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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 칼럼 26] 인간세상에서 AI세상으로 변하면, 문학은 어떻게 변할까?

  • 이상규 교수 기자
  • 입력 2026.09.17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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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세에서 AI세로 이행하는 시대, 문학의 미래


                               - 이상규 시인·문화예술 평론가 -



인류세의 끝에서 AI세가 시작되고 있다


우리는 지금 하나의 문명적 경계에 서 있다. 인간이 자연을 변화시키던 시대에서 인간이 만들어낸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식과 언어의 질서를 다시 변화시키는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 이를 인류세(Anthropocene)에서 AI세로의 이행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18세기 이후 과학주의와 이성주의의 발전은 인간을 세계의 중심에 놓았다. 

 

인간은 자연을 관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연을 측정하고 분류하고 재구성하기 시작했다. 숲을 도시로 바꾸고 강의 흐름을 바꾸었으며 지하에 묻힌 화석에너지를 꺼내 산업문명을 일으켰다. 인간은 자연을 이용하는 존재에서 자연의 조건 자체를 변화시키는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인간이 자연에 부여한 질서는 새로운 무질서를 낳았다. 기후변화, 생태계 파괴, 생물다양성 감소, 폐기물과 오염의 증가는 인간중심적 문명이 만들어낸 역설적 결과다. 인간은 자연을 지배할 수 있다고 믿었지만, 결국 자신이 만들어낸 환경의 반작용 앞에서 인간의 한계를 경험하게 되었다. 

 

이러한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성찰은 인간을 세계의 유일한 주체로 보는 존재론에서 벗어나 인간 이외의 유기체와 사물의 존재 방식까지 함께 사유하려는 새로운 철학으로 이어지고 있다. 아우드로네 주카우스카이테가 말하는 유기체 중심의 존재론 역시 이러한 문제의식과 연결된다.

 

그런데 인류가 이 반성을 충분히 끝내기도 전에 또 다른 변화가 시작되었다. 인간이 만들어낸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적 환경을 변화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인류세가 인간의 힘으로 자연의 질서를 변화시킨 시대였다면, AI세는 인간이 만들어낸 지능이 인간의 지식 질서를 다시 변화시키는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이 변화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가 바로 언어다.


인간은 언어를 통하여 세계를 인식한다


인간은 언어를 통하지 않고 세계를 완전히 인식할 수 없다. 우리가 사물을 보고 이름을 붙이는 순간, 사물은 단순한 물질적 대상에서 인간의 인식체계 안으로 들어온다. 푸코가 『말과 사물』에서 에피스테메(episteme)를 통해 보여준 것도 결국 인간이 세계를 어떻게 분류하고 질서화하는가의 문제였다. 인간은 무수한 사물과 현상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이름을 붙이고, 분류하고, 관계를 설정하면서 하나의 지식 공간을 만들어왔다.

보르헤스의 「존 윌킨스의 분석적 언어」가 보여주는 기묘한 분류체계 역시 인간이 세계를 일정한 질서 속에 배열하려는 욕망의 한계를 드러낸다. 

 

인간은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질서로 재구성한다. 이러한 지식의 조직화는 오랫동안 목록의 형태로 이루어졌다. 천자문이나 유합과 같은 어휘 학습서도 넓은 의미에서 인간이 세계의 사물을 이름과 범주로 묶어 기억하려 했던 결과물이다. 그러나 지식은 단순한 목록을 넘어 계열과 관계의 체계로 발전했다. 식물분류학에서 린네가 생물의 형태와 속성을 일정한 체계 속에 배열한 것은 근대적 지식 질서의 중요한 전환이었다. 조선의 족보 역시 친족관계를 나뭇가지처럼 펼쳐 보이는 하나의 지식 구조였다.

 

하늘에 흩어진 별들을 연결하여 별자리를 만들고 이름을 붙이듯이, 인간은 세계의 사물 사이에 관계를 만들었다. 이때 구조는 대상을 서술할 수 있게 해주는 인식의 틀이 된다. 그리고 이 지식의 구조화가 언어의 차원에서 가장 정교하게 나타난 것이 사전이다.

 

사전은 단어를 단순히 모아놓은 책이 아니다. 하나의 단어에 형태와 발음, 의미, 문법적 정보, 어원, 용례 등을 부여하고 다른 단어와 관계를 맺어준다. 사전은 인간이 언어를 통해 세계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압축해놓은 지식의 구조물이다. 종이사전은 기본적으로 평면적이다. 올림말은 가나다순으로 배열되고 각각의 뜻풀이가 뒤따른다. 그러나 디지털 환경에서는 이러한 선형적 배열을 넘어 단어와 단어 사이의 관계를 연결할 수 있다. 동의어와 반의어, 상위어와 하위어, 부분과 전체, 인과관계와 함의관계 등을 서로 연결하면 사전은 하나의 거대한 의미망이 된다. 이 지점에서 온톨로지(Ontology)가 등장한다.

 

철학에서 온톨로지는 존재의 의미와 구조를 탐구하는 개념이지만, 정보기술에서는 지식과 개념 사이의 관계를 구조화하여 컴퓨터가 처리할 수 있도록 하는 지식체계를 뜻한다. 결국 온톨로지는 무엇이 존재하는가뿐만 아니라 존재하는 것들이 서로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지도다.

 

따라서 사전에서 온톨로지로의 이행은 단순한 기술적 변화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지식이 목록에서 관계망으로, 평면에서 입체적 구조로, 기록에서 추론 가능한 지식체계로 이동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이 변화의 끝에서 AI가 등장했다.


AI는 언어를 배우고 언어의 질서를 다시 만든다


오늘날의 거대언어모델(LLM)은 방대한 텍스트를 학습하면서 단어가 서로 어떤 관계 속에서 사용되는지를 계산한다. 임베딩 기술은 단어와 개념 사이의 관계를 고차원 공간에 배치하고, 모델은 그 관계를 바탕으로 새로운 문장을 생성한다. 중요한 것은 AI가 단어의 사전적 의미만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AI는 사람들이 실제로 어떤 단어를 어떤 문맥에서 사용했는지를 학습한다. 소설 속의 문장, 시 속의 은유, 신문기사의 논리, 일상적인 대화, 역사적 기록과 생활어가 모두 데이터가 된다. 그렇다면 AI 시대의 언어는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이 아니다. 언어는 인간이 축적해온 문명의 기억을 새로운 지능에게 전달하는 매개체가 된다. 바로 이 점에서 문학은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문학에는 인간의 감정과 욕망, 사랑과 죽음, 고독과 좌절, 사회적 갈등과 역사적 기억이 언어의 가장 농축된 형태로 들어 있기 때문이다.


문학의 탈영토화와 재영토화


AI가 소설을 쓰고 시를 생성하는 일은 이제 더 이상 낯선 현상이 아니다. 생성형 AI는 인간이 요구하는 주제와 형식에 따라 시와 소설을 만들어낼 수 있으며, 특정한 문체와 어조를 모방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는 문학의 종말을 의미하는가. 그렇게 단순하게 결론 내릴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중요한 질문은 AI가 문학을 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AI가 등장한 이후 문학이 무엇인가라는 데 있다. 인간이 쓴 문학과 AI가 생성한 문학의 차이를 단순히 우열의 문제로만 바라보는 것도 충분하지 않다. 인간은 몸을 가진 존재다. 인간의 언어는 경험에서 나온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본 사람의 ‘상실’이라는 말과, 수많은 문장에서 학습한 AI의 ‘상실’이라는 말은 동일한 단어이지만 그 존재론적 조건은 다르다.

 

AI는 인간이 축적한 언어의 흔적을 통해 세계를 구성한다. 반면 인간은 자신의 몸과 기억과 경험을 통해 세계를 살아간다. 따라서 AI가 만들어내는 문학적 문장은 인간의 문학과 닮을 수 있지만, 인간의 삶 그 자체와 동일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여기서 인간 문학의 우월성을 선언하는 것으로 논의를 끝내서는 안 된다. AI는 오히려 인간에게 문학의 본질을 다시 묻게 한다. 문학은 문장의 생산인가, 아니면 삶의 경험을 언어로 변환하는 행위인가. 이 질문은 앞으로 문학이 감당해야 할 가장 중요한 질문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천 개의 고원』에서 리좀(rhizome)이라는 개념을 통해 중심과 뿌리, 위계와 단일한 질서에 의존하지 않는 연결의 구조를 설명한다. 리좀은 하나의 중심에서 모든 것이 뻗어나가는 나무와 다르다. 여러 방향에서 접속하고 분기하며 다시 연결된다. 오늘날 한국문학의 변화 역시 이러한 리좀적 구조로 이해할 수 있다.

서울의 문학과 지역문학, 표준어와 방언, 문학어와 생활어, 종이책과 디지털 텍스트, 인간 작가와 AI가 서로 연결되고 충돌하면서 새로운 문학의 지형을 만들고 있다. 이것이 문학의 탈영토화다. 그러나 탈영토화는 단순한 해체가 아니다. 새로운 관계 속에서 다시 영토를 만든다. 인간의 문학이 AI의 언어와 만나고, AI의 언어가 다시 인간의 창작을 자극하면서 새로운 문학적 영토가 만들어질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의 문학은 인간과 AI 가운데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대체하는 방식으로 발전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오히려 두 존재의 차이와 접속 속에서 새로운 창작 형식이 등장할 것이다. 문학은 인간만의 폐쇄된 영토에서 벗어나면서도 인간의 경험이라는 고유한 장소를 새롭게 발견하게 될 것이다. ‘표준 한국어’에서 ‘초거대 한국어’로 이동해야 하는 시대다. 이러한 시대에 문학인들은 단순히 표준어에 맹속된 활동이 아니라 초거대 한국어의 생산자의 입장으로 나서야 한다. 문학인들이 생성해내는 상상의 언어를 은유와 비유의 클라우드 데이터를 직접 생성해 내고 또 이를 구축하여 기계언어가 학습하여 보다 확대된 문학 창작의 환경을 개선해 나가야 할 책임이 있다. 

 

이러한 변화는 한국어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근대 국민국가의 형성과정에서 한국어 정책은 표준화에 큰 비중을 두었다. 표준어를 정하고 맞춤법과 문법을 정하고 올바른 표현과 잘못된 표현을 구분했다. 국민 모두가 공유할 공통의 언어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AI 시대에는 언어의 개념을 다시 확장할 필요가 있다.

한국어는 서울의 말만이 아니다. 경상도의 말, 전라도의 말, 제주어, 함경도와 평안도의 말, 농촌과 시장의 생활어, 세대별 언어, 전문어와 속어, 이주민이 사용하는 한국어, 인터넷에서 새롭게 만들어지는 표현까지 한국어의 실제를 구성한다. 

 

더구나 한국어는 한반도 안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세종학당을 통해 세계 여러 지역으로 확산되고 있으며 한국어를 배우고 사용하는 외국인과 다문화 공동체가 늘어나면서 새로운 변형과 변종의 한국어가 만들어지고 있다. 나는 이러한 확장된 한국어를 ‘초거대 한국어’라고 부르고자 한다. 이 토거대 한국어를 생성하는 주역이 바로 문학인들이다. 초거대 한국어는 단순히 데이터의 양이 많은 한국어가 아니다. 그것은 한국어가 가지고 있는 시간적·공간적·사회적·문화적 다양성을 가능한 한 넓게 포괄하는 한국어다.

 

표준어도 한국어이고 방언도 한국어다. 문학어도 한국어이고 생활어도 한국어다. 과거의 한국어도 한국어이고 오늘 새롭게 태어나는 말도 한국어다. 따라서 AI 시대에 중요한 것은 ‘틀린 한국어’를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다른 한국어’를 얼마나 많이 보존하고 연결할 것인가이다. 나는 오래전부터 이렇게 말해왔다.

틀린 한국어는 없다. 다른 한국어가 있을 수 있다. 이 말은 모든 표현이 규범적으로 옳다는 뜻이 아니다. 언어의 실제에는 규범의 바깥에서 존재하는 수많은 변이와 차이가 있으며, 그 차이 자체가 인간 경험의 역사라는 뜻이다. 한 지역의 노인이 평생 사용해온 생활어 하나에도 그 지역의 자연과 노동, 가족과 공동체의 기억이 들어 있을 수 있다. 그 말 하나가 사라진다는 것은 단어 하나가 없어지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 말이 품고 있던 하나의 세계가 사라지는 것이다.


초거대 한국어에서 초거대 한국문학으로


그렇다면 초거대 한국어는 자연스럽게 초거대 한국문학으로 이어질 수 있다. 초거대 한국문학은 작품 수가 많은 문학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한국어가 담아온 인간 경험의 폭을 넓히는 문학이다. 이미 한글로 작성된 한국문학의 데이터들은 상당수 구축되어 클라우드데이터로 활용될 준비를 하고 있다. 방언문학도 그 안에 들어가고 지역문학도 들어간다. 구전문학과 고전문학, 현대문학, 디지털문학, 이주민의 한국어 문학, 새로운 세대의 인터넷 문학도 그 안에서 연결될 수 있다. 이때 AI는 단순히 문학 작품을 생산하는 기계가 아니라 거대한 문학적 기억을 탐색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 그리고 특히 시문학의 경우 시의 운율과 리듬이 생생하게 재현될 수 있도록 AI 쳇봇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방언으로 쓰인 수많은 작품을 연결하고, 시대별 어휘 변화를 추적하고, 특정 지역의 문학적 이미지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분석하며, 서로 다른 작가의 은유와 상징의 관계를 찾아낼 수 있다.

문학 연구와 비평 기반도 역시 달라질 것이다. 텍스트의 내용과 형식을 분석하는 것을 넘어 작품 사이의 관계, 어휘의 의미망, 이미지와 소리의 연결, 시대별 담론의 변화 등을 데이터와 온톨로지의 구조 속에서 탐색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기술의 중심에는 여전히 인간이 있어야 한다. AI는 관계를 발견할 수 있지만 그 관계가 인간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초거대 문학 클라우드 데이터를 문학 어휘 신경망과 은유의 온톨로지 기반으로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앞으로 한국문학을 위한 중요한 과제 가운데 하나는 문학 어휘 신경망을 구축하는 일이다. 문학의 어휘는 단순한 사전적 의미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하나의 단어가 어떤 작품에서는 사랑을 의미하고 다른 작품에서는 죽음이나 기억을 의미할 수 있다. 특히 시에서 이러한 현상은 더욱 두드러진다.

 

따라서 앞으로는 동의어·반의어·상위어·하위어와 같은 전통적인 의미관계뿐 아니라 작품 속의 맥락, 이미지, 감정, 상징, 은유와의 관계까지 연결하는 문학적 온톨로지가 필요하다. 가령 ‘바람’이라는 단어를 생각해보자. 사전에서는 자연현상의 하나로 설명할 수 있지만 문학에서는 계절, 자유, 죽음, 기억, 욕망, 이별 등 수많은 의미와 연결된다. 이러한 관계를 데이터화한다면 하나의 단어가 문학사 전체에서 어떤 의미의 변화를 거쳐왔는지 추적할 수 있다. 따라서 미래의 문학 데이터베이스는 단순한 작품 저장소가 되어서는 안 된다. 소리·문자·어휘·문장·이미지·작품·작가·시대·지역·감정·은유·상징을 서로 연결하는 거대한 문학 지식망이어야 한다. 이것이 문학 온톨로지의 궁극적인 방향이다.


AI가 문학을 생산할 때 작가는 무엇을 하는가


AI 문학의 확산은 작가에게 새로운 가능성과 동시에 심각한 질문을 던진다. 작가가 아이디어를 입력하고 AI가 초고를 만든 다음 작가가 그것을 수정하는 방식이 일반화된다면, 작가의 역할은 어떻게 변할 것인가? 창작의 효율성은 높아질 수 있다. 그러나 창작의 속도가 빨라지는 것이 문학의 깊이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AI가 만들어내는 문장이 일정한 패턴과 확률적 조합에 의존할수록 정형화된 서사, 익숙한 클리셰, 비슷한 감정과 표현이 반복될 가능성도 있다. 

 

문학이 문화산업의 원천 콘텐츠를 공급하는 재료로만 취급될 위험도 있다. 소설을 빠르게 생산하여 영화나 드라마, 게임과 같은 응용 콘텐츠로 전환한다면 문학 자체의 고유한 가치가 약화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앞으로의 문학에서 중요한 것은 AI를 쓰느냐 쓰지 않느냐의 이분법이 아니다.  핵심은 인간이 무엇을 창작하고 무엇에 책임지는가이다. AI가 초고를 만들 수 있다. 자료를 분석할 수도 있다. 수많은 문학작품 사이의 관계를 찾아낼 수도 있다. 그러나 작가가 어떤 삶을 말할 것인지, 어떤 기억을 선택할 것인지, 무엇을 침묵시키고 무엇을 드러낼 것인지에 대한 책임까지 AI에게 넘길 수는 없다. 문학은 결국 선택의 예술이기 때문이다.

 

문학의 미래는 인간과 AI 사이에 있다. AI 시대의 문학은 인간 대 기계라는 단순한 대립으로 설명할 수 없다. 인간은 AI에게 언어를 가르친다. AI는 인간이 남긴 언어를 다시 조합한다. 인간은 그 결과를 읽고 새로운 문장을 만든다. 그 문장은 다시 데이터가 된다. 이렇게 인간과 AI 사이에서 언어의 순환이 시작된다. 문학 역시 이 순환에서 자유롭지 않다. 따라서 미래의 작가는 단순히 글을 쓰는 사람만을 의미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언어적 세계를 설계하고, 다양한 데이터와 기억을 선택하고, AI와 협업하면서 새로운 문학적 관계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될 것이다. 작가의 고유한 역할은 오히려 더 중요해질 수도 있다. AI가 무한에 가까운 문장을 만들어낼수록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문장이 아니라 어떤 문장을 선택해야 하는가에 대한 판단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판단은 결국 인간의 삶에서 나온다.


결론을 대신해서 문학의 미래를 위한 새로운 언어정책


이제 한국어와 한국문학의 지평을 확장하기 위한  정책도 새로운 단계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 한국어와 한국문학을 민족문학이라는 이름으로 보호하는 정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한국어와 한국문학을 AI가 학습할 수 있도록 만들고, AI가 한국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도록 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텍스트에 의존하는 문학을 이미지, 사운드, 등 다체로운 AI 기술과 결속할 수 있는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어의 음성·문자·방언·생활어·문학어·역사어·은유·상징·비유를 하나의 거대한 지식망으로 연결해야 한다. 특히 문인들이 직접 팔을 걷고 나서서 은유·상징·비유 온톨로지 구축을 추진해 주기 바란다. 한글과 한국어의 관계도 새롭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한글은 단순히 말을 기록하는 문자에 머무르지 않고 디지털 환경에서 다양한 정보를 연결하는 중요한 매개가 될 수 있다.

 

문자와 소리, 이미지와 영상, 문학과 역사, 사전과 온톨로지를 연결하는 한국어 지식망을 구축한다면 한국어는 AI가 사용하는 하나의 언어를 넘어 새로운 지식 플랫폼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그것은 한국어를 세계에서 가장 큰 언어로 만들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언어의 크기는 단어의 숫자로 결정되지 않는다. 얼마나 많은 인간의 경험을 담고 있는가, 얼마나 많은 기억을 보존하는가, 얼마나 많은 차이를 포용하는가에 따라 언어의 크기가 결정된다. 

 

AI세의 문학은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 인류세에서 인간은 자연의 주인이 되려 했다. 그러나 인간은 자연의 반작용을 통해 자신이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을 다시 경험하고 있다. AI세에서는 또 다른 질문이 우리 앞에 놓인다. 인간은 자신이 만든 지능 앞에서 어떤 존재로 남을 것인가. 그 답은 AI의 계산속도나 데이터의 크기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우리가 AI에게 어떤 언어를 가르치는가, 어떤 문학을 기억하게 하는가, 어떤 차이를 보존하는가에 달려 있다.

 

AI에게 표준어만 가르친다면 AI는 한국어의 일부만 배우게 될 것이다. 서울의 언어만 가르친다면 지역의 기억을 잃게 될 것이다. 현재의 언어만 가르친다면 과거의 시간을 잃게 될 것이다. 문학어만 가르친다면 생활의 언어를 잃게 될 것이며, 생활어만 가르친다면 인간이 언어로 만들어온 상징과 은유의 깊이를 잃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미래의 AI에게 필요한 것은 평균적인 한국어가 아니다. 차이가 살아 있는 한국어다.

 

그리고 그 차이를 가장 깊이 보존하고 있는 것이 문학이다. 문학은 인간이 세계를 경험한 방식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인류세의 끝에서 AI세가 시작되고 있다. 그 경계에서 문학은 사라지는 과거의 예술이 될 수도 있고, 새로운 지능과 함께 진화하는 인간의 언어가 될 수도 있다. 나는 후자를 위해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한다. 더 많은 문장을 AI에게 주는 일이 아니다. 더 많은 세계를 한국어 안에 보존하는 일이다. 방언을 보존하고, 생활어를 기록하고, 사라지는 말의 기억을 남기고, 문학의 은유와 상징을 연결하고, 과거의 텍스트와 현재의 언어를 하나의 지식망으로 묶어야 한다. 그렇게 축적된 한국어의 기억이 AI와 만나면 한국어는 단순한 데이터가 아니라 하나의 문명적 기억체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한국문학 역시 새로운 영토를 발견할 것이다.

 

틀린 한국어는 없다. 다른 한국어가 있을 수 있다. 이제 이 명제는 방언을 위한 선언에 그쳐서는 안 된다. 그것은 AI 시대 문학의 새로운 존재론을 위한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수많은 ‘다른 한국어’가 서로 연결될 때 한국어는 비로소 하나의 거대한 문명적 네트워크가 된다. 그것이 내가 말하는 초거대 한국어다. 그리고 초거대 한국어가 품어야 할 가장 깊은 기억의 장소가 바로 초거대 한국문학이다. 문학의 미래는 AI와 인간 가운데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이기는 데 있지 않다. 그 미래는 인간이 축적해온 수많은 삶의 언어를 새로운 지능과 어떻게 나눌 것인가에 달려 있다. 결국 AI 시대의 문학이 우리에게 던지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은 이것이다. “AI가 문학을 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AI 시대에 인간은 무엇을 문학으로 남길 것인가?”[글=이상규 시인, 문화예술 평론가, 경북대 명예교수, 국립국어원장&한국국어정책회장 역임] 


이상규 국어학자.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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