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학혁명 당시 일본군 진압책임자를 비롯해 그들의 후손까지 추적
[굿리더뉴스=하동호 기자] 모처럼 대작(大作)이 나왔다. 힘들게 썼을 것이라는 점에서 '역작(力作)이다. 어느 역사학자도 쓰기 힘든 방대한 '역사 백과사전'이 나왔다. 우리 모두가 한번쯤 관심을 가져볼만한 책이다.
무명 작가인 김강열씨가 엄청난, 대단히 의미있는 책 한권을 출간해 화제다. 책 제목은 <왜구인명사전>
전남 장흥 출신 김강열 작가가 장장 18년 동안 고군분투한 끝에 완성한 기념비적 업적이다. 그는 BC50년부터 2025년 6월까지 2075년 동안 우리나라를 침략한 일본인들(왜구들) 5,348명과 그 후손과 친족 5,642명으로 총 10,990명 일본인들의 행적을 조사하여 기록하였다. 이렇게 실명까지 방대하고도 구체적으로 규명한 역사서적은 드물다.
최근 한일관계가 빠르게 개선되고 있지만, 이 책은 반일이나 항일 차원을 너머 역사적-실증적 탐구서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왜구인명사전>에 나오는 일본 관료와 일본군 지휘관의 항일 동학농민군 학살 서술 내용이 역사적 사실과 합치한다고 역사학자 박용규씨는 말한다. 이 책은 한마디로 일본인의 우리나라 침략사를 낱낱이 기혹한 역사책이자 백과사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일본의 우리나라 침략사를 심도 있게 연구하는데 크게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역사학자 박용규씨는 "김강열 작가의 위대하고 불멸한 업적을 축하한다"고 높이 평가했다.
과연 <왜구인명사전>이 항일 동학농민군 학살자들까지 얼마나 상세히 기록할 수 있었을까? 그 많은 자료와 실명, 역사적 고증이 제대로 이루어진 것일까? 이제 <왜구인명사전>에 나오는 일본 관료와 일본군 지휘관의 항일 동학농민군 학살 서술 내용을 살펴보자. (다음은 역사학자 박용규씨의 글 참조)
1. 일본의 경복궁 점령사건과 조선 보호국화(식민지화) 정책 추진
우리나라의 식민지화를 열은 일본의 첫 번째 침략 사건이 1894년 7월 23일 경복궁 점령사건이었다. 1894년 6월 21일(양력 7월 23일)에 일본군이 경복궁을 점령하여 고종을 포로로 잡고 친일 정권을 세웠다. 경복궁 점령 사건 때에 일본군의 공격을 받아 조선군 17명이 사망하였고, 조선군 60여 명이 부상을 당하였다.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 사건’은 조선의 국권을 침탈한 중대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청일전쟁은 1894년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사건에서 시작되었다. 청일전쟁은 일본이 우리나라를 보호국화(식민지화)하기 위한 전쟁이었고 청군 축출 전쟁이었다.
경복궁 점령에 명령을 내린 자가 일본군 혼성 제9여단 5사단 혼성여단장 오시마 요시마사(大島義昌)였다. <왜구인명사전>에 오시마 요시마사를 아래와 같이 기술하고 있다.
“오시마 요시마사(大島義昌): 조선훈장 수상자이며, 동학농민전쟁 진압 일본군대장, 관동총독부 총독, 육군대장 등을 지낸 자”(<왜구인명사전>, 350쪽)
1894년 7월 17일(양력 8월 17일)에 일본 내각은 “일본이 직간접적으로 영구히 또는 장기간 조선을 보호국으로 한다.”(보호국화안)라고 의결했다.(무쓰 무네미쓰, <건건록(蹇蹇錄>, 일본 외무성, 1896년) 이 날에 일본이 조선 보호국화를 결정했다. 보호국화는 우리나라를 보호국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보호국화는 식민지화를 의미한다. 일본 내각회의에 총리대신 이토 히로부미, 외무대신 무쓰 무네미쓰, 내무대신 이노우에 카오루가 참석하여 의결하였다.
일본은 조선 보호국화 정책을 청일전쟁 전 기간(1894년 7월 23∼1895년 3월 17일)에 걸쳐 추진하였다. <왜구인명사전>은 외무대신 무쓰 무네미쓰(陸奧宗光)에 대해 아래와 같이 서술하고 있다.
“무쓰 무네미쓰(陸奧宗光): 갑오농민전쟁 당시 조선 왕실을 점거하고 친일 내각을 세운자로서, 제3대 제1차 야마가타(山縣) 내각과 제4대 제1차 마쓰가타(松方)내각에서 농상무대신, 제5대 제2차 이토(伊藤)내각에서 외무대신 등을 지낸 자”(<왜구인명사전>,232쪽)
2. 항일 동학농민군 학살 작전 실행
경복궁 점령에서 청일전쟁을 시작한 일본군은 우리나라의 식민지화를 위해 반일독립군인 동학농민군을 강경진압 학살 작전을 수행했다.
조선 보호국화 정책에 반대하는 항일 동학농민혁명 세력을 철저히 탄압하였다. 1894년 9월 29일(양력 10월 27일)에 이토 히로부미 수상(총리대신)이 히로시마 대본영에서 병참총감 가와카미 소로쿠(川上操六)와 상의하여 동학농민군을 “모조리 죽이라”라는 살육 작전을 결정하였다. 이날 동학농민군 학살을 전담할 3개 중대 파견도 결정하였다. 일본군은 3만명에서 5만명의 동학농민군을 모조리 살육하였다. 3개 중대를 지휘하며 동학농민군 학살 작전을 수행한 자가 일본군 후비보병 독립 제19대대 미나미 고시로(南小四郞) 대대장이었다. <왜구인명사전>은 미나미 고시로에 대해 아래와 같이 서술하고 있다.
“미나미 고시로((南小四郞): 일본 육군소좌로서 제3차 동학농민군의 진압대장과 명성황후 시해 사건에 동원된 일본군 현장 군사책임자였던 자”(<왜구인명사전>, 235쪽)
동학농민군 학살 사령관 미나미 고시로(南小四郞, 1842∼1921). 일본군 후비보병 독립 제19대대는 1894년 12월 14일(양력 1895년 1월 9일) 장흥 석대들 전투에서 동학농민군 수백 명을 총살하였다.
3. 일본의 조선 보호국화 정책 포기
2차 동학농민혁명은 일본의 조선 보호국화 정책에 맞선 항쟁이었기에 항일 독립운동이었다. 러시아·프랑스·독일의 삼국간섭과 2차 동학농민혁명의 끈질긴 항쟁 때문에 일제는 1895년 6월에 조선 보호국화 정책을 포기하였다.
이하 내용은 책 <왜구인명사전>을 직접 참고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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