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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야=양삼일 17-1] 라틴아메리카를 향한 미국 외교의 쌩얼 (1부)

  • 콜롬비아=양삼일 기자
  • 입력 2026.05.01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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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양삼일의 중남미 시선 17]  라틴아메리카를 향한 미국 외교의 쌩얼(1부)

 

콜롬비아 친구들과 밥을 먹다 보면 이런 말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내 사촌이 마이애미에 살아." 멕시코도, 페루도, 베네수엘라도 마찬가지다. 라틴아메리카 어느 나라든, 가족 중 한 명쯤은 미국에 있다. 미국은 동경의 대상이다. 더 나은 삶, 더 많은 돈, 더 안전한 미래. 그 모든 꿈이 '미국'이라는 이름 아래 모여 있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 같은 입에서 전혀 다른 말이 나온다. "미국이 우리 대통령을 쫓아냈잖아." "미국 때문에 우리 나라가 이 꼴이야." 미워하면서 동경한다. 사랑하면서 분노한다. 이것이 라틴아메리카가 미국을 대하는 방식이다.

 

한국인에게 미국은 전혀 다른 이미지다. 6.25 전쟁 때 함께 싸운 나라, 냉전 시절 경제 발전을 도와준 나라, 자유의 편에 선 우방. 많은 한국인의 기억 속에서 미국은 은인에 가깝다. 그런데 한 장면을 떠올려보자. 1905년, 일본과 미국은 비밀리에 협약을 맺는다. 이른바 가쓰라-태프트 밀약(Katsura-Taft Agreement)이다. 미국은 일본의 조선 지배를 묵인했고, 일본은 미국의 필리핀 지배를 인정했다. 그 협상 테이블에 조선은 없었다. 한 나라의 운명이 다른 두 나라 사이에서 거래되었다. 이 장면은 라틴아메리카에서 수없이 반복되어 온 역사와 닮아 있다.

 

절반의 나라를 잃다:

 

멕시코미국과 라틴아메리카의 관계를 이해하려면 1846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미국은 멕시코와 전쟁을 일으켜 텍사스, 캘리포니아, 뉴멕시코, 애리조나 등 멕시코 전체 영토의 절반 이상을 빼앗았다. 과달루페 이달고 조약(Treaty of Guadalupe Hidalgo, 1848)으로 공식화된 이 약탈은 오늘날 미국 서부 전체에 해당한다. 지금 미국인들이 살고 있는 그 땅이 원래 멕시코 땅이었다. "뒷마당 외교"는 이렇게 시작됐다.

 

28개월에 한 번:

 

제국의 시간표1898년부터 냉전이 끝난 1994년까지, 미국은 평균 28개월에 한 번꼴로 라틴아메리카의 정권 교체에 개입했다. 하버드대 라틴아메리카 연구소의 집계만으로도 41건이다. 직접 군사 침공이 17건, CIA를 통한 막후 공작이 24건이었다.

 

냉전 종식 이후 빈도는 줄었다. 2002년 베네수엘라 차베스(Hugo Chávez) 쿠데타 지원, 2004년 아이티 아리스티드(Jean-Bertrand Aristide) 재축출, 2009년 온두라스 셀라야(Manuel Zelaya) 쿠데타 방조, 2019년 볼리비아 모랄레스(Evo Morales) 압박 퇴진, 2026년 베네수엘라 마두로(Nicolás Maduro) 군사 압송. 32년 동안 다섯 건이다.

 

왜 줄었을까. 미국의 관심이 이동했다. 2001년 9·11 이후 중동으로, 2010년대 이후에는 중국과 러시아로. 라틴아메리카는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동시에 이 땅의 시민들도 달라졌다. 1980~90년대 민주화 물결을 거치면서 시민사회가 단단해졌다. 쿠데타가 나도 광장이 조용하지 않게 됐다. SNS의 등장도 결정적이었다. 과거엔 미국이 개입해도 여론을 통제할 수 있었다. 지금은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 퍼진다. 정보 독점의 시대가 끝났다.

 

그러나 완전히 멈추지는 않았다. 방식이 바뀌었을 뿐이다. 총칼에서 경제 봉쇄로, 쿠데타 지원에서 선거 개입으로. 그리고 2026년, 다시 군사 작전이 등장했다. 아래에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그 기록의 일부다.

 

파나마, 쓰러진 이웃의 몸에서 가장 값진 부위를 떼어내다

 

1903년 콜롬비아(Colombia)는 천일 전쟁(Guerra de los Mil Días, 1899~1902)의 폐허 위에 서 있었다. 보수당과 자유당이 맞붙은 이 내전은 3년간 이어졌고, 당시 약 400만 인구 가운데 최대 10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전 국토가 유린되었고, 국가 경제는 사실상 파산 상태였다.

 

그때, 미국 대통령 테오도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가 내민 손은 구원이 아니라 약탈의 손이었다. 그가 원한 것은 파나마 운하였다. 당시 파나마는 콜롬비아의 한 주에 불과했다. 미국이 제시한 협상 조건은 터무니없이 불리했다. 콜롬비아 의회는 나라가 무너진 상황에서도 최소한의 자존을 지키려 했고, 협상안을 거부했다.

 

루스벨트는 기다리지 않았다. 파나마의 독립 세력을 뒤에서 부추기고, 미 해군 함정을 파나마 해안에 배치했다. 콜롬비아군은 상륙조차 시도하지 못했다. 파나마는 며칠 만에 독립했고, 미국은 운하에 대한 영구적 권리를 확보했다. 내전으로 쓰러진 이웃의 몸에서 가장 값진 부위를 사실상 분리해낸 것이다. 루스벨트는 이를 "곤봉 외교(Big Stick Diplomacy)"라고 불렀다.

 

소모사, 콘트라, 그리고 마약:니카라과·도미니카

 

오래전 중미의 한 독재자를 두고 이런 말이 떠오른다."He may be a son of a bitch, but he's our son of a bitch.(그놈이 개자식일 수는 있다. 하지만 우리의 개자식이다.)“

 

니카라과(Nicaragua)의 독재자 소모사(Anastasio Somoza)를 두고 한 말이라고도 하고, 루스벨트가 한 말이라고도 한다. 출처가 어디든 이 한 문장이 미국 외교의 본질을 꿰뚫는다. 미국은 소모사 가문을 40년 가까이 지원했다. 아버지부터 두 아들까지 3대에 걸친 독재였다. 도덕도, 인권도 계산에 없었다. 반공의 깃발만 들면 충분했다.

 

그러나 1979년 산디니스타(Sandinista) 혁명이 소모사를 몰아냈다. 미국이 40년 공들여 키운 독재자가 무너진 것이다. 미국은 포기하지 않았다. 이번엔 콘트라(Contra)라는 반정부 무장 세력을 지원했다. 문제는 미국 의회가 이를 금지했다는 것이다. 레이건(Ronald Reagan) 행정부는 법을 우회했다. 이란에 무기를 팔고 그 돈을 콘트라에 넘겼다. 이것이 1986년 터진 이란-콘트라 게이트(Iran-Contra Affair)다. 더 충격적인 건 그다음이었다. CIA가 콘트라의 마약 밀수를 묵인했다는 사실이 이후 미국 상원 조사에서 드러났다. 니카라과 민주 정부를 무너뜨리기 위해 마약 자금까지 동원한 것이다.

 

도미니카 공화국(República Dominicana)도 같은 패턴이었다. 1930년부터 31년간 도미니카를 철권 통치한 라파엘 트루히요(Rafael Trujillo)는 바로 그런 독재자의 전형이었다. 워싱턴은 그의 잔혹한 인권 유린을 수십 년간 묵인했다.

 

1937년 트루히요는 도미니카와 아이티(Haiti) 국경 지대의 아이티인들을 몰살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군인들은 민간인들에게 파슬리를 뜻하는 스페인어 단어 "페레힐(Perejil)"을 발음하게 했다. 프랑스어권인 아이티 사람들은 스페인어 특유의 떨리는 'R' 발음을 제대로 내지 못했고, 그 미세한 차이가 곧 죽음의 판결이 되었다. 이른바 파슬리 학살(Parsley Massacre)이다.

 

쿠바 혁명의 여파로 정세가 요동치자 미국의 계산이 바뀐다. 트루히요의 폭정이 오히려 공산주의 혁명의 명분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어제의 동맹은 순식간에 제거 대상이 되었고, 1961년 트루히요는 암살됐다. CIA가 제공한 무기가 그 배후에 있었다는 건 이제 공공연한 사실이다.

 

비극은 그다음이었다. 도미니카 국민들은 1962년 역사상 처음으로 민주적 선거를 통해 후안 보쉬(Juan Bosch) 대통령을 선출했다. 하지만 미국은 그를 신뢰하지 않았다. 1965년 린든 존슨(Lyndon B. Johnson) 대통령은 "제2의 쿠바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4만 명의 해병대를 투입했다.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를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미국의 통제를 벗어날 가능성이 있는 민주주의를 억누르기 위해서였다.

 

브라질, 21년의 겨울

 

브라질의 경우는 더욱 정교하게 기획된 개입이었다. 1961년 취임한 조앙 굴라르(João Goulart)는 문맹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지주의 토지를 농민에게 나누는 개혁을 추진했다. 민중의 요구였다.

 

그러나 미국 존슨(Lyndon B. Johnson) 행정부의 눈에 굴라르는 "공산주의로 기울어진(leaning toward communism)" 위험 인물이었다. CIA는 곧바로 브라질 군부 내 친미 성향 장교들과 접촉했다. 1964년 3월 31일 쿠데타가 발발하자, 미국은 기다렸다는 듯 항공모함 포레스탈(USS Forrestal)호를 중심으로 한 함대를 브라질 해안으로 급파했다. '생니 작전(Operation Brother Sam)'이었다. 굴라르는 유혈 내전을 피하기 위해 망명을 택했다. 미국은 그가 브라질 땅을 떠나기도 전에 군사 정권을 합법 정부로 승인했다.

 

이후 브라질은 21년 동안 군부 독재의 어둠 속에 갇혔다. 미국이 지키려 했던 것은 브라질의 자유가 아니라, 브라질의 자원과 경제를 자국의 이해에 맞게 언제든 활용할 수 있는 통제권이었다.

 

칠레, 민주주의가 부서진 날

 

1970년 칠레(Chile)의 살바도르 아옌데(Salvador Allende)는 선거로 선출된 사회주의 대통령이었다.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닉슨(Nixon) 대통령과 키신저(Henry Kissinger) 안보보좌관의 지령은 단순했다.

 

"Make the economy scream.(경제가 비명을 지르게 하라.)

 

"신용 차단, 생필품 유통 마비, 인플레이션 유도. 1973년 9월 11일 쿠데타가 일어났다. 아옌데는 대통령궁 라 모네다(La Moneda)에서 끝까지 저항하다 죽었다. 칠레는 이후 17년간 피노체트(Pinochet)의 독재 아래 놓였다.

 

미국은 라틴아메리카를 자신의 "뒷마당(backyard)"으로 여겨왔다. 1823년 먼로 독트린(Monroe Doctrine) 이후 굳어진 이 인식은, 정당이 바뀌고 대통령이 바뀌어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자국의 이익에 부합하는 정권은 군부 독재자라도 지원했고, 이익에 어긋나면 민주 정부라도 무너뜨렸다.

 

쿠바, 60년을 버틴 섬

 

쿠바는 달랐다. 쿠데타도, 압송도 없었다. 대신 60년이 넘도록 섬 하나를 통째로 조여왔다.혁명 이전의 쿠바를 먼저 봐야 한다. 풀헨시오 바티스타(Fulgencio Batista) 독재 아래 쿠바는 미국 기업과 마피아의 놀이터였다. 아바나(Havana)의 카지노는 미국 마피아가 운영했고, 설탕 농장 대부분은 미국 기업의 소유였다. 쿠바 농민들은 그 땅에서 소작농으로 일했다. 문맹률은 23%에 달했고, 농촌에는 의료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반대파는 고문과 학살을 당했다. 그 바티스타를 미국은 지원했다. 이익이 맞았기 때문이다.

 

1959년 카스트로(Fidel Castro) 혁명이 성공하자 민중이 환호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착취 구조가 뒤집혔고, 무상 교육과 무상 의료가 도입됐다. 1961년에는 단 1년 만에 전국적인 문맹 퇴치 운동을 통해 문맹률을 3~4%대로 낮췄다. 농민들에게는 실질적인 변화였다. 혁명은 그들에게 해방으로 다가왔다.

 

카스트로는 계산이 빨랐다. 불만을 가진 사람들은 밖으로 내보냈다. 1980년 마리엘(Mariel) 항구를 열어 단번에 12만 5천 명이 섬을 떠났다. 마이애미의 쿠바 커뮤니티는 그렇게 형성됐다. 남은 사람들은 "미국 제국주의에 맞서는 작은 섬"이라는 자존심으로 버텼다. 외부의 적이 분명할수록 내부는 결속된다. 그렇게 60년이 흘렀다.

 

그런데 지금, 쿠바의 오랜 후원자였던 마두로가 미국으로 압송됐다. 다음은 쿠바라는 말이 다시 나오고 있다.(계속)

[콜롬비아=양삼일 세종학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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