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리더뉴스=남상채 기자] 신청하지 못하면 죽는 복지, 이제는 권리를 먼저 찾아주는 국가로 거듭나야 한다.
지난 2025년 8월 청와대 국가재정전략회의 현장. 정책 보고를 받던 이재명 대통령은 "신청주의, 이거 매우 잔인한 제도 아닌가요? 대상자가 되면 국가가 당연히 지급하고, 최선을 다해찿아냈음에도 못 받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신청 안 했다고 안 줘서 지원을 못 받아 죽음에 이르는 비극은 없어야 합니다."라며 대한민국 복지 시스템의 구조적 한계를 직격했다.
2014년 송파 세 모녀 사건, 그리고 2022년 수원 세 모녀 사건은 한국 사회에 반복해서 같은 질문을 던졌다. 왜 국가는 도움이 가장 절실한 사람들을 끝내 발견하지 못했는가.
우리는 오랫동안 이 비극을 ‘복지 사각지대’라는 말로 설명해왔다. 그러나 보다 정확히 말하면 문제의 본질은 사각지대 자체가 아니라 ‘신청주의’였다. 지원이 필요한 국민이 스스로 제도를 알아내고, 가난을 증명하고, 행정기관의 문을 두드려야만 비로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구조 말이다.
문제는 가장 취약한 사람이 대체로 가장 신청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실직과 질병, 고립과 우울 속에서 행정 절차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결국 신청주의는 형식상 공정해 보일 뿐, 현실에서는 가장 약한 사람을 탈락시키는 제도가 되기 쉽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복지안전매트 강화 방안’은 이런 구조를 바꾸겠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아동수당과 부모급여 등의 자동 지급 확대, 위기가구에 대한 직권 신청 강화, AI 기반 복지상담 도입 등은 모두 “국민이 신청해야 움직이는 국가”에서 “국가가 먼저 찾아가는 시스템”으로의 전환을 예고한다.
특히 주목해야 할 변화는 실시간 소득 파악(RTI·Real Time Information) 체계다. 지금까지 한국 복지행정의 가장 큰 약점은 데이터의 시차였다. 자영업자와 프리랜서의 소득은 늦게 반영됐고, 건강보험료나 복지 자격은 종종 1~2년 전 소득을 기준으로 산정됐다. 이미 폐업했는데도 행정 시스템상으로는 여전히 ‘고소득자’로 남는 일이 반복됐다.
하지만 국세청의 월 단위 실시간 소득 파악 체계가 본격적으로 작동하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소득 급감이나 폐업 신호를 조기에 포착해 긴급복지나 사회보험 지원으로 연결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국민이 주민센터를 찾아가 사정을 설명하기 전에 국가가 먼저 위기를 감지하는 체계다.
이 흐름은 단순한 복지 확대를 넘어 한국 사회보장 체계의 구조 개편과도 연결된다. 지금의 사회보험은 정규직·장시간 노동 중심 시대에 설계돼 있다. 그러나 플랫폼 노동과 N잡, 초단시간 노동이 일상화된 현실에서 ‘월 60시간 미만 적용 제외’ 같은 기준은 시대와 점점 충돌하고 있다.
결국 미래의 사회보험은 직업이나 사업장이 아니라 ‘실시간 소득’을 기준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 국세청 중심의 사회적 징수 통합 논의가 등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소득 데이터를 기반으로 건강보험과 국민연금, 각종 사회보험을 통합 관리하자는 구상이다. 만약 실시간 소득 파악이 정교해진다면 지역가입자의 재산 보험료 역시 상당 부분 폐지할 수 있다. 소득을 제대로 알 수 없어 집과 자동차를 대신 기준으로 삼았던 시대가 끝나는 셈이다.
물론 우려도 작지 않다. 실시간 소득 정보와 금융·통신 데이터까지 연계되기 시작하면 국가는 개인의 삶을 매우 정밀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된다. 복지국가와 감시국가는 기술적으로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경고가 나오는 이유다. 국세청에 데이터와 권한이 과도하게 집중될 수 있다는 지적 역시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니다.
따라서 앞으로의 과제는 단순히 데이터를 더 모으는 데 있지 않다. 데이터 활용의 목적을 엄격히 제한하고, 독립적 감독체계와 시민 통제 장치를 함께 구축해야 한다. AI 판단에 대한 이의제기권과 설명 가능성도 반드시 보장돼야 한다. 강한 데이터 국가가 아니라 민주적으로 통제되는 데이터 복지국가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분명한 사실이 하나 있다. 더 이상 “몰라서 신청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사람이 삶의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사회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복지는 시혜가 아니라 권리이며, 권리는 국가가 먼저 찾아가 보장해야 한다.
신청주의의 종언은 단지 행정 절차의 변화가 아니다. 그것은 국가가 국민을 바라보는 방식 자체의 전환이다. [굿리더뉴스=남상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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