투 세력은 기성 정치 세력에 종속되기를 거부하며 독자적 연대를 모색하고 있었다. 그들은 라틴아메리카의 누에바 칸시온에 깊이 매료되었다. 그리고 70-80년대 한국 청년운동 역시 이런 흐름과 무관하지 않았다.

이 연결 고리는 우리 재단이 여전히 추적 중인 가설이다. 다만 분명한 팩트는 이렇다. 김민기의 '아침이슬'(1971)과 라틴아메리카의 누에바 칸시온은 정확히 같은 시대의 정신을 공유했다. 군사독재, 저항, 민중의 언어. 지구 반대편에서 같은 문법으로 노래가 태어나고 있었다.

상업 음악이 저항의 언어가 되는 순간

누에바 칸시온은 애초에 혁명과 저항의 언어로 태어났다. 반면 K-pop은 철저한 상업 자본 시스템의 기획 아래 만들어진 산물이다. 우리는 그것이 두 음악의 결코 좁혀질 수 없는 차이라고 믿어왔다. 하지만 콜롬비아를 보면서 그 오랜 이분법이 거세게 흔들린다.

K-pop이 저항의 언어가 된 것은 기획사의 의도가 아니다. 오직 팬덤 스스로의 자발적 선택이었다. 음악의 텍스트 자체가 아니라, 음악을 매개로 만들어진 사람들의 연대가 저항의 주체가 되는 새로운 세상이다.

누에바 칸시온은 만들어진 순간부터 선명한 메시지를 품고 있었다. 반면 K-pop에는 노래가 의도하지 않은 메시지를 팬들 스스로 만들어내는 문화적 힘이 있다. 아티스트가 아니라 팬들이 새로운 문화적 코드를 직접 짜고 그 물결을 즐긴다. 이것이 21세기 디지털 저항 문화의 새로운 문법이다.

제국주의적 개입과 디지털 전선

 

이 유쾌한 디지털 광장의 이면에는 거대한 국제정치의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1차 투표 결과가 발표되자마자 미국은 매표 행위자에 대한 즉각적인 비자 박탈 방침을 발표했다. 겉으로는 공정 선거를 옹호하는 조치로 보이지만, 콜롬비아 좌파 진영과 상당수 지지자들은 이를 라틴아메리카 좌파 정권의 연장을 견제하려는 전통적 미국 외교의 연장선으로 해석하고 있다.

많은 콜롬비아인들에게 이 장면은 칠레와 중미 곳곳에서 반복되었던 미국과 라틴아메리카의 불편한 역사를 다시 떠올리게 했다.강대국의 외교적 압박 속에서, 콜롬비아의 청년들은 자신들의 온전한 주권을 지켜내야 하는 벼랑 끝 전선에 섰다. 그 전선의 한복판에, 역설적이게도 한국의 대중음악이 자리하고 있다.

이미 2021년 팔로 나시오날에서 디지털 연대를 경험한 청년들이 이번 선거에서 다시 뭉쳤다. 미국이 비자 제재 카드를 꺼내든 순간, 팬덤의 반응은 더 강해졌다. 손가락 하트가 단순한 팬심의 표현을 넘어 주권의 상징이 된 것이다.

팬덤 내부의 자정 작용

 

물론 K-pop 팬덤 전체가 이 정치화를 환영하는 것은 아니다. 콜롬비아 현지 방송에 나온 아미 대변인 다수가 선을 그었다. "우리는 음악이 주는 순수한 위로를 사랑한다. 누구에게 투표할지는 온전히 개인의 자유다."

하지만 이 자정 작용은 오히려 이 공동체가 건강하다는 증거다. 필요할 때 광장으로 나오고, 목적을 이루면 다시 음악의 세계로 돌아간다. 과거 거대 담론 중심의 운동권 문화와는 완전히 다른, 유연하고 성숙한 21세기형 정치 참여 방식이다.

 

한국 독자에게 던지는 질문

한국 사회에서 K-pop은 흔히 '굴뚝 없는 창의 경제'의 대표 상품으로 불린다. 국가도 뒤늦게 세제 혜택, 기업 연계, 해외 문화 프로그램 등을 통해 이를 정책적으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 욕심이 위험하다.

여기서 분명히 구분해야 할 것이 있다. K-pop이 국가에 가져다 준 것은 분명하다. 그 기여에 합당한 보상 - 세제 혜택, 외교적 예우 - 을 논의하는 것은 당연하다. BTS는 병역 특례 없이 전원 복무를 마쳤다. 팬들은 기다렸다. 그것이 오히려 신뢰를 높였다. 비틀즈에게 MBE를 수여한 영국처럼, 국가가 민간의 성과를 사후에 인정하고 예우하는 것은 합리적이다.

하지만 그것이 국가가 직접 기획하고 수출하는 문화 프로그램으로 전환되는 순간, 이야기는 달라진다. 콜롬비아를 비롯한 라틴아메리카 대륙은 서구 열강에 의한 제국주의적 침탈의 피해자였다. 민간 팬덤이 주도하는 자발적 문화 수용에 거부감 없이 반응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것이 국가 냄새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한국 정부가 이 대중음악 산업을 세제 혜택과 기업 연계로 패키지화해 수출 전략으로 밀어붙인다면, 그것은 현지인들에게 또 다른 형태의 문화적 압박, 즉신식민지주의라는 비판에 직면할 가능성도 있다. 국가의 손때가 묻는 순간, 청년들의 이 살아있는 무기는 외국의 정치적 프로파간다로 오염되어 자생적 동력을 잃고 만다.

콜롬비아 청년들이 K-pop을 사랑한 이유는 그것이 국가 냄새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순수함이 무기였다.

 

재단의 시선

우리 재단은 K-pop을 지금도 상업 음악으로 본다. 그 판단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콜롬비아의 청년들이 그것으로 무엇을 만들어 냈는지는 기록해야 한다. 80년대 우리가 운동가요로 시대를 버텼듯, 이들은 손가락 하트로 주권을 지키려 한다. 다른 도구, 같은 욕망이다.

BTS는 군대를 다녀왔다. 팬들은 기다렸다. 그리고 2026년 10월, BTS는 보고타 엘 캄핀에 선다. 대선 결선 투표가 끝난 지 석 달 뒤, 손가락 하트를 정치의 언어로 썼던 바로 그 청년들 앞에서.

국가는 이 현상을 만들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의미가 있다.

문화는 위에서 아래로 통제하고 기획하는 것이 아니라 밑에서부터 흐르는 것이다. 재단은 이 경이로운 문화사회 현상을 묵묵히, 그리고 경외심을 가지고 기록해 나갈 것이다. [콜롬비아=양삼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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