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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양삼일] 한국어를 세계적인 언어로 인정...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발..

  • 양삼일 기자
  • 입력 2026.07.22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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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뇽 페스티벌의 상징인 세 개의 열쇠 포스터와 초청 받은 한강 작가 모습)

아비뇽, 한국어가 권위의 궁전에서 기억을 말하다

한강의 문학과 초청 언어가 된 한국어, 그리고 한글의 세계화를 다시 생각하며

오랫동안 해외에서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소개해 왔다. 한국어를 배우려는 사람이 많아지고, 세계 여러 도시에서 한글 간판과 한국 책을 만나는 일은 여전히 반갑고 고맙다. 그러나 한국어가 널리 알려지는 모습을 볼 때마다 기쁨과 함께 한 가지 질문도 떠오른다. 한국어가 세계로 나아간다는 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는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통해 세계에 무엇을 말하고, 또 무엇을 들으려 하는가.

프랑스 남부의 오래된 도시 아비뇽에서 들려온 소식이 이 질문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 창립 80주년을 맞은 아비뇽 페스티벌이 한국어를 공식 초청 언어로 선정했다. 영어와 스페인어, 아랍어에 이어 한국어가 초청되었고, 아시아 언어로는 처음이다. 축제는 한국어를 한반도에 뿌리를 두면서도 세계와 만나고 있는 언어로 소개했다.

오랜만에 한강 작가의 소식도 함께 들려왔다. 한강의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바탕으로 한 낭독극 ‘새’가 교황청 명예의 뜰에 올랐다. 프랑스 배우 이자벨 위페르와 한국 배우 이혜영이 프랑스어와 한국어로 한 작품을 함께 낭독했다. 서로 다른 두 언어와 두 배우의 목소리가 만나 제주 4·3의 아픈 기억을 세계의 관객들에게 전했다.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공개적인 자리에서 좀처럼 만나기 어려웠던 한강은 아비뇽에서 언어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태어나서 모국어를 배우고, 모국어를 통해 세계와 만나고 우리 자신을 만들어간다. 언어는 우열이나 경쟁력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다.”

이 말은 한국어가 아비뇽 페스티벌의 초청 언어가 되었다는 소식을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한다. 한국어가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는 기쁨에만 머무르지 않고, 언어란 무엇이며 한 언어가 다른 세계로 건너간다는 것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모국어는 한 인간이 처음으로 세계를 만나는 집이다. 우리는 모국어로 가족의 목소리를 듣고 사물의 이름을 배우며, 기쁨과 슬픔, 사랑과 상실을 표현한다. 언어를 배우는 동안 단어와 문법만 익히는 것이 아니다. 무엇을 기억하고, 다른 사람과 어떻게 관계를 맺으며, 세상을 어떤 눈으로 바라볼 것인지도 함께 배운다.

말과 글은 단순한 의사소통의 도구가 아니다. 한 민족과 공동체가 오랜 세월 쌓아 온 기억과 정신, 고통과 희망을 담아 다음 세대로 전하는 그릇이다. 그렇기 때문에 언어를 빼앗는다는 것은 단순히 특정한 말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일이 아니다. 한 민족이 자신을 기억하고 표현하며 다음 세대에 전할 권리를 빼앗는 일이다.

 

한강은 같은 자리에서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갈등, 분열을 이야기하며, 우리가 혐오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하나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에 희망이 있다고 말했다.

모국어에 관한 이야기와 혐오에 관한 이야기는 서로 떨어져 있지 않다. 우리는 언어를 통해 세계를 이해하고 타인의 경험에 다가간다. 다른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내가 알지 못했던 한 사람의 기억과 삶의 방식 앞에 서는 일이다. 이해가 언제나 사랑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이해하려는 노력 없이 혐오를 넘어설 수는 없다.

권위의 도시에서 울려 퍼진 두 언어

아비뇽의 역사를 돌아보면 이번 한국어 초청은 더욱 상징적으로 다가온다. 아비뇽은 아름다운 예술의 도시이기에 앞서 종교적 권위와 세속적 권력이 결합하고 충돌했던 역사의 공간이다.

14세기 아비뇽에는 교황청이 자리했다. 오늘날 공연이 열리는 교황청 궁전은 당시 교회가 가졌던 종교적 권위뿐 아니라 정치적·세속적 권력까지 보여주는 거대한 상징이었다. 그러나 아비뇽 교황청의 역사는 종교권력이 세속권력을 일방적으로 지배한 역사로만 설명할 수 없다. 교황청 자체도 프랑스 왕권의 강한 영향 아래 놓여 있었다. 종교와 정치가 서로의 권위를 이용하고 견제하며 때로는 상대의 권력에 종속되었던 복합적인 공간이었다.

(사물놀이와 탈춤등 강렬한 타악 비트를 결합한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인간에게 주어진 어떤 권위도 영원하지 않다. 신의 이름으로 인간과 세속권력 위에 군림했던 종교권력은 스스로를 절대화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영적 권위를 잃었다. 교회가 인간의 신앙과 양심을 섬기는 대신 권력과 부를 지키는 제도가 되었을 때, 그 권위는 내부에서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아비뇽 교황청과 교회의 분열, 종교개혁과 계몽주의를 거치는 긴 역사 속에서 유럽은 점차 중세의 신 중심적 질서에서 인간의 이성과 자유를 중심에 놓는 세계로 이동했다. 그 변화는 인간을 종교권력의 억압에서 해방하고, 양심과 사상의 자유, 시민의 권리와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길을 열었다. 그것은 인류가 어렵게 이룬 소중한 진전이었다.

그러나 종교적 절대성을 무너뜨린 인간은 어느 순간 자기 자신을 새로운 절대자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인간의 이성과 과학, 국가와 민족, 자본과 시장, 기술과 문명은 때로 새로운 신앙이 되었다. 인간중심주의는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발견했지만, 동시에 자연과 다른 생명, 힘없는 민족과 공동체를 인간의 욕망 아래 종속시키기도 했다.

근대 제국주의 역시 이성과 진보, 문명을 말하면서 다른 민족을 야만으로 규정하고 지배했다. 제국주의 국가들은 타인의 땅과 자원을 빼앗고, 언어와 이름을 지우고, 인간을 노동력과 전쟁의 도구로 만들었다. 인간의 해방을 위해 시작된 근대의 이성이 제국의 폭력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변한 것이다.

오늘날 절대적인 인간중심주의 역시 그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끊이지 않는 전쟁과 집단학살, 기후위기와 생태계 파괴, 극심한 불평등, 인간의 판단과 관계를 대신하기 시작한 기술과 인공지능은 인간이 과연 세계의 절대적인 주인일 수 있는지를 묻고 있다.

그렇다고 다시 과거의 종교적 권위로 돌아가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종교든 국가든 민족이든 시장이든 기술이든, 인간과 생명의 존엄을 억압하며 스스로를 절대화하는 모든 권위는 질문받고 극복되어야 한다. 신앙의 이름으로 인간을 억압하는 권력은 신앙을 배반한 것이며, 인간의 이름으로 다른 인간과 생명, 공동체를 파괴하는 문명은 인간성 자체를 배반한 것이다.

한때 절대적 권위를 상징했던 아비뇽 교황청 궁전의 뜰에서 이제 식민지배와 국가폭력의 기억을 담은 한국어와 프랑스어가 함께 울려 퍼진다. 권력자가 독점했던 공간이 예술가와 시민의 질문이 살아나는 공간으로 바뀐 것이다. 역사에는 이보다 더 깊은 역설도 드물 것이다.

우리말을 빼앗겼던 기억

한국어가 아비뇽에서 초청 언어가 된 오늘, 우리는 한국어와 한글이 걸어온 역사도 함께 돌아보아야 한다.

한글의 세계화를 이야기할 때 무엇보다 먼저 거울처럼 마주해야 할 것은 지난 세기 일본 군국주의와 제국주의가 우리 민족에게 자행한 언어 탄압과 민족말살의 역사다. 일본 제국주의는 무력으로 한국의 국권을 빼앗고 토지와 자원을 수탈했으며, 조선인을 전쟁과 노동에 강제로 동원했다. 또한 우리말과 글, 이름과 역사, 민족의 기억을 억압하고 파괴하려 했다. 특히 식민통치 말기에는 조선어 교육을 사실상 폐지하고 일본어 사용을 강요했으며, 우리말을 연구하고 지키려던 사람들을 체포하고 투옥했다.

그것은 단순한 언어정책이나 문화적 제한이 아니었다. 한 민족이 자신을 기억하고 표현하며 다음 세대에 전할 권리를 빼앗으려 한 폭력적이고 야만적인 민족말살정책이었다.

물론 오늘날의 일본과 일본인 전체를 지난 세기의 군국주의·제국주의 체제와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일본 사회 안에도 침략과 식민지배의 역사를 성찰하고 피해자들과 연대하며, 평화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 온 많은 시민이 있다. 우리가 비판하고 기억해야 할 대상은 특정 민족 전체가 아니라 타국의 주권과 인간의 존엄을 짓밟았던 제국주의 체제와 그 범죄다.

그러나 과거와 현재를 구분한다는 것이 역사적 책임을 지우거나 아직 남아 있는 역사 왜곡과 책임 회피를 외면한다는 뜻은 아니다. 진정한 화해는 망각이나 침묵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역사적 사실을 정직하게 기억하고, 가해의 책임을 인정하는 태도에서 시작된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어와 한글의 세계화는 새로운 문화적 우월감이나 지배의 방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말을 빼앗길 뻔했던 역사를 가진 민족이라면, 세계의 모든 민족이 자신의 모국어와 이름, 역사와 기억을 지킬 권리를 더욱 적극적으로 옹호해야 한다. 사라질 위기에 놓인 작은 언어와 소수민족의 언어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우리의 고통스러운 기억은 우리만의 특별함을 주장하기 위한 근거가 아니다. 다른 민족의 고통을 이해하고 그들의 언어와 존엄을 지키기 위한 윤리적 책임이 되어야 한다.

(낭독회가 열린 교황청 '명예의 뜰' 야외 대극장 전경)

한글의 세계화가 향해야 할 곳

오늘날 한국 문화가 세계의 관심을 받는 것은 분명 소중한 기회다. 그러나 한 나라의 문화에 쏟아지는 세계의 관심은 영원히 지속되는 권리가 아니다. 긴 역사 속에서 잠시 열리는 찰나와 같은 귀한 기회일 수 있다. 우리는 이 기회를 당연하게 여기지 말고 아끼며 더욱 겸손하게 사용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한국 문화가 얼마나 널리 알려지고 소비되는가가 아니다. 한국이 인류의 문화와 정신에 무엇을 기여할 수 있는가이다.

한국은 완전한 나라도 아니며 한국인이 다른 민족보다 우월한 것도 아니다. 우리 사회 안에도 분열과 혐오, 불평등과 폭력이 존재하고 민주주의는 여전히 불완전하다. 우리가 세계와 나눌 수 있는 것은 성공한 민족의 완성된 이야기가 아니다.

식민지배와 전쟁, 분단과 독재, 국가폭력을 겪으면서도 평화와 자유, 민주주의와 인간의 존엄을 포기하지 않았던 과정이다. 수많은 실패와 후퇴 속에서도 시민들이 민주적 절차를 통해 권력을 바꾸고, 상처 입은 공동체를 다시 일으키며,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살아갈 길을 찾아온 회복의 경험이다.

물론 그 회복의 역사를 지나치게 미화해서도 안 된다. 한국 현대사는 승리만의 역사가 아니며 우리가 외면하거나 아직 해결하지 못한 상처와 책임도 많다. 그러므로 우리가 세계와 나누어야 할 것은 영웅적인 자기 찬양이 아니라 고통을 기억하는 태도, 모든 형태의 폭력에 저항하는 의지, 그리고 더 나은 공동체를 향한 노력을 포기하지 않는 마음일 것이다.

한강의 문학이 세계의 독자들에게 다가간 이유도 한국의 고통을 특별한 한 민족의 이야기 안에 가두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문학은 제주 4·3과 광주 5·18이라는 한국 현대사의 깊은 상처에서 출발하지만, 그 기억을 인간의 존엄과 폭력, 망각과 증언, 상처와 회복이라는 보편적인 질문으로 확장한다.

한국어로 쓰인 한 사람의 문장이 다른 언어로 번역되어 세계의 독자에게 도달하고, 그 독자가 자신의 역사와 상처를 그 안에서 발견한다. 이것이 언어와 문학이 국경을 넘어가는 진정한 방식일 것이다.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새로운 단어를 소유하는 일이 아니다. 한 사람의 세계 앞에 조심스럽게 다가가 그 세계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일이다. 진정한 문화교류 역시 자신의 것을 버리고 다른 사람의 것을 받아들이는 일이 아니다. 서로 다른 두 세계가 대등하게 만나 서로를 이해하고, 그 만남을 통해 더 넓은 세계를 함께 만들어 가는 일이다.

문화는 새로운 권위를 세우기 위한 장식이 아니라 굳어진 권위를 질문하고, 침묵을 강요당한 사람에게 목소리를 돌려주며, 서로 만나지 못했던 기억들을 연결하는 일이 되어야 한다.

한국어가 세계로 나아간다는 것 역시 한국의 목소리만 더 크게 내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 더 많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서로의 상처와 희망을 연결하며, 어떤 권력도 인간과 생명의 존엄 위에 군림할 수 없다는 사실을 함께 말하는 일이 되어야 한다.

한강의 문학과 함께 한국어가 울려 퍼진 아비뇽의 여름은 한글의 세계화가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그것은 문화적 영향력의 확장이나 국가적 자부심에 머무는 길이 아니다. 다른 언어와 기억을 존중하면서 혐오보다 이해를, 폭력보다 평화를, 획일성보다 다양성을 선택하는 길이다.

아비뇽의 오래된 권위의 궁전에서 울려 퍼진 한국어가 우리에게 주는 가장 소중한 의미도 바로 거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글=콜롬비아 양삼일 세종학당장, 아시아이베로문화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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