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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 양삼일 12 ] 개천의 용은 어디서 나오는가?...한국과 중남미의 용...

  • 콜롬비아 양삼일 기자
  • 입력 2026.04.19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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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 예술 2.jpg
콜롬비아에서 문화 예술 교육을 하고 있는 학생들 (양삼일 제공)

 

[콜롬비아=양삼일의 중남미 시선 12] 콜롬비아에서 오랫동안 살면서 문화활동을 해오고 있는 양삼일 세종학당장이 현지에서 느끼는 중남미 문화와 대한민국의 문화를 비교 체험하면서 느낀 소회를 보내왔다. [편집자주]  

 

개천의 용은 어디서 나오는가?

 - 남미화와 한국의 힘 -


콜롬비아에서 문화예술교육을 한 지 오래됐다. 트라우마로부터 자유를 얻는 것이 목적이다. 예술은 그 통로다. 말로 꺼낼 수 없는 것을 몸으로, 소리로, 움직임으로 꺼낸다.


그런데 현장에서 가장 힘든 건 따로 있었다. 물질적 결핍이 아니었다. 다른 세계를 상상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예술은 상상력의 언어다. 그런데 500년 식민 구조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에게 상상력을 깨우는 일은 시간이 걸리고, 때로는 실패한다. 그들은 우물을 파는 것보다 손에 쥔 물 한 컵이 진짜 도움이라고 믿는다. 더 받으려 하기보다 더 바라지 않는 쪽을 택한다.


이것이 파이크 신드롬이다. 강한 포식어종인 파이크는 수조 안 유리 칸막이에 반복해서 부딪히다 결국 포기한다. 칸막이가 사라져도 더 멀리 헤엄치지 않는다. 빈곤이 세계관이 된 사회에서, 체념은 지혜처럼 보인다.


한국에서 남미화를 경고하는 목소리가 오래됐다. 70년대부터였다. 야당이 저항할 때마다, 시민사회가 거리로 나올 때마다 나온 말이었다. 분배를 말하면 남미화라 했고, 복지를 말하면 포퓰리즘이라 했다.

콜롬비아 예술 1.jpg

 

그런데 진짜 남미화는 무엇인가.


스페인 정복 이후 500년. 라틴아메리카의 문제는 가난만이 아니었다. 신분이 굳어진 것이었다. 부와 지위가 대물림됐다. 교육이 그 구조를 정당화했다. 태어난 자리가 평생의 자리가 됐다.


기득권이라는 단어가 한국어에 생겨났다. SKY 캐슬은 드라마였지만, 어느새 다큐멘터리처럼 보이는 사회가 됐다. 콜롬비아도 다르지 않다. 유아원부터 시작된다. 


'남미의 이튼 스쿨'이라 불리는 Anglo Colombiano를 거쳐 Los Andes 사립대로, 아니면 미국이나 캐나다 명문대 유학으로 이어진다. 출발선이 곧 도착선을 결정한다. 입구가 곧 출구다.


그것이 진짜 남미화다. 경고하는 자들이 그 구조의 수혜자였다는 역설은 한국도 콜롬비아도 같다.


겨울방학이면 사촌동생들과 외갓집을 찾았다. 눈이 내린 뒤뜰에 동백꽃이 피어 있었다. 치명적일 만큼 붉었다. 흰 눈과 빨간 꽃, 처마에 걸린 고드름. 너무 어울리지 않는데 아름다웠다. 어린 가슴에 소름이 끼쳤던 기억이 있다.


어떤 사람이 있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마치고 공장으로 갔다. 밤에는 책을 봤다. 검정고시로 학력을 얻고 사법시험을 통과했다. 수십 개의 재판을 견뎠다. 목에 칼을 맞았다. 쓰러지지 않았다. 그리고 끝내 꽃이 왔다.


이 서사가 말하는 건 한 사람의 성공이 아니다. 파이크 신드롬이 사회 전체를 얼어붙게 하려는 힘에 맞서 생긴 균열이다. 시대에 근원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는 리더가 나타나는 것, 그것을 국운이라 부를 수 있다면, 한국은 그 순간을 지나고 있다.


브라질의 룰라도 공장 노동자였다. 그도 결국 대통령이 됐다. 그러나 그 땅에서 민중의 서사는 늘 더 긴 침묵과 더 많은 장벽을 건너야 했다. 한국에는 다른 것이 있었다.


유럽의 카니발을 보자. 사순절 전 실컷 놀고, 다시 종교의 시간으로 돌아간다. 일탈이다. 그리고 복귀다. 체제는 흔들리지 않는다.


한국의 탈춤은 다르다. 말뚝이가 양반을 조롱한다. 그건 단순한 욕이 아니다. “나는 저 위의 세계를 알고 있다”는 선언이다. 체념과 정반대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사물놀이는 천지의 기를 모은다. 하늘과 소통한다. 기득권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건 칼이 아니라 북소리였다. 씻김굿은 다른 차원으로 간다. 죽은 자의 한까지 품는다. 이 세상 너머를 상상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중남미도 저항했다. 해방신학이 빈민가에 뿌리를 내렸다. 누에바 깐시온이 독재에 맞서 노래했다. 게릴라가 산으로 갔다. 그 저항은 진지하고 치열했다. 그러나 한국의 저항은 달랐다. 특별한 시대의 언어가 아니었다. 수백 년 민중의 일상 안에 이미 있었다.


민란이 터지기 전에 이미 민중은 알고 있었다. 칼을 들기 전에 먼저 노래했다. 탈 뒤에서, 북소리 안에서. 그것이 한국 민중의 방식이었다.


금준미주(금 술잔의 술)는 천인혈(천 사람의 피)이요 옥반가효(옥 쟁반의 안주)는 만성고(만 백성의 기름)라 촉루낙시(촛불 눈물 떨어질 때) 민루낙(백성 눈물 떨어지고)이요 가성고처(노랫소리 높은 곳에) 원성고(원망 소리 높더라)라

 

콜롬비아 예술 3.jpg

 

춘향전의 이 도령이 읊은 시다. 변사또의 생일잔치, 권력이 취해 있던 바로 그 자리였다. 암행어사 출두 직전이었다.


지식인의 삶은 민중과 괴리된 게 아니었다. 다 알고 있었기에 비록 권력의 잔치 자리에서도 말할 수 있었다.


광장은 한국의 언어다. 탈춤도, 사물놀이도, 씻김도, 촛불도 광장에서 완성됐다.


개천의 용은 하늘에서 내려오지 않는다. 칸막이가 사라지면 헤엄치는 민중에게서 온다. 한국 민중은 처음부터 위를 올려다보기만 하지 않았다. 직접 올라가려 했다.


체념을 미덕이라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콜롬비아 양삼일 세종학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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