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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리더뉴스] 법정스님의 겨울나무 이야기, "거대한 나무를 쓰러뜨리는 것은 폭풍이 아니라 눈.."

  • 하동호 기자
  • 입력 2025.08.24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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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을 바꾸는 것은 강력한 힘이 아니라 부드러운 손길
법정 스님.png
AI 생성

 

[굿리더뉴스=에세이] 법정스님의 글 한토막을 소개한다. 제목은 '설해목'(雪害木). 이 글을 읽어보면 제목이 왜 설해목인지 자연스럽게 알게될 것이다. 설해목을  굳이 해석하면, 눈으로 말미암아 무너지는 나무라고 할까?



해가 저문 어느 날, 

오막살이 토굴에 사는 노승 앞에 더벅머리 학생이 찾아왔다. 


아버지가 써 준 편지를 꺼내면서 그는 사뭇 불안한 표정이었다. 


사연인즉, 이 망나니를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더 이상 손댈 수 없으니, 

스님이 알아서 사람을 만들어 달라는 부탁이었다. 


노승과 그의 아버지는 친분이 있는 사이였다. 


편지를 보고 난 노승은 아무런 말도 없이 후원에 나가서 늦은 저녁밥을 지어 왔다. 


망나니 학생에게 저녁을 먹인 뒤 발을 씻으라고 대야에 가득 더운 물을 떠다 주었다. 


그때였다. 그 더벅머리 학생의 눈에서 주르륵 눈물이 흘러 내렸다. 


학생은 아까부터 스님의 훈계가 있으리라 은근히 기다려지기까지 했지만 

스님이 한마디 말도 없이 그저 시중만 들어주자 학생은 크게 감동한 것이다. 


아버지에게 쫓겨나다시피 한 그 학생은 훈계라면 진저리가 났을 터이다... 


그 학생에게는 백마디 천마디 충고보다 다사로운 손길이 그리웠을 것이다. 


이제는 가고 안 계신 한 노사(老師)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산에서 살아 보면 누구나 다 아는 일이지만, 겨울철이면 나무들이 많이 꺾인다. 


모진 비바람에도 끄떡 없던 아름드리 나무들이,

꿋꿋하게 고집스럽기만 하던 그 소나무들이 눈이 내려 덮이면 꺾이게 된다. 


큰 나무들이 가지 끝에 사뿐사뿐 내려 쌓이는 그 가볍고 하얀 눈에 꺾이고 마는 것이다. 


깊은 밤, 이 골짝 저 골짝에서 나무들이 꺾이는 메아리가 울려올 때, 우리는 잠을 이룰 수 없다. 


정정한 나무들이 부드러운 것 앞에서 넘어지는 그 의미 때문일까? 


산은 한겨울이 지나면 앓고 난 얼굴처럼 수척하다. 


사밧티의 온 시민들을 공포에 떨게 하던 살인귀 앙굴리말라를 귀의시킨 것은 

부처님의 불가사의한 신통력이 아니었다. 위엄도, 권위도 아니었다. 그것은 오로지 자비였다. 


아무리 흉악무도한 살인귀라 할지라도 차별 없는 훈훈한 사랑 앞에서는 돌아오지 않을 수 없다. 


바닷가의 조약돌을 그토록 둥글고 예쁘게 만든 것은 무쇠로 된 정이 아니라, 부드럽게 쓰다듬는 물결이다. 


- 법정스님 - 

 

자발적 후원 그림.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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