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물놀이 당각을 아시나요?
소리는 신의 선물이다. 인간만 소리를 낼 수 있는게 아니라 대자연의 모든 동식물이 소리를 낸다. 자연의 음파동이 공기를 움직여 소리를 만들어내는데, 그 능력을 신의 선물로 여겼다. 인간이 들을 수 있는 가시청력 바깥에도 다양한 소리가 있다. 돌고래는 바닷물 속에서 가느다란 전파로 휘파람 같은 소리로 의사를 나눈다. 풀벌레는 신비로운 울음소리나로 꿀벌과 같은 곤충은 날갯짓을 하여 내는 소리로 의사소통을 한다. 인간만이 언어를 지닌 존재여서 다른 자연의 존재와 구분된다고 하지만 꼭 그렇지만 않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음악과 악기가 모두 신성한 기원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음악 예술은 신들이 인간에게 내려 준 선물이기에, 악기를 만들고 다루는 능력 자체가 신적 권능이 있다고 믿었다. 제의와 제사의 절차에 신바람 나는 악기들이 등장한다. 음악을 관장하는 신 아폴론과 시와 예술의 뮤즈들이 있었고 노래 잘 하는 오르페우스 같은 영웅은 산천초목을 홀릴 만큼의 마력을 지녔다. 심지어 오르페우스의 노래 소리에 돌이 저절로 움직여 도시 성벽을 쌓았다는 신화가 생겼을 정도이다. 악기의 발명 또한 예삿일이 아니었다. 헤르메스 신은 거북의 등껍질과 소의 창자를 재료로 최초의 리라Lyre를 만들어냈는데, 이것이 신들 세계에 커다란 변화를 일으켰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인류 문화마다 음악의 기원을 신화로 설명하곤 했는데 성경에는 유발이라는 인물을 모든 악기의 시조로 언급하고 페르시아에는 자무시드 왕이 처음 음악을 발명했다고 하며 인도에서는 예술의 여신 사라스바티가 비파를 들고 인간에게 음악을 가져왔다 전한다. 그만큼 소리를 다스리는 기술은 인간 세상의 것이기 전에 신들의 영역으로 여겨졌다는 뜻일 터이다.
신라 토기에는 악기를 연주하는 인형들이 있고 울산 반구대 암각화에는 고래잡이의 선두주자가 기다란 당각이라는 오동나무 나팔을 불고 있는 그림이 있다. 악기를 처음 손에 쥔 인간은 신들의 힘 일부를 빌린 존재처럼 보였고 그들에게 자연스레 특별한 지위와 신비로움을 전달해 준다. 이렇듯 악기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권위의 상징으로서 제사에 등장한다. 북소리가 울리면 부족은 하나로 모였고 나팔 소리가 울리면 사냥이나 전쟁에 나설 시각을 모두가 깨달았다. 악기를 통해 한 사람이 다수에게 신호를 보내고 감정을 움직이는 일이 가능해진 것이다. 특히 큰 북이나 나팔을 다루는 역할은 공동체 내에서도 중요한 지위였을 것이다. 이를테면 고대 전쟁터에서 나팔수는 공격과 후퇴의 타이밍을 지휘했고 북잡이는 노 젓는 뱃사람들의 호흡을 하나로 모았다. 악기는 이렇게 사람들을 조율하고 통제하는 도구로 쓰이며 사회적 기능을 띠었다.
우리나라에서 대체로 5월 경 모내기를 한 후에 초벌논매기에서 두벌, 세벌 정도 논매기가 끝나면 벼농사의 고된 일이 한시름 놓게 된다. 이 무렵이면 신경림 시인이 노래한 “농무”처럼 마을의 일꾼들이 모여 호미를 씻어서 걸어놓는 호미씻이라는 농경축제를 한다. 이 “호미씻이”라는 농경축제의 이름이 곳곳마다 다르다. 풋굿먹는다. 꽹말타기, 백중놀이다. 등등의 방언이 있다. 이 때 풍물을 치며 노래하는 박자를 맞추는 북, 꽹가리, 장구, 징을 사물놀이라고 한다. 김덕수 사물놀이패가 유명하다. 그런데 이 사물놀이에서 딩닥각이라는 나팔을 포함해 오물놀이를 하는 지역이 있다. 밀양, 청도, 고령, 달성 등 영남지방에는 백중 무렵 오물놀이의 전통이 이어졌다. 그러나 일제의 강압으로 오물놀이인 “꽹말타기(호미씻이)”가 사라졌다. 이 꽹말타기는에서는 ‘징, 장구, 북, 꽹과리’ 외에 “딩각”이라는 오동나무로 만든 나팔을 보태 ‘오물놀이’였다. 꽹말타기가 사라지면서 “딩각”도 자취를 감추었다.
필자가 1970년대 말 경북지역 방언민속 조사를 하다가 경북 고령에 사셨던 노인이 나에게 고령 오물놀이 전통에 대해 소상히 알려주었다. 선두잽이(선두꾼)가 오동나무로 길게 만든 나팔인 당각을 먼저 연주하면 꽹가리, 북, 장구, 징과 합주를 한다고 했다. 이 당각이라는 악기의 이름은 어떤 사전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국립국악원이나 서울대 국악과 교수들에게 수소문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우연찮게 울산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의 고래잡이 선두잽이로 보이는 사나이가 거대한 남근을 치켜들고 당각과 유사한 나팔 부는 모습을 발견하였다. 한참 잊고 있었던 딩각에 대해 조사를 시작하였다. 함경도 지역에 아주 큰소라로 만든 박주라라는 악기가 고기잡이를 할 때 이용되었다는 사실을 여러 문헌에서 확인하여 결정적인 근거를 찾았다. 영남대 고대경제사를 연구하셨던 권병탁 교수의 송광매 박물관에 바로 딩각이라는 고악기 4점이 소장되어 있었다. 매화가 지고난 어느 봄날 영남의 오물놀이 재현 행사에서 그토록 찾아 헤맸던 딩각을 만져보고 또 오물놀이 꽹말타는 행사에 참여하였다.
오래된 우리 선조들의 전통이 완전 소멸되었을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울산 반구대 인근 지역까지 바다물이 밀려들었으며 그 거친 파도를 헤치고 고래잡이 풍어 축제에 당각이라는 저음의 웅장한 소리가 여기까지 밀려오는 듯하다. 꽹말타기 풍어제에서 울려오는 청동기 시대의 선조들의 오물놀이가 다시 되살아난다면 전세계 사람들이 아마도 놀랄 것이다.

필자 이상규 박사는 국내 최고의 국어학자이다. 국립국어연구원장과 국어정책학회장, 경북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를 지내고 현재 경북대 명예교수와 국가미래연구원 이사로 고향 대구에서 집필 작업과 후학 양성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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