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언 지도로 본 한국어 풍경
현대라는 화려한 디지털 액정 화면 뒤쪽으로 숨어버린 근대의 풍경, 필자는 그러한 그림을 찾기 위해 해묵은 잡지나 신문들을 종종 뒤적여 본다. 우리는 지난 시대의 사람들이 살아가던 모습을 잊어버리고 살아간 지가 오래이다. 농경문화의 삶의 방식이 해체되기 시작된 것이 바로 새마을 운동이다. 예전에 살던 모습을 마치 ‘헌 마을’쯤으로 인식한 결과 농경 생활 방식에 매우 적합했던 전통적인 초가집이 하루아침에 다 허물어져 버린 것이다. 여기에서부터 마치 지난 시대의 우리들 삶의 방식은 크게 잘못된 것 인냥 우리의 전근대성의 흔적들을 빡빡 문질러 지워내기 시작한 것이다. 어느 날부터인가 우리들은 우 리선조들의 전통을 깡그리 쓰레기통에 쳐넣어버렸다. 사라져 버린 시골의 초가집, 눈 덮인 초가집의 모습을 어디에서 볼 수 있을까?
새하얀 눈송이를 낳은 뒤 하늘은 은어의 향수처럼 푸르다 얼어죽은 산토끼처럼 지붕 지붕은 말이 없고 모진 바람이 굴뚝을 싸고 돈다 강건너 소문이 그 사람보다 기대려지는 오늘 폭탄 품은 젊은 사상이 피에로의 비가에 숨어와서 유령처럼 나타날 것 같고 눈 우에 크다아란 발자옥을 또렷이 남겨줄 것 같다 오늘 <국경>
“얼어 죽은 산토끼처럼 지붕 지붕은 말이 없고 모진 바람은 굴뚝을 싸고돈다.”라고 노래한 이용악의 <국경>이라는 시 구절의 근대의 전경은 쉽게 바라다볼 수 없다. 용인 민속촌쯤 가야만 겨우 볼 수 있을 것이다.
어머니 제사를 지내다가 왜 술을 세 번 첨작하는지, 또 모사 퇴주잔에 서너 번 나누어 술을 붓는지.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그래도 근대의 잔영이 조금 남아 있는 것은 제사나 세시 명절의 풍경 속에서 단절된 지난 시간과 이를 수 있는 몇 개의 고리가 보인다.
세계 최초로 활자 문명의 꽃을 피운 민족이 우리 겨레이다. 활자 문명이 발달되기 이전에 글쓰기는 절대 왕권이나 교황권이 지배자의 복음을 전달하고 그 내용을 돌이나 금속 붙이에 길이 새겨둘 정도였다. 아무나 글쓰기가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활자기술이 발달되면서 글쓰기 행위는 절대 권력자로부터 점차 일반 대중 속으로 확대되었으며, 때에 따라서는 절대 권위로부터 피지배민들의 인권을 확대하는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글쓰기란 인류 문화의 발달사적 고비의 매듭과 결절을 만드는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시대에 우리 삶의 방식과 연유된 우리들의 말을 디지털 시대에 들어서면서 차츰 잃어 가고 있다.
언어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사용자의 사회적 계급에 따라 변형된다. 국가에서는 이러한 변화를 저지하기 위해 표준어, 문화어, 공통어, RP와 같은 인공적으로 다듬은 말씨를 규범으로 삼고 있지만 언중들은 그 규범에 묶이지 않고 일탈을 계속한다. 지리적인 언어 변인을 기준으로 방언, 사투리, 모태어라는 생생한 언어활동이 펼쳐진다. 또한 사회적으로 인종, 교육, 교양, 수입 수준에 따라 언어가 차이를 보이는데 우리나라보다 미국과 같은 다종족사회의 언어 변인을 모아 사회적 방언이라고 한다.
이와같은 지리적 방언이나 사회적 방언형은 표준적 언어 질서를 마치 파괴하는 것 같지만 언어의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언어의 다양한 변이형들을 서로 비교해 보기 쉽도록 언어지도 상에 방언의 형태를 상징부호로 대치하여 언어지도를 그린다. 이 지도 분포를 통해 언어가 어떤 형식으로 시공간적 변화가 진행되어 왔고 또 앞으로 어떻게 변화될 것인지 예측이 가능하다.
전국 지역을 다니며 조사한 방언자료를 손으로 일일이 지도 위에 그려 넣는 일은 매우 어렵다. 필자가 컴퓨터를 활용한 방언형들을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어 자동으로 언어지도 위에 다양한 색상을 가진 상징 분호로 대치하여 그릴 수 있는 툴인 맵메이크(Map-maker)라는 개발하였다. 이 툴을 이용하면 쉽게 방언지도를 쉽게 작성할 수 있고 또 그 지도를 통해 방언들이 어떻게 변화하고 변화할 것인지 예측할 수가 있다. 이 방언지도의 풍경은 언어의 고고학적 지도라고 할 수 있다.
‘벼’라는 말은 인도에서 가을에 익는 벼인 ‘브리히(Vrihi)’라는 말이 만주지방의 여진 말인 백미(白米)를 뜻하는 ‘베레’를 거쳐 ‘벼’로 정착되었다. 인도에서 겨울에 익는 벼인 ‘사리(Sari)’라는 말이 어원으로 불교의 ‘舍利’와 ‘菩薩’의 영향으로 ‘ㅂ살’이 형성되었다. ‘벼’는 곡식 낱알의 이름으로 또는 식물로서 모판에 있을 때와 모심기를 한 이후의 이름이 방언 차이를 보인다. 또 식물로서 ‘벼’의 이름이 부분과 전체에 따라 방언 차이를 보여준다.
식물로서 논에 자라는 ‘벼’의 방언 분포를 보여 주고 있다. ‘벼’형과 ‘나락’형을 중심으로 북부와 남부를 가로지르는 방언 구역을 보여준다. ‘벼’형은 다시 이중모음이 단모음화한 ‘베’형으로 분화되고 ‘나락’형은 모음교체에 의해 ‘나랙’, ‘나록’형으로 분화를 보여준다. ‘베’계와 ‘나락’계의 분포는 남북으로 매우 선명하게 양분되어 분포한다. ‘베’계가 경기, 강원, 충남북의 이북지역에, ‘나락’이 그 나머지의 남부, 즉 경남북, 전남북에 분포된다. 남부 지역에 접해 있는 전북의 <금산>, 충북의 <보은, 옥천, 영동>, 그리고 경기도의 <안성>이 남부계인 ‘나락’을 취하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남북을 선명하게 양분하는 모습이어서 방언경계선을 긋기가 쉬운 대표적인 사례라 할 만하다.
‘벼’형과 ‘나락’형이 공존하는 접촉지대인 충남의 <논산, 대덕, 연기, 공주, 부여>와 충북의 <청원, 진천, 음성>, 그리고 강원도의 <정선 영월, 삼척> 등이 그러한 지역에 해당한다. 이는 전이지역(transition area)에서 자주 발견되는 현상으로 ‘베’와 ‘나락’ 사이의 의미 분화는 그 전형적인 예의 하나라 할 만하다. 지도에 이를 구별하여 표시하였는데, 애초 질문지에서는 논에 있는 상태의 벼와 이삭에서 턴 후의 열매 상태의 벼를 따로 물었던 것을 지도에서 두 질문의 결과를 하나로 통합한 것이다.
‘벼’라는 말이 멀리 인도에서 북방 여진(女眞)말을 거쳐 정착되었다면, ‘나락’이라는 남북지역의 토속말일 가능성이 많다. 그런데 20세기 이전의 문헌 자료에서는 ‘나락’이 나타나는 것은 나락’은 일찍이 이덕무의 『한죽당섭필』<신라방언>조에 ‘羅洛’으로, 『한불자뎐』(1880)에서 그 예를 찾을 수 있다. ‘나락’이라는 말은 ‘곡식’이라는 뜻의 ‘낟’에 명사 형성 접사 ‘-악’이 결합한 고유어이다.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라는 속담과 "오늘 해 전으루 씻나라꺼정 다 뿌리나요"와 같이 문학작품에서도 '나락'형을 확인할 수 있다. '나랙'이 라는 딸은 '곡식'이라는 뜻의 '남'에 명사 파생접사 '-약'이 결합한 고유어이다. 반면, '벼'는 인도어 meo에서 북방 여진어(berc)를 거쳐 정착된 것으로 추정한다.
방언 분화형은 '벼'형과 '나락'형으로 구분된다. '벼'형에는 '벼(:)', '베/배', '비'형이 나타나고, '나락'형에는 ' 나락',' '나래', '나록'형으로 분화된다. 모두 모음교체로 나타난 방언형들이다. '비'는 곡식 낱알의 이름으로 또는 식물로서 모판에 있을 때와 모심기를 한 이후의 이름이 방언 차이를 보인다. 또 식물로서 '벼'의 이름이 부분과 전체에 따라서도 방언 차이를 보여준다. 예컨대, 경상방언에서는 식물, 곡물 모두 '나락'이라 하지만, 충청방언에서는 식물은 '벼/베', 곡물은 '나락이라 부른다. '비'의 방언 분포 유형은 '베'형과 '나라'형이 '남북사선형(/)' 에 가까운 모습으로 분포하고 있다.
'나락‘형은 충남 중부 지역에서 강원 남부 지역에 이르기까지 그 이남 지역에 분포하고, 경기, 강원을 중심으로 나타나는 '비'형이 표준어로서의 위상을 얻어 남부 지역까지 그 세력을 확장하고 있는 모습이다. 방언형들을 지도 위에 배치하면 우리말의 풍경화가 된다. 언어의 역사, 언어고고학의 재료가 훤히 눈 앞에 전개된다.
필자 이상규 박사는 대한민국 최고의 국어국문학자이다. 국립국어원장과 국어정책학회장, 경북대학교 국문과 교수를 마치고 현재 경북대 명예교수와 국가미래연구원 이사로 고향 대구에서 집필과 후학 양성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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