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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양삼일 11] 내가 만난 두 거물...세계적인 마약왕과 노벨상 수상자...

  • 양삼일 기자
  • 입력 2026.04.15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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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양삼일의 중남미 시선 11] 세계적인 마약왕과 세계적인 문학가를 만나면 어떤 느낌이 들까? 두 사람을 다 만나보았던 양삼일 세종학당장이 그 소회를 굿리더뉴스에 털어놓았다. [편집자주]   

 

내가 만난 세계적인 마약왕과 세계적인 문학자 

 

새벽 두 시,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 외곽의 한 디스코테크였다. 

현지 대학생 시절, 친구들과 어울려 놀러갔던 그저 그런 밤이었다.


DJ(디스크자키)가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Sorpresa(surprise)를 원하는 사람들은 계속 즐기라.” 

별 뜻 없는 말처럼 들렸다. 그런데 그 말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뭔가를 기다리는 듯한 분위기였다.


새벽 두 시가 넘었을 무렵, 입구 쪽이 갑자기 술렁이기 시작했다. 시선들이 그쪽으로 쏠렸다. 여러 명의 보디가드 사이로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순간 디스코테크 안에 있던 사람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쳤다.


나는 그가 누군지 몰랐다. 그런데 옆에 있던 현지 친구가 놀란 목소리로 외쳤다. “Escobar!(에스코바르)” 

나는 그 이름을 들어보았지만, 그가 정확히 어떤 인물인지는 잘 알지 못했다. 그저 유명한 마피아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알고보니는 에스코바르(1949-1993)는 납치와 유괴, 살인을 밥먹듯이 하며 수백명을 죽인 국제적으로 악명높은 살인마이자 마약왕이었다.

  

마약왕 2.webp
마약왕 에스코바르

그날 밤, 마약왕 에스코바르는 그 자리에 있던 손님들의 술과 음식값을 모두 계산했다. 말 그대로, 그날 디스코테크의 골든벨이 울린 셈이었다. 우리는 콜롬비아 소주 한 병에 변변치 않은 안주를 시켜 놓고 있었는데, 그냥 운 좋게 공짜로 먹었다고만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마약왕 '에스코바라르'라는 이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날 밤, 내가 그 테이블로 다가가 기념 사진이라도 부탁했다면 어땠을까? 손이라도 들어 인사를 건네고 사인이라도 받아 둘 걸 그랬을까? 실없고 씁쓸한 상념이 스쳐지나갔다.


또다른 기억이 떠오른다.


세계적인 문학가이자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1927-2014)를 LA 공항에서 마주친 적이 있다. 휠체어에 앉아 있었고 곁에는 부인이 있었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다가가 팬이라고 인사를 건네며 사진과 사인을 부탁했다. 앗, 그가 정중하게 거절하는 게 아닌가? 순간 당황했지만, 훗날 되돌아보니 이해가 된다. 누군가에게는 한 순간의 만남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끝없이 반복되는 일이었을 테니까..


다시 에스코바르 얘기로 돌아가 보자. 그날 밤, 내가 그 마약왕에게 악수라도 청했다면 어땠을까?  아마 한국에 돌아가 친구들에게는 며칠 밤이고 이어질 이야깃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살이 붙고, 결국에는 실제보다 크게 부풀려졌을지 모른다. 마치 전쟁을 겪지 않은 사람이 전쟁을 그렇듯하게 이야기하듯이.

 

마르케스.jpg
노벨문학상을 받은 가브레일 마르케스

 

마약왕 에스코바르는 마음만 먹으면 콜롬비아의 외채를 다 갚을 수 있다는 말이 돌았고, 메데진에 10만 명 규모의 축구장을 짓겠다고 했으며, 도로와 아파트를 지어주었다는 이야기들이 사람들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후의 시간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내가 어릴 때 읽었던 책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이 생각난다. 여섯 살쯤이었나. 보물이 숨겨진 동굴 앞에서 외치는 주문 말이다. “열려라 참깨!” 그 말이 얼마나 신비롭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천일야화는 전쟁과 두려움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매일 밤 이야기를 지어낸 사람들의 기록이라고 했다.


그때 그 시절 보고타의 밤도 그랬다.

매일 밤 11시에서 새벽 1시 사이, 어디선가 쿵!쿵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폭탄이었다. 메데진의 마피아들은 정부를 압박하기 위해 공공장소에 폭탄을 터뜨렸고, 그 소리는 매일 밤의 일부가 되었다.


콜롬비아에서 그 시대를 살아가는 방법은 단순했다. 

밤에는 외출하지 않는 것. 눈에 띄는 차를 타지 않는 것.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가지 않는 것.


그 습관은 언제 어디를 가든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한국에서 택시를 타면 무심코 문 잠금 버튼을 누른다. 그럴 때마다 기사들이 놀란다. 카페에서 자리를 비울 때면 가방을 꼭 챙긴다. 주인 없는 가방을 보면 불안해진다. 당시 메데진시에 있었던 대부분의 폭발물이 그랬으니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과거의 시간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몸이 먼저 기억하고, 생각은 그 뒤를 따라온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나는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서도 책 가까이에 머물고, 조용히 생각하는 시간을 더 편하게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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