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규 칼럼 5] 이성을 넘어 잃어버린 야성을 찾아서..어머니의 치유력,연어의 생명력,대자연의 소리...
- 동시다발적이고 기계적 인간관계에서 다채로운 자연의 소리같은 인간관계로...
이성에서 벗어나 야생성을 찾아
인간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본래의 언어와 몸의 움직임을 잃어버린 고립된 디지털 섬에서 복작거리며 인간들은 함께 살고 있다. 딸각거리는 자판기의 소음에 묻혀 사는 사람들, 단절된 공간적 고립과 시간적 외로움만이 온 세상 가득 차 있는 듯하다. 인간은 달콤한 먹이의 유혹과 신기한 도시 고급 상품 더미 속에 묻혀서 옛날부터 지녔던 야생의 유연성을 잃어버린 지 꽤 오래다. 거대한 도시는 자의적인 이성의 권력과 폭력으로 둘러싸인 성곽으로 변했다. 왜소한 디지털 부품으로 전락한 사람들은 곁에 거주하는 사람들 살갗의 온기를 잊어버린 지 제법 시간이 흘렀다.
어린 시절 제법 긴 시간 동안 나는 자주 눈병을 앓았다. 지금처럼 안약도 없었던 때였지만 아슴프레한 기억으로 내 어머니가 아침 먼동이 틀 무렵 들길에 이슬 맞은 들풀을 뜯어와 소금에 저려서 내 눈에 톡톡 치면서 뭔가 중얼중얼거렸다. 치유하는 마법의 언어였다. 신통하게 눈병이 나았다. 돌이켜 보면 나의 어머니는 마력을 지닌 주술사였을까 아니면 대대로 내려오던 민간 치유의 주술 흉내를 낸 것일까? 우연찮게 번번이 내 눈병은 나았다. 어머니의 미메시스적인 마법의 힘은 나에게 전이된 것이다. 옛날 어른들은 씌어지지 않은 주문을 외우고 곡이 없이도 마법의 노래를 흥얼거렸다.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의 말처럼 기계 복제의 시대로 들어서면서 인간이 가졌던 복제의 마력은 소멸되어 버렸다. 그래서 인간 세상은 너무 재미가 없어진 것이다.
아침 들판에 나서면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조롱박새가 이른 봄을 일깨우며 지지배배 노래하며 하늘 높이 차고 오른다. 기술이 매개되지 않은 자연에는 온갖 짐승들과 식물들이 가득 앞을 다투며 노래를 한다. 산과 들, 논밭 사이로 흐르는 개울물, 태양과 달, 뭉게구름, 휘몰아치는 바람과 빗발이 세상을 활짝 열었다. 수수께끼 같은 세상의 모든 신비한 사물들은 인간의 몸을 향해 노래하고 속삭일 때 사람들은 그들의 나지막한 속삭임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문명화된 세상이 눈앞에 펼쳐지더니 개울물 흐르는 유창한 노래 소리는 우리들의 감각을 사로잡지 못하고 사라졌다. 고요히 처마 밑에서 거미줄을 치던 거미에게 보내던 사람들의 시선도 지워져버렸다. 부엌에 조왕신이 화마를 지키고 마루 시렁에 삼신이 내 유년기의 생명을 호위하고 심지어 변소까지 지켜주던 통시 귀신도 사라졌다.
그 한가롭던 대자연의 공간 대신 휴대폰 가상공간이 우리 앞을 지키고 있다. 진정한 대자연의 우주 전경이 화상의 불빛으로 바뀌어졌다. 별빛 대신 깜박이는 커저가 동공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 앞에 닥쳐온 디지털 연결망 속에 숨어있는 나는 인터페이스의 고립된 존재일 뿐이다. 지성이 쌓아온 AI 풍경 속에 마법의 언어와 조상들이 물려준 공유 감각이 급속도로 퇴화하였다.
현존하는 풍경 속에서 상실한 강을 차고 오르는 연어의 생동하는 생명력과 나무들과 식물들이 우리들에게 속삭이는 활력에 찬 목소리를 감지하지도 못한다. 냉수 한 사발 떠놓고 달님에게 치성 드리던 어머니의 애원하는 목소리가 가슴 가득 차올랐다가 사라지고 있다.
세상의 대자연과 속삭이며 대화하며 누렸던 자연 속 인간의 모습이 바뀌었다. 침묵과 단절 주고받던 인간의 애정어린 노랫소리가 사라져 버렸다. 잃어버린 인간의 야생성의 부활을 위해 인연의 끈을 놓아버렸던 사람과 사람, 사람과 대자연의 거리를 좁혀야 할텐 데, 동시다발적으로 연결된 기계적 거리감 자체가 소멸되어 버리고 없다. 인간은 우주만물 가운데 유일하게 언어를 가진 존재라는 과학주의적 강령에 길들어진 지 꽤 시간이 흘렀다. 돌이켜 보면 세상은 다채로운 자연의 소리로 가득 차 있다. 대자연은 소리와 숨결로 대화를 한다. 소리가 아니면 가느다란 숨결로 뚜렷한 신비의 생명줄이 마치 유비쿼터스의 연결회로처럼 이어져 있다.
컴퓨터 코드를 뽑고 대자연 원시림 속으로 걸어들어가 보자. 원래 동물의 몸이었다가 잊어버렸던 야생의 인간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이성의 노예로 너무 긴 시간을 방황해 왔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말했듯이 잊고 지내던 별빛을 헤아리고, 해와 달과 속삭여 보자. 생동하는 풍경 속으로 되돌아가 광기의 몸짓으로 춤추며 하늘 향해 소리 지르며 노래하자. 이성의 바다에 던져버렸던 인간의 광기와 야생성을 찾아나서자. 이성이 만들어놓은 견고한 법제에 짓눌렸던 내 몸과 내 언어를 생동하는 자연의 풍경화로 새롭게 그리면서 온전한 동물의 몸으로 야생의 자유를 지켜내야 한다.
필자 이상규 박사는 국내 최고의 국어국문학자이다. 국내에서 가장 권위있는 국립국어원장과 국어정책학회 회장, 경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등을 역임했고, 현재 경북대 명예교수와 국가미래연구원 이사로 고향인 대구에서 집필과 후학 양성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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