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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 양삼일 14] 독도와 닮은꼴...콜롬비아의 산안드레스섬...

  • 콜롬비아 양삼일 기자
  • 입력 2026.04.24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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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안드레스 섬 1-1.jpeg

콜롬비아의 산안드레스 섬

 

독도는 서부 카리브해를 봐야 한다

- 콜롬비아의 섬, 잃어버린 바다 -

[콜롬비아=양삼일의 중남미 시선 14] 대학 1학기 첫 수업, 옆자리에 앉은 친구와 오랜 인연이 이어졌다. 그 친구의 소개로 산안드레스(San Andrés) 출신 하원의원을 만났다. 그게 벌써 이십 년 가까이 된 인연이다. 어느새 3선 중진이 된 그녀는 외교국방분과위에서 일하고 있다. 그녀의 초청으로 여러 차례 산안드레스 섬을 방문했다. 문화예술 프로젝트였지만, 섬에서 배운 건 예술만이 아니었다.

산안드레스는 일곱 빛깔 바다로 유명하다. 주민들은 스페인어와 영어가 섞인 독특한 크리올어를 쓰고, 카리브 특유의 문화를 품고 있다. 콜롬비아 땅이지만 본토와는 전혀 다른 이국적인 세계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섬이 니카라과(Nicaragua)와 오랜 해양 분쟁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순간, 나는 자연스럽게 독도를 떠올렸다.

 섬은 이겼는데, 바다는 졌다

2012년 11월 19일. 네덜란드 헤이그(Hague)의 국제사법재판소(ICJ) 법정에서 콜롬비아 외교관들은 예상치 못한 판결 앞에 말이 없었다.

재판소는 산안드레스 도서 영토의 주권은 콜롬비아에 있다고 인정했다.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섬들을 둘러싼 넓은 카리브해 바다는 니카라과 쪽으로 크게 넘어갔다. 집은 지켰지만 마당 대부분을 잃었다. 수백 년 지켜온 땅이 판결문 한 장 앞에서 흔들렸다.

이 판결은 지금도 독도를 향해 조용히 말을 걸고 있다.

카리브해, 동부와 서부

카리브해는 크게 둘로 나뉜다. 동부 카리브는 트리니다드토바고(Trinidad and Tobago), 바베이도스(Barbados) 같은 영국·프랑스 식민지 유산이 강한 섬나라들이 모여 있다. 서부 카리브는 쿠바(Cuba), 자메이카(Jamaica), 콜롬비아령 산안드레스처럼 스페인과 영국의 영향이 뒤섞인 지역이다. 산안드레스가 속한 서부 카리브는 역사적으로 여러 열강이 충돌한 바다였고, 그만큼 영토와 경계를 둘러싼 분쟁의 뿌리가 깊다.

국경 이전에 이웃이었던 사람들

콜롬비아가지켜야했던곳은섬하나가아니다. 산안드레스, 프로비덴시아(Providencia), 키타수에뇨(Quitasueño)로 이루어진 도서 영토다. 산안드레스는 면적 27㎢에 인구 7만 명이 넘는 제법 큰 섬이고, 프로비덴시아는 작지만 오랜 공동체가 살아온 섬이다. 키타수에뇨는 산호초와 암초 지대로, 사람이 살지 않지만 해양 경계 분쟁의 핵심 대상이 되었다. 섬만이 아니라 암초도 바다의 권리를 좌우한다는 점에서, 독도와 닮은 구석이 있다.

 

지도 위에서 이 섬들은 니카라과 해안에서 200km, 콜롬비아 본토에서는 800km 떨어져 있다.

그런데 지도가 그어지기 전, 이 바다는 달랐다.

 

서부 카리브해의 섬들은 오랫동안 하나의 생활권이었다. 자메이카, 케이맨(Cayman), 산안드레스, 프로비덴시아. 이 섬들 사이를 오가며 살던 사람들은 국적이 아니라 혈연과 언어로 연결되어 있었다. 17세기 스페인, 영국, 네덜란드가 이 바다를 나눠 차지하면서 같은 뿌리의 사람들이 서로 다른 나라 깃발 아래 놓이게 되었다. 국경이 삶을 갈랐고, 언어가 달라졌고, 소속이 바뀌었다.

그러나 이 섬과 콜롬비아의 관계는 단순한 식민지 시대의 유물로 보기 어렵다. 조선 순조 시절인 1803년, 스페인은 산안드레스 제도를 공식적으로 콜롬비아의 전신인 누에바그라나다(Nueva Granada) 부왕국 관할로 넘겼다. 주민들은 대를 이어 콜롬비아 국적으로 살았고, 세금을 냈으며, 1928년에는 니카라과로부터 주권을 공식으로 인정받는 조약까지 맺었다. 역사, 행정, 조약. 콜롬비아의 패는 완벽해 보였다.

 그게 함정이었다.

 약한 쪽이 싸우는 방식을 바꿨다

니카라과는 섬을 힘으로 빼앗을 수 없었다. 그래서 싸우는 방식을 바꿨다. 군사가 아닌 국제법으로, 땅이 아닌 바다로.

그들이 파고든 건 바다의 경계선이었다. 섬의 주인이 누구냐가 아니라, 섬 주변 바다의 권리가 누구 것이냐를 물었다. 그 첫 번째 무기가 1928년 조약이었다.당시미국해병대는니카라과에주둔중이었다.니카라과는바로이점을파고들었다. 점령군의압박아래억지로맺은조약은무효라는논리였다. 특히 1979년소모사독재정권을무너뜨리고집권한산디니스타(Sandinista) 혁명정부는집권직후이조약을공식무효선언했다. 반제국주의혁명정부의이선언은국제여론의주목을받았고, 이후니카라과는이서사를국제법무대로끌고갔다. 콜롬비아가 "이미 끝난 문제"라며 강하게 버티는 동안, 니카라과는 수십 년에 걸쳐 국제기구와 법정을 조용히 두드렸다.

결과는 알다시피다. 섬은 남고, 바다는 흔들렸다.

 외교관의 문법만으로는 부족하다

콜롬비아 외교관들은 틀리지 않았다. 역사적 근거도 있었고, 조약도 있었고, 수백 년의 실효 지배도 있었다. 그들은 국제 외교의 문법에 충실했다. 기존 질서, 즉 현상 유지(status quo)를 지키면 된다고 믿었다.

 그러나 국제 질서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 200년 넘게 이어온 콜롬비아의 실질적 지배가, 21세기 초반 국제사법재판소 판결 하나로 흔들렸다. 수백 년의 역사가 몇 년의 법정 전략 앞에서 바다의 절반을 잃었다.

니카라과는 콜롬비아의 문법을 따르지 않았다. 그들은 새로운 국제해양법의 흐름을 읽었고, 형평성이라는 새로운 언어로 판을 흔들었다. 콜롬비아가 익숙한 규칙을 지키는 동안, 니카라과는 규칙 자체를 바꾸는 싸움을 했다.

 카리브해의 새로운 바람은 외교 문서보다 솔직하다. 산안드레스의 바다를 보면서, 그리고 라틴아메리카에서 오랜 시간을 걸어오면서 하나를 배웠다. 국제 질서는 늘 움직인다. 그 흐름을 읽지 못하면, 아무리 완벽한 역사적 근거도 절반짜리 승리로 끝날 수 있다.

 일본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일본은 이 구조를 잘 알고 있다. 일본은 수십 년간 국제법 무대에 사람을 꾸준히 심어왔다. 국제사법재판소(ICJ), 국제해양법재판소(ITLOS), 유엔 산하 국제기구 곳곳에 일본 출신 법학자와 외교관들이 자리를 잡았다. 국제법의 흐름이 만들어지는 자리에 일본의 논리가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는 환경을 오랫동안 만들어온 것이다.

 

동시에 일본은 기록을 쌓고 있다. 외교 문서에 독도 영유권을 명시하고, 교과서를 바꾸고, 세계 지도와 백과사전 표기를 고쳐나간다. 오늘 당장 섬을 빼앗겠다는 전략이 아니다. 언젠가 열릴 법정을 위해 수십 년에 걸쳐 근거를 쌓는 것이다.

일본이 노리는 그림은 명확하다. 산안드레스처럼, "섬은 한국이 가져도 좋다, 바다는 나누자."

 우리의 침묵은 무엇을 말하는가

한국은 실효적 지배 뒤에 서 있다. 독도경비대가 있고, 주민이 살고, 행정력이 미친다. 일본의 도발에 맞대응하는 것 자체가 분쟁을 인정하는 꼴이라는 논리로 침묵을 지켜왔다.

 일리는 있다. 그러나 산안드레스는 경고한다. 상대가 기록을 쌓는 동안 우리가 침묵하면, 그 침묵 자체가 나중에 우리에게 불리한 증거가 된다. "왜 그때 아무 말도 안 했느냐"는 질문 앞에서 할 말이 없어지는 것이다.

 더 위험한 건 국내 정치다. 한일 관계를 개선한다는 명분 아래 독도를 유연하게 다루려는 움직임이 보일 때마다, 일본은 그 순간을 기록으로 남긴다. 우리가 국내에서 감정 싸움을 벌이는 동안, 일본은 법정에서 쓸 문서를 차곡차곡 모은다.

 섬은 점이고, 바다는 면이다

나라의 실제 이해관계는 섬이라는 작은 점이 아니라 바다라는 넓은 면에서 터진다. 어업권, 해저 자원, 전략적 뱃길. 일본이 보는 것은 독도가 아니라 독도 주변의 바다다.

독도가 우리 땅이라고 노래하고, 거리에서 일본을 규탄하는 것은 한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국제 질서가 바뀌고 힘의 균형이 달라지는 동안, 조용히 근거를 쌓고 전략을 준비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다.

2012년 헤이그의 그 판결이 주는 교훈은 하나다. 실효 지배는 오늘의 섬을 지킨다. 그러나 내일의 바다를 지키는 것은, 지금 우리가 쌓고 있는 차가운 기록과 정교한 국제 전략이다.

우리는 지금 독도를 지키고 있다.문제는, 미래의 바다도 지킬 수 있느냐다.

이것이 오늘 카리브해의 작은 섬 산안드레스가 건네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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