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비아=양삼일의 중남미 시선 20] 오래 전, 낯선 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열두 명의 사람이 있었다. 사십 일이 걸린 여정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거인입니다. 우리는 그들 앞에서 메뚜기 같았습니다."
두려움의 고백이라기보다, 더 깊은 충격이었다. 메뚜기라는 말 속에는 단순한 크기의 비교가 아니라, 존재 자체가 다른 차원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같은 하늘 아래 서 있지만 전혀 다른 세계에 속해 있다는 느낌.
그 거인들은 아마 신체적으로 큰 사람들이 아니었을 것이다. 정탐꾼들이 청동 칼을 들고 있던 시절, 그 땅의 사람들은 이미 철을 다루고 있었다. 철제 무기, 철제 농기구, 철로 강화된 병거. 같은 인간이지만 전혀 다른 시간대 속에 살고 있었다. 메뚜기처럼 느껴진 것은 키의 차이가 아니라, 문명의 간극이었다.
인류는 계속 도구를 바꿔왔다.
돌에서 청동으로, 청동에서 철로. 철이 들어오자 제국이 만들어졌다. 아시리아와 페르시아, 로마는 철 위에서 확장됐다. 철은 무기이면서 동시에 쟁기였다. 땅을 정복하기도 했고, 땅을 일구기도 했다. 같은 도구가 칼도 되고 쟁기도 됐다. 산업혁명이 왔다. 기계가 속도와 반복을 가져왔고, 인간의 노동을 바꿨다. 인터넷이 왔다. 시공간의 경계가 흐려졌고,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연결된 존재가 됐다.
그 변화가 도시의 형태까지 바꾼 곳이 있다. 콜롬비아의 메데진이다.
한때 마약 카르텔의 총성과 반군의 공포로 기억되던 이 도시는 ICT를 도구로 삼아 변신을 시도했다. 대중교통이 닿지 않는 산동네를 케이블카와 에스컬레이터로 도심과 연결했다. 도서관과 학교, 광장을 만들었다. 폭력의 기억을 지우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만들려 했다.
그러나 같은 도구가 다른 결과도 만들었다. 비대면 근무가 일상이 되면서 디지털 노마드가 밀려들었다. 임대료가 치솟았고, 오랫동안 그곳에 살던 사람들이 밀려났다. 온라인을 통한 범죄는 더 은밀하고 조직적인 형태로 퍼졌다. 도구는 중립이 아니었다. 누가 어떻게 쓰느냐가 결과를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 또 하나의 도구가 우리 앞에 있다. 생성형 인공지능이다.
이 도구는 손을 돕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생각을 건드리고, 때로는 대신하기 시작한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판단을 내리고, 코드를 만든다. 우리가 오랫동안 인간의 영역이라 여겨온 곳 안으로 들어왔다.
칼 포퍼는 오래전에 열린 사회와 닫힌 사회를 구분했다. 질문을 허용하는 사회와 정답만을 남기는 사회. 이 오래된 구분이 지금, AI 앞에서 다시 현실의 문제로 돌아오고 있다. 이 도구를 통해 우리는 더 많이 묻는 존재가 될 것인가, 아니면 더 빠르게 하나의 정답을 찾는 존재가 될 것인가.
어떤 사회에서는 AI가 가능성을 넓힌다. 의료 데이터 속에서 패턴을 찾고, 기후를 더 정확히 예측하며, 말하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표현의 길을 열어준다. 그러나 다른 사회에서는 통제의 도구가 된다. 얼굴을 추적하고, 다른 목소리를 지우며, 기억을 다시 쓴다. 이미 세계 곳곳에서 동시에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다시 정탐꾼 이야기로 돌아온다.
열두 명은 같은 길을 걸었고, 같은 땅을 봤다. 그런데 돌아와 서로 다른 말을 했다. 열 명은 "우리는 메뚜기다"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두려워하지 말자, 우리가 능히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낙관과 비관의 차이가 아니다. 같은 것을 보고도 전혀 다른 이야기를 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지금 한국이 그 자리에 서 있다.
스탠퍼드대 AI INDEX 2026에 따르면 한국은 2025년 출시된 주목할 만한 AI 모델 수에서 미국, 중국에 이어 세계 3위를 기록했다. 인구 10만 명당 AI 특허 수는 2년 연속 세계 1위다. 이재명 정부는 'AI 3대 강국 단독 도약'을 국가 목표로 내걸었다. 영국, 프랑스, 캐나다와 경쟁하는 '3위권 그룹'에서 '단독 3위'로 올라서겠다는 구상이다.
더 나아가 한국은 AI를 해외 ODA로 나누겠다는 구상도 밝혔다.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는 "보편적 혜택을 국제사회로 확산하는 것"을 3대 정책축 중 하나로 공식화했다. 메뚜기처럼 느껴졌던 나라가, 이제 개척자로서 다른 나라에 도구를 나눠주려 한다.
물론 과제도 있다. 민간 투자는 여전히 부족하고, AI 인재는 유출이 유입보다 많다. 3위권 도전은 현실이지만, 단독 3위는 아직 목표다. 정직하게 봐야 한다.
그래도 방향은 분명하다. 철이 쟁기도 되고 칼도 됐던 것처럼, AI도 어떻게 쓰느냐가 결과를 만든다. 한국이 이 도구를 쟁기로 쓴다면, 그리고 그 경험을 세계와 나눈다면, 그것이 진짜 개척자의 모습이다.
우리는 지금, 또 한 번 낯선 땅 앞에 서 있다. 거인을 볼 것인가, 기회를 볼 것인가. [콫롬비아=양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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