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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양삼일] 마법사가 권력을 좌지우지한 아르헨티나의 현주소...중남미 리더십의 심리 코드 (4-1)

  • 콜롬비아=양삼일 기자
  • 입력 2026.05.27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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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점성술, 미이라, 빙의 등 온갖 사술이 판쳤던 아르헨티나의 현재와 미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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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들의 성녀로 불린 에바 페론(에비타). 그녀의 카리스마는 죽음 이후에도 정치적 신화로 남았다.

 

1952년 7월 26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라디오에서 애도 방송이 흘러나왔다. 에바 페론(Eva Perón), 애칭 에비타(Evita). 많은 이들에게는 브로드웨이 뮤지컬 Evita 와 대표곡 Don't Cry for Me Argentina 의 실제 모델로 더 익숙한 인물이다. 가난한 사생아 출신으로 배우를 거쳐 대통령 부인이 된 여인. 노동자의 성녀로 불리던 그녀가 서른셋의 나이에 자궁암으로 죽었다.


아르헨티나가 멈췄다. 수백만 명이 거리로 나와 울었다. 장례 행렬이 지나는 길에 사람들이 몰려 압사 사고가 났다. 그녀의 시신은 스페인 출신 해부학자 페드로 아라(Pedro Ara)에 의해 특수 방부 처리됐다. 밀랍 인형처럼 완벽하게 보존된 시신. 피부 빛깔도, 머리카락도 살아있는 것처럼. 국민은 그 시신 앞에 무릎을 꿇었다. 


단순한 애도가 아니었다. 죽은 여인이 신화가 되는 순간이었다. 에비타는 죽어서 더 강해졌다. 살아있는 대통령은 실망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죽은 성녀는 실망을 주지 않는다. 죽었으니까.


그리고 그 신화를 노리는 자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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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사망 후 특수 방부 처리된 에비타의 시신. 죽은 지도자는 하나의 신화가 되었다.

 

마드리드 저택의 기괴한 동거


시간은 흘러 1970년대 초. 스페인 마드리드의 한 저택. 18년간 망명 생활을 하던 전직 대통령 후안 페론(Juan Perón)과 세 번째 아내 이사벨 페론(Isabel Perón)이 살고 있었다. 그런데 이 저택 안방에 기이한 것이 있었다. 에비타의 시신이었다.


부부는 죽은 전처의 시신을 집 안에 두고 그 곁에서 식사를 하고 일상의 대화를 나눴다. 아침에 일어나면 시신에게 인사를 했다. 저녁에는 시신 앞에서 와인을 마셨다. 산 자와 죽은 자가 한 공간에서 함께 살았다.


이 기괴한 풍경의 중심에 한 남자가 있었다. 호세 로페스 레가(José López Rega). 별명은 '엘 브루호(El Brujo)', 마법사.


경찰 출신이었던 레가는 점성술과 강신술에 깊이 빠진 인물이었다. 처음엔 집사로 페론 곁에 들어왔다. 그러나 그는 단순한 집사가 아니었다. 별자리를 읽고 죽은 자의 영혼을 부른다고 자처했으며, 무엇보다 삼류 무용수 출신으로 정통성이 빈약했던 이사벨의 심리적 결핍을 정확하게 읽었다. 이사벨에게 에비타는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국민이 사랑한 것은 에비타였지, 이사벨이 아니었으니까.


레가는 이 결핍을 파고들었다. 그는 이사벨에게 속삭였다. "에비타의 카리스마를 당신 안으로 옮길 수 있습니다."


 

빙의 의식


한국 무속에서는 이것을 빙의라고 부른다. 죽은 사람의 혼이 산 사람의 몸 안으로 들어와 그 사람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것. 무당이 몸을 떨다가 목소리가 바뀌고 전혀 다른 사람이 되는 순간. 레가가 이사벨에게 한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그는 이사벨을 에비타의 관 위에 눕혔다. 촛불을 켰다. 향을 피웠다. 그리고 주문을 외웠다. 죽은 에비타의 영적 에너지가 산 이사벨의 몸으로 흘러 들어가는 의식. 이사벨은 이 의식을 반복해서 받았다. 그리고 스스로가 에비타의 재림이라고 믿기 시작했다. 에비타처럼 머리를 올려 묶었다. 에비타의 말투를 연습했다. 에비타가 즐겨 쓰던 손짓을 반복했다. 죽은 여인의 껍데기를 하나씩 걸쳐 입은 것이다.


죽은 여인의 껍데기를 입은 여자가 부통령이 되어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통령궁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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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통령이었던 이사벨 페론은 남편 후안 페론 사망 후 대통령이 됐다. 그러나 주술 정치와 권력 사유화 속에서 아르헨티나는 긴 혼란의 시대에 들어갔고, 그 후유증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점성술판 위에 세워진 나라


1973년 후안 페론이 아르헨티나로 귀국해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사벨이 부통령이 됐다. 1974년 후안 페론이 사망하자 이사벨이 세계 최초의 여성 대통령직을 승계했다. 마법사 레가는 '사회복지부 장관'이라는 직함을 달고 실권자가 됐다.

 

그 시기 아르헨티나의 국정은 점성술판 위에서 굴러가고 있었다.

 

레가는 매일 밤 대통령궁에서 의식을 열었다. 커다란 점성술판을 펼쳤다. 별자리의 움직임을 읽었다. 영매를 불러 죽은 자의 목소리를 들었다. 오늘 어느 장관을 해임할지, 내일 어느 정책을 펼칠지. 모든 결정이 별자리와 영매의 목소리에서 나왔다. 장관 회의는 요식 행위였다. 진짜 국무 회의는 점성술판 앞에서 열렸다.


이사벨은 매일 에비타처럼 차려입고 국민 앞에 섰다. 에비타의 머리 모양, 에비타의 말투, 에비타의 손짓. 그러나 그 껍데기 뒤에서는 레가가 조직한 준군사 조직 'AAA(아르헨티나 반공 연맹)'의 피비린내 나는 학살이 벌어지고 있었다. 비판하는 자는 악마의 목소리를 내는 자로 규정됐다. 제거됐다. 사술은 반드시 폭력을 동반한다. 자신의 허구를 가리기 위해 실체적인 비판을 없애야 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그림자


레가는 공식 각료였지만 실제로는 대통령의 그림자였다. 그의 허락 없이는 아무도 이사벨을 만날 수 없었다. 점성술판이 내린 신탁에 따라 요직이 채워졌다. 능력이 아니라 사적 충성이 기준이었다. 이렇게 임명된 자들은 국가를 위해 일하지 않았다. 자신을 임명한 그림자를 위해 일했다. 법과 시스템은 서서히 무너졌다.


레가는 원래 경찰 순경으로 시작해 하위 실무 간부 정도까지 올라간 인물이었다. 정규 엘리트 경찰 코스를 밟은 사람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훗날 아르헨티나 경찰 최고위 계급인 'Comisario General'까지 부여받았다. 순경 출신이 오를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능력과 경력이 아니라 권력자에 대한 사적 충성이 계급장을 만든 것이다.


그가 장악한 사회복지부 역시 단순한 복지 부처가 아니었다. 막대한 예산, 노동조합 연결망, 정보망, 준군사 조직 지원까지 연결된 사실상의 권력기관처럼 움직였다. 점성술과 강신술에 빠져 있던 한 전직 하위 경찰 출신 인물이 국가 권력의 심장부를 장악한 것이다. 


임명되어서는 안 될 사람들이 자리를 채울 때, 그것은 단순한 인사 실패가 아니다. 국가 시스템 자체가 사유화되는 것이다. 사적 충성 네트워크가 공적 질서를 대체하는 것. 그 결과는 언제나 같다.


역사가들은 레가를 "아르헨티나의 라스푸틴"이라고 부른다.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를 멸망으로 이끈 그 괴승처럼, 레가도 권력자의 심리적 결핍을 파고들어 국가를 장악했다. 경찰 출신이 장관이 됐다. 점성술사가 국정을 결정했다. 능력이 아닌 사적 충성이 공직의 기준이 됐다.



마법사는 도망쳤다


1975년 7월. 부에노스아이레스 공항. 한 남자가 외교관 여권을 들고 출국장을 빠져나갔다. 호세 로페스 레가. '특사' 자격이었다. 그러나 누구도 그가 돌아올 것이라 믿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스페인으로, 스위스로, 바하마로 전전하며 자취를 감췄다.


마법사는 도망쳤다. 그러나 그가 뿌린 씨앗은 남았다.


레가가 도주한 직접적인 원인은 그가 강행한 경제 정책 '로드리가소(Rodrigazo)'였다. 물가를 한꺼번에 수백 퍼센트 올리는 충격 요법. 점성술판이 내린 결정이었다. 노동자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총파업이 일어났다.


그가 만든 테러 조직 AAA는 이미 통제 불능이었다. 언론인, 지식인, 좌파 인사들을 암살했다. 나라가 피로 물들었다. 군부도, 의회도, 노동자도 레가를 공공의 적으로 규정했다. 마법사는 눈치를 챘다. 그리고 달아났다.


홀로 남겨진 대통령


레가가 사라진 뒤 이사벨은 완전히 무너졌다. 점성술판 없이는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었다. 처음부터 혼자였다면 배웠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는 처음부터 그림자에 기대어 대통령이 됐다. 그림자가 사라지자 그녀에게 남은 것은 없었다.


경제는 파탄 났다. 인플레이션이 치솟았다. 좌우익 테러가 매일 거리에서 벌어졌다. 이것이 군부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명분이 됐다.


1976년 3월 24일 새벽. 호르헤 비델라(Jorge Videla) 장군이 이끄는 군부가 움직였다. 이사벨은 잠든 채 관저에서 연행됐다. 군부는 선언했다. "부패한 자들이 망쳐놓은 국가 질서를 바로잡겠다." 그러나 군부가 가져온 것은 질서가 아니었다.

 

 

더러운 전쟁 - 국가가 국민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다


비델라 정권은 전국에 340여 개의 비밀 수용소를 설치했다. 반정부 인사라고 지목되면 재판도 없이 끌려갔다. 집에서, 직장에서, 대낮의 거리에서 사람들이 사라졌다.


7년간 최소 9,000명에서 최대 3만 명이 실종되거나 살해됐다. 실종자의 48%가 노동자였고 학생이 21%, 언론인, 교사, 판사, 변호사까지 포함됐다. 반정부 인사의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끌려간 사람도 있었다.


 더 끔찍한 일도 있었다. 수용소에서 아이를 낳은 임산부의 아기는 가족에게 돌아가지 않았다. 군부 관련자들에게 비밀리에 입양됐다. 자신이 실종된 부모의 자녀라는 사실을 모른 채 자란 아이들. 아르헨티나는 지금도 이 '빼앗긴 아이들'을 찾고 있다.


레가가 만든 AAA의 암살 방식을 군부가 국가 시스템으로 완성시킨 것이다. 마법사가 뿌린 폭력의 씨앗을 군부가 거두어 국가 테러리즘으로 키웠다.


 

5월 광장의 어머니들


군부 독재가 한창이던 1977년 4월 30일. 부에노스아이레스 5월 광장에 흰 스카프를 두른 어머니들이 나타났다. 아이를 잃은 어머니 14명이었다. 그들은 말없이 광장을 걸었다. 군부는 해산을 명령했다. 어머니들은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지금도 매주 목요일 광장을 돈다. 2026년 4월 30일, 창립 49주년 행진이 열렸다. 2,506번째 목요일 행진이었다. 아직도 찾지 못한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사술로 시작된 비정상의 정치가 남긴 상처는 이렇게 깊다.


 

마법사의 최후

 

10년간 도피 생활을 하던 레가는 1986년 미국 마이애미에서 체포돼 아르헨티나로 압송됐다. 재판을 기다리던 중 1989년 감옥에서 죽었다. 에비타처럼 국민의 추앙을 받기는커녕 아르헨티나를 지옥으로 밀어 넣은 악마라는 낙인과 함께 쓸쓸히 눈을 감았다.


마법사는 도망쳤다. 그러나 그가 남긴 오물은 남은 국민들이 수십 년간 온몸으로 치워야 했다.


아르헨티나는 지금도 복구 중이다


1983년 민주주의가 돌아왔다. 그러나 상처는 깊었다. 군사정권이 남긴 외채는 1975년 78억 달러에서 1983년 450억 달러로 폭증했다. 2001년 아르헨티나는 결국 국가 부도를 선언했다. 40년 동안 10차례 디폴트를 선언한 나라. 2024년 물가상승률은 연 236%에 달했고 빈곤율은 53%까지 치솟았다. 소고기를 즐기던 나라에서 이제 닭고기도 비싸다며 내장을 사먹는 나라가 됐다.


 지금 아르헨티나는 밀레이 대통령이 극단적인 긴축으로 회복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신뢰 회복은 더디다. 레가의 점성술판이 무너진 지 50년이 지났다. 아르헨티나는 아직도 그 청구서를 갚고 있다.


오늘날 한국의 일부 논객들은 분배 정책이나 복지 확대를 말하면 "남미화", "베네수엘라화"를 경고한다. 그런데 정작 아르헨티나를 망가뜨린 것은 분배가 아니었다. 부의 집중, 군사 권위주의, 그리고 권력의 사유화였다. 준비되지 않은 인물이 공직을 차지하고, 사적 충성 네트워크가 공적 시스템을 대체할 때 나라가 무너진다. 레가가 그것을 증명했다.


 

탱크가 지나간 뒤


비정상적 권력이 막다른 길에 몰리면 언제나 물리적 폭력으로 회귀하려 한다. 레가의 점성술판이 군부의 탱크를 불러왔다. 대통령의 그림자가 법과 시스템을 허물었고, 그 허물어진 자리로 탱크가 들어왔다.


역사는 가끔 두 번의 기회를 주지 않는다.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그것을 알았을 때 이미 너무 늦었다. 광장에 나온 것은 탱크가 지나간 뒤였다. 


사술은 권력을 연장할 수 있다. 그러나 역사의 청구서는 반드시 날아온다. 그리고 그 청구서는 독재자에게가 아니라 언제나 국민에게 날아온다. 아르헨티나 5월 광장의 어머니들이 그것을 40년째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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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양삼일 아시아이베로 문화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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