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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 양삼일 18] 중남미 리더십의 심리 코드 (3) : 대통령이 죽음의 신이 되었을 때

  • 콜롬비아 양삼일 기자 기자
  • 입력 2026.05.02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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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양삼일의 중남미 시선 18] 1959년 중남미에 있는 아이티 대통령궁. 이 나라의 프랑수아 뒤발리에(François Duvalier) 대통령이 심장마비로 쓰러졌다. 의사들이 달려왔지만 아홉 시간 동안 그는 죽음의 문턱에 있었다. 그리고 깨어났다. 그런데 돌아온 사람은 달라져 있었다. 눈빛은 초점을 잃은 채 서늘했고, 목소리는 기괴한 콧소리로 바뀌었으며, 걸음걸이는 묘지에서 막 걸어 나온 사람처럼 뻣뻣했다.

 

다음 날 공식 석상에 나타난 그는 검은 정장에 검은 중절모를 쓰고 짙은 선글라스를 걸쳤다. 아이티 국민들은 숨을 멈췄다. 그 모습은 아이티 부두교(Voodoo)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를 지키는 신령, 바론 사메디(Baron Samedi)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신화 속 존재가 대통령의 몸을 입고 돌아왔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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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티 부두교(Voodoo)의 삶과 죽음의 경계를 지키는 신령, 바론 사메디(Baron Samedi)

 

한국 독자에게 부두교는 낯선 이름이다. 공포영화에 나오는 인형 저주 정도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부두교는 단순한 미신이 아니다. 17~18세기 서아프리카에서 프랑스 식민지 생도맹그, 오늘날의 아이티로 끌려온 노예들이 가톨릭 개종을 강요받는 현실 속에서도 자기 신들을 다른 이름으로 숨겨 지켜낸 종교였다.

 

노예들은 공개적으로는 성당에 가고, 성모 마리아와 여러 성인을 섬기는 형식을 따랐다. 그러나 그 이름 뒤에는 아프리카에서 가져온 신령들이 숨어 있었다. 가톨릭의 성인은 일종의 가면이 되었고, 그 가면 뒤에서 아프리카의 신들은 계속 살아남았다. 겉으로는 가톨릭, 속으로는 아프리카의 기억이었다.

 

예를 들어 어떤 신령은 성모 마리아의 이미지와 겹쳐졌고, 전쟁과 힘의 신령은 칼과 말을 든 성인의 모습 뒤에 숨었다. 뱀과 생명의 신령은 뱀과 연결된 성인의 형상 속으로 들어갔다. 지배자는 가톨릭 신앙이 퍼졌다고 믿었지만, 노예들은 그 안에서 자신들의 언어와 리듬, 의식과 신들을 계속 지켜냈다.

 

그래서 부두교는 단순한 종교 혼합이 아니었다. 그것은 노예들이 인간으로 남기 위해 만든 은밀한 생존 방식이었다. 이름을 빼앗기고, 언어를 빼앗기고, 몸까지 소유당한 사람들이 마지막까지 빼앗기지 않으려 했던 기억의 저장소였다. 그런 점에서 부두교는 아이티 민중에게 생활 종교이자 저항의 언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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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두교에서 저주를 위해 사용되는 인형들

 

한국의 무속신앙과 구조가 닮은 점도 있다. 신령들이 존재하고, 무당이 그 신령을 몸에 받아 사람들의 운명을 말해준다. 한국의 무속 역시 국가의 공식 이념과 별개로, 병과 죽음, 가난과 불안, 가족의 문제 앞에서 민중이 찾던 위로와 해답의 공간으로 살아남았다. 차이가 있다면 부두교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그것은 노예제와 식민 지배에 맞선 저항의 역사까지 품고 있었다. 1791년 아이티 혁명의 불씨가 된 보아 카이만(Bois Caïman) 의식 역시 부두교 전통과 연결돼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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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두교 의식

그 부두교 세계에서 가장 강렬한 존재 가운데 하나가 바론 사메디다. 그는 단순한 죽음의 신이 아니다. 무덤의 문을 열고 닫으며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를 지키는 묘지의 군주다. 사람을 데려가기도 하고, 때로는 다시 돌려보내기도 한다. 공포의 대상이지만 함부로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의 힘이다.

 

그의 모습은 한 번 보면 잊기 어렵다. 검은 정장, 검은 중절모, 검은 선글라스. 입가에는 시가가 물려 있고 손에는 럼주가 들려 있다. 코를 울리는 비음 섞인 목소리로 농담과 조롱을 내뱉다가, 다음 순간 죽음을 선언한다. 장례식장의 광대이자 묘지의 왕, 웃으며 다가오는 죽음의 얼굴이다.

 

그리고 어느 날, 프랑수아 뒤발리에 대통령은 바로 그 모습으로 국민 앞에 나타났다. 검은 양복과 중절모, 짙은 선글라스, 차가운 표정. 사람들은 단순히 대통령을 본 것이 아니었다. 자신들이 두려워하던 신령이 권력의 몸을 입고 돌아왔다고 느꼈다.

 

의사에서 신으로

 

뒤발리에는 원래 의사였다. 별명도 ‘파파 독(Papa Doc)’, 아빠 의사라는 뜻이다. 1930~40년대 오지 농촌을 돌며 열대성 피부병 환자들에게 페니실린을 놓아주던 그 의사. 현대 의학을 잘 모르던 농민들의 눈에 병을 고치는 의사는 이미 신통력을 가진 존재처럼 보였다.

 

그는 이것을 알고 있었다. 일찌감치 부두교를 치밀하게 연구했다. 의식, 주술, 신령들의 성격까지 기록했다. 1957년 대선에서 그는 부두교 사제들의 공개 지지를 받으며 당선됐다. 농촌의 부두교 사원들은 그의 선거 조직이 됐다. 그리고 심장마비 이후, 의사에서 신으로 완전히 변신했다.

 

인형과 저주 이야기

 

한국 드라마에서 장희빈이 인형에 바늘을 꽂아 인현왕후를 저주하는 장면이 나온다. 많은 사람들이 부두교 인형 저주를 이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핀으로 찌르는 부두 인형은 실제 아이티 부두교의 전통이 아니다. 할리우드 공포영화가 만들어낸 이미지다. 진짜 부두교의 인형은 죽은 자에게 메시지를 전하거나 상징적 연결을 만드는 도구에 더 가깝다.

 

그러나 본질은 같다. 인형에 상대방의 머리카락이나 옷가지를 넣어 그 사람의 인격을 부여하는 순간, 그것은 이미 주술의 영역으로 들어간다. 찌르든 안 찌르든 구조는 같다. 한국 무속에서도, 아이티 부두교에서도, 세계 여러 전통사회에서도 비슷한 방식은 반복돼 왔다. 인격을 인형과 같은 다른 대상에 옮겨 담는 행위 자체가 주술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뒤발리에는 이 공포를 권력으로 썼다. 1963년 케네디 미국 대통령이 달라스에서 암살됐다. 전 세계가 충격에 빠졌다. 그런데 뒤발리에는 조의 대신 이렇게 선포했다. “내가 한 일이다. 그날 아침 케네디 인형을 2,222번 찔렀다.” 22는 그의 행운의 숫자였다. 사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믿도록 만드는 순간, 그것이 이미 권력이었다. 아이티 국민들은 떨었다. 미국 대통령도 저주로 죽일 수 있는 사람이라면, 나는 어떻게 되는가.

 

공포가 통치가 된다

 

독일 철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저서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이렇게 말했다. “공포가 지배하는 곳에서 자유를 잃는 것이 아니라, 인간다움을 잃는다.”

 

뒤발리에는 이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바론 사메디가 곧 대통령이라면, 대통령에게 반대하는 것은 단지 정권에 맞서는 일이 아니다. 죽음 그 자체에 맞서는 일로 느껴지게 된다. 사람은 정부와 싸울 수는 있어도, 죽음과 싸우려 들지는 않는다. 이길 수 없는 싸움이기 때문이다.

 

그는 비밀 민병대 ‘톤통 마쿠트(Tonton Macoutes)’를 만들었다. 아이티 설화 속 저승사자의 이름을 딴 이들은 반대파를 고문하고 시신을 거리에 방치했다. 산 자들에게 죽음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는 것이다.

정적이 검은 개로 변신해 숨어 있다는 신탁이 내려오자, 아이티 전역의 검은 개를 모두 잡아 죽이라는 명령도 내렸다. 나라 전체가 검은 개 사냥에 나섰다.

 

스스로에게 붙인 칭호도 있다. “혁명의 수호자, 그리스도의 사도, 영혼의 전기 공급자.” 가톨릭의 신과 부두교의 신을 동시에 자처한 것이다. 어느 쪽 신을 믿든 뒤발리에를 피해갈 수 없도록 설계한 셈이다.

 

신도 나라를 구하지 못했다

 

니카라과의 다니엘 오르테가 대통령과 공동 대통령 로사리오 무리요 부통령은 주술과 종교 언어를 권력 유지의 도구로 썼다.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대통령은 독립 영웅 볼리바르의 영을 소환해 자신의 정통성을 빌렸다. 그리고 아이티의 프랑수아 뒤발리에는 자신이 직접 신이 됐다. 세 단계의 거리는 생각보다 멀지 않다.

 

1971년, 죽음의 신을 자처했던 뒤발리에는 대통령궁 침실에서 죽었다. 14년 독재의 끝이었다. 그가 남긴 것은 아이티 역사상 최초의 세습 독재와 세계 최빈국이라는 꼬리표였다.

 

바론 사메디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지키는 신령이다. 그러나 뒤발리에가 만든 세상은 산 자도 죽은 자처럼 살아야 하는 나라였다. 니카라과의 무리요는 말했다. “신의 뜻을 실현한다.” 베네수엘라의 차베스는 말했다. “볼리바르가 나에게 강림했다.” 아이티의 뒤발리에는 말했다. “나는 신이다.”

 

서로 다른 말처럼 들리지만, 그 밑바닥은 하나다. 그리고 그 끝은 언제나 같다. 

무당이 불러낸 죽은 신도, 스스로 신이 된 리더도, 나라를 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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