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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삼일의 중남미 시선6] 한국이 콜롬비아를 꼭 닮은 것...닮은꼴 역사가 빚어낸 민주주의 역설

  • 콜롬비아 양삼일 기자
  • 입력 2026.04.08 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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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 2.jpg
먀약 재배를 감시하고 있는 콜롬비아 정부군

 

 

닮은꼴 역사가 빚어낸 민주주의의 역설: 한국과 콜롬비아


두 나라는 비슷한 상처를 입었다. 그러나 전혀 다른 제도를 선택했다. 그 선택은 지금도 두 나라의 정치를 결정하고 있다. 한국과 콜롬비아 이야기다.


콜롬비아는 중남미 국가 중 유일하게 한국전쟁에 전투병을 파병한 혈맹의 나라다. 냉전 시기 중남미 외교의 핵심 파트너였던 양국은 이제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발전했다. 그러나 두 나라를 더 깊이 묶는 것은 외교적 수사가 아니라, 19세기 말 이후 각자가 겪어온 역사적 상처의 닮은꼴일지도 모른다.


19세기 말의 몸부림과 상실의 아픔


19세기 말, 우리나라는 안팎의 위기 속에서 갑신정변과 갑오개혁 등 근대화를 위한 처절한 시도를 이어갔다. 


그러나 결국 20세기 초 일제의 식민 지배라는 암흑기로 빠져들고 말았다.


비슷한 시기, 지구 반대편의 콜롬비아도 내부로부터 무너지고 있었다. 자유당과 보수당의 극단적 대립은 ‘1000일 전쟁(1899–1902)’으로 폭발했고, 당시 500만 명 인구 중 2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혼란은 외부 개입으로 이어졌다. 1903년, 테오도어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 파나마 독립을 사실상 조종했다. "부드럽게 말하되 큰 몽둥이를 들어라(Speak softly and carry a big stick)"는 그의 신념대로였다. 


그 결과 콜롬비아는 전략적 요충지인 파나마를 잃었다. 훗날 그를 '당시의 트럼프'에 비견하는 것은 바로 이 팽창주의적 행동 때문이다. 주권을 침탈당하고 영토를 잃은 양국의 슬픔은 묘하게 닮아 있다.


해방의 혼란과 '라 비올렌시아(La Violencia)'


한국이 해방 이후 이념 갈등과 전쟁, 그리고 군사정권의 시기를 거치며 민주주의의 시련을 겪는 동안, 콜롬비아 역시 피로 쓰인 역사를 지나고 있었다.


1948년, 대중적 지지를 받던 정치인 호르헤 엘리에세르 가이탄(Jorge Eliécer Gaitán)이 암살되면서 콜롬비아는 ‘라 비올렌시아’라 불리는 내전 상태로 빠져들었다. 이 시기 수십만 명의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다.


이 혼란을 수습한다는 명분으로 등장한 인물이 구스타보 로하스 피니야(Gustavo Rojas Pinilla) 장군이다. 한국전쟁 파병으로 군 내부에서 명성을 얻은 그는 1953년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했다.


그러나 그의 정권은 오래가지 못했다. 1957년, 그는 ‘선거에서는 이기고 개표에서 지는’ 기묘한 정치적 패배를 겪으며 결국 권좌에서 내려왔다.


국가 대연합(Frente Nacional), 평화를 위한 야합 혹은 결단


군부 독재가 물러난 뒤, 자유당과 보수당은 더 이상의 유혈 사태를 막기 위해 하나의 결단을 내린다. 1958년부터 16년간 이어진 ‘국가 대연합(Frente Nacional)’이다.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은 제1야당과 권력을 정확히 절반씩 나눈다. 내각과 공직, 국가 운영의 모든 영역이 두 정당 사이에 균등하게 배분된다.


피를 멈추기 위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그 대가는 분명했다. 이 체제는 일시적인 평화를 가져왔지만, 동시에 정치의 문을 닫았다. 제3의 세력은 제도 안으로 들어올 수 없었고, 콜롬비아 민주주의의 외연은 극도로 축소되었다.

 

콜롬비아 게릴라.jpg
콜롬비아의 M19 게릴라

 

배제된 지식인들과 게릴라의 탄생


이 양극화 체제는 제3의 정치 세력이 들어올 문을 원천적으로 닫아버렸다. 합법적인 틀 안에서 변화를 꿈꾸던 이들은 더 이상 선택지가 없었다. 절망은 곧 다른 길로 이어졌다.


결국, 총을 들고 산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콜롬비아의 게릴라는 한국 독자가 흔히 떠올리는 이미지와는 다르다. 가난하고 배움이 없는 사람들의 반란이 아니었다.


M-19는 해군 제독의 아들을 포함한 도시의 지식인들이 만든 조직이었다. 


대학 학장과 교수, 시인과 음악가가 총을 들었다. 이들은 보고타 한복판에서 독립운동의 영웅 시몬 볼리바르의 칼을 훔쳤다. 그리고 외국 대사관을 점거하고, 대법원을 장악하며 세상의 시선을 끌었다.


그들의 방식은 단순한 폭력이 아니었다. 상징과 메시지였다.


민족해방군(Ejército de Liberación Nacional, ELN)은 또 다른 결을 가진 조직이다. 여기서는 신부가 총을 들었다. 카밀로 토레스(Camilo Torres)는 사제복을 벗고 게릴라에 합류했고, 1966년 전투 중 사망했다. 해방신학의 흐름 속에서 등장한 ELN은 농촌을 기반으로 성장했으며, 지금도 콜롬비아 북부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편, 콜롬비아무장혁명군(Fuerzas Armadas Revolucionarias de Colombia, FARC)은 규모부터 달랐다. 중남미 최대의 게릴라 조직이다. 그 출발은 의외로 단순했다. 토지 없는 농민을 조직하고, 국가 폭력으로부터 농촌 공동체를 보호하겠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1960~70년대 FARC는 농민들의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판이 바뀌었다. 콜롬비아는 코카인 붐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콜롬비아무장혁명군(Fuerzas Armadas Revolucionarias de Colombia, FARC)은 코카 재배 농민을 보호한다는 명분 아래 마약 카르텔과 거래를 시작했다. 돈이 들어오자 조직은 빠르게 팽창했다. 그러나 그만큼 이념은 희미해졌다. 납치는 주요 수입원이 되었고, 농민들의 지지는 점점 떠나갔다.


냉전의 종식은 마지막 전환점이었다. 소련이 붕괴하자 이념적 정당성은 설 자리를 잃었다. ‘교전 중인 정치 세력’이라는 국제적 명분도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었다.


오늘날 콜롬비아에서 정치 이데올로기를 전면에 내세우는 게릴라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국민적 지지도 없다. 남아 있는 무장 세력은 납치와 코카 재배를 생존 수단으로 삼는 범죄 조직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다.


반면, 다른 선택을 한 세력도 있었다.


총을 내려놓고 제도 안으로 들어간 이들이다. M-19 출신들이 만든 정당은 1991년 제헌의회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그 정치적 흐름은 단절되지 않았다.


그리고 2022년, 구스타보 페트로(Gustavo Petro) - 한때 M-19 대원이었던 인물- 가 콜롬비아 역사상 최초의 좌파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총을 내려놓고 투표함 앞에 선 선택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1991년 헌법: 닫힌 문을 열다


이 폐쇄적인 구조를 깨뜨린 결정적 계기가 1991년 헌법이다. 내전과 폭력이 반복되던 시간 속에서 콜롬비아 사회는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소외와 빈부 격차는 결국 폭력으로 돌아온다. 그렇다면 답은 분명하다.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새 헌법은 바로 그 질문에 대한 제도적 응답이었다. 권력이 한 세력에 독점되지 않도록 설계되었고, 대통령 선거 방식부터 의회 구성에 이르기까지 그 철학이 제도 곳곳에 녹아들었다.



대통령 선거: 과반의 동의를 구하다


1991년 헌법은 대통령 선거 방식을 바꿨다. 1차 투표에서 과반을 얻은 후보가 없으면, 상위 두 후보가 결선투표(segunda vuelta)를 치른다. 이 제도의 목적은 단순하다. 국민 절반 이상의 지지를 받지 못한 사람이 나라를 이끄는 것을 막는 것이다. 결선에 오른 두 후보는 첫 투표에서 자신을 지지하지 않았던 유권자들을 설득해야 한다.


선거는 단순한 경쟁이 아니라, 설득의 과정이 된다. 대화와 타협이 선거 구조 안에 내장되어 있는 셈이다.


한국은 다른 길을 걸었다. 단순다수제다. 1위가 곧 당선이다. 이 방식은 강한 리더십과 빠른 의사결정을 가능하게 한다. 압축 성장의 시대, 한국이 선택한 효율의 논리였다.


두 나라는 비슷한 시기에 민주주의를 설계했지만, 각자의 역사적 상처에서 전혀 다른 해법을 선택했다.



의회 선거: 정당이 민의를 대표한다


콜롬비아 의회 선거를 이해하려면 먼저 한 가지를 받아들여야 한다. 이 선거에서 중심은 개인 후보가 아니라 정당이다. 왜 그럴까. 답은 역사에 있다. 국가대연합 시절, 정치는 소수 엘리트 정치인들이 주도하는 과두제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 폐쇄성이 결국 게릴라를 낳았다.


1991년 헌법은 바로 그 뼈아픈 경험 위에 세워졌다. 개인의 인기보다 정당의 노선과 책임으로 정치를 하자는 선택. 그 철학이 오늘날 콜롬비아 선거 제도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상원은 전국을 하나의 선거구로 본다. 100석 전원을 전국 비례대표로 선출한다. 지역구 의원은 따로 없다. 특정 지역 기반이 없어도, 전국적 의제를 가진 정당이라면 의회에 진입할 수 있다.


의석 배분은 동트(D’Hondt)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처음 들으면 낯설지만, 원리는 의외로 단순하다. 각 정당이 얻은 총 득표수를 1, 2, 3, 4… 순서로 계속 나눠간다.


A당이 200만 표를 얻었다면 200만, 100만, 66만, 50만, 40만…

B당이 100만 표라면 100만, 50만, 33만, 25만…


이렇게 나온 숫자들을 모두 모아, 큰 것부터 순서대로 의석을 배정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결과가 나온다.


A당이 총 득표가 많아 10석을 얻었다고 해보자. 그 경우 A당의 10번째 당선자가 받은 표보다, 6석을 얻은 B당의 7순위 낙선자가 더 많은 표를 받았을 수도 있다. 의석은 개인 득표가 아니라 정당 총 득표를 기준으로 나뉘기 때문이다. 결국, 득표율에 비교적 정확하게 비례해 의석이 배분되는 방식이다.


단, 문지방이 존재한다.


전국 유효 득표의 3%를 넘지 못한 정당은 아예 배분 계산에서 제외된다. 이 기준을 통과하지 못하면, 정당은 법적 지위(personería jurídica)마저 잃을 수 있다. 선거는 단순히 의원을 뽑는 과정이 아니다. 정당의 생사를 가르는 순간이기도 하다.


이 지점에서 한국 독자가 고개를 갸웃할 장면이 나온다.


A당 후보가 10만 표를 받았다. B당 후보는 7만 표를 받았다. 그런데 당선된 건 B당 후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콜롬비아 선거는 개인 득표로 당락을 결정하지 않는다. 먼저 각 정당이 전국에서 얻은 총 득표를 기준으로, 정당별 의석 수를 나눈다.


그 다음에야 각 정당 내부에서 누가 그 의석을 가져갈지가 결정된다.


A당이 전국 총 득표에서 부진해 의석을 하나도 배정받지 못했다면, A당 후보 개인이 아무리 많은 표를 받아도 의원이 될 수 없다. 반면 B당은 총 득표가 많아 의석을 확보했고, 그 의석이 7만 표를 받은 B당 후보에게 돌아간다.


더 냉정한 경우도 있다.


A당이 전국 유효 득표의 3%를 넘지 못했다면, 애초에 배분 계산 자체에서 제외된다. 그 경우 후보 개인이 받은 표는 그대로 사라진다. 이 제도가 말하는 것은 하나다. 당신이 찍은 것은 후보 개인이 아니라, 그 후보가 속한 정당이다.


투표 방식도 두 가지다. 폐쇄형 리스트는 정당 전체에 투표한다. 당선자는 정당이 미리 정해둔 순서에 따라 결정된다. 반면 개방형 리스트는 정당을 선택하면서 동시에 특정 후보에게 직접 표를 줄 수 있다. 이 때문에 콜롬비아의 투표용지는 신문만 하다는 말이 나올 만큼 크고 복잡하다.


하원은 183석이다. 각 주(Departamento) 단위 선거구에서 비례대표 방식으로 선출된다. 여기에 내전 피해 지역을 위한 특별 의석 16석, 아프로-콜롬비안과 원주민 대표 의석, 그리고 해외 거주 콜롬비아인 의석이 더해진다. 역사의 상처와 사회적 다양성을 의회 구조 안으로 끌어들인 결과다.


한국 의회는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혼합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러나 여전히 거대 양당 중심의 구조가 강하게 유지되고 있다. 두 나라는 모두 다양한 목소리를 제도 안에 담으려 했지만, 선택한 방식은 달랐다.


콜롬비아는 정당 중심으로 문을 넓혔고, 한국은 지역 대표성을 중심에 두었다.



패배한 자의 자리


콜롬비아 의회는 역사의 상처와 사회적 다양성을 의석 구조 안에 직접 새겨 넣었다. 상원 103석 중 2석은 원주민 공동체(인디헤나)에게 보장된다. 500년 식민 지배로 땅과 언어를 잃은 이들에게 의회 안에서 말할 자리를 준 것이다.


그리고 가장 눈에 띄는 장치가 있다. 대통령 선거에서 진 2위 후보에게 자동으로 상원 의석이 주어진다. 그 부통령 러닝메이트는 하원 의원이 된다. 선거에서 진 사람에게 제도 안에서 말할 자리를 준다. 권력을 독점한 세력이 반대파를 제도 밖으로 밀어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콜롬비아는 뼈저리게 알고 있다. 승자 독식을 막는 안전장치다.



다극 구조, 협상이 정치의 일상이 되다


2026년 3월 선거는 이 제도의 현재를 잘 보여준다. 상원에서 좌파 연합 Pacto Histórico는 약 25석, 우파 Centro Democrático는 약 17석, 전통 자유당은 약 12석을 얻었다.


하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어떤 정당도 단독 과반을 확보하지 못했다. 법안 하나를 통과시키려면 반드시 다른 정당과 협상해야 한다. 선거가 끝난 뒤 한 달이 다 되도록 마지막 한두 석의 향방이 확정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동트 방식의 정밀한 계산과 오지 투표함의 긴 이동이 만들어내는, 콜롬비아식 개표 풍경이다. 비효율처럼 보인다. 실제로 느리다. 그러나 1991년 헌법이 의도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어느 한 세력도 권력을 독점하지 못하도록. 내전의 기억이 만든 제도적 겸손이다.


한국은 다른 선택을 했다.


강력한 행정부와 다수당 중심의 의회 구조를 택했다. 그 힘으로 압축 성장을 이루어냈다. 그러나 지금 한국이 마주한 질문은 분명하다. 그 힘을 어떻게 나누고, 어떻게 견제할 것인가.


콜롬비아가 내전의 상처 속에서 배운 것을, 한국은 성장의 성숙 위에서 배워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글을 맺으며


1000일 전쟁과 파나마 상실, 라 비올렌시아의 암흑, 그리고 게릴라의 총성을 지나온 콜롬비아는 이제 또 다른 시험대에 서 있다.


제도권으로 들어온 게릴라에게 주어졌던 8년 동안의 ‘보장된 의석’이라는 보호막도 이제는 걷어졌다. 그들은 스스로 정치 세력으로 성장해 국민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진정한 의미의 다당제 경쟁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현실은 냉정했다. 그들은 단 한 석도 얻지 못했다. 제도권 안으로 들어온 게릴라 세력의 정치화가 어디까지 가능한지를 보여주는 한계이기도 했다.


과거의 국가 대연합이 엘리트 과두정치의 배타적 합의였다면, 지금의 의회는 비록 파편화되어 있을지언정 다양한 사회적 가치가 충돌하고 타협하는 민주주의에 더 가까워지고 있다.


비슷한 상처를 지나 민주주의를 만들어온 한국의 시선에서 보면, 콜롬비아의 이 변화는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1987년 헌법은 군부 독재를 끝내고 민간 정치의 시대를 열었다. 국회의 권한을 강화한 그 헌법은 2024년 12월 3일 대통령의 반헌법적 계엄 선포라는 위기 앞에서도 탄핵이라는 제도적 해법을 가능하게 했다. 


그러나 그 과정을 통해 한국 사회가 마주한 것은 제도의 힘이 아니라, 동시에 그 한계이기도 했다.


콜롬비아가 오랜 내전의 상처를 딛고 1991년 헌법으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냈듯, 한국 역시 지금의 경험을 담아낼 또 하나의 그릇을 고민해야 할 시점에 와 있는지도 모른다.


닮은 역사를 가진 두 나라는 각자의 방식으로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


누가 이 나라의 주인인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 그것이 바로 국민주권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그리고 그 여정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콜롬비아.jpg
비올렌시아 계기가 된 당시 자유당 대선 후보 가이탄 언설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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