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자 언어의 폭력성과 개인의 불평등성
개인의 언어 능력은 결코 평등하지 않다. 인간이 태생적으로 신체적·경제적 조건에서 차이를 지니듯, 언어를 사용하는 능력 또한 계급적 차등성을 가진다. 특히 문자 언어의 습득과 활용 능력은 이러한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켜 왔다. 교육 수준이나 학습 기회의 차이도 중요한 원인이지만, 그 이면에는 문자 언어 자체가 지닌 권력과 지배의 구조가 자리하고 있다. 루소와 레비스트로스는 이러한 문자 언어의 폭력을 가장 날카롭게 성찰한 사상가들이며, 데리다는 그들의 논의를 계승하면서도 근본적으로 재해석하였다. 오늘날 AI 시대는 이러한 문자 언어의 권력을 새로운 차원으로 확장하고 있다.
루소는 『언어 기원에 관한 시론』에서 최초의 언어는 인간의 감정과 정념에서 비롯된 은유적이고 음악적인 음성 언어였으며, 문자 언어는 그 이후에 형성된 부차적 체계라고 보았다. 살아 있는 음성은 인간의 감정과 공동체를 이어 주지만, 문자는 그것을 고정하고 규격화하며 권력의 대상으로 만든다. 루소에게 문자는 자연적 언어의 순수성을 훼손하는 보충물(supplément)이었으며, 바로 그 지점에서 언어의 폭력이 시작된다.
레비스트로스는 이러한 문제를 역사와 민족학의 차원에서 구체화하였다. 『슬픈 열대』에서 그는 “문자는 인간을 계몽하기 이전에 인간을 착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더 많이 사용되었다”고 말한다. 문자는 행정과 세금, 토지 소유와 군사 조직을 가능하게 했으며, 식민주의는 문자 체계를 통해 피지배 민족을 분류하고 통제하였다. 문자의 발전은 문명의 발전과 동일한 것이 아니라 권력의 확대와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의 「문자의 교훈」과 「남비크와라족의 가족 및 사회생활」에서 등장하는 남비크와라족은 이러한 문제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문자 체계를 갖지 않았던 그들은 서구 사회로부터 미개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실제로는 문자의 부재가 아니라 문자 권력의 폭력에 노출되어 있었다. 그들의 숲과 길, 영토는 외부의 지도와 경계선으로 다시 그려졌으며, 이름 붙이기와 기록하기는 곧 지배의 기술이 되었다. 문자는 소통의 도구인 동시에 타자를 통치하는 장치였던 것이다.
데리다는 『그라마톨로지』에서 이러한 논의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는 루소가 음성 언어를 순수하고 문자 언어를 타락한 것으로 구분하는 사고 자체가 서구 형이상학의 전통, 즉 ’음성 중심주의(logocentrism)’라고 비판하였다. 데리다에게 음성과 문자 모두는 이미 차이(différance)와 흔적(trace)의 구조 속에서 의미를 생성한다. 따라서 문자만을 폭력의 근원으로 보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오히려 모든 언어는 차이를 만들어 내는 순간 이미 일정한 권력을 행사하며, 폭력은 문자 이전부터 언어 자체에 내재한다.
그렇다고 해서 데리다가 문자 언어의 정치적 폭력을 부정한 것은 아니다. 그는 레비스트로스가 제시한 식민주의와 문자 권력의 사례를 높이 평가하면서도, 문자와 음성을 선악의 대립으로 구분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특정한 문자 체계가 사회 속에서 어떻게 권력을 생산하고, 누구를 배제하며, 누구에게 침묵을 강요하는가 하는 점이었다. 여기에서 데리다는 ‘고유명사의 전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이름을 부여하는 행위 자체가 권력이며 지배의 시작임을 보여 준다.
오늘날 AI 시대는 이러한 문제를 전혀 새로운 국면으로 이끌고 있다. 인공지능은 문자와 음성, 이미지와 영상을 하나의 데이터 체계 안에서 동시에 생성하고 변환한다. 표면적으로는 누구나 쉽게 언어를 사용할 수 있도록 돕는 민주적 기술처럼 보인다. 그러나 거대한 자연언어모델을 소유한 정보기술 기업들은 세계인의 언어 데이터를 독점하며 새로운 언어 질서를 형성하고 있다. 문자의 폭력은 이제 알고리즘의 폭력으로, 필사의 권력은 데이터의 권력으로, 사전의 권위는 거대 AI 모델의 권위로 이동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개인의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과거에는 읽고 쓰는 능력이 계급을 나누었다면, 이제는 AI를 활용하고 검증하며 비판적으로 해석하는 능력이 새로운 문해력으로 등장하고 있다. 누가 더 복잡한 은유를 이해하고, 누가 AI가 생산한 정보를 비판적으로 판별할 수 있는가가 사회적 경쟁력을 결정한다. 문자 언어의 차등성은 디지털 문해력과 AI 문해력의 차등성으로 확장되고 있으며, 이는 새로운 계급 구조를 만들어 낼 위험을 안고 있다.
문학과 예술 역시 이러한 변화에서 자유롭지 않다. 전문용어와 고유명사, 약어와 두문자어, 플랫폼마다 생성되는 새로운 기호들은 끊임없이 증가하며 새로운 문화적 장벽을 형성한다. 문화예술은 문자 언어의 권위를 비판하면서도 동시에 그 권위를 재생산하는 역설 속에 존재한다.
결국 문제는 문자 자체가 아니라 문자를 둘러싼 권력의 구조이다. 루소는 문자의 타락을 말했고, 레비스트로스는 문자의 식민주의를 고발했으며, 데리다는 문자와 음성의 이분법 자체를 해체하였다. AI 시대는 이 세 사상가의 논의를 다시 소환하고 있다. 이제 언어의 폭력은 종이 위의 문자에 머물지 않는다. 데이터와 알고리즘, 플랫폼과 인공지능이 새로운 문자 권력을 형성하는 시대에 우리는 문자의 역사뿐 아니라 디지털 언어의 정치학을 함께 성찰해야 한다. 문자 언어의 폭력을 극복한다는 것은 문자를 폐기하는 일이 아니라, 언어를 독점하는 권력과 불평등의 구조를 끊임없이 비판하고 해체하는 일일 것이다. [글=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국립국어원장-국어정책학회장-경북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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