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롤과 캡션으로 전자파형에서 조우하는 유령들
나는 전쟁동이다. 한 학급에 고무신이나 운동화를 신었던 학생은 소수였다. 대부분 맨발로 다녔다. 장날 어머니가 햐얀 운동화를 사다 주었다. 몇날을 가슴에 안고 잤다. 아까워서 신지 못하다 소풍날 처음 신었다가 그 다음날 학교에 신고 갔다가 잃어버렸다. 마침 비가 내렸다. 울면서 맨발로 돌아온 날 이런 상상을 하였다. 닳아서 흙속으로 퍼진 고무성분을 끌어당기는 기계를 만들어 재생 고무를 이용하여 아이들에게 고루 신발을 만들어 나누어 주는 그런 허망한 꿈은 또 다른 꿈으로 번졌다.
격전지였던 포항 형산강 강변에 불발한 포탄을 주워서 박물상에게 주면 엿이나 먹거리를 주었다. 아이들이 그 고철을 주우려고 태양이 강렬한 강변을 거닐다 불발폭탄이 터져 팔다리가 날라가거나 심지어 죽은 경우도 있었다. 그 무렵 나는 거대한 자석으로 그런 금속을 끌어모으면 좋겠다고 상상하며 그 고철로 자동차를 만들고 엔진 동력 전달 장치를 설계도 했던 기억이 아련하다.
세월이 훌쩍 뛰어넘어 내 어린 시절 상상했던 콜렉션이 과학적 방법으로 전기 전파 에너지를 누가 잘 모으는냐에 따라 국가 경제가 달라진다. 옛날 내 어린 시절, 그곳에는 '실재'가 있었고 자연의 실재와 인간이 긴밀하게 정을 나누고 소통하였다. 전자파가 가득 차 있는 지금의 세상에는 초자연 현상에 가까운 시뮬라시옹의 전자적인 생성과 순환만이 있다.
더 단축된 시간, 더 많은 용량의 디지털 데이타를 초고속으로 이동시키는 시간이 부숴진 우주 공간으로 바뀌었다. 불과 한 세기 남짓한 파편화된 공간에 머물고 있는 인간 본성은 건조하기 짝이 없는 딱딱한 사물로 되돌아 가는 듯 하다. 내 어렸던 그곳에는 한때 안정된 인간 의식이 있었지만, 이제는 파편화되고 탈중심화되며 갈수록 분열증화되는 이상한 괴물과 같이 주관성에 따라 배회하는 유령들만이 있다. 머리가 뛰어난 사람일수록 짜라투스라의 초인과같은 부숴진 언어, 의미가 파편화된 메세지로 유통되는 전자파형인 벡터의 언어가 이 공간 가득 차있다.
손글씨로 꾹꾹 눌러 쓴 '사랑한다'라는 의미는 이미 표백되어 그 옛날의 의미가 아니다. 디지털 전자파형에 실린 소통의 언어는 빛과 의미가 달라졌다. '깊이'와 '정서'가 충만했던 과거는 전자파형에 온통 둘러쌓여 있다. 이제는 ‘형식’과 '표면'만이 있다. 그곳에는 한때 '의미'와 '역사'가 있었지만 역사 또한 다면체의 형상으로 개인이 바라다보는 시각이나 신념에 따라 분산되어 시체로 변한 역사의 기억만 쌓여가고 있다.
‘신'을 향한 인간들의 ’소망‘이 과학주의와 만연한 인간 욕망으로 대체되면서 한때 인간 언어에 ‘기의'들로 굳건하게 이뤄진 영역이 있었지만, 이제는 텅 비어 있고 유동적으로 변경되는 기표들에 둘러 싸인 풍경만이 있다고 제프리 스콘스(Jeffrey Sconce)는 말한다. 테렌스 헤이스(Terrance Hayes)는 전자파로 가득 둘러쌓인 인류의 문명을 “미국! 모든 것에 제값이 붙어 있고, 거의 모든 것이 사들여졌지.“라고 자본주의와 인류 문명의 충돌지역에 안개처럼 둘러쌓인 넋을 잃어가는 인간의 모습을 유령으로 비유하고 있다.
모두가 타인들의 목소리에 경청했던 시절이 지나가고 있다. 공정하게 논의되고 평범하게 대면하여 이야기를 나누던 시대를 건너 소셜미디어를 통해 우주공간의 모든 이들이 연결되는 시대이지만 인간 존재의 거리는 오희려 더 멀고 더 깊어졌다. 혼자서 소셜미디어에 웅얼거리는 시체나 익명성의 유령들이 가득 찬 도시라고 한다. 그래프턴 테너(Grafton Tanner)는 “웅얼대는 시체(Babbleing Corpes)"에서 전자파 속에 일렁이는 소비 욕망만 가득한 현인류의 모습을 풍자하고 있다. 잃어버린 ”사랑“의 기억을 되찾는 길은 어디로 가는 길일까?[글=이상규 경북대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 원장, 전 국어정책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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