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

키워드

로그인을 하시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받으실 수 있습니다.

[콜롬비아=양삼일 19] 돈키호테와 춘향이 사이에서 : 판소리와 째즈..

  • 콜롬비아=양삼일 기자
  • 입력 2026.05.07 09:51
  • 글자크기설정

 

[콜롬비아=양삼일의 중남미 시선 19] 얼마 전 조카들에게 편지를 썼다. 두 조카는 서울의 유명 대학에서 각자의 전공을 마친 뒤, 다시 의대에 도전해 이제 전공의가 되었다. 한번 길이 정해지면 쉽게 바꾸지 않는 세상에서, 다시 새로운 길을 선택하고 끝까지 밀고 간 것이다. 게다가 의대를 다니면서도 방학마다 봉사를 다녔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어쩌면 그렇게 어린 시절 그들의 엄마 모습과 닮았는지 혼자 놀라곤 했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요즘 내가 하고 있는 번역 이야기를 꺼내게 되었다. 의사가 되었다는 사실보다, 왜 다시 그 길을 선택했는가를 더 오래 생각하게 된다고도 썼다. 어떤 직업은 생계를 위한 일이지만, 어떤 길은 결국 사람이 자기 삶을 어떻게 살아가려 하는가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나는 요즘 '춘향전'을 스페인어로 옮기는 일을 하고 있다.

 

이번 작업을 하면서 이 오래된 이야기가 단순히 글이 아니라 소리와 몸의 기억 속에서 이어져 내려온 이야기였다는 걸 새삼 느끼고 있다.

 

이 작업을 시작한 이유는 단순히 번역을 해보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9월에 열리는 제20회 메데진 국제도서전에서 한국이 주빈국으로 참여하게 되었고, 그 안에서 한국의 고전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준비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낯선 땅에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한국의 이야기를 전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 질문 앞에서 이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번역을 하다 보니, 이상하게도 책상 앞이 아니라 오래전 기억 속으로 자꾸 돌아가게 된다. 어린 시절 기차를 타고 조성역에 도착한 뒤, 외갓집까지 한참을 걸어 들어가던 기억이 난다. 어린 마음에는 그 길이 끝이 없을 만큼 멀게 느껴졌었다. 그런데 몇 해 전 광주에 갔을 때는 고속도로로 불과 한 시간 반 정도밖에 걸리지 않아 혼자 한참 웃었던 기억이 난다. 시간은 어느새 거리의 감각까지 바꾸어 놓고 있었다.

 

방학만 되면 외갓집에 가서 외할아버지 생신 때마다 소리꾼들을 불러 남도 창을 듣곤 했던 시간들, 그때는 잘 몰랐던 장단과 호흡이 지금에 와서야 몸속 어딘가에서 다시 살아나는 느낌이 든다. 아마 이번 번역 작업도 그런 기억들 위에서 시작되고 있는 것 같다.

 

이번 번역은 단순히 내용을 옮기는 작업이 아니라, 판소리 특유의 리듬과 호흡을 어떻게 다른 언어 안에서 다시 살아 움직이게 할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했다. 그래서 번역을 하는 동안 오래전 남도 창의 기억을 떠올리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재즈와 소울 음악을 반복해서 들으며 문장의 호흡을 붙잡으려 했다. 특히 '춘향가'의 '사랑가'와 '암행어사 출두' 대목은 작업하는 동안 계속 반복해서 들었던 것 같다.

 

어떤 날에는 Miles Davis의 Summertime을 들으며 판소리 창의 길고 깊은 호흡을 떠올렸고, 또 어떤 순간에는 Aretha Franklin의 Think 안에서 억눌렸다가 끝내 터져 나오는 춘향의 저항 같은 것을 느끼기도 했다. Herbie Hancock의 Chameleon을 듣다 보면, 긴 반복 끝에 갑자기 터져 나오는 그루브 속에서 암행어사가 마침내 신분을 드러내는 순간의 긴장과 반전이 떠오르기도 했다.

 

또 어떤 밤에는 John Coltrane의 My Favorite Things를 반복해서 들었다. 같은 선율이 끝없이 변주되면서 조금씩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그 연주를 듣고 있으면, 이상하게도 '춘향가'의 사랑가 대목이 떠오르곤 했다. 같은 정서를 반복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호흡과 장단이 조금씩 달라지면서 감정이 점점 깊어지는 방식 말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판소리와 재즈는 전혀 다른 음악처럼 보이면서도 어딘가 닮아 있다. 정해진 장단 안에서 자유롭게 흔들리면서도, 결국 자기만의 호흡으로 사람의 감정을 끌고 간다는 점 때문이다. 어쩌면 이번 번역에서 가장 옮기고 싶었던 것은 문장보다 먼저 그 리듬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래서인지 콜롬비아 카리브 해안 지역의 바예나또(Vallenato)를 떠올리게 되기도 했다. 원래는 글을 모르던 하인들과 노동자들이 소식과 이야기를 노래로 전하던 지방 민요였는데, 시간이 지나며 지금은 콜롬비아를 대표하는 음악이자 라틴 음악의 한 얼굴이 되었다. 물론 판소리와는 전혀 다른 결의 음악이지만, 사람들의 삶과 기억, 웃음과 슬픔을 리듬 안에 담아 전해왔다는 점에서는 어딘가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지금도 떠올리면 혼자 웃음이 나는 장면이 있다. 겨울 방학 새벽이면 보성만에서 막 잡아온 싱싱한 꼬막을 들고 오는 아주머니가 계셨다. 투박하고 튼 손으로 꼬막을 하나하나 까주시곤 했는데, 어린 마음에는 고맙다는 생각보다 먼저 '더럽다'는 느낌이 들어서 먹을까 말까 망설이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막상 입에 넣으면 그 맛이 얼마나 좋던지, 결국은 늘 먹게 되곤 했다. 말을 안 듣고 고집을 부릴 때마다, 어른들은 "그러다 저 꼬막 아주머니 딸에게 장가 보낸다"는 말씀을 하시곤 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그녀의 딸은 도대체 어떻게 생겼을까 혼자 상상하곤 했고, 지금 생각하면 혼자 웃음이 나는 기억이다.

 

 

이상한 일은, 그렇게 어린 시절 기억 속 음식으로 남아 있던 꼬막을 서울에서 전혀 다른 방식으로 다시 만나게 되었다는 점이다. 몇 해 전 강남에서 우연히 꼬막 전문점 간판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들어갔다가 식중독에 걸려 큰 고생을 했다. 마침 이곳 초대 문화부 장관 부부를 수행해 귀빈 방문 중이었는데, 네 명이 함께 식사를 했지만 이상하게도 나만 계속 화장실을 찾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민망한 기억인데도 혼자 웃음이 난다. 어린 시절의 꼬막은 추억이었고, 서울의 꼬막은 고생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둘이 지금의 기억 안에서는 하나로 이어져 있다.

 

이번 번역 작업을 하면서 나는 이 과정을 마치 인체를 해부하는 것처럼 느끼고 있다. 문장을 하나씩 풀어내고, 다시 조립해가면서, 이 이야기가 어떻게 살아 움직이는지를 확인하는 일이다. 그런데 그 해부의 기준이 책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이런 기억들, 몸에 남아 있는 리듬과 감각에 더 가까이 닿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번역을 하면서 자꾸만 '돈키호테'를 떠올리게 되었다. 나는 오래전부터 돈키호테를 "사라져가는 세계의 마지막 인간"처럼 느껴왔다. 이미 시대는 변해버렸는데도 끝까지 옛 명예와 이상을 붙잡고 살아가려 했던 인간 말이다. 현실에서는 조롱받고 실패하지만, 끝내 자기 안의 세계를 포기하지 않았던 인간.

 

그런데 '춘향전'을 다시 읽고 번역하면서는 전혀 다른 방향의 근대성을 느끼게 되었다. 춘향은 오히려 "다가오는 세계를 먼저 살아낸 인간"에 가까웠다. 단순히 사랑을 지키는 인물이 아니라, 신분 질서를 넘어 자신의 존엄과 약속을 끝까지 지키려는 인간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돈키호테가 몰락해가는 기사도의 명예를 붙잡으려 했다면, 춘향은 이미 신분 질서를 넘어 개인의 존엄과 의지를 지키려 했다. 돈키호테에게서는 이상이 현실과 충돌하고, 춘향에게서는 권력이 인간의 존엄과 충돌한다. 돈키호테가 끝까지 자기 안의 상상력과 자유를 포기하지 않는 인간이었다면, 춘향은 끝까지 자기 선택의 윤리와 약속을 버리지 않는 인간이었다.

 

무엇보다 흥미롭게 느낀 것은 권력의 문제였다. '춘향전' 속 암행어사는 왕의 특별한 권한을 가진 존재지만, 민중과 약한 사람들을 위해 그 권력을 사용할 때에만 비로소 영웅으로 받아들여진다. 권력은 스스로 정당해지는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해 사용되는가에 따라 정당성을 얻는다. 그래서 '춘향전'은 오래된 봉건 사회의 이야기이면서도, 이미 그 안에서 인간의 존엄과 권력의 정당성을 묻고 있는 작품처럼 느껴진다.

 

반대로 돈키호테는 왕정 시대의 인간이지만, 역설적으로 자기 안의 양심과 상상력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최초의 근대적 개인처럼 읽힌다. 두 작품은 서로 전혀 다른 세계에서 태어났음에도, 이상하게도 같은 질문을 품고 있다. 인간은 무엇을 붙들고 살아가는가. 그리고 끝까지 무엇을 포기하지 않는가.

 

어쩌면 번역이라는 것은 새로운 문장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이미 있는 이야기가 다른 언어 속에서도 다시 숨을 쉴 수 있게 자리를 내어주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 작업을 하면서 자꾸만 "잘 옮겼는가"보다 "이 이야기가 아직 살아 있는가"를 더 자주 묻게 된다.

 

이 이야기는 아주 먼 시간과 다른 장소에서 태어났지만, 그 안에 담긴 갈등은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와 크게 다르지 않다. 힘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약속과 압력, 그리고 끝까지 자신을 지키려는 선택은 어느 사회에서나 반복된다. 그래서 이 이야기가 낯선 옛날 이야기로 남기보다, 언젠가는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자신의 이야기처럼 읽히기를 바라고 있다. {콜롬비아=양삼일 아시아이베로 아메리카재단 이사장]

ⓒ 굿리더뉴스 & goodleadernews.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BEST 뉴스

추천뉴스

  • [굿리더뉴스] 서울시내 골목골목으로 몰려드는 해외 관광객
  • [굿리더뉴스] 세계 물리학계를 깜짝 놀라게 만든 한국의 과학자..
  • [굿리더뉴스] 한미동맹, 정보공유 문제 없나?
  • [굿리더뉴스] 백악관 대변인은 반드시 우파 금발의 미인이어야 한다!?
  • [굿리더뉴스] 주춤하던 광주 반도체, SK 최태원이 다시 속도 낸다..
  • [굿리더뉴스] 국힘 6선 조경태 의원이 갑자기 노무현 묘역을 참배한 까닭은?
  • [무주=남상채]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전북 무주의 반딧불이 축제...
  • [굿리더뉴스] 여권 강경파에게 던지는 이대통령의 초고강도의 레드카드..
  • [굿리더뉴스] '벌거벗은 트럼프', 유럽의회에 등장하다..
  • [굿리더뉴스] 손흥민, 차범근을 뛰어넘었다..

포토뉴스

more +

해당 기사 메일 보내기

[콜롬비아=양삼일 19] 돈키호테와 춘향이 사이에서 : 판소리와 째즈..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