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샤바 게토의 아카이브, 영상과 사진 읽기
사진이 언어 텍스트가 전달하는 정보의 질량보다 못하다고는 할 수 없다. 이미지의 시각성으로 형성된 사진은 각각의 시선, 각각의 기술적 행위인 프레이밍, 초점, 밝기, 몽타주에 투입된, 흩어진 도덕적 관점들이 모두 텍스트다.
유대인 학살의 사진과 기록물인 오이네그 샤베스의 아카이브는 전체가 한 시대의 일종의 '도덕적 계약'과도 같은 것이었으며, 그 덕분에 계속 지탱될 수 있었다. 영상 사진 하나 제대로 읽어내려면 무엇보다도 윤리적 입장의 시각 처리가 더 중요할지 모른다. 헤움노 수용소에서 벌어졌던 일에 대한 역사적 증언으로서 슐라메크 자신의 경험적 기록물이 수많은 역사적 스토리와 진실을 함의하고 있듯이 사진작가와 피사체 사이에 확립된 관계 속에서도 바로 그와 같은 신뢰가 작동하고 있다.
언어가 사물의 본질을 완벽하게 구현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순간 정지된 한 장의 사진이 총체적인 당대의 역사를 함의할 수는 없다. 그러나 사진의 구도 내면에는 상당히 사실적인 진실을 숨겨놓았다. 각도가 약간 다르거나 빛을 흡수한 어둠침침함의 침묵이 숨막히는 학살 직전의 위기감을 살려낸다. 피사체와 작가가 같은 시공간에 속해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들은 분명 서로 마주 서 있지만, 그들을 에워싸고 있고 그들을 죽음으로 몰고 갈 암울한 정치 상황 속에서 서로의 시선을 나누고 있다.
린겔블룸 아카이브(1942~1945)의 사진들을 보면 다소 음울한 어조의 문구 하나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생의 허무’. 죽음의 공포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며 생에 대한 포기를 공유하고 있다. 공포와 두려움 속에 고립되어 굴욕도 공유한 사람들이 서로 시선을 마주하고 있다. 놀랍게도 공포의 전율은 차분하게 가라앉았고 그 때문에 공기와 바람은 더욱 차갑게 느껴진다. 카메라의 시선에 포착된 이 한 장의 기록 사진이 시대와 역사 전체를 거대한 시각적 탄식으로, 파시스트 독재 권력의 폭압 앞에 바스라지는 인간의 생명과 존엄성의 덧없음을, 절망적으로 소멸해가는 개인을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정확하게 담아낸 것이다.
정지된 흑백의 영상에는 어둠의 밀도 차이에 따라, 또한 정확한 시선에 따라 최대한 위엄 있고 진실되고, 지지되고, 배치되고, 구성된 숱한 서사들이 잠복해 있다. 게르숌 숄렘이 히브리어 키나에 대해 조르주 디다 위베르만은 『흩어진 것들』(문학과지성사, 2026)에서 "가르침은 탄식했고 탄식은 가르쳤다"라고 한 말처럼, 바르샤바 게토의 아카이브에서 오이네그 샤베스의 각각의 자료는, 필사본이든 사진이든 감정이 지식이 되고 지식이 감정이 될 수 있는 이 이중적 거리를 잘 구축하고 있다.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작동되는 권력의 횡포를 고발하는 사진작가의 상징적 처리는 다른 예술적 영역에서와 마찬가지로 상징적으로 도드라진다. 융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불편함, 불안한 심리, 공포 에너지를 가지기 마련이고 그것이 있을 때 비로소 인간의 정신(심리, 영혼)은 활발하게 꿈틀거리기 시작한다고 했다. 또한 그것은 공포에 직면한 개인적 경험(무의식)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무의식(집단무의식)에도 그 발원지를 둔다고 했다.
그러나 죽음 직전에 내몰린 사진 속의 사람들은 전혀 흔들림이 없다. 죽음 앞에 선 엄청난 공포 의식의 표현 방식과 과정을 한 장의 사진 속에 눌러 담았다. 서로가 서로를 응시하는 침묵의 시간은 깊고 높은 상징성을 가진다. 이 상징성은 인간이 스스로를 치유하고 보전하고자 하는 본능적 의지의 결과물이다. 융의 분석심리학에서는 상징이야말로 예술의 근원이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예술은 인류가 오랜 기간 공을 들여 만들어놓은 정교하고 친절한 상징 체계였다. 기록이 예술로 전환된 연유는 바로 한 작품이 과연 어떻게 상징이 되고 있는가, 또 그것 안에서 어떤 상징들이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는가에 달렸다. 그래서 어떤 새로운 인간 해명이 이루어지고 있는가가 융이 예술을 평가하는 기본적인 기준이었다. 상징이 주가 되어 이루어진 특별한 이미지가 언어 시스템이라는 게 융 심리학의 관점이다.
린겔블룸 아카이브의 사진들 가운데 또 다른 사진을 보자. 게토의 거리에서 양철 깡통을 손에 들고 구걸하고 있는 어린 소년의 이미지다. 전시의 거리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는 사진이다. 그런데 풍화에 삭은 가지런한 벽돌벽이 아이의 뒤에 배경으로 있어 뚜렷한 음영의 대조를 이룬다. 아이가 쓴 각설이 모자는 1943년 4월 또는 5월경 독일 군사들의 위협에 두 팔을 들어올린 '바르샤바의 유대인 소년'이 썼던 그 모자였다. 세계 대전 패망의 위기에 내몰린 걸인 소년의 묘한 감정이 흑백 사진 속 음영의 대비에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빛바랜 사진의 음영 속에서 한 시대의 역사가 감정의 파동처럼 번지고 한 소년의 심장이 팔딱거리는 생명력의 소리로 들린다. 또한 사이렌 소리와 기관총 소리, 탱크가 지나가는 소리와 쿵쾅대는 대포 소리도 들리는 것 같이 일련의 ‘음향 이미지’도 스며들어 있다.
디지털 기술 발전과 함께 다차원적 영상 언어의 시대로 진입하면서 청각에 의존하던 시대에서 청각과 시각이 더욱 예민하게 작동하는 시대로 들어섰으나 사진의 공감각적 이미지는 이미 존재해 있었다.

필자 이상규 박사
국내 최고의 국어국문학자. 국립국어원 7대 원장과 국어정책학회 회장, 경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등을 역임하고, 현재 경북대 명예교수, 국가미래연구원 이사로 고향 대구에서 후학 양성과 집필 작업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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