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 경영학자의 해남 시골살이를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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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남자들에게는 하나의 로망이 있다. 나이 들어 은퇴하면 시골에 내려가 전원생활을 하는 것이다. 나처럼 어렸을 때 시골에서 자란 사람들은 더욱 그런 뜻을 많이 가지고 있는듯하다. 그래서 그런지『나는 자연인이다.』라는 TV 프로그램이 장수 프로그램이 되었나 보다. 그러나 사람들의 꿈과는 달리 그것을 실천하는 숫자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우리가 모두 알만한 그런 이유들 때문이다. 나도 그렇게 오랫동안 갈망했음에도 이제사 겨우 그것도 은퇴 후 십 년이 되어서야 이루게 되었다.
1. 시골에서 집 구하기
낙향을 계획하면 가장 먼저 부딪히는 일이 살 집을 구하는 일이다. 시골 인구가 많이 줄어 빈집들은 많이 있다. 그러나 마땅한 집을 찾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한두 달 살이’야 도심 내 집을 빌려도 되고, 그런 목적으로 단장한 집을 구하면 된다.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나처럼 최소 년(年) 단위로 살고 싶은 사람에게 집은 많지만, 장기간 기거할 집은 마땅치 않은 경우가 많다. 너무 오래 비워두어 기거하기에는 수리비가 만만치 않거나, 들어가서 살만한 집은 빌려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집을 사는 것도 쉽지 않다. 많은 경우 팔아도 큰돈이 되지 않고, 대부분이 자기들도 귀향하여 살 뜻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동네 이장들 말에 의하면, 그럴 계획이라는 사람은 많은데, 실제로 내려오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한다. 특히 남자들은 내려오고 싶은 경우가 제법 있지만, 도시 생활에 익숙해진 부인들이 내려오지 않아, 결국 내려오지 못한다고 한다. 나도 두어 번 이런 경험을 하였다. 모두 부인들의 동의를 구해 보겠다고 하였지만, 결국 못 구하고 말았다는 대답이었다.
하지만 이런 일만 계속 있겠는가? 좋은 인연이 닿아 제법 괜찮은 집을 구할 수 있었다. 지붕도 새로 해서 깨끗하고, 마당도 제법 넓으며, 무엇보다 동네 가장 위에 있는 집이어서 전망이 좋았다. 좋구나! 좋다. 그러나 여기까지는‘해피스토리’다.
2. 살집 만들기 작전
집은 구했으니 이제는 그 집을 살만하게 만들어야 한다. 어느 빈집이나 사람이 살지 않고 1년만 지나도 온갖 일들이 생긴다. 내가 들어간 집은 2, 3년간 비워 놓은 집이었다. 원래 잘 지어 놓은 집이라 뼈대나 벽들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하지만 습기, 벌래, 지저분함은 어쩔 수 없었다.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아, 여자분들을 사서 청소를 시켰다. 그러나 그들이 하는 청소와 남자들이 해야 할 일은 따로 있다. 특히 집 주위 잡목 들과 특히 대나무 베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내가 집을 얻은 곳은 대죽리(大竹里)라는 곳이다. 오죽했으면 동네 이름 자체에 대나무 죽(竹)자가 들어갔을까? 여기도 대(竹), 저기도 대, 앞마당에도 대, 뒷마당에도 대, 옆 남세 밭에도 대, 심지어 방안에도 작은 대나무가 삐죽하게 튀어나와 있다. 참 엄청난 생명력이다. 옛날에야 쓸모 많은 대나무였지만, 지금은 골칫덩어리다. 다행히 주위 사람들의 충고를 받아 대나무를 하나하나 잘랐다. 수백 개는 잘랐을 것 같다. “어, 참으로 시원하다. 잘 잘랐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우후죽순(雨後竹筍)이라고 했던가?’ 비가 한번 오고 나니, 이전보다 오히려 더 많은 죽순이 튀어 올라왔다.
<그림1> 자르고 난 후 더 많이 솟아오른 죽순들
자료를 보니 대나무도 보상작용이 있어, 자르고 나면 더 많이 솟아 올라온다고 한다. 계속 잘라주어야 한다니 속이 상한다. 그 순간, 유튜브에서 좋은 자료를 찾았다. 근사미와 요소비료를 섞어 구멍을 뚫고, 집어넣으면 죽는다고 하였다. 그렇게 하였다. 한두 개도 아닌 수백 그루를 3일 동안 그렇게 하였다. “내가 미쳤나? 남의 집에서. 이런 일을 하다니?”, “그래도 아니지. 내 품위에 관계되는 환경인데.” 결국, 끝까지 했다. 확실히 효과는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우스운 생각이 들었다. “가만있자. 대나무 제거해주고, 산소 환경 정비해주는 아르바이트를 해볼까? 하하” 우리 아버지는 관리관으로 은퇴하신 후 정말 열심히 조상 산소관리를 하셨다. 모범적이라고 하실 만큼. 그러나 그런 아버지도 대나무는 잡지 못하셨다. 그러나 나는 잡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대단한 김 교수다. 실없는 생각에 나도 실소가 터졌다.
3. 진작 돌아가신 할머니의 작품 빗자루
이 집을 나에게 빌려주신 분은 이 집이 자기 외갓집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자기 외할머니는 얼굴이 예쁘기도 하였지만, 그렇게 집을 예쁘게 잘 가꾸셨다고 하였다. 나는 그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누구나 자기 할머니에 대한 기억은 아름다운 법이니, 그러려니 한 것이다. 그러다 아주 흥미로운 발견을 하였다. 보일러실에서 있는 할머니가 쓰셨던 빗자루다. 그런데 그 평범한 빗자루에 예쁜 꽃이 붙어 있었다. 세상에는 수백만, 수천만 개의 빗자루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꽃으로 장식된 빗자루는 과연 몇 개나 될까?
갑자기 쌩땍주 베리의 ‘어린 왕자’가 생각났다. “하늘에는 무수한 별들이 있어. 평범한 별들이야. 하지만 그 어느 별인가에 네가 있다고 생각하면, 나에게 그 별은 아주 특별한 별이 될꺼야.” 수백, 수천만 개의 빗자루 중에서, 꽃이 달린 이 빗자루는 분명히 특별한 빗자루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림 2> 수천만 개 빗자루 중에서 꽃이 부쳐진 할머니의 특별한 빗자루
4. 새들 그리고 새들 그리고 또 새들
해남은 시골이고, 또 최근에는 저독성 농약이 강조되어 과거보다는 훨씬 더 많은 새들이 보인다. 나에게 있어 이것은 매우 큰 재미다. 매일매일 집 앞에 나타나는 새들을 하나씩 소개해 보겠다.
역시 첫째는 참새다.
“참새 방앗간, 참새처럼 떠든다.”는 참새다. 어디에나 있고, 항상 짹짹거리는 참새다. 그런데 나는 이런 참새를 묘한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다. 그 지역의 풍요성을 측정하는 단위다. 참새 수가 얼마나 많은가? 그리고 그 참새들이 얼마나통통한가? 이다. 여기 참새는 수도 많지만 제법 통통하다. “음. 이 지역은 물산이 풍부하구만...” 먹을 것이 많아야 새끼도 많이 낳고, 살도 찔 것이기 때문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해남은 전국에서 두 번째로 면적이 넓으며, 가경면적(可耕面積)은 전국최고라고 한다. 게다가 바로 옆 2면에는 바다까지 접해있으니, 물산이 풍부할 수밖에 없다. 당연히 인심도 좋고, 텃세도 강하지 않은 동네다. 잘 왔다.
다음은 뻐꾸기, 두견새다.
우리는 새가‘운다.’라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 국가에서 새는‘지저귄다(whispering).’ 또는 ‘노래한다(singing).’라고 표현한다. 그런데 ‘운다’라는 표현 뒤에는 우리 삶의 고단함과 특히 옛 여인네들의 한(恨)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중에서도 뻐꾸기와 소쩍새는 서로 다른 새이면서도,한(恨)이 서린듯한울음소리가 비슷해서인지 자주 혼동되어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그만큼 이름도 많고 시가(詩歌)에도 자주 등장한다. 자규(子規), 두견(杜鵑), 접동새, 귀촉도(歸蜀途), 불여귀(不如歸) 등등. 하지만 생물학적으로 접동새는 부엉이 모양의 소쩍새를 뜻하고, 두견새가 날씬한 뻐꾸기라고 한다. 하여튼 우리나라 정서에 너무 잘 어울리는 소쩍새와 뻐꾸기가 있는 가사를 살펴보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조년의‘다정가’다.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 은한(銀漢)이 삼경(三更)인 제
일지춘심(一枝春心)을자규(子規)야 알랴마는
다정(多情)도 병(病)인 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고려 시대 유배 문학의 효시인 정과정(鄭瓜亭)에도 접동새가 나온다.
내 님을 그리워 우니다니
山(샨)접동새와 난 이슷(비슷)하여이다.
아니시며 거츠르신 달
아으 잔월효성(殘月曉星)이 알아 시리이다.
(죽어서) 넋이라도 님과 한대 녀져라(함께 모시고)
아으 벼기시던 디뉘러시잇가
과(過)도 허물도 천만(千萬) 없소이다
다음은 김소월의‘접동새’다. 정말 한스러움의 절창이다.
접동
접동
아우래비 접동
진두강 가람 가에 살던 누나는
진두강 앞마을에
와서 웁니다.
옛날, 우리나라
먼 뒤쪽의
진두강 가람 가에 살던 누나는
의붓어미 시새움에 죽었습니다.
누나라고 불러보랴
오오 불설워
시새움에 몸이 죽은 우리 누나는
죽어서 접동새가 되었습니다.
아홉이나 되던 오랩동생을
죽어서도 못 잊어, 차마 못 잊어
야삼경 남 다 자는 밤이 깊으면,
이 산 저 산 옮아가며 슬피 웁니다.
이 구절을 보면 외동아들인 김소월 자신도 잠 못 이룬 밤이 많았나 보다.
다음은 서정주의‘귀촉도 (歸蜀途)’다.
김소월의 접동새가 피를 토하는 슬픔이라면, 서정주의 귀촉도는 어느 정도 서러움이 다듬어진 거울 앞에선 내 누님 같은 시(詩)다.
눈물 아롱아롱 피리 불고
가신 님의 밟으신 길은
진달래 꽃비 오는 서역(西域) 삼만리.
흰 옷깃 여며 여며 가옵신 님
다시 오진 못하는 파촉(巴蜀) 삼만리.
신이나 삼아 줄걸,
슬픈 사연 올올이 아로새긴육날메투리.
은장도 푸른 날로 이냥 베어서
부질없는 이머리털로 엮어 드릴 걸.
초롱에 불빛 지친 밤하늘
굽이굽이 은하(銀河)ㅅ물 목이 젖은 새,
차마 아니 솟는 가락 눈이 감겨서
제 피에 취한 새 ‘귀촉도’ 운다.
그대 하늘 끝
호올로 가신 님아.
다음은백두옹(白頭翁)새다.
이름 그대로 백두옹은 머리가 하얀 새다. 머리 정수리에 하얀 둥그런 무늬가 있어 백두옹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하지만 우리 조상들이 백두옹 새를 귀하게 여기는 데는 정작 다른 이유가 있다. 백두옹은 두 마리 하얀 머리의 새가 항상 같이 붙어 다닌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우리 옛날 어른들은 백두옹을 머리가 파 뿌리가 되어 하얗게 될 때까지 부부가 함께 사는 백년해로(百年偕老)의 상징으로 보았었다. 그래서 노(老)부모 또는 노 스승의 생신 때에 백두옹 그림을 그려서 축원의 선물로 많이 드렸다고 한다.
끝으로‘하루살이’를 말하고자 한다.
하루살이는 말 그대로 하루를 사는 모기처럼 생겼으나 더 작은 생물이다. 정말 귀찮은 녀석이다. 시골에서 등불 밑에 잔뜩 정신없이 모여들거나, 시골길을 걸으면 사람과 같이 따라다니며 뱅뱅 도는 작은 녀석들이 바로 하루살이다. 그러나 몇 가지 이유에서 하루살이를 우습게 보아서는 안 된다.
첫째; 하루살이의 애벌레 기간은 무지무지하게 길다. 최소 6개월에서 1년, 길게는 2~3년 동안 물속에서 유충 상태로 살아간다. 물속에서 이끼나 유기물을 먹고 살며, 성충이 되기 전에 무려 20~30번 정도 허물을 벗어야 한다. 정말 엄청난 노력을 해야 성충이 되는 동물이 하루살이다.
둘째; 정말 하루만 살거나 길어야 이삼일 밖에 못산다. 그런데 그 이유가 참 안타깝다. 유충에서 성충이 되면, 입이 없어지고 소화기관도 사라진다. 그래서 성충인 하루살이는 먹지를 못한다.오로지유충일 때 섭취한 영양으로오로지 생식만을 하고,정말 그 짧은 생애를 마쳐야 한다. 그 작은 몸으로 그렇게 빨리 계속해서 날아다녀야 하니, 그 과잉으로 소비되는 에너지를 어떻게 당해 낼 수 있겠는가? 그래서 짧게 살 수밖에 없다. 짧지만 정말로 치열한 생명력이다. 안타깝다고 해야 할지, 지독하다고 해야 할지...
셋째; 청정 생물이다. 모기나 초파리 그리고 썩은 음식물 주위에 날아다니는 수많은 날파리들은 더러운 물, 썩은 음식물을 좋아한다. 그러나 하루살이는 깨끗한 청정수에서만 살고, 죽어서도 크기가 작아서인지 흔적도 남기지 않는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깨끗하기 짝이 없다. 더욱이 대부분 하루살이들은 생식을 하지 못하고, 그냥 죽거나 다른 동물들의 먹이로 사라진다. 그야말로 살신성인의 동물이다.
이 다음 시골에서 하루살이를 만나면 다음과 같이 얘기해 보자. “아, 네가 있는 것을 보니 이 지역은 비교적 깨끗한 청정지역인가 보구나,”, “그리고 하루밖에 못 사는짧지만 전부인 너의 생애에서 나를 만났으니, 이것도 너와 나의 깊은 인연인가 보다.” 밑에 사진은 사흘 동안 집을 비운 사이, 마루에 쌓인 하루살이 사진이다. 그것도 전부가 아닌 바로 문 앞에만 쌓인 것들이다. 아마 수천 마리는 족히 넘어 보인다.
<그림 3> 3일 출타 중에 쌓인 문 앞 하루살이 더미. 수천 마리는 될 것 같다.
해남 시골 생활의 이모저모를 소개할까 했는데 벌써 원고량이 다 차버렸다. 어쩔 수 없이 다음 글로 넘겨야겠다.
그러나 이 말은 꼭 하고 싶다. 신발회사 나이키의 선전 문구인 것 같다. “Just Do It!”, “팍, 그냥 저질러 버려!” “뭘 망설이는 거야!” [글=김상국 경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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