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식의 철학 에세이5] 타고난 노예, 영원한 자유인이 되다... 고대 로마의 철학자 에픽테토스...
외부는 내 뜻대로 되지 않아도, 내 판단과 선택은 언제나 나의 것이다.
인간은 오래전부터 자유를 꿈꾸어 왔습니다. 누군가의 억압 없이 살고 싶고, 두려움 없이 생각하며,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자 합니다. 자유는 인간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인간은 늘 어떤 형태의 속박 속에서 살아갑니다. 권력에 얽매이기도 하고, 욕망에 흔들리기도 하며,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끊임없이 흔들립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자유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외부의 조건이 갖추어질 때 비로소 가능한 것일까요. 아니면 인간의 마음 깊은 곳에서 시작되는 것일까요.
고대 로마제국의 한 철학자는 이 질문을 평생 붙들고 살았습니다. 놀랍게도 그는 태어날 때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노예로 태어났고, 육체적으로도 장애를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누구보다 깊이 자유를 사유한 철학자가 되었습니다. 바로 '에픽테토스'(Epictetus)입니다.
에픽테토스는 서기 1세기경 Hierapolis 히에라폴리스에서 태어났습니다. 당시 이 지역은 로마제국의 지배 아래 있었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 노예 신분으로 Rome 로마로 보내졌고, 황실과 가까운 권력자의 집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노예의 삶은 자유와 거리가 멀었습니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고, 타인의 명령에 따라 움직여야 했습니다.
전해지는 일화가 하나 있습니다. 소년이던 에픽테토스가 주인에게 심하게 매를 맞고 있었습니다. 그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렇게 때리시면 다리가 부러집니다.” 그러나 주인은 더욱 화를 내며 폭력을 멈추지 않았고, 결국 그의 다리는 실제로 부러졌습니다. 그러자 에픽테토스는 고통 속에서도 침착하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때리면 다리가 부러진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이 짧은 이야기는 그의 철학 전체를 미리 보여 줍니다. 육체는 상처 입을 수 있고, 외부의 폭력은 인간을 짓누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상황 속에서도 판단과 태도만큼은 스스로 지킬 수 있다는 것. 타인은 몸을 억압할 수 있어도, 마음의 주권까지 빼앗을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후, 무소니우스 루푸스(Musonius Rufus)에게서 스토아 철학을 배우게 됩니다. 철학은 그에게 단순한 학문이 아니라 삶을 견디게 하는 힘이었습니다. 세월이 흐른 뒤 그는 자유를 얻었고, 마침내 철학을 가르치는 교사가 되었습니다. 노예였던 사람이 자유를 가르치는 스승이 된 것입니다. 에픽테토스의 사상은 놀라울 만큼 간결하면서도 강력합니다. 그의 철학은 하나의 구분에서 시작됩니다.
세상에는 우리에게 달린 것과 우리에게 달리지 않은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달린 것에는 생각, 판단, 의지, 선택이 있습니다. 반면 우리에게 달리지 않은 것에는 재산, 명예, 건강, 타인의 평가, 심지어 죽음까지 포함됩니다. 사람들은 흔히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것들에 집착합니다. 타인의 인정, 사회적 성공, 예측할 수 없는 미래, 우연히 닥쳐오는 사건들에 마음을 빼앗깁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본질적으로 우리의 의지 밖에 있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그는 말합니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것에 집착할 때 인간은 반드시 불안과 속박 속에 빠진다고. 반대로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 곧 자신의 판단과 태도에 집중할 때 비로소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에픽테토스에게 자유는 신분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법적으로 자유인이 되었다고 해서 반드시 자유로운 것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유로운 몸을 가지고도 욕망과 두려움의 노예로 살아갑니다. 그는 오히려 말했습니다. 욕망과 공포에 사로잡힌 사람은 스스로 노예가 된다고. 반대로 외부의 조건이 어떠하든 자신의 마음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참으로 자유로운 사람이라고.
그는 인간의 고통이 어디에서 오는지도 깊이 보았습니다.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 사건에 대한 우리의 판단이라는 것입니다. 누군가의 비난이 나를 즉시 상처 입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그것을 붙들고 확대할 때 비로소 고통이 됩니다. 그래서 그는 말했습니다.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은 사물 자체가 아니라, 그것에 대한 의견이다.” 이 말은 인간에게 중요한 가능성을 열어 줍니다. 우리는 세상의 모든 일을 통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일을 받아들이는 태도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세상이 거칠다고 해서 내면까지 거칠어질 필요는 없습니다. 타인이 무례하다고 해서 나까지 무례해질 이유는 없습니다. 운명이 차갑다고 해서 영혼까지 얼어붙을 필요는 없습니다.
에픽테토스는 운명을 체념의 이유로 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인간이 운명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 마음의 평온을 얻을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일어나는 일을 억지로 바꾸려 하기보다, 그것을 맞이하는 자신을 바꾸는 일. 바람의 방향은 바꿀 수 없어도 돛의 각도는 바꿀 수 있다는 지혜와도 같습니다.
그는 철학을 책 속의 지식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철학은 매일의 삶 속에서 단련되어야 하는 훈련이었습니다. 화가 날 때 멈추어 서는 것, 상처 앞에서 자신을 잃지 않는 것, 불안 속에서도 해야 할 일을 하는 것, 통제할 수 없는 것을 놓아주는 것. 이런 작은 실천들이야말로 자유를 만드는 길이라 보았습니다. 에픽테토스는 직접 책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의 가르침은 제자 아리아노스(Arrians)에 의해 「담화록」과 「편람」으로 남겨졌습니다. 덕분에 우리는 오늘도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놀라울 만큼 단순하고, 그래서 더욱 오래 남는 말들입니다.
오늘 우리는 과거 어느 시대보다 많은 자유를 누립니다. 이동의 자유, 표현의 자유, 선택의 자유, 정보에 접근할 자유까지 외적 조건은 크게 넓어졌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마음은 더 불안해졌습니다. 타인의 시선은 끊임없이 우리를 평가하고, 경쟁은 쉬지 않고 속도를 재촉하며, 비교는 우리를 지치게 만듭니다. 선택지는 많아졌지만 평온은 줄어들었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에픽테토스의 목소리는 시대를 넘어 다시 우리 곁에 도착합니다. 그는 거창한 약속을 하지 않습니다. 대신 단단한 진실 하나를 건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통제하려 하지 말고, 먼저 자신의 마음을 돌보라. 손에 쥘 수 없는 것을 움켜쥐려 할수록 삶은 무거워집니다. 그러나 시선을 자기 안으로 돌리는 순간 전혀 다른 세계가 열립니다. 내 생각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상처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두려움 속에서도 무엇을 지켜 낼 것인가. 바로 그 자리에서 인간은 외부가 빼앗아 갈 수 없는 자유를 발견합니다.
에픽테토스는 노예로 태어났지만 자유를 가르쳤습니다. 그의 부러진 다리는 시대의 폭력을 증언하지만, 흔들리지 않은 마음은 인간의 존엄을 증언합니다. 세상은 그의 몸을 상하게 했으나, 그의 영혼까지 꺾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가르침은 오래 남습니다. 어떤 혼란 속에서도 스스로를 잃지 않는 힘, 어떤 시련 속에서도 품위를 지키는 태도, 어떤 조건 속에서도 다시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는 마음의 자유를 일깨워 주기 때문입니다. 자유는 멀리 있는 거대한 제도에서만 시작되지 않습니다. 때로 자유는 가장 내밀한 자리, 아무도 대신할 수 없는 한 인간의 마음속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바로 그곳에서 인간의 존엄 또한 다시 태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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