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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특집=김한식] 6.25 전쟁은 끝났는가? 인간의 상처는...

  • 김한식 철학자 기자
  • 입력 2026.06.24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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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1-1.jpeg

 

6·25, 전쟁은 끝났는가, 인간의 상처는 끝났는가

 

― 레마르크에서 헤밍웨이, 첼란, 모윤숙을 거쳐 김한식의 「해 뜨는 아침」까지

 

전쟁의 역사에서 인간 영혼을 찾아가는 문학의 길

 

전쟁은 언제나 거대한 이름으로 시작됩니다. 국가, 이념, 민족, 정의라는 이름 아래 수많은 사람들이 전장으로 향합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뒤 역사에 남는 것은 승리와 패배의 숫자가 아니라, 이름 없이 사라진 사람들의 눈물과 살아남은 사람들의 긴 침묵입니다. 그래서 전쟁문학은 전쟁의 승패를 기록하는 문학이 아니라 전쟁이 인간에게 남긴 보이지 않는 상처를 그리는 문학입니다. 6·25전쟁 기념일은 단순히 1950년 6월 25일을 기억하는 날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 자신을 묻는 날입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참호에서부터 제2차 세계대전의 폐허, 그리고 6·25 한국전쟁의 산하에 이르기까지 전쟁문학은 같은 질문을 반복해 왔습니다. 전쟁은 인간에게서 무엇을 빼앗아 가는가. 그것은 단순히 죽음이나 파괴가 아닙니다. 전쟁은 사람의 미래를 빼앗고, 기억을 빼앗고, 인간이 인간을 믿을 수 있는 마지막 믿음까지 흔듭니다. 그러나 문학은 그 폐허에서 다시 묻습니다. “그럼에도 인간은 무엇으로 살아가는가.”

 

1. 레마르크 ― 참호 속에서 무너진 청춘의 꿈

 

「서부전선 이상 없다」는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20세기 최초의 거대한 비극을 인간의 눈으로 바라본 작품입니다. 1914년 유럽은 전쟁이라는 거대한 열병에 휩싸였습니다. 국가들은 승리를 외쳤고, 젊은이들은 조국과 명예라는 이름 아래 전장으로 향했습니다. 거리에는 군악대가 울렸고, 사람들은 전쟁을 하나의 영광스러운 모험처럼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참호 속에서 젊은 병사들이 마주한 현실은 달랐습니다. 그곳에는 영웅이 없었습니다. 찬란한 명예도 없었습니다. 오직 진흙과 피 묻은 상처, 포탄과 죽음, 그리고 언제 자신이 사라질지 모르는 인간의 공포만이 가득했습니다.

 

레마르크가 그린 병사들은 특별한 영웅이 아닙니다. 그들은 평범한 학생이었고, 친구였으며, 누군가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전쟁터에 나가기 전 품었던 것은 거대한 이상이 아니라 작은 꿈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미래, 배우고 싶은 것들, 평범한 삶에 대한 기대. 그러나 전쟁은 그 모든 가능성을 빼앗아 갑니다. 전쟁은 사람을 죽이는 것만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 안에서 미래를 죽입니다.

 

레마르크의 병사들이 가장 크게 잃어버린 것은 목숨만이 아닙니다. 그들은 전쟁 이전의 자신을 잃었습니다. 고향으로 돌아가도 그들은 이미 이전의 청년이 아닙니다. 세상은 평온하게 돌아가지만, 그들의 내면에는 여전히 포성이 울립니다. 그래서 레마르크의 전쟁문학은 전투의 기록이 아니라 전쟁 이후 인간의 고독에 대한 기록입니다. 전쟁은 끝났지만, 인간 안에 상처로 남은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 이것이 레마르크가 보여준 가장 깊은 비극입니다.

 

헤밍웨이 1-1.jpeg

 

2. 헤밍웨이 ―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인간의 품위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전쟁문학은 레마르크와 닮았으면서도 다른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레마르크가 전쟁이라는 거대한 폭력 속에서 무너지는 세대를 보여주었다면, 헤밍웨이는 그 폐허 속에서 어떻게 인간이 버틸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무기여 잘 있거라」에서 전쟁은 국가와 이념의 문제가 아닙니다. 한 인간의 사랑, 삶, 그리고 존엄을 빼앗아 가는 현실입니다. 주인공 프레더릭 헨리는 전쟁 속에서 점점 깨닫습니다. 전쟁이라는 거대한 이름 뒤에는 결국 상처받는 개인이 있다는 것을. 전쟁은 언제나 집단의 언어로 말하지만, 고통은 언제나 개인의 몸과 마음에 찾아옵니다.

 

헤밍웨이의 인간들은 큰 소리로 절규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상처를 안고 살아갑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믿었던 세계가 무너져도 묵묵히 걸어갑니다. 그 침묵은 체념이 아닙니다. 오히려 마지막까지 인간답게 남으려는 의지입니다. 헤밍웨이가 말하는 인간의 위대함은 승리에 있지 않습니다. 패배하지 않는 마음, 고통 속에서도 품위를 잃지 않는 태도에 있습니다. 이 점에서 헤밍웨이의 인간은 김한식 시인의 「해 뜨는 아침」 속 할머니와 만납니다. 헤밍웨이의 인물들은 전쟁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할머니는 세 아들을 잃은 상처를 안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두 세계 모두 같은 곳을 향합니다. 상처 때문에 인간성을 잃지 않는 것. 고통 때문에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것. 그것이 전쟁 이후 인간이 지켜야 할 마지막 자리입니다.

 

3. 첼란 ― 전쟁 이후, 인간은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

 

파울 첼란에게 전쟁은 이전의 모든 전쟁문학과 다른 차원의 상처였습니다. 레마르크와 헤밍웨이가 전쟁터에서 인간이 겪는 고통을 말했다면, 첼란은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른 절대적 악 이후의 세계를 말합니다. 홀로코스트 이후의 세계에서 첼란이 마주한 것은 단순한 죽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어떻게 인간이 인간에게 그런 일을 할 수 있는가. 홀로코스트의 비극 이후에도 우리는 말을 할 수 있는가.

 

첼란에게 언어는 더 이상 당연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언어는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시에는 깨진 문장과 깊은 침묵이 흐릅니다. 「죽음의 푸가」는 바로 그 시대의 어둠속에서 나온 증언입니다. 그에게 침묵은 단순한 고요가 아닙니다. 말할 수 없을 만큼 깊은 절망의 흔적입니다. 그러나 첼란은 결국 침묵 속에서도 시를 씁니다. 왜냐하면 완전히 침묵하는 순간, 인간의 기억마저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시란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때로 시는 인간이 저지른 악을 잊지 않기 위한 마지막 증언입니다. 이 지점에서 첼란과 김한식의 시는 서로 다른 길에서 만납니다. 첼란의 침묵은 너무 큰 비극 앞에서 생긴 침묵입니다. 그러나 김한식의 할머니의 침묵은 사랑을 지키기 위한 침묵입니다. 하나는 상처의 깊이에서 나온 침묵이고, 다른 하나는 용서와 기원의 깊이에서 나온 침묵입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인간이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전쟁은 인간의 몸을 파괴할 수 있습니다. 전쟁은 도시를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깊은 인간의 내면을 무너뜨릴 수는 없습니다. 마지막까지 남는 것은 인간이 끝내 붙잡는 기억과 사랑입니다.

 

4. 모윤숙 ― 한국전쟁, 한 민족의 상처가 되다

 

모윤숙의 전쟁문학은 한국전쟁이라는 민족적 비극 속에서 탄생했습니다. 6·25는 단순한 군사 충돌이 아니었습니다. 한반도의 산하가 전장이 되었고, 가족은 흩어졌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이름 없는 상처를 안고 살아야 했습니다. 전쟁은 지도 위의 선을 바꾸고 사람들의 마음속에도 보이지 않는 선을 그었습니다. 고향을 잃은 사람, 가족을 잃은 사람, 돌아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는 사람들. 모윤숙의 문학은 바로 그 민족적 슬픔과 애도의 공간을 품고 있습니다. 전쟁의 한가운데서 쓰러진 국군은 더 이상 이름 없는 병사가 아닙니다. 그는 조국의 땅 위에 자신의 젊음을 바친 한 인간이며, 동시에 수많은 희생자의 상징입니다.

 

이 지점에서 모윤숙의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는 레마르크와 만납니다. 레마르크가 제1차 세계대전의 참호 속에서 죽어가는 청춘의 허무를 보여주었다면, 모윤숙은 한국전쟁의 폐허 속에서 죽음 이후에도 남는 기억의 의미를 바라봅니다. 헤밍웨이가 전쟁 속에서도 인간의 품위를 지키려는 개인을 보여주었다면, 모윤숙은 공동체가 그 희생을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지를 묻습니다. 첼란이 홀로코스트 이후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를 물었다면, 모윤숙은 “그 희생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묻습니다. 그리고 이 흐름은 김한식의 「해 뜨는 아침」으로 이어집니다. 모윤숙의 시가 전쟁터의 죽은 국군을 바라본다면, 김한식의 시는 전쟁이 끝난 뒤 남겨진 전사자의 어머니를 바라봅니다. 하나는 전장에서 죽은 사람의 목소리이고, 다른 하나는 살아남아 견디는 사람의 침묵입니다.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에서 죽은 병사가 남긴 말이 조국을 향한다면, 「해 뜨는 아침」에서 할머니의 기도는 미래를 향합니다. 모윤숙의 전사자가 말하는 것은 “잊지 말라”는 기억의 언어라면, 김한식의 할머니가 올리는 정화수는 “더 나은 사람이 되라”는 희망의 언어입니다.

 

결국 두 작품은 같은 곳을 향합니다. 전쟁의 끝은 적을 물리치는 순간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다움을 회복하는 순간이라는 것. 그러기에 한국전쟁 문학의 진정한 질문은 죽은 사람만을 기억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 질문이 김한식의 「해 뜨는 아침」으로 이어집니다.

 

전쟁 2-1.jpeg


5. 김한식 「해 뜨는 아침」 ― 전쟁 이후, 인간이 지켜낸 마지막 빛

 

김한식 시인의 「해 뜨는 아침」은 전쟁터에서 시작하지 않습니다. 총성이 울리는 전선이 아니라, 한 할머니의 새벽 부엌에서 시작됩니다. 그러나 바로 그 작은 공간 안에 6·25의 모든 비극이 들어 있습니다. 두 손으로 꼭 쥐어짠 행주로 닦고 또 닦아서 이 장면은 단순한 정리가 아닙니다. 상처 입은 세계를 다시 깨끗하게 만들려는 인간의 몸짓입니다. 닦는 것은 마루가 아니라 기억입니다. 씻는 것은 자리가 아니라 슬픔입니다. 그리고 정화수 한 사발. 그것은 물이 아닙니다. 그것은 떠난 아들들에게 보내는 사랑이며, 남은 세상을 향한 기도입니다.

 

조국의 산하에 꽃으로 진 세 아들 이 한 구절 속에 한국전쟁의 모든 비극이 들어 있습니다. 하지만 시인은 죽음을 영웅으로 포장하지 않습니다. 그는 한 어머니의 가슴을 바라봅니다. 가장 깊은 구절은 이것입니다. 가슴은 터져서 억장으로 무너져도, 안으로 안으로 옹그시던 그 성스러운 모습 여기서 할머니는 단순한 희생자가 아닙니다. 그녀는 상처를 증오로 바꾸지 않은 인간입니다.

 

전쟁은 한 여인에게서 세 아들을 빼앗았지만, 그녀의 마음속 빛까지 빼앗지는 못했습니다. 그녀는 복수를 빌지 않습니다. 그녀는 어둠을 저주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빕니다. 어둠을 밝히는 빛으로 세상을 비추는 맑은 사람 되라고 여기에 김한식 시인의 깊은 전쟁 철학이 있습니다. 전쟁의 반대는 단순히 총성이 멈추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평화는 인간이 인간다움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맺음말 ― 전쟁의 마지막 증언자는 인간이다

 

레마르크는 전쟁이 한 세대의 청춘과 미래를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헤밍웨이는 상처 입은 인간이 어떻게 침묵 속에서도 존엄을 지킬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첼란은 전쟁이 인간의 육체만이 아니라 언어와 기억까지 파괴할 수 있음을 증언했습니다. 모윤숙은 전쟁이 한 민족의 깊은 상처가 되는 과정을 노래했습니다. 죽은 자의 침묵은 끝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에게 던지는 무거운 질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김한식의 「해 뜨는 아침」은 그 모든 전쟁문학의 길 끝에서 다시 묻습니다. “그럼에도 인간은 무엇으로 살아가는가.” 그 답은 승리가 아니라 그것은 새벽마다 정화수 한 그릇을 올리는 마음입니다. 상처 속에서도 끝내 맑은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어둠을 물려받았지만, 다음 세대에게 빛을 건네려는 마음입니다.

 

전쟁은 역사책에 기록됩니다. 그러나 평화는 한 사람의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거대한 역사를 움직이는 것도 결국 인간의 내면이며, 전쟁 이후의 세계를 다시 세우는 것도 이름 없는 한 사람의 사랑과 양심입니다. 그래서 「해 뜨는 아침」은 조용하지만, 깊은 목소리로 말합니다. 전쟁이 끝난 자리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아야 할 것은 무기가 아니라 인간의 마음이라고. 그리고 우리는 다시 묻습니다. 6·25 전쟁은 끝났는가, 인간의 상처는 끝났는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역사가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전쟁을 기억하는 이유는 과거의 아픔에 머물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시는 인간이 인간을 잃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끝내 남아야 할 것은 전쟁의 흔적이 아니라, 그 폐허 속에서도 꺼지지 않은 한 인간의 마지막 빛입니다. [글=김한식 철학자, 시인, 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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