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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식의 시] 5월 가정의 달에 부쳐온 시.. 가족이라는 이름은 절제된 따뜻함과 오래된 진실...

  • 김한식 기자
  • 입력 2026.05.01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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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인이자 철학자인 필자가 가정의 달에 독자들에게 드리는 따뜻한 시 한수...

가족 2.jpg

 

가족이라는 오래된 별

 

               - 김한식 -

 

살랑살랑 스쳐가는 바람도

 

연둣빛 손으로

 

창문을 조용히 두드리는

 

오월이면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이름 하나를 불러봅니다

 

가족,

 

너무 가까워 쉽게 잊히고

 

너무 익숙해서 소홀해진 이름

 

긴 어둠 속을 건너며

 

마지막까지 놓지 않았던 불빛

 

굶주림의 들판에서도

 

전쟁의 잿더미나

 

흙먼지 날리는 길바닥에서도

 

잡은 손을 놓지 않았습니다

 

집이 무너져 내려도

 

나라가 통째로 사라져도

 

끝내, 지켜낸 것은 가족이었습니다

 

그것은 피로 이어진 울타리가 아니라

 

한 사람의 눈물에

 

함께 가슴 젖는 신비한 연대요

 

지친 마음이 돌아와 눕는

 

따뜻한 보금자리입니다

 

무엇이 아버지의 굳은 손보다

 

더 아름다우며

 

무엇이 어머니의 젖은 눈빛보다

 

더 따뜻하며

 

무엇이 잠든 아기의 숨결보다

 

더 거룩하겠습니까

 

어떤 천재도

 

이보다 나은 발명을 내놓지 못했고

 

어떤 종교도

 

새벽 밥상을 차리는 마음보다

 

성스러운 기도를 찾지 못했습니다

 

가족은 가까워서 상처를 주고

 

사랑하기에 더 아프게 하며

 

기대 때문에 눈물짓게도 합니다

 

그러나 다시 돌아와

 

서툰 손으로 문을 열어 주며

 

침묵 속에서도

 

끝까지 기다려 주는 곳이요

 

날마다 용서로 다시 짓는 집입니다

 

인류가 남긴 가장 위대한 걸작은

 

그림이나 노래가 아니라

 

한 사람을 끝까지 사랑하려는

 

단단한 마음이라는 것을

 

그 이름, 가족이라 부릅니다

 

<해석> : 인간이 끝내 지켜 낸 가장 따뜻한 이름

 

김한식 시인의 「가족이라는 오래된 별」은 가족을 단순한 혈연 공동체로 그리지 않습니다. 이 시가 그려내는 가족은 인간 존재의 가장 오래된 기억이자, 문명이 수없이 무너지고 다시 세워지는 과정 속에서도 끝내 남아 있는 마지막 자리입니다. 그래서 이 시는 가족을 설명하지 않고, ‘불러봅니다’라는 표현으로 시작합니다. 가족은 정의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라, 불러야 비로소 살아나는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시의 첫 장면에서 바람은 “연둣빛 손”으로 창문을 두드립니다. 이 이미지는 단순한 계절의 묘사가 아니라, 기억의 문을 여는 존재의 은유입니다. 오월이라는 시간은 자연의 회복을 상징하지만, 동시에 인간 내면의 오래된 감각—잊고 있던 관계의 온기를 다시 불러오는 시간입니다. 그때 시인은 가장 오래된 이름 하나를 부릅니다. 가족. 이 호명은 어떤 설명보다 깊습니다. 우리는 가족을 너무 잘 안다고 생각하기에, 오히려 더 쉽게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가까움은 기억을 약화시키고, 익숙함은 소중함을 희미하게 만듭니다. 이 시는 바로 그 잊힘의 어둠 속에서 가족이라는 이름을 다시 꺼내어 들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가족은 역사적 시간 속으로 들어갑니다. 굶주림의 들판, 전쟁의 잿더미, 흙먼지 날리는 길바닥. 이 이미지들은 인간 문명의 가장 극단적인 붕괴의 순간들을 호출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파괴 속에서도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는 구절은 이 시의 중심을 이룹니다. 국가는 무너질 수 있고, 집은 사라질 수 있지만, 인간이 끝까지 지켜낸 것은 관계였습니다. 가족은 제도 이전의 공동체이며, 법과 권력보다 더 오래된 윤리입니다. 이 점에서 이 시는 가족을 ‘생존의 단위’가 아니라 ‘존재의 근거’로 끌어올립니다.

 

특히 “피로 이어진 울타리”가 아니라 “한 사람의 눈물에 함께 가슴 젖는 신비한 연대”라는 구절은 가족의 본질을 새롭게 정의합니다. 가족은 혈연이 아니라 감응의 공동체입니다. 타인의 고통이 나의 고통으로 번져오는 자리, 그 감정의 전이가 바로 가족의 핵심입니다. 여기서 가족은 생물학적 사실이 아니라 윤리적 사건으로 전환됩니다. 함께 아파할 수 있는 능력, 그것이 가족을 가족이게 만드는 조건입니다.

 

시의 중반부는 감각적이고 구체적인 이미지로 가족의 신성함을 드러냅니다. 아버지의 굳은 손, 어머니의 젖은 눈빛, 아기의 숨결. 이 세 가지는 각각 노동, 사랑, 생명의 상징입니다. 이 이미지들은 어떤 철학적 개념보다 더 깊이 인간 존재를 드러냅니다. 시인은 여기서 놀라운 전환을 시도합니다. “어떤 천재도 이보다 나은 발명을 내놓지 못했고 / 어떤 종교도 새벽 밥상을 차리는 마음보다 성스러운 기도를 찾지 못했다.” 이 구절은 문명 전체에 대한 조용하지만 단호한 평가입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위대한 것들—과학, 예술, 종교—그 모든 것보다 더 깊은 것이 가족 안에 이미 존재하고 있다는 선언입니다. 새벽 밥상은 단순한 일상이 아니라, 사랑이 반복을 통해 형식화된 가장 순수한 의식입니다. 이 의식은 신을 향하지 않고, 인간을 향합니다. 그래서 더 근원적입니다.

 

그러나 이 시는 가족을 이상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족의 어두운 진실을 함께 끌어안습니다. “가까워서 상처를 주고 / 사랑하기에 더 아프게 한다”는 구절은 관계의 역설을 정확히 짚어냅니다. 가장 가까운 관계일수록 상처는 깊어지고, 기대가 클수록 실망도 커집니다. 가족은 위로의 공간이면서 동시에 고통의 근원입니다. 그러나 시는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돌아와 문을 열어 주는 곳, 침묵 속에서도 기다려 주는 곳, 그것이 가족이라고 말합니다. 이때 가족은 완전한 관계가 아니라, 끊임없이 다시 지어지는 관계입니다. “날마다 용서로 다시 짓는 집”이라는 표현은 가족의 본질을 가장 깊이 드러냅니다. 가족은 완성된 구조가 아니라, 용서라는 행위를 통해 지속적으로 생성되는 살아 있는 공간입니다.

 

마지막 구절에서 시는 하나의 결론에 이릅니다. 인류의 가장 위대한 걸작은 예술도, 사상도, 문명도 아니라 “한 사람을 끝까지 사랑하려는 단단한 마음”이라는 선언입니다. 이 문장은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인간 존재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정의입니다. 인간은 끝까지 사랑하려는 존재이며, 그 의지를 포기하지 않는 한 인간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의지가 가장 깊게 실현되는 자리, 그 이름이 바로 가족입니다.

 

이 시를 관통하는 정서는 화려함이 아니라 절제된 따뜻함이며, 과장이 아니라 오래된 진실의 호명입니다. 시인은 가족을 새롭게 정의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잊고 있었던 것을 다시 보게 만듭니다. 가족은 거창한 개념이 아니라, 우리가 너무 가까이 있어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던 가장 근원적인 삶의 형태라는 사실을. 결국 이 시는 우리에게 조용히 묻습니다.

 

우리는 지금 그 오래된 별을 여전히 바라보고 있는가. 아니면 너무 가까이 있다는 이유로, 이미 잊어버린 것은 아닌가. 그 물음 앞에서 우리는 잠시 멈추게 됩니다. 그리고 멈춤의 자리에서, 가족이라는 이름은 다시 한 번 따뜻하게 빛나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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