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려온 권력, 조급한 민심 : 중남미 정치의 실타래가 보여주는 것
2025년 11월, 칠레 산티아고의 한 주유소 앞에 작은 낙서가 등장했다. 누군가 펜으로 휘갈겨 쓴 문장이었다.
"Votamos a Kast y solo subió la gasolina."(카스트를 뽑았더니 가솔린 가격만 올랐다.)
강경 우파를 선택하면 질서가 돌아올 것이라 믿었다. 집권 100일 만에 돌아온 것은 치솟는 기름값뿐이었다.
조롱이라기엔 너무 쓸쓸하고, 분노라기엔 너무 지쳐 있었다. 그 짧은 문장 안에 중남미 정치 100년의 피로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대통령이 바뀌고, 여야가 뒤집어지고, 좌파와 우파가 번갈아 광장을 채워도 - 서민의 삶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오래된 절망.
이것이 오늘 중남미가 보내는 신호다.
1부. 세 나라, 세 개의 난파선
선거 운동은 달콤한 축제다. 통치는 차갑고 냉혹한 현실이다.
지금 남미 대륙을 뒤흔들고 있는 세 명의 신임 지도자가 임기 초반부터 맞닥뜨린 시험대는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이념도 다르고 나라도 다르다. 한 명은 강경 우파이고, 한 명은 중도 우파이며, 한 명은 좌파다. 그러나 그들이 빠져든 늪의 구조는 똑같다.
칠레 - 카스트(José Antonio Kast)의 추락
2019년 칠레는 극심한 사회 혼란을 겪었다. 대규모 시위와 약탈, 폭력 사태가 수개월간 이어졌다. 그 혼란의 뿌리에는 좌파 정권 시절 누적된 불평등과 공공서비스 붕괴가 있었다. 치안 붕괴에 지친 중산층은 강력한 질서를 원했다. 그 민심을 타고 등장한 것이 강경 우파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였다. 불법 이민자 추방, 범죄 척결, 급진 좌파 정책 전면 폐기. 그의 공약은 선거판을 달궜고, 유권자들은 그에게 변화의 기대를 실었다.
그런데 취임 100일이 지나자 지지율은 39%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정치 분석가 크리스토발 벨리오리오(Cristóbal Bellolio)는 핵심 원인으로 기대치 관리의 실패를 꼽는다. 이민자 추방 공약은 현실의 벽 앞에서 "그건 은유적 표현이었다"는 말 한마디로 후퇴했다. 마침 국제 유가가 급등하자 유권자들의 분노는 주유소 벽의 낙서가 됐다. "사기를 당했다"는 느낌. 그것이 전부였다.
볼리비아 - 파스(Rodrigo Paz)의 외통수
볼리비아는 2006년부터 약 20년간 좌파 사회주의운동(MAS, Movimiento al Socialismo)이 집권했다. 에보 모랄레스(Evo Morales)와 루이스 아르세(Luis Arce)로 이어진 장기 집권은 막대한 재정 적자와 경제 붕괴라는 유산을 남겼다. 그 폐허 위에서 중도 우파 로드리고 파스가 집권했다. 변화를 원하는 국민의 기대가 그의 어깨 위에 얹혔다.
그러나 취임 직후부터 대규모 시위와 도로 봉쇄가 시작됐다. 패배한 MAS 세력은 새 정부의 정당성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거리로 나왔다. 정치 평론가 카를로스 코르데로(Carlos Cordero)의 지적은 냉정하다. "21세기 민주주의는 선거 승리만으로 부족하다. 패배자와 소수자의 정치적 합의가 필수적이다." 파스는 비상사태 선언 대신 대화를 택해 유혈 사태는 막았다. 그러나 야당의 프레임 안에서 6주 만에 비상 조치를 철회하며 취약성을 드러냈다.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우루과이 - 오르시(Yamandú Orsi)의 경고등
우루과이는 중남미에서 가장 안정적인 민주주의로 꼽히는 나라다. 부패 수준이 낮고 제도가 성숙해 있다. 2024년 집권한 좌파의 야만두 오르시는 그 안정적인 토양 위에서 출발했다. 가장 유리한 조건이었다.
그런데 취임 1년 만에 지지율 하락과 내부 경고등을 마주했다. 여론조사 기관 팩툼(Factum)의 에두아르도 보티넬리(Eduardo Bottinelli)는 이를 "즉각적인 결과와 끊임없는 변화를 요구하는 시대적 조급함"으로 읽는다. 고용, 소득, 치안 개선의 속도가 느리다. 좌파 연합 프렌테 암플리오(Frente Amplio) 내부에서조차 "우리가 과거에 저질렀던 실수를 반복하지 말자"는 경고가 나왔다. 오르시 스스로도 "경고등이 켜졌다"고 인정했다.
세 나라의 공통 결론
강경 우파도, 중도 우파도, 좌파도. 이념은 달랐지만 함정은 같았다.
다이얼로그 인터아메리카노(Diálogo Interamericano)의 마이클 시프터(Michael Shifter)의 말이 본질을 꿰뚫는다. "선거 운동(Campaigning)이 통치(Governing)보다 훨씬 쉽다." 기대치를 높이는 것은 쉽다. 그 기대를 현실로 바꾸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다.
2부. 콜롬비아 - 빚을 지고 시작하는 정권
남미 대륙의 이 난기류는 이웃 나라 콜롬비아로도 짙게 번지고 있다.
콜롬비아는 2022년 구스타보 페트로(Gustavo Petro)가 역사상 최초의 좌파 대통령으로 집권했다. 게릴라 출신의 반기득권 정치인이었던 그는 불평등 해소와 강력한 사회 개혁을 약속하며 국민적 열망을 한 몸에 받았다. 그러나 4년의 집권은 약속의 대부분을 지키지 못한 채 끝났다. 보고타 지하철 사업을 둘러싼 소모적 갈등, 잇따른 정책 실패, 측근 비리 스캔들이 쌓였다. 개혁을 기대했던 민심은 환멸로 바뀌었다.
그 환멸의 반작용으로 2026년 6월, 콜롬비아는 정치적 아웃사이더 아벨라르도 데 라 에스프리에야(Abelardo de la Espriella)를 새 대통령으로 선택했다. 대중의 열광이 있었다. 그러나 그가 손에 쥔 권력은 온전히 그의 것이 아니다.
빌려온 정당, 빌려온 표
에스프리에야는 자신의 정당이 없다. 결선 투표라는 복잡한 함수 안에서 거대 보수 정당들의 손을 빌렸고, 자신을 지지하지 않던 이들의 표를 잠시 빌려왔을 뿐이다. 선거 운동 기간에 그는 기성 정당들을 "또 그 사람들 (los de siempre)"이라 비판했다. 그러나 집권 후에는 그들의 승인 없이 법안 하나 통과시킬 수 없는 역설 앞에 서 있다.
지리적으로도 기댄 권력이다. 전국 32개 주 중 단 14개 주에서만 이겼다. 전통 우파 텃밭 안티오키아(Antioquia)에서 64.4%라는 몰표를 얻어 격차를 벌렸을 뿐, 국토의 절반 이상에서는 졌다. 좌파 야당 이반 세페다(Iván Cepeda)는 18개 주에서 이겼고 1,200만 표의 확고한 진지를 구축했다.
메르멜라다(Mermelada)의 외통수
더 큰 문제는 내부에 있다. 콜롬비아 정치판에는 '메르멜라다(Mermelada)'라 불리는 관행이 있다. 글자 그대로는 '잼'이라는 뜻이다. 정치적 지지의 대가로 나눠주는 이권과 관직을 의미한다. 달콤하지만 끈적하고, 결국 썩는 것. 잼처럼.
에스프리에야를 밀어준 우파 4개 정당의 청구서가 이미 쌓이기 시작했다. 신임 정무장관 로드리고 라라(Rodrigo Lara)는 "밀실 거래는 없다.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한다"고 일성을 날렸다. 서슬 퍼런 출발이다. 그러나 현실은 잔혹하다. 잼을 나눠주면 부패 척결의 명분이 죽는다. 거절하면 의회 보이콧으로 식물 대통령이 된다. 페루에서 반복된 그 수순이다. 어느 쪽을 선택해도 덫이다.
야당의 Day 1 작전
좌파 전직 대통령 페트로와 대선 패배자 세페다는 패배 직후 회동하여 단일대오를 형성했다.
전직 상원의원 마리아 호세 피사로(María José Pizarro)는 예사로운 이름이 아니다. 그의 아버지 카를로스 피사로(Carlos Pizarro Leongómez)는 M-19 게릴라의 최고사령관으로, 1990년 평화협정을 이끌고 무장 해제를 선언한 뒤 대선에 출마했다가 불과 48일 만에 암살당했다. 총성이 울린 곳은 보고타발 바랑키야행 여객기 안, 하늘 위였다. 콜롬비아 좌파는 지금도 그 이름을 순교자처럼 기억한다.
그 딸이 이제 야당의 최전선에 섰다. 마리아 호세 피사로는 새 정부가 첫날 발표할 90개 대통령령에 즉각 위헌 소송을 제기해 발을 묶겠다고 선언했다.
콜롬비아 정치에서 이름은 때로 개인이 아니라 역사 자체를 의미한다. 그래서 마리아 호세 피사로의 발언은 단순한 야당 정치인의 반대가 아니다. 그것은 새 정부가 첫날부터 마주하게 될 역사적 반대 전선의 등장을 알리는 신호다.
세페다는 자신이 승리한 18개 주를 돌며 장외 투쟁을 조직화하고 있다. 목표는 2027년 지방선거와 2030년 대선이다.
유권자는 1년도 기다려주지 않는다. 야당은 첫날부터 다음 선거를 준비한다. 결국 새 정부는 취임과 동시에 통치와 선거를 동시에 치러야 하는 운명 앞에 서게 된다.
3부 구원자를 기다리는 대륙의 백년 고독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Cien años de soledad)’을 빌려 표현하자면, 지난 한 세기 중남미 정치 역시 끝없이 반복되는 기다림의 역사였다.
1930~40년대 대공황 이후 중남미의 대중은 강한 국가와 강한 지도자를 원했다. 멕시코의 라사로 카르데나스(),아르헨티나의 후안 페론(),브라질의 제툴리우 바르가스()는 민중의 이름으로 등장한 새로운 구원자들이었다. 그들은 사회개혁과 산업화를 약속했고 수많은 사람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다.
1960~70년대에는 또 다른 약속이 등장했다. 쿠바 혁명 이후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의 신화는 대륙 전체를 흔들었다. 혁명이 불가능한 곳에서는 게릴라가 등장했고, 이를 막기 위해 군사정권이 등장했다. 혁명과 반혁명이 서로를 정당화하며 충돌했던 시대였다.
1980~90년대에는 방향이 바뀌었다. 국가가 아니라 시장이 해답이라고 믿기 시작했다. 아르헨티나의 카를로스 메넴(), 페루의 알베르토 후지모리(),그리고 워싱턴 컨센서스()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 개혁이 대륙을 휩쓸었다. 그러나 경제 안정은 얻었을지 몰라도 불평등과 소외는 사라지지 않았다.
2000년대 들어 실망한 대중은 다시 다른 구원자를 선택했다. 우고 차베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에보 모랄레스(),라파엘 코레아()등 이른바 핑크 타이드(Pink Tide)의 지도자들이 등장했다. 이들은 시장보다 국가, 경쟁보다 분배를 이야기하며 새로운 시대를 약속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이번에는 또 다른 실망이 찾아왔다. 그리고 2010~20년대에는 자이르 보우소나루(),하비에르 밀레이(), 나이브 부켈레()와 같은 새로운 아웃사이더들이 부상하기 시작했다. 지금 콜롬비아에서 나타나는 변화 역시 이 흐름의 연장선 위에 있다.
한 세기 동안 등장한 지도자들의 이름은 달랐지만 반복되는 패턴은 놀라울 정도로 비슷했다. 대중은 늘 새로운 구원자를 선택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구원자에게 실망했다. 실망은 분노를 낳았고, 분노는 다시 새로운 구원자를 불러냈다.
중남미 정치의 지난 백 년은 좌파와 우파의 승패를 기록한 역사가 아니다. 구원자를 기다리고, 환호하고, 실망하고, 다시 다른 구원자를 기다리는 순환의 역사였다.
문제는 이 순환을 서구 언론이 흔히 좌파와 우파의 단순한 교대 현상으로 해석한다는 점이다.
4부. 좌우 시소게임이 아니다 - 서구 프레임의 착시
여기서 한 가지 오류를 짚고자 한다. 중남미를 볼 때 서구 언론이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도식이 있다. '핑크 타이드(Pink Tide, 좌파 물결)'가 저물고 '블루 타이드(Blue Tide, 우파 물결)'가 왔다는 이분법과 아웃사이더의 돌풍을 '극우로의 회귀'로 규정하는 단순화가 그것이다. 현지 언론인들과 분석가들이 가장 답답해하는 시선이 바로 이것이다.
중남미의 시계추가 좌우로 격렬하게 움직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움직임은 이념의 변화가 아니다. 이념이 서서히 이동하는 속도가 아니라, 분노가 폭발하는 속도다.
민생을 해결하지 못하고 부패와 무능에 갇힌 기성 정치 체제 전체를 향해 유권자들이 진저리를 치며 반대편으로 추를 밀어버리는 것이다. 칠레에서 강경 우파 카스트가 이겼을 때도, 볼리비아에서 중도 우파 파스가 이겼을 때도, 그 표의 본질은 "저 사람이 좋아서"가 아니라 "지금 이 사람들이 정말 싫어서"였다.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의 투표 결과가 이 본질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낸다. 이번 대선 결선에서 테우사키요(Teusaquillo), 푸엔테 아란다(Puente Aranda) 같은 전통적인 중산층 진보 성향 구역들이 우파 아웃사이더에게 표를 던졌다. 이념의 우경화가 아니다. 지하철 한 노선 제대로 놓지 못하고 스캔들만 양산한 페트로 정부의 무능에 대한 유권자들의 '환멸, 피로, 절망(hastío, desilusión y desesperanza)'이 만든 결과다.
여기서 불편한 진실이 하나 드러난다. 이 반기득권 정서에는 방향이 없다. 오늘은 좌파를 향하고, 내일은 우파를 향한다. 무능한 좌파가 물러나면 우파가 그 자리를 채운다. 그 우파가 또 무능해지면 다시 좌파가 돌아온다. 시계추는 계속 흔들리지만 시간은 멈춰 있다. 중남미 정치 100년의 아이러니다.
그 늪의 밑바닥에는 언제나 같은 것이 있었다. 준비 없는 구호. 그리고 변화에 수반되는 기득권의 저항을 뚫고 나갈 정교한 시나리오의 부재.
5부. 코어를 잃은 지도자들 - 세계가 반복한 실수
이 실수는 중남미에만 있지 않았다. 지도자들이 공통적으로 범하는 오만이 있다. "내가 앞으로 나아가면 코어 지지층은 무조건 따라오겠지."역사는 이 확신이 얼마나 파괴적인지를 두 번의 뚜렷한 실패로 기록했다.
토니 블레어의 신노동당(New Labour) - 뿌리를 잃은 나무
1994년 영국 노동당 대표가 된 토니 블레어(Tony Blair)는 '제3의 길(Third Way)'을 선언했다. 전통적인 사회주의 노선을 접고 친시장주의를 수용했다. 금융 자율화, 민간 자본과의 협력. 좌우의 장점을 결합한 새로운 정치를 만들겠다는 야심이었다. 1997년 압도적 승리, 2001년 재선, 2005년 3선. 화려했다.
그러나 그 뒤에서 조용한 붕괴가 진행되고 있었다. 노동당의 전통적 지지 기반 - 웨일스 광부, 맨체스터 공장 노동자, 스코틀랜드 조선소 인부 - 이 배신감을 쌓아가고 있었다. "노동당이라고 부르지만 이제 우리를 위한 정당이 아니다." 블레어는 그들이 달리 갈 곳이 없다고 믿었다. 그 오만이 치명적이었다. 노동당은 자신들의 가장 단단한 뿌리인 워킹 클래스(Working Class)를 서서히 잃었다. 뿌리가 썩은 나무는 이후 찾아온 포퓰리즘의 거센 바람 앞에 속절없이 흔들렸다.
빌 클린턴의 삼각측량(Triangulation) - 배신감이 낳은 괴물
1992년 집권한 빌 클린턴(Bill Clinton)은 '삼각측량(Triangulation)' 전략의 대가였다. 전통적인 민주당 노선에서 벗어나 우파 의제를 과감히 수용했다. 복지 개혁, 금융 규제 완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중도층에서 폭넓은 지지를 얻었다.
그러나 이른바 러스트 벨트(Rust Belt)라 불리는 쇠락한 공업 지대의 노동자들 — 디트로이트의 자동차 공장 노동자, 펜실베이니아의 철강 노동자 - 의 현실은 달랐다. NAFTA로 공장이 멕시코로 떠났다. "민주당이 우리를 팔았다"는 상실감이 깊어졌다. 클린턴은 "당신들이 달리 갈 곳이 어디 있겠냐"며 그 상실감을 방치했다.
수십 년 뒤, 그 소외된 코어의 축적된 분노는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라는 거대한 반기득권 정서의 자양분이 되어 돌아왔다. 코어를 당연시한 정치적 실수가 정당의 기반 자체를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패턴은 같다. 코어와의 합의 없이 성급하게 중도로 발을 디뎠을 때, 안에서는 배신감이 자라고 밖에서는 정체성을 의심받는다. 블레어도, 클린턴도, 중남미의 카스트도 - 각자의 방식으로 같은 덫에 걸렸다.
6부. 정치라는 예술 - 중도의 진짜 순서
그렇다면 진정한 중도란 무엇인가.
중도는 기계적으로 좌우 중간에 서서 눈치를 보는 산술적 타협이 아니다. 그것은 고도의 기술이자 예술(Art)이어야 한다. 그리고 예술에는 순서가 있다.
첫 번째 : 뿌리를 단단하게 다진다.
자신의 핵심 지지층 - 코어 - 과 끊임없이 소통해야 한다.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들의 동의와 합의를 이끌어내는 작업이 먼저다. 이것은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다. 정통성을 쌓는 것이다. 뿌리에 자양분을 채우는 것이다.
두 번째 : 그 힘으로 광장을 향해 나아간다.
그 단단한 코어의 신뢰와 정당성을 디딤돌 삼아, 비로소 반대편의 합리적 영역을 향해 외연을 확장해 들어가는 것이다. 이것이 진짜 '제3의 길'이다. 안팎을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하나의 거대한 국가적 통합을 완성해 내는 리더십.
이것은 지도자의 오만이 아니라 겸손에서 시작하는 예술이다. "나를 믿고 따라오라"가 아니라, "당신들과 함께 가겠다"는 확인에서 출발하는 정치. 그 확인이 있을 때, 코어는 리더의 중도 행보를 '배신'이 아니라 '전략'으로 읽는다. 그리고 함께 간다.
결론. 얽힌 실타래가 보여주는 역설
여기에 역사의 아이러니가 있다.
중남미 정치는 지금 이 순간에도 거대한 실타래처럼 얽혀 있다. 좌파가 실패하면 우파가 오고, 우파가 실패하면 좌파가 온다. 메르멜라다를 요구하는 기득권과 첫날부터 장외 투쟁을 선포하는 야당 사이에서, 빌려온 권력은 임기 내내 줄타기를 한다. 그 끝에는 다시 유권자의 환멸이 기다린다.
그런데 바로 그 얽힘 안에서, 역설적으로 해법의 실마리가 보인다. 왜 중남미의 정치는 이토록 잘 얽히는가. 세 가지 부재 때문이다.
첫째, 체제에 대한 합의의 부재. 선거가 끝나도 패배자가 결과를 인정하지 않는다. 볼리비아의 MAS처럼, 거리로 나와 체제 자체를 흔든다. 선거 결과가 통치의 출발점이 아니라 다음 저항의 시작점이 된다.
둘째, 코어와의 신뢰 부재. 집권하는 순간, 지지층을 당연시한다. 그들이 달리 갈 곳이 없다고 믿는다. 그 오만이 뿌리를 썩게 한다. 뿌리가 없는 나무가 메르멜라다의 압박과 야당의 장외 투쟁 앞에서 버틸 수 있을 리 없다.
셋째, 준비 없는 구호. 선거 운동의 달콤한 약속과 통치의 냉혹한 현실 사이의 간극을 메울 정교한 시나리오가 없다. 기대치는 높이고 준비는 하지 않는다. 유권자의 조급함이 정권을 삼키는 것은 시간문제다.
뒤집어 생각하면 답이 보인다.
체제에 대한 합의가 먼저 있는 곳. 코어와의 신뢰를 먼저 다진 뒤 외연을 넓히는 곳. 구호가 아니라 준비로 통치를 시작하는 곳. 그런 곳에서는 메르멜라다의 청구서도, 야당의 Day 1 작전도, 유권자의 조급함도 - 정권을 질식시키는 덫이 아니라 감당할 수 있는 무게가 된다.
중남미의 얽힌 실타래는 그 끝을 스스로 보여주고 있다. 가장 복잡하게 얽힌 곳에서, 가장 단순한 진실이 드러나는 법이다.
뿌리가 깊은 나무는 강한 바람도 견딘다. 합의 위에 세워진 권력 역시 흔들리지 않는다. 그렇게 준비된 변화는 비로소 강한 추진력을 갖는다.
결국 중남미의 경험은 우리에게 민주주의의 오래된 진실을 다시 일깨운다. 권력은 선거로 얻을 수 있지만, 통치는 신뢰와 합의 위에서만 가능하다.
(이 글은 아르헨티나 La Nación, 콜롬비아 El Tiempo 등 현지 언론 보도와 분석을 참고하였습니다.)
BEST 뉴스
-
[굿리더뉴스] 중국이 마침내 2028년에 대만을 침공한다고?
중국 시진핑 주석과 대만 라이칭더 총통 [굿리더뉴스=남상채 기자] 지금 중국은 대만 침공 시기에 대해 2027년과 2028년을 놓고 저울중인가? 중국이 대만을 무력으로 통일하려고 든다고 시기로 거론돼온 해는 2027년이다. ... -
[굿리더뉴스] '벌거벗은 트럼프', 유럽의회에 등장하다..
유럽의회에서 가장 붐비는 통로에 세워진 벌거벗은 트럼프 동상 [굿리더뉴스=남상채 기자] '벌거벗은 트럼프'가 유럽의회에 등장했다고? 유럽연합(EU)의 입법기구인 유럽의회 본부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풍자한 대형 동상이 등장한 것. 프랑스 스트... -
[굿리더뉴스] 트럼프에게 노벨평화상을 줄 수 없는 이유..
트럼프 美대통령이 미국 뉴욕주 시러큐스의 온센터에서 선거 유세를 하는 모습 [굿리더뉴스=남상채 기자] 혹시 트럼프가 노벨평화상을 받을 거라고 믿은 사람이 있었을까? 본인 외에 말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되지 않은 데 대해 강... -
[굿리더뉴스] 갑자기 대만의 해안가에 나타난 '트럼프 바위'
대만의 해안가에 美 트럼프 대통령을의 옆얼굴을 닮은 기암괴석 [굿리더뉴스=남상채 기자] 대만의 바닷가에 난데없이 트럼프 대통령이 나타났다고? 길조일까? 흉조일까? 대만의 한 해안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옆얼굴을... -
[굿리더뉴스] 백악관 대변인은 반드시 우파 금발의 미인이어야 한다!?
케이티 자카리아 백악관 새대변인. 엑스 캡쳐 [굿리더뉴스=남상채 기자] 백악관의 새 대변인에 또다시 트럼프 대통령이 좋아하는 스타일인 '우파 금발 미인'이 발탁됐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9일(현지시간) 새 백악관 대변인으로 보... -
[굿리더뉴스] 백악관의 미녀 대변인&트럼프의 최측근, 폭스뉴스의 앵커가 되다..
캐럴라인 래빗 전 백악관 대변인 [굿리더뉴스=남상채 기자] 백악관의 미녀 대변인이자 트럼프의 최측근이었던 여성이 폭스뉴스의 앵커다 되었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최연소 백악관 대변인을 지낸 캐럴라인 레빗이 친(親)트럼프 성향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