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둣빛 얼의 노래
- 김한식 -
어린이는 작아서가 아니라
얼이 먼저 깃든 존재다
그래서 우리는
주름이 깊어져도
끝내 어린이로 남는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
몸이 자랐는데
얼은 먼저 집을 나간다
“이 얼빠진 녀석 같으니”
그 말이 아픈 까닭을
나는 안다
잃어버린 나 자신을
부르는 이름이기 때문이다
세계는 생각보다 빠르게 반응하고
사람들은 점점 더 똑똑해지는데
얼은 점점 자리를 잃어간다
손바닥 위의 화면이
세상의 답을 건네주지만
아무도 묻지 않는다
얼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를
그래서 나는 묻는다
사랑에서 시작하지 않는다면
어찌 철학에 이르겠는가
사랑은 화면에서 태어나지 않는다
누군가의 눈물을 바라본 뒤에야
비로소 말을 시작한다
흙 묻은 옷을 털어주며
손을 맞잡는 일이
세상을 이해하는 첫 번째 길임을
어린이는 안다
넘어지면 왜 울어야 하는지
왜 다시 일어서야 하는지도
가르치지 않아도 안다
문명은 점점 높아지는데
얼이 빠져 있을 때
우리는 다시 어린이를 불러야 한다
작아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깊어지기 위해서
나는 다시 다짐한다
얼을 잃지 않고
사랑에서 시작하겠다고
<해설> 연둣빛 얼, 잃어버린 인간의 중심을 묻다
김한식의 시 「연둣빛 얼의 노래」는 단순한 어린이의 찬가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근원을 다시 묻는 깊은 성찰의 시입니다. 시인이 말하는 ‘어린이’는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상태이며, ‘얼’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내면의 중심, 영혼과 같은 자리입니다. 시의 첫머리에서 “어린이는 작아서가 아니라 / 얼이 먼저 깃든 존재”라는 선언은 인간 이해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뒤집습니다. 우리는 성장하면서 더 많이 알고 더 크게 살게 되지만, 정작 그 과정에서 가장 먼저 잃어버리는 것이 이 ‘얼’임을 시인은 조용히 드러냅니다.
“몸이 자랐는데 / 얼은 먼저 집을 나간다”는 구절은 현대 문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자 동시에 자기 고백처럼 들립니다. 여기서 ‘얼빠진 녀석’이라는 일상의 언어는 단순한 꾸짖음이 아니라, 자기 상실의 비극을 가리키는 존재론적 호명으로 바뀝니다. 우리는 타인을 향해 이 말을 던지지만, 사실은 스스로를 향해 되돌아오는 말이라는 점에서 이 시는 독자에게 묵직한 자각을 요구합니다.
이 시의 중요한 전환점은 ‘속도’와 ‘깊이’의 대비에서 나타납니다. “세계는 빠르게 반응하고 / 사람들은 더 똑똑해지는데 / 얼은 자리를 잃어간다”는 대목은 오늘날 기술 문명의 핵심을 정확히 짚어냅니다. 우리는 점점 더 많은 정보를 처리하고 더 빠르게 판단하지만, 그 속에서 인간의 내면은 점점 얕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손바닥 위의 화면이 모든 답을 제공하는 시대에, 정작 “얼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은 사라졌습니다. 이 질문의 부재야말로 시인이 느끼는 가장 깊은 위기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단호하게 방향을 돌립니다. “사랑에서 시작하지 않는다면 / 어찌 철학에 이르겠는가.” 이 구절은 이 시 전체의 중심축이자, 김한식 시 세계의 핵심 명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사랑은 감정적 상태가 아니라 존재를 이해하는 방식입니다.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누군가의 눈물을 오래 바라볼 수 있는 능력, 바로 그 자리에서 비로소 사유가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철학은 추상적 사유의 결과가 아니라, 삶의 고통과 마주한 뒤에야 비로소 태어나는 언어라는 점을 시인은 힘주어 말합니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시인은 어린이를 통해 인간 본래의 감각을 복원합니다. “손을 맞잡는 일이 / 세상을 이해하는 첫 번째 길”이라는 구절은 모든 인식 이전에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일깨웁니다. 어린이는 아직 세계를 개념으로 이해하지 않지만, 몸으로, 감각으로, 관계로 이해합니다. 넘어지면 울고, 다시 일어서는 법을 스스로 아는 존재, 그것이 바로 ‘얼이 살아 있는 상태’입니다. 이 지점에서 시는 교육이나 도덕의 차원을 넘어 인간 존재의 근원적 직관을 건드리게 됩니다.
마지막 연에서 시는 다시 문명 비판으로 돌아오지만, 그 어조는 절망이 아니라 결단으로 마무리됩니다. “문명은 점점 높아지는데 / 얼이 빠져 있을 때 / 우리는 다시 어린이를 불러야 한다”는 말은 퇴행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깊이를 회복하자는 요청입니다. ‘작아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 깊어지기 위해서’라는 구절은 이 시의 윤리적 방향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우리가 되돌아가야 할 것은 과거가 아니라, 잃어버린 내면의 깊이입니다.
결국 이 시는 하나의 다짐으로 끝납니다. “얼을 잃지 않고 / 사랑에서 시작하겠다고.” 이 마지막 선언은 개인의 결심이면서 동시에 시대를 향한 조용한 저항입니다. 거대한 문명의 흐름 속에서도 인간은 여전히 선택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선택은 언제나 ‘사랑에서 시작하는가’라는 질문으로 귀결된다는 점을 시인은 끝까지 놓지 않습니다.
이 시가 주는 울림은 단순히 따뜻함에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알고 있으면서도 외면해 온 어떤 진실을 마주하게 만드는 데 있습니다. ‘얼’이라는 말로 표현된 인간의 중심, 그리고 그 중심을 지키는 일이야말로 오늘의 문명 속에서 가장 근본적인 과제임을, 이 시는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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