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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양삼일 17-2] 라틴아메리카를 향한 미국 외교의 쌩얼 (2부)

  • 콜롬비야=양삼일 기자
  • 입력 2026.05.01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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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양삼일의 중남미 시선17] 라틴아메리카를 향한 미국 외교의 쌩얼 2부: 28개월에 한번, 그리고 한반도

 

100년의 패턴, 2025년까지

 

파나마, 도미니카, 브라질, 칠레. 이름만 나열해도 그 뒤에 가려진 비극의 무게가 느껴진다. 1954년 과테말라의 아르벤스(Jacobo Árbenz) 대통령은 자국의 땅을 국민에게 돌려주려다 CIA에 의해 축출됐다. 미국 기업 유나이티드 프루트 컴퍼니(United Fruit Company)의 바나나 이익이 한 나라의 민주주의보다 우선했다. 1983년 그레나다(Grenada) 직접 침공, 1989년 파나마 침공. 파나마의 노리에가(Manuel Noriega)는 한때 미국이 공들여 키운 CIA 정보원이었다. 쓸모가 없어지자 생포되어 끌려갔다. 키우던 사냥개를 사냥이 끝나자 처분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경제 제재라는 도구도 있다. 쿠바에는 60년 넘게, 베네수엘라에는 2018년부터 전방위 제재를 가해 경제를 압박해왔다. 2025년에는 아르헨티나와 온두라스 선거에 노골적으로 개입했다. 지지하는 후보가 패배할 경우 원조를 끊겠다고 공개적으로 압박했다. 100년 전 바나나 농장을 지키려던 논리와 뿌리는 같다. 방식만 달라졌을 뿐이다.

 

도구는 바뀌었지만 문법은 하나였다. 역사적 전환기마다 몽둥이가 등장했고, 라틴아메리카 각국이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역량으로 스스로의 역사를 써 내려갈 기회는 그때마다 박탈됐다. 그럼에도 라틴아메리카는 멈추지 않았다. 외부의 개입에 흔들릴 때마다 다시 일어섰다. 그 질긴 생명력은 지금도 이 땅 곳곳에 살아 있다.

 

2026년 베네수엘라, 예외가 아닌 제국 시스템의 귀환

 

2026년 1월 3일 새벽, 미국은 베네수엘라(Venezuela)의 니콜라스 마두로(Nicolás Maduro) 대통령을 군사 작전으로 체포해 본토로 압송했다. 이날은 1990년 1월 3일, 파나마의 마누엘 노리에가(Manuel Noriega)가 미국으로 압송된 지 정확히 36년이 되는 날이었다. 우연이 아니다. 제국은 같은 문법으로 움직인다.

 

트럼프(Donald Trump) 대통령은 이 작전을 "확고한 결의 작전(Operation Absolute Resolve)"이라 불렀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안정이 될 때까지 미국이 베네수엘라를 운영하겠다." 민주주의나 자유가 아니라, 석유와 운영권을 먼저 언급했다.

 

이번 사태를 두고 일부에서는 트럼프 개인의 충동적 결정이라고 본다. 그러나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1846년 멕시코, 1903년 파나마, 1954년 과테말라, 1964년 브라질, 1973년 칠레, 2009년 온두라스. 이 모든 개입의 문법은 하나였다. 미국에게 라틴아메리카는 언제나 관리해야 할 공간이었다. 베네수엘라는 예외가 아니다. 시스템은 계속 작동하고 있다.

 

선한 나라는 없다, 지혜로운 나라가 있을 뿐

 

여기서 한국 독자들에게 묻고 싶다. 우리는 미국을 제대로 보고 있는가. 6.25의 은인, 냉전의 우방이라는 이미지는 분명 사실이다. 물론 미국이 한국 전쟁에서 함께 싸웠고, 라틴아메리카에 자본과 안보를 제공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 역시 이익의 언어였다. 강대국은 감정으로 감정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이익으로 움직인다.

 

라틴아메리카에는 언제나 권력과 부를 대가로 미국의 편에 서려는 세력이 있었다. 소모사가 그랬고, 트루히요가 그랬다. 미국 입장에서는 간단한 계산이다. 개자식이지만 우리의 개자식. 이익이 맞으면 된다. 그리고 이익이 맞지 않으면, 어제의 동맹도 오늘의 적이 된다.

 

최근 주한미군사령관 브런슨(Xavier Brunson)은 한국을 "중국 앞에 떠 있는 항공모함"이라고 불렀다. 사람이 사는 땅을. 전시 작전권 회수를 두고 반미 프레임을 씌우려는 움직임도 있다. 라틴아메리카의 역사를 읽고 나면, 이 장면들이 낯설지 않다. 한반도도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김대중과 노무현 두 대통령은 한국이 중국이나 미국 같은 대국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대신 스위스나 스웨덴처럼, 크지 않지만 민주주의와 문화로 존중받는 나라를 꿈꿨다.

 

백범 김구는 나라를 잃은 상황에서도 이렇게 말했다."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 남에게 행복을 준다.“

 

총칼보다 문화를 먼저 말한 것이다. 강대국의 논리가 아니라, 작은 나라가 살아남는 방식을 이야기한 것이다.

 

나는 중학교 때 미국인 대학생 자원봉사단에게 영어를 배웠다. 그들과 가까이 지냈다. 그 시절 미국은 내게 따뜻한 얼굴이었다. 교환학생으로 미국에 갔을 때는 "성조기여 영원하라(The Star-Spangled Banner)"를 배웠다. 미국인들이 국가가 울려 퍼질 때 조용히 멈춰 서던 모습이 깊이 남았다. 지금도 어디선가 그 노래가 들리면 나도 모르게 걸음을 멈춘다. 보고타에서 뉴욕을 가면 낯설기보다 오히려 익숙하다. 거리의 냄새, 지하철 소리, 간판들. 몸이 기억하는 공간이다.

 

그러나 이 땅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며 다른 것도 배웠다. 한국인이 중국과 일본에 애증을 느끼듯, 나도 미국에 그렇게 됐다. 라틴아메리카에서 미국은 가족이 사는 나라면서, 동시에 대통령을 쫓아낸 나라다. 동경과 분노가 함께 존재한다. 그 감정은 단순한 반미나 친미가 아니라, 경험에서 나온 현실 감각이다.

 

라틴아메리카의 경험은 우리에게 하나의 거울이다. 미국을 적으로 볼 필요도, 은인으로만 볼 필요도 없다. 냉정하게 읽어야 한다. 역사적 전환기마다 강대국은 언제나 자국의 이익을 앞세운다.

 

그 구조 안에서 작은 나라에게 필요한 것은 순진한 신뢰도, 감정적인 분노도 아니다. 냉정한 독해력. 그리고 문화의 힘이다. 라틴아메리카가 그 답을 먼저 살고 있다. 이제 우리는 그 답을 읽고 선택해야 한다. [콜롬비아=양삼일 아시아이베로아메리카문화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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