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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리더뉴스=특별기고] 보름달 안방에 들어오다

  • 김한식 시인 특별기고 기자
  • 입력 2025.09.11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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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름달을 안방이라는 가장 사적인 공간으로 끌어들여, 삶과 영혼이 만나는 경험으로 전환...
  • 달빛 같은 작은 환희가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워...초월은 멀리 있지 않고 우리 곁에, 우리 안방에...
김한식 보름달.png
안방으로 들어오는 둥든 보름달 (AI 생성)

 

 보름달 안방에 들어오다

                    - 김한식 -

  

  산들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이

  살랑살랑 깔깔거리며

  숨으면 찾아내고

  다시 숨는다

  귀뚜라미 갈채 속에

  달과 마주하는 숨바꼭질

  칠월 백중의 보름밤이 정겹다

  산들바람이

  자정을 스쳐지나가고

  서방정토로 달려가던 보름달이

  살그머니 유리창을 열고

  안방으로 들어온다

  벽은 흰 숨결로 가득하고

  가지런히 줄지어 선 가구들은

  자신의 그림자를 잊은 듯

  빛 속에 잠긴다.

  달빛은 오래 묻어두었던

  해묵은 내 상처와

  삶의 주름을 어루만진다

  아무 말 없이,

  빛이 스쳐간 자리에

  가슴 속, 그 깊은 떨림이

  그 찰나의 환희가

  내일을 살아낼 이유가 아니던가

 

 

<해설>

김한식 시인의 「보름달 안방에 들어오다」는 단순히 한 편의 서정시를 넘어 시간과 공간, 기억과 존재를 잇는 깊은 사유의 시선이 깃들어 있는 작품입니다. 표면적으로는 한 여름 칠월 보름밤의 정경을 노래하고 있지만 그 안에는 빛과 어둠, 내면의 상처와 환희, 일상의 고요와 존재의 떨림이라는 서로 다른 차원이 교차하며 삶을 바라보는 시인의 깊은 성찰이 배어 있습니다.

 

1. 산들바람과 나뭇잎 ― 시간의 문을 여는 첫 장면

 

“산들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이 /살랑살랑 깔깔거리며 /숨으면 찾아내고 /다시 숨는다” 시의 첫머리는 아주 섬세한 감각의 세계로 독자를 이끕니다.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며 웃음소리를 내는 듯한 묘사는, 단순한 자연 풍경의 서술을 넘어 “자연과 시인의 감각이 한 몸으로 어우러지는” 상태를 보여줍니다. 여기서 ‘숨으면 찾아내고 다시 숨는다’는 표현은 자연과 인간이 함께 숨바꼭질을 하듯 살아 있는 호흡을 나눈다는 의미를 담습니다. 이 장면은 시 전체의 서정적 리듬을 여는 서곡처럼 작용하며, 우리로 하여금 시인의 감각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게 합니다.

 

2. 달과 마주하는 숨바꼭질 ― 외부 세계와 내면의 교감

 

“귀뚜라미 갈채 속에 /달과 마주하는 숨바꼭질 /칠월 백중의 보름밤이 정겹다” 여기서 시선은 바깥 풍경으로 옮겨갑니다. 귀뚜라미 소리가 밤의 배경을 채우고, 그 소리를 ‘갈채’라고 부르는 순간, 자연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존재의 축제에 함께 참여하는 동반자로 격상됩니다.

 

‘달과 마주하는 숨바꼭질’이라는 구절은 특히 인상적입니다. 달은 늘 거기에 있지만, 때로는 구름에 가리고, 때로는 우리의 시선에서 벗어납니다. 시인은 그 달을 잡으려 애쓰는 것이 아니라, 달과 “숨바꼭질을 하는 존재”로 자신을 동일화합니다. 달을 잡으려는 의지가 아니라 달과 어울리는 놀이, 그 유희적 태도 속에서 삶을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이 드러납니다.

 

3. 안방으로 들어온 보름달 ― 일상 속으로 스며드는 초월

 

“서방정토로 달려가던 보름달이 /살그머니 유리창을 열고 /안방으로 들어온다” 이 부분은 시의 전환점입니다. 원래 보름달은 바깥 하늘을 떠도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시인은 달을 바깥에 두지 않습니다. ‘서방정토’라는 불교적 이미지를 빌리면서, 달을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라 삶 너머의 세계를 상징하는 초월적 존재로 격상합니다. 그런데 이 초월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아주 은밀하고 사적인 공간, ‘안방’으로 스며듭니다. 달은 ‘살그머니’ 유리창을 열고 들어옵니다. 초월은 이렇게 조용히, 거창한 소리가 아니라 빛처럼, 바람처럼, 은근히 우리 곁으로 다가옵니다. 그리고 그 빛은 곧이어 방 안의 모든 것을 새롭게 합니다.

 

4. 그림자를 잊은 가구들 ― 존재의 해방

 

“벽은 흰 숨결로 가득하고 /가지런히 줄지어 선 가구들은 /자신의 그림자를 잊은 듯 /빛 속에 잠긴다” 달빛이 스며든 방 안에서 모든 사물은 새롭게 태어납니다. ‘벽은 흰 숨결로 가득하다’는 표현에서, 달빛은 단순히 물리적 빛이 아니라 숨결처럼 살아 있는 생명력을 띱니다. 특히 “자신의 그림자를 잊은 듯”이라는 대목은 상징적입니다. 달빛이 사물을 비출 때, 그림자는 사라집니다. 존재를 규정하던 경계, 상처, 무게들이 일순간 사라지고, 사물은 빛 속에서 하나가 됩니다. 이는 곧 존재가 제약을 잊고 본래의 순수성을 회복하는 순간을 암시합니다.

 

5. 달빛이 어루만지는 상처 ― 치유와 환희

 

“달빛은 오래 묻어두었던 /해묵은 내 상처와 /삶의 주름을 어루만진다 /아무 말없이, / 빛이 스쳐간 자리에 /가슴 속, 그 깊은 떨림이” 이 부분은 시의 정점이자 핵심입니다. 시인은 달빛을 단순한 외부의 자연현상이 아니라, 내면의 고통과 깊이 교감하는 존재로 받아들입니다. 달빛은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스며듭니다. 소리를 내지 않지만, 가장 아픈 자리를 알아보고 그곳을 쓰다듬습니다. 이때의 치유는 언어로 설득하거나 이성을 통해 이해하는 방식이 아니라, 존재 자체를 감싸 안는 경험입니다.

 

그리고 남는 것은 ‘깊은 떨림’입니다. 이 떨림은 단순히 슬픔이나 기쁨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삶의 상처와 빛이 만날 때, 고통과 구원이 동시에 깃드는 자리에서만 가능한 떨림입니다.

 

6. 내일을 살아낼 이유 ― 시적 결말의 힘

 

“그 찰나의 환희가 /내일을 살아낼 이유가 아니던가” 마지막 구절은 시의 모든 이미지를 응축해 하나의 질문으로 던집니다. 우리는 종종 삶의 이유를 거대한 목표나 위대한 사명에서 찾으려 하지만, 시인은 아주 작은 ‘빛의 순간’에서 내일을 살아낼 힘을 발견합니다. 그것은 보름달이 스며들어 온 한밤의 경험, 잠시 그림자를 잊고, 상처가 어루만져지는 그 찰나의 순간입니다.

 

7. 종합 해석 ― 빛으로 읽는 존재의 서정

 

「보름달 안방에 들어오다」는 단순한 자연시가 아닙니다. 이 시는 존재와 빛, 상처와 치유, 초월과 일상이라는 복합적 층위를 한밤의 풍경 속에 녹여냈습니다. 달빛은 이 시에서 단순한 자연물이 아니라 내면의 구원자이자 상처를 감싸는 초월의 은유입니다. 그리고 시인은 그 초월을 멀리서 구하지 않고, 안방이라는 가장 사적인 공간으로 끌어들여, 삶과 영혼이 만나는 경험으로 전환합니다. 이 시의 깊은 울림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삶은 상처와 그림자에 둘러싸여 있지만, 달빛 같은 작은 환희가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웁니다. 초월은 멀리 있지 않고, 지금 이 순간 우리 곁에, 우리 안방에, 우리 내면의 가장 깊은 자리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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