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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리더뉴스=김한식의 단상] 서울의 테헤란로에서 이란의 테헤란을 생각하다...

  • 김한식 철학자 기자
  • 입력 2026.04.11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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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7년 박정희 대통령 이란 방문후, 한국은 테헤란로, 이란은 ‘서울로’로 명명..서로의 존재를 새겨..문명과 문명의 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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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에 있는 테헤란로

[굿리더뉴스] 철학자이자 시인 김한식이 서울에 있는 테헤란로에서 지금 전쟁의 화염속에 있는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 대해 사유해보았다. 차가운 정치적-외교적 관점이 아니라 따뜻한 철학적-문명사적 관점에서 이란을 바라보니 다른 것들이 보였다. 서울 한복판에 있는 테헤란로에서 멀리 이란의 테헤란에 있는 서울로 생각해보자. [편집자주]  

 

테헤란로에 새겨진 문명의 기억

- 오래된 만남과 화해의 길에서 -

 

[굿리더뉴스=김한식] 현대라는 세계화시대에 이란과 한국의 관계는 외교의 연표로는 담아낼 수 없는 깊고 오래된 시간의 숨결에 놓여 있습니다. 두 나라는 멀리 떨어진 공간에 자리하고 있지만 문명은 언제나 거리보다 먼저 길을 냅니다. 그 길 위에서 인간은 서로를 스치고 그 스침은 때로는 역사로 기록되지 않은 채 더 오래 살아남습니다.

고대의 실크로드를 따라가 보면 페르시아와 신라의 만남은 단지 물물교환이 아니라 감각과 세계관의 은밀한 교류였습니다. 낯선 유리의 투명함과 이국의 장신구, 그리고 서역인의 형상을 한 작은 토우들 속에는 서로 다른 세계가 한순간 겹쳐진 기억이 고요히 깃들어 있습니다. 그 만남은 거창한 외교도, 장대한 기록도 아니었으나, 오히려 그렇기에 더 깊이 스며들어 한 문명의 내면에 조용히 흔적을 남겼습니다.

문명은 이렇게 만나고, 사라지는 듯 보이면서도 결코 완전히 사라지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흐름으로 이어지다가 어느 순간 다른 형태로 다시 모습을 드러냅니다. 시간을 건너 현대에 이르면, 이 오래된 만남은 보다 또렷한 형태로 우리 앞에 나타납니다. 한국과 이란은 공식적인 외교 관계를 맺고, 산업과 에너지, 건설의 영역에서 서로의 삶에 깊숙이 스며들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이해관계의 교환이라기보다, 서로 다른 문명이 현실의 필요 속에서 다시 손을 맞잡은 장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서울의 ‘테헤란로’는 그 상징적 정점입니다. 이 길의 이름은 도시의 풍경 속에 놓인 하나의 지명이 아니라, 문명과 문명이 서로를 기억하는 방식입니다. 1977년 박정희 대통령의 이란 방문 이후, 서울의 한 도로는 테헤란의 이름을 품게 되었고, 이란은 수도 테헤란에 ‘서울로’로 응답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외교적 예의가 아니라, 서로의 존재를 서로의 공간 안에 새겨 넣는 상징적 행위였습니다. 한 도시의 길 위에 다른 문명의 이름을 얹는다는 것은, 그 문명을 단지 외부의 타자가 아니라 내면의 일부로 받아들이겠다는 조용한 선언과도 같습니다.

그렇게 테헤란로는 아스팔트 위에 놓인 길이면서 동시에 시간 위에 놓인 다리가 되었습니다. 이 길은 한국의 경제와 기술, 정보와 자본이 빠르게 흐르는 공간으로 변모했습니다. 빌딩 숲 사이를 오가는 사람들 가운데, 이 이름에 담긴 오래된 인연을 떠올리는 이는 많지 않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름은 기억을 품고 있고, 기억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마치 지층처럼 쌓여 있다가, 우리가 다시 귀 기울일 때 비로소 자신의 깊이를 드러냅니다.

 

서울로 1-1.jpeg
이란의수도 테헤란에 있는 서울로

 

오늘도 사막의 바람은 여전히 거칠게 불고 있습니다. 이란을 둘러싼 긴장, 특히 미국과의 갈등은 오늘의 세계가 얼마나 쉽게 두려움과 적개심으로 기울어지는지를 보여줍니다. 전쟁은 언제나 단순한 언어를 사용합니다. 상대를 적으로 규정하고 복잡한 인간을 하나의 대상으로 축소하며 이해 대신 제거를 선택합니다. 그 순간 세계는 사막의 모래바람보다 더 거칠어지고, 인간정신은 황폐화됩니다. 그러나 거칠음의 이면에는 여전히 다른 가능성이 흐르고 있습니다. 문명은 본래 충돌보다 만남을 통해 더 오래 살아왔습니다.

 

이슬람 문명이 신과 공동체를 하나의 윤리로 엮어 왔다면, 동아시아 문명은 관계와 조화를 통해 인간의 길을 모색해 왔습니다.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지만, 두 문명은 인간을 고립된 존재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이해한다는 점에서 깊은 공명을 이룹니다. 그 공명은 오래전 실크로드 위에서 이미 한 차례 울려 퍼진 적이 있습니다. 그 길 위에서 인간은 낯선 타자를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배움의 대상으로 받아들였고, 그 과정에서 세계는 넓어지고 깊어졌습니다.

 

오늘의 세계가 다시 그 길을 필요로 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교역의 회복이 아니라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의 전환일 것입니다. 전쟁이 상대를 지워버림으로써 안전을 확보하려 한다면, 화해는 상대를 이해함으로써 함께 살아갈 가능성을 엽니다. 이때의 이해는 동일함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다름을 인정하면서도 그 너머의 공통된 인간성을 발견하는 일입니다. 동아시아의 사유가 말하는 ‘관계 속의 인간’과 이슬람 전통이 강조하는 ‘신 앞의 인간’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리고 어떻게 함께 살아갈 수 있는가. 이 질문 앞에 전쟁은 언제나 미완의 답변에 머물 뿐입니다.

그럼에도 세계의 여러 곳에서는 여전히 만남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학문과 예술, 일상과 신앙에서 사람들은 서로를 이해하려 애쓰고 그 노력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다리를 놓아 갑니다. 그 다리는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총성과 폭발은 순간이지만, 이해와 공감은 오래 남기 때문입니다. 모래 위에 다리를 놓는 일은 덧없어 보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인류의 문명은 언제나 그러한 덧없음 속에서 길을 만들어 왔습니다. 누군가는 무너질 것을 알면서도 다리를 놓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 위를 건너 새로운 세계를 만났습니다.

테헤란로는 바로 그 다리의 한 형태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하나의 거리이지만, 그 아래에는 사막과 한반도를 잇는 시간의 흐름이 잠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그 위를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지만, 그 길은 우리보다 오래된 기억을 품고 우리를 지나가고 있습니다. 사막의 바람은 여전히 거칠게 불고 세계는 여전히 불안합니다. 그러나 그 바람 속에서도 인간은 다시 길을 만듭니다. 이해하려는 작은 시선, 공존을 향한 미세한 움직임이 모여 또 하나의 다리를 놓습니다. 그 다리를 건너는 순간, 문명은 다시 서로를 비추고, 전쟁의 시대는 조금씩 인간의 시대로 물러나기 시작할 것입니다. [철학자 김한식의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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