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행동하는 양심’을 묻는다
[신재중 김대중아카데미 원장] 내란세력 심판, 윤어게인 세력 심판, 이재명 정부 심판... 요즘 선거판에 여야를 불문하고 심판론이 무성하다. 그 심판론에는 정의와 양심의 소리보다 보복과 분노의 소리가 더 드높은 것은 아닌지? 아무리 선거때라고 하지만, 최소한의 신사협정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특히 국민의힘 내분을 보면 피아(彼我)가 따로 없다.
오늘날 우리 정치는 대화와 타협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본 작동 원리를 상실한 채, 극단적인 진영 논리와 증오의 언어만이 난무하는 황무지가 되었다. 민생의 고통은 깊어지는데 정치권은 서로를 향한 ‘심판’만을 외치며 평행선을 달린다. 이러한 혼돈의 시대에 우리가 다시금 고(故) 김대중 대통령의 '행동하는 양심’을 소환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그것은 단순한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정치가 나아가야 할 본질이자 시민의 책무를 일깨우는 시대의 준엄한 명령이기 때문이다. 누가 누구를 심판한다는 말인가?
김대중 대통령이 평생에 걸쳐 국민의 가슴 속에 각인시키고자 했던 그 정신의 본질과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을 짚어보고자 한다.
김 대통령은 생전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 단언했다. 이는 불의를 보고도 내면의 정의감에만 머무는 것은 결과적으로 그 악이 승리하도록 방조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뜻이다. 현재의 정치권이 국민의 눈높이를 무시하고 독선에 빠지는 이유는, 다수의 양심이 침묵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양심은 골방에서의 고뇌를 넘어 광장에서의 목소리로, 그리고 투표장에서의 실천으로 드러나야 한다. '담벼락을 보고 욕이라도 하라'는 그의 간절한 외침은, 아주 작은 저항이라도 그것이 모여 세상을 바꾸는 동력이 된다는 실천적 윤리의 정수다. 다른 한편으로는 화가 나더라도 사람보고 욕하지 말고 담벼락같은 허공에 대고 욕하라는 의미로도 들린다. 생각해보자. 입으로만 양심을 말하면서 행동하지 않는 사람이 누구인가?
김대중 정신의 핵심 중 하나는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의 조화'다. 대쪽 선비처럼 단호하되, 필요할때는 비지니스맨처럼 협상력과 융통성을 발휘하라는 얘기다. 요즘 부산북갑 재보선지역을 비롯해 전국 곳곳의 선거판을 보면, 상대를 궤멸시켜야 할 적으로 규정하며 감정적 소모전만을 일삼고 있다. 하지만 김 대통령이 강조한 행동하는 양심은 국민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정책적 대안’으로 표출되어야 한다. 지금 어느 후보의 입에서 정책 이야기나 나오는가? 정치권은 비난을 위한 비난을 멈추고, 지역 균형 발전, 고령화와 저출생 문제, 미래 산업의 활로 등 국가적 과제 앞에 양심을 걸고 치열하게 토론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행동하는 양심이 정치 현장에서 구현되는 모습이다.
요즘 선거판을 보면, 정청래,장동혁,한동훈,조국같은 정치인들만 보이고 국민은 잘 보이지 않는다. 정치는 정치인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김 대통령은 국민이 스스로 주인임을 자각할 때만이 권력이 부패하지 않는다고 믿었다. 우리가 정치적 냉소주의에 빠져 고개를 돌릴 때, 정치는 가장 저질스러운 자들에 의해 지배당하게 된다. 행동하는 양심은 정치인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팬덤이 아니라, 상식과 공정의 잣대로 우리 편과 저쪽 편을 가리지 않고 엄중히 비판하는 ‘시민의 비판적 지지’에서 시작된다. 민주주의는 시민의 용기만큼 전진하고, 시민의 무관심만큼 후퇴한다는 진리를 잊지 말아야 한다.
김대중 대통령이 남겼던 이 마지막 호소는 오늘날 길을 잃은 우리 정치권과 시민 사회를 향한 통렬한 일침이다.불의에 침묵하지 않는 용기, 일상 속에서 작더라도 정의로운 선택을 내리는 결단, 그리고 정책으로 승부하는 정치를 요구하는 단호함. 그 실천들이 모여 ‘행동하는 양심’의 파도를 이룰 때, 비로소 우리 정치는 다시 희망의 길로 들어설 수 있을 것이다. 역사는 양심이 행동할 때 비로소 진보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제 행동으로 증명해야 한다. 6.3 지방선거와 재보궐선거같은 정치적 격변기에는 더더욱 그렇다. [신재중 김대중아카데미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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