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비아=양삼일의 중남미 시선 10] 다시보는 니카라과 철권통치자 오르데카..영부인이 설치고 주술을 이용한 정치..역사상 최초의 '부부 공동 대통령'..
[콜롬비아=양삼일의 중남미 시선 10] 이번에는 니카라과로 가보자. 대통령이 무지막지하고 영부인이 설치고 주술을 이용한 정치가 난무했다는 점이 '어떤 나라'를 생각케 한다. [편집자주]
우리에게 중남미는 여전히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아득히 먼 대륙이다.
그러나 그곳의 이야기는 때로 우리가 이미 겪었던 장면들과 겹쳐진다.
멕시코의 정열적인 색채부터 브라질의 거대한 아마존, 아르헨티나의 서글픈 탱고 선율은 물론, 이미 미국 인구의 상당수를 차지하며 대선판까지 뒤흔드는 히스파닉(Hispanic) 사회의 저력까지, 이 대륙은 인류 문명의 가장 역동적인 용광로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오랫동안 쌓여온 그늘과 쉽게 사라지지 않는 고독이 있다. 아프로-인디헤나의 거친 역사가 빚어낸 영매 문화와 주술적 종교는 이곳 사람들의 혈관 속에 민간신앙이라는 이름으로 도도히 흐른다.
물론 이러한 요소가 중남미 정치 전체를 설명하는 것은 아니지만, 특정한 순간 권력과 결합할 때 독특한 양상을 만들어낸다.
아이티의 부두(Voodoo), 쿠바와 베네수엘라의 산테리아(Santería), 브라질의 칸돔블레(Candomblé)와 움반다(Umbanda) 같은 의식들은 단순한 미신을 넘어 가혹한 현실을 견디기 위한 절박한 생존 양식이었다.
문제는 이러한 신앙과 의식이 개인의 삶을 넘어 권력의 중심으로 들어갈 때부터 시작된다.
독재를 무너뜨린 혁명가는 왜 결국 자신들이 무너뜨린 괴물의 모습을 닮아갈까. 이 글을 시작으로 중남미 역대 대통령들의 내면을 심리학적으로 따라가 보려 한다. 그 시작은 민초들의 영성이 권력의 밀실로 들어갔을 때 어떻게 변질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그런데 글을 쓰는 내내 묘한 기시감이 따라붙었다. 머나먼 중미의 이야기를 쓰면서, 자꾸 내 나라의 장면이 겹쳐 보였다. 착각이 아니라면, 읽는 이들도 곧 같은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43년 세습 독재를 무너뜨린 사자, 전설이 된 혁명가
니카라과는 1936년부터 43년간 소모사(Somoza) 가문의 세습 독재 아래 신음했다. 미국을 등에 업은 소모사 정권은 국가 자산의 4분의 1을 사유화하고, 정적들을 잔인하게 탄압하고 고문했다.
이 철권통치를 끝낸 이들이 바로 다니엘 오르테가(Daniel Ortega)가 이끄는 산디니스타(FSLN) 혁명군이었다. 오르테가는 7년간의 투옥과 고문을 견뎌낸 혁명의 상징이었다. 이후 그는 1979년 혁명 성공과 함께 권력을 장악했고, 10여 년간 니카라과를 통치하며 대통령으로서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1990년 선거 참패 후 16년의 야인 시절을 보내며 그는 심리적으로 무너져 내렸다. 패배는 그의 자아를 약화시켰고, 고독은 그를 외부에 의존하게 만들었다.
무너진 그의 자아를 파고든 이가 부인 로사리오 무리요(Rosario Murillo)였다. 그녀는 패배감에 젖은 오르테가에게 “우리는 신성한 에너지의 선택을 받았다”며 주술적 언어와 의식으로 그를 세뇌했다.
죄책감과 고독, 그리고 ‘주술적 동반자’의 탄생
심리학자 제임스 데이비드 바버(James David Barber)의 이론에 따르면 오르테가는 권력에 집착하면서도 불안에 시달리는 ‘능동적-부정적(active-negative)’ 리더의 전형이다.
혁명전사로 대통령으로 끊임없이 권력 지향적인 동기로 행동하지만 사실 내면은 한없이 불안정한 유형이다.
이런 리더는 고독을 견디지 못해 비이성이라는 어두운 동굴로 도피하며, 그 문을 지키는 ‘영매’에게 운명을 맡긴다.
결정적인 심리적 예속은 1998년에 일어났다. 오르테가의 의붓딸이 양아버지의 상습 성추행을 폭로한 것이다. 도덕성이 바닥으로 추락할 위기에서, 친엄마인 무리요는 딸이 아닌 ‘가해자 남편’을 택했다.
하인즈 코헛(Heinz Kohut)이 말한 ‘병적 자기애’의 리더에게 무리요는 단순한 부인이 아니라, 자신의 죄를 정당화해주고 권력을 유지하게 만드는 ‘영적 구원자’가 되었다. 이 비도덕적 거래를 통해 오르테가는 부인에게 영혼을 저당 잡혔고, 판단력을 사실상 그녀에게 양도했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
조선의 취선당에서 인형을 바늘로 찌르며 사술을 부리던 장희빈도, 권력자의 불안을 먹고 자랐다. 궁궐 안의 무당은 언제나 왕의 결함에서 태어난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의 취선당을 말하는지는, 독자가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장희빈의 사술과 마나과의 ‘철제 나무’
무리요는 수도 마나과 도심에 ‘생명의 나무(Árboles de la Vida)’라 불리는 높이 15~20미터짜리 철제 구조물 170여 그루를 세웠다.
“행운을 불러오고 악운을 막는다”는 게 그녀의 설명이었다. 전기료만 연간 100만 달러가 넘게 소모됐다. 니카라과는 중미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다.
손바닥에 왕(王) 자를 새기고, 무속인의 조언에 따라 대통령 관저를 옮기고, 비선 실세들이 국정을 좌우하는 나라 이야기를 읽으며, 독자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장면이 마나과(Managua)뿐이라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무리요는 매일 정오 국영 방송을 통해 가톨릭과 주술이 뒤섞인 설법을 전했다. 열 손가락에 커다란 보석 반지를 끼고 에너지를 집중시킨다는 그녀의 모습은 전형적인 가스라이팅이다. 현실 인식을 흐리고, 비판을 무력화하는 방식이다.
카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이 말한 무의식적 ‘원형’을 자극해 자신을 성모이자 구원자로 포장하며 대중의 비판 이성을 마비시키는 것이다.
2025년 개헌, 주술적 결탁이 낳은 ‘공동 대통령’
이 기괴한 권력 결탁의 종착역은 국가 시스템의 완전한 사유화였다. 니카라과 의회는 2025년 헌법 개정을 통해 대통령직을 남녀 2인의 ‘공동 대통령(Co-Presidents)’ 체제로 공식 변경했다. 무리요는 오르테가와 동등한 법적 통치자가 됐다.
사실상의 공동 정권이 아니라, 헌법 위에 새긴 부부 이두정치(Diarchy)의 완성이다.
임기는 6년으로 늘어났고, 입법·사법·행정의 모든 기관이 이들 부부의 손안에 집중되었다. 혁명으로 독재를 무너뜨린 영웅이, 자신을 세뇌한 부인을 위해 헌법까지 뜯어고쳐 새로운 형태의 ‘가족 독재’를 완성한 것이다.
결론: 합리성이 사라진 자리에 남는 것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이 말한 ‘자유로부터의 도피’가 리더 개인의 ‘합리성으로부터의 도피’로 이어질 때, 국가는 통치자의 내면적 일그러짐을 그대로 투영하는 거대한 거울이 된다.
니카라과의 ‘생명의 나무’는 결국 권력자가 스스로를 가둔 감옥의 창살이다.
2018년 4월, 시민들이 거리로 나왔다. 오르테가 정권은 경찰과 준군사 조직을 동원했고, 300명 이상이 사망했다. 분노한 시민들이 가장 먼저 쓰러뜨린 것은 바로 마나과의 ‘생명의 나무’들이었다. 권력자의 부적은 그렇게 무너진다.
이성과 상식이 사라진 자리를 주술과 비선 실세가 채울 때, 국가는 필연적으로 비극의 길을 걷는다.
이 머나먼 중남미의 풍경을 읽으며 낯설기보다 더 익숙하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우연이 아니다. 권력의 왜곡은 국경을 가리지 않는다. [콜롬비아=양삼일 세종학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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