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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일의 기획시리즈 15] 양날의 권력과 변덕스러운 민심.. 이때 필요한 지도자의 조건은 절제와 관용..

  • 유재일 교수 기자
  • 입력 2026.04.07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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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날의 칼(유재일).png
권력은 영원한 양날의 칼인가?

 

〔기획시리즈 15〕 통합정치와 리더십

- 통합정치와 관련한 정치지도자의 절제와 관용 -

 

유재일(사회공헌연구소 대표)

 

정치지도자는 민심을 따라야 하지만, 민심은 때로는 가변적

 

성공하는 정치지도자들은 대개 정치를 좋아하고 권력을 사랑하면서도, 정치의 이중성과 권력의 양면성을 잘 알고 있다. 정치가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고 사람들의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점에서 보람과 공명(功名)을 안겨주는 일이다. 그러나 정치가 마치 산정을 향해 끊임없이 올라가야만 하는 시지프(Sisyphe)의 숙명처럼, 투쟁하고 통합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적과 동지를 가르고 은원(恩怨)을 낳는 부조리한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또한 권력이 사람들에게 가치와 이익을 부여하거나 박탈하는 방식으로 영향력을 행사해 정치가 의도한 목적이나 공공선을 실현하는 합목적성 수단이라고 여긴다. 동시에 권력이 마약과도 같이 정치에 안주하는 사람을 타락시키기도 하고, ‘양날의 칼’(double-edged sword)이 되어 자칫 잘못 다루면 자신을 파멸로 이끌 수 있다는 점을 안다.

 

권력을 추구하는 대부분의 정치인은 그것의 속성을 나름대로 인식하고 있다. 권력은 생에 대한 의지의 원천이자 인정투쟁의 수단으로 하늘의 뜻이나 운명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난한 투쟁과 통합의 과정 속에서 자신의 생명과 재산과 이름을 걸고 쟁취한 결과물이다. 권력의 획득은 전쟁, 혁명, 사회운동, 선거 등에서 승리함으로써 이뤄지지만, 세밀하게 보면 지도자의 헌신과 동지 및 추종자의 열의, 그리고 무엇보다 민심에 달려 있다. 특히 민심은 에드워드 기번(1737∼1794)이 <로마제국 쇠망사>(1788)에서 “언제나 유능한 뱃사람의 편이다”라고 가리킨 바람과 파도와 같으며, 김수영(1921∼1968)이 <풀>(1968)에서 “바람보다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고 읊은 풀잎과 같은 존재이다.

 

가끔 정치적 처세가 화제가 될 때, 시바 료타로(1923∼1996)의 소설 <功名が辻>(공명의 갈림길, 1965)을 원작으로 한 동명의 NHK드라마(2006)가 자주 거론된다. 평범한 출신이지만 지혜로운여주인공 치요(1557∼1617)는 세키가하라 전투(関ヶ原の戦い, 1600)를 앞두고 기존 강자인 도요토미 히데요시(1537∼1598) 세력과 신흥 강자인 도쿠가와 이에야스(1543∼1616) 세력 사이에서 어느 편에 설 것인지 결단해야 하는 남편 야마우치(1546∼1605)에게‘신의(信義)와 민심의 갈림길’에서 민심을 따르라고 귀띔한다. 전장에서 잠시 관망하던 남편은 마침내 도쿠가와 진영에 합류하고, 이후 한 성의 영주인 다이묘(大名)가 되어 공명을 얻게 된다. 이 이야기가 전하려는 메시지는 정치행위자가 공명을 얻으려면 민심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선을 바꿔볼 필요가 있다. 민심은 과연 무엇에 의해 만들어지는가?

 

세익스피어.webp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초상화

 

셰익스피어(1564∼1616)는 희곡 <줄리어스 시저>(The Tragedy of Julius Caesar, 1599)에서 민심이 권력의 향방을 결정짓지만, 동시에 정치행위자의 선택에 따라 얼마든지 흔들릴 수 있음을 비극적으로 보여준다. 시저(B.C.100∼44)가 암살당할 때 “그대마저?”라고 외마디만 나올 정도로 믿었던 브루투스(B.C.85∼42)는 시저의 시신이 운구된 광장에서 시민들에게 “내가 시저를 살해한 것은 시저를 덜 사랑해서가 아니라, 로마를 더 사랑했기 때문이요”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호소한다. 이어 한때 시저의 죽음이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었던 안토니우스(B.C.83∼30)는 “여기 시저의 유언장이 있소. 모든 로마 시민들에게 75 드라크마씩 증여하라는 내용이오”라는 사실을 교묘하게 알리며 분위기를 반전시킨다. 그 순간 민심은 공화국의 와해를 걱정하면서도 안토니우스에게 기울게 된다. 셰익스피어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마도 이것이 아닐까? 민심이 때로는 집단적 가치나 공익보다는 개별적 이익이나 사익에 의해 움직이며, 그만큼 가변적이고 변덕스럽다는 것. 사실 역사는 이 같은 민심의 속성을 정확히 읽어낸 자가 최종적으로 권력을 거머쥐게 된다는 사실을 여러 차례 입증해 왔다.

 

정치의 갈림길에서 절제의 미학

 

민심이 가변적이고 변덕스럽다고 해서 이중적이고 양면적이라고 볼 필요는 없다. 민심은 사람들의 생각과 삶이 바뀌는 만큼 끊임없이 변하고, 시시각각 달라지는 세상과 환경에 따라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요동친다. 그렇기 때문에 민심을 좇아야 하는 정치지도자는 그것의 가변성과 변덕스러움을 탓하지 말고 겸허히 받아들이기를. 이러한 맥락에서 정치지도자에게 요구되는 덕목 중 첫 번째가 절제(節制, temperance)이고, 두 번째가 관용(寬容, tolérance)이 아닌가 본다. 먼저 절제에 대해 생각해 보자.

 

아리스토텔레스 1-1.jpeg
아리스토텔레스

 

절제는 종교 영역과 윤리학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덕목으로 자기 통제(self-control)나 중용(中庸, mesotēs)과 같은 의미로 인식되어 왔다. 자사(子思, B.C.483~402)가 편집한 <중용>에서는 희노애락(喜怒哀樂)의 감정이 절도에 맞도록 하는 것을 중절(中節)이라고 하는데, 이것이 절제의 의미와 가깝다. 아리스토텔레스(B.C.384∼322)는 <니코마코스 윤리학>(Ethica Nicomachea)에서 열 두 가지의 감정과 행위 가운데 ‘즐거움과 고통’의 감정이 지나침이나 모자람이 아닌 중용일 때를 특별히 절제(sōphrosynē)라고 보았다. 어찌 보면 절제라는 개념은 그 반대편에 있는 ‘무절제’를 떠올리면, 어렵지 않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절제는 무절제를 훈련(practice)을 통해 바로 잡아가는 과정에서 길러지는 일종의 습관이자 성품인 셈이다.

 

정치지도자의 절제를 논할 때, 이를 윤리 영역에만 국한하지 않고 정치 영역으로 확장해 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정치지도자의 위치에 오른 정치행위자라면, 일정 수준의 성격적 탁월성을 갖추고 있다고 전제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정치지도자의 절제는 정치적 절제(political temperance)라는 표현을 써도 무방할 것이다. 물론 이는 엄밀한 개념적 정의라기보다는 경험과 관찰에 근거한 조작적 정의에 가까울 수밖에 없다. 이를 바탕으로 보면, 정치적 절제란 과도한 힘(excessive force)을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정치적 편안함(political comfort)을 만들어내는 통치 방식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 같은 통치 행태는 정치나 국정이 공화주의와 민주주의의 원리에 입각해 운영된다면, 비교적 자연스럽게 나타날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공화주의 전통이 깊고 민주주의 제도가 잘 갖춰진 국가들조차도 정치적 절제가 부족하거나 미흡한 정치적 무절제로 인해 적지 않은 갈등과 분열을 겪고 있다.

 

그렇다면 정치적 절제를 어떻게 실천을 통해 습득할 수 있을까? 이는 윤리 영역에서와 마찬가지로, ‘정치적 무절제’를 개선하는 과정에서 접근할 수 있다. 동시대의 정치현상에서 관찰되는 정치적 무절제는 편의상 다음과 같이 네 가지 유형으로 정리해 볼 수 있다. ① 인치(人治, rule of man), 즉 법의 과잉 적용이나 선택적 적용, 그리고 정실주의, ② 과도한 행정권(excessive executive power) 행사, 즉 의회 경시와 사법부에 대한 압박, ③ 공론장 위축(control of the public sphere), 즉 언론인에 대한 공격과 지식인의 진영화, ④ 정치보복(political vendetta), 즉 반대 세력의 악마화와 연좌제 적용 등이다. 이들 유형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서는 최근에 널리 읽히고 있는 책들을 참고하면 좋을 듯하다. 즉 스티븐 레비츠키(1968~)와 다니엘 지블라트(1972~)의 공저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How Democracies Die, 2018)와 후속편 <어떻게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Tyranny of the Minority: Why American Democracy Reached the Breaking Point, 2023), 벤 앤셀(1977∼)의 <정치는 왜 실패하는가>(Why Politics Fails, 2023) 등을 들 수 있다.

 

잘 알다시피, 정치적 무절제는 정치지도자의 독선적 리더십과 일탈(逸脫)적 행태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러한 현상이 용인되거나 강화되는 데에는 정치문화, 정치제도, 정치관행 등과 같은 구조적 요인들이 근본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렇기 때문에 정치적 무절제는 비록 과도한 힘이 행사되고 정치적 편안함이 훼손되더라도, 정치지도자에 대한 도덕적 이미지나 정치적 환상이 남아 있는 한 단기간 민심의 변화를 촉발하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역설적이지만, 결국 민심의 행방은 정치지도자의 윤리적 수준과 그가 내리는 정치적 선택에 달려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 번째는 절제가 있는 척하는 감성 정치와 이미지 전략에 기대는 것이다. 하지만 이 방안은 정보가 넘쳐나는 오늘날의 환경에서는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다음으로 생각할 수 있는 방안은 윤리적 절제를 끊임없이 훈련해 습득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 정치의 속도와 경쟁 속에서 굳어진 습성을 바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마지막으로 남은 길은 정치적 무절제를 하나씩 개선해 나가는 것이다. 이 방안도 정치구조의 제약성과 이미 형성된 정치지도자의 윤리적 한계 때문에 실천하기가 결코 만만치 않을 것이다. 다만 민심의 가변성과 변덕스러움이 어디에서 오는가를 깨닫는다면, 적어도 가능한 범위 내에서 최선의 길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관용은 정치지도자의 가장 우아한 품위

 

흔히 정치적 무절제와 관련해 간과되기 쉬운 사안 중 하나는 정치보복이 아닐까 한다. 복수 심리는 인간 마음 속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어두운 열정인 증오’와, 개인이나 공동체에 대한 부당한 행위에 대해 응징을 보여주는 ‘날 것 그대로의 정의’ 사이 어딘가에서 싹튼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가장 섬뜩하면서도 처연한 복수 사례는 앞에서 거론했던 안토니우스와 오자서(伍子胥, 미상∼B.C.485)의 서사가 아닌가 본다.

 

플루타르코스(46경∼120경)의 <영웅전>(115경)에 따르면, 안토니우스는 시저의 최대 라이벌이었던 키케로(B.C.106∼43)를 암살하고, 그의 머리와 자신을 비난하는 글을 썼던 오른손을 잘라 공화정의 연단에 내걸고 기뻐했다. 사마천(司馬遷, B.C.145∼90)의 <사기>(B.C.93)에 따르면, 오자서는 자신의 부친과 형제가 초나라의 평왕(平王, 미상∼516)에게 살해되자 오나라에 몸을 의탁해 초나라를 멸망시키고, 평왕의 무덤을 파헤쳐 시체를 꺼내 채찍으로 300번 내리치는 이른바 굴묘편시(掘墓鞭屍)를 자행했다. 물론 두 사람 모두 통쾌한 복수와 설욕을 이뤘지만, 방종에 빠지고 순리를 거스른 끝에 결국 민심을 잃고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는 점은 씁쓸한 교훈으로 남는다.

 

복수 문학의 백미로 꼽히는 알렉산드로 뒤마(1802∼1870)의 <몬테크리스토 백작>(Le Comte de Monte-Cristo, 1845)에서도 복수는 단순한 통쾌함과 희열감을 넘어 화해의 카타르시스(katharsis, 淨化)와 용서의 의미까지 담아낸다. 뒤마가 “인간의 지혜는 오직 이 두 마디 속에 있다고. 기다려라, 그리고 희망을 가져라!”라는 위로와 치유를 담은 마지막 구절을 남긴 것은, 결국 사랑만이 복수를 유일하게 잠재울 수 있다는 깊은 울림을 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비록 소설이 허구의 이야기이지만, 이런 이야기가 과거에도 있었을 것이고, 언젠가는 현실에서 나타날 수도 있다는 기대를 품는다고 해서 비웃을 일은 아닐 것이다.

 

정치보복을 스스로 자제한다는 것은 정치적 절제를 받아들이는 일이다. 이러한 절제가 반복되어 습관이 되고 성품으로 자리잡게 된다면, 그것은 자연스럽게 관용이라는 정치적 덕목으로 승화될 수 있다. 관용은 역사적·사회적 맥락 속에서 형성된 관념이다. <옥스퍼드 사전>(Oxford English Dictionary)은 관용을 “자신과 다르거나 동의하지 않는 행동과 신념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the willingness to accept)”으로 정의하고 있으며, 유네스코(UNESCO)의 ‘관용의 원칙에 관한 선언’(Declaration of Principles on Tolerance, 1995)은 이를 “타인의 보편적 인권과 자유를 인정하는 적극적인 태도이자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존중”으로 정의한다. 대체로 관용은 종교적·철학적·법적·정치적 맥락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각국의 ① 역사적·문화적 특성, ② 사회경제적 발전 및 교육 수준, ③ 민주주의 지수(democracy index), ④ 차별과 혐오의 정도 등에 따라 그 실제 기능도 달리 나타난다. 여기서는 정치적 덕목으로서 관용을 “반대하는 개인이나 집단을 억압하지 않으며, 생각이 다른 국민일지라도 포용하는 태도”라고 정의하고자 한다.

 

이렇게 본다면, 관용 역시 절제와 마찬가지로 ‘윤리적 관용’과 ‘정치적 관용’으로 나눠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정치적 절제가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정치적 무절제를 개선하는 데 초점을 둔다면, 정치적 관용은 ‘정치적 불관용’을 거부하는 데 그 의미가 있다. 이 점에서 절제가 기존 법적 체계 내에서 이뤄지는 소극적인 행위 양식이라면, 관용은 기존 법적 체계를 넘어서는 적극적인 행위 양식인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하다. 즉 관용은 ‘힘이 있는 자’나 다수자(majority)가 ‘힘이 없는 자’나 소수자(minority)와 상생하고 공존하려는 의지인 것이다. 정치적으로 풀어 말하면, 국가권력을 갖고 있는 국정 책임자를 포함한 정부와 집권 세력이 야당과 반대 세력을 정치와 사회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인정하고 포용하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

 

한국정치사에서 관용을 이야기할 때 복지국가의 토대를 만든 김대중 대통령을 빼놓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는 1997년 대선 승리 이틀 후 김영삼 대통령과 회담할 때, 과거 자신을 모질게 핍박했던 전두환 대통령과 노태우 대통령의 사면복권을 건의해 관용의 표본과 같은 면모를 보여줬다. 대통령 재임 중에도 두 사람을 몇 차례 식사에 초대해 전임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표했다. 물론 산업화를 이룬 박정희 대통령은 관용과 전혀 무관한 정치지도자로서 정평이 나있지만, 다른 면모도 있다. 그는 5·16 군사정변 직후 두 차례나 장면 국무총리를 반공법 위반으로 기소하도록 해 징역 3년과 집행유예 5년의 형량을 받게 했을 정도로 과도한 정치보복을 한 바 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장면을 사면복권했으며, 그의 장례(1966)를 국민장으로 치루도록 했다.

 

김대중 1-1.jpeg
전직 대통령들을 청와대로 초청한 김대중 대통령

 

관용의 주제와 관련해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를 소환하는 데에는 다소 이견을 있을 수 있다. 그는 조국 교수의 검찰 수사에 대해 “전 가족 몰살 사건은 제 수사 철학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정치수사였다”고 비판했으며, 윤석열 대통령과 그의 부인 김건희 여사의 구속 국면에서는 “아무리 죽을죄를 지어도 부부 중 한 사람은 불구속해야 한다”는 소신을 밝혔다. 다음 <표>는 G20 국가별 근래 50년 이래 정부수반이 형사 사건으로 기소된 현황인데, 한국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국가들이 ‘무죄추정의 원칙’(presumption of innocence)에 따라 불구속 기소를 했으며, 기소 사유가 있을 법한 배우자도 공동으로 기소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이러한 점에 비춰보면, 홍 대표는 정치리더십의 충분조건인 진실, 용기, 관용, 통찰 등의 정치적 덕목 가운데 용기라는 덕목은 확실히 디서플린(disciplin)한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그가 국무총리나 법무부 장관을 맡게 된다면, 관용과 가까운 덕목 역시 디서플린되었음을 보여주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표> G20 국가별 재임중 또는 퇴임후 형사 사건 관련 정부수반의 현황

체제 유형

국가 / 명칭

정부수반(재임기간)

검찰 기소

법원 선고

완전

민주주의

(10∼8.01)

호주

없음

-

-

독일

총리

헬무트 콜

(1982∼1998)

2001. 정치자금법 위반

2002. 배상금 30만 DM 납부 기소 취하

캐나다

없음

-

-

일본

총리

다나카 가쿠에이

(1972∼1974)

1976. 수탁수뇌 및 외환법 위반

1983. 징역 4년·추징금 5억엔

1993. 사망으로 공소 기각

영국

총리

보리스 존슨

(2019∼2022)

2022. 코로나19 봉쇄조치 위반

2022. 벌금 50£ 납부 기소 면죄

불완전 민주주의

(8∼6.01)

프랑스

대통령

자크 시라크

(1995∼2007)

2011. 공금 유용 혐의

2011. 집행유예 2년

니콜라 사르코지

(2007∼2012)

2020. 불법선거자금 조달 혐의

2025. 1심 징역 5년(수감 중)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2017∼21, 25∼)

2023. 34건 중범죄 혐의

2024. 배심원단 유죄 판결

2025. 무조건 석방

한국

대통령

전두환

(1980∼1988)

1995. 반란수괴 혐의 등

1997. 무기징역(수감 2년)·추징금 2,205억원

노태우

(1988∼1993)

1995. 반란수괴 혐의 등

1997. 징역 17년(수감 2년 1개월)·추징금 2,628억원

이명박

(2008∼2013)

2018. 횡령 혐의 등

2020. 징역 17년(수감 2년 6개월)·벌금 130억원·추징금 57억원

박근혜

(2013∼2017)

2017. 직권남용 혐의 등

2020. 징역 20년(수감 4년 9개월)·벌금 180억원·추징금 35억원

윤석열

(2022∼2025)

2025. 내란 우두머리·직권남용 혐의

2026. 1심 무기징역(수감 중)

이탈리아

총리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1994∼95, 01∼06, 08∼11)

2005. 탈세 혐의

2013. 징역 4년(자동 사면 3년, 감형 1년)

인도

없음

-

-

남아공화국

대통령

제이컵 주마

(2009∼2018)

2021. 법정 모독 혐의

2022. 징역 15개월

아르헨티나

대통령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2007∼2015)

2018. 부패 혐의

2025. 징역 6년(가택 연금 중)·

7천억원 해당 재산 압류

브라질

대통령

자이르 보우소나루

(2019∼2022)

2022. 쿠데타 모의 등 5개 협의

2025. 징역 27년 3개월(재심 신청 중)

인도네시아

대통령

수하르토

(1967∼1998)

2000. 부패 혐의

2002. 고령으로 기소 중지

혼합주의

(6∼4.01)

멕시코

없음

-

-

튀르키예

없음

-

-

권위주의

(4∼0)

중국

당총서기

자오쯔양

(1987∼1989)

1989. 중국공산당 기율 30개 위반

1989. 가택 연금

사우디아라비아

없음

-

-

러시아

없음

-

-

* 국가순은 Economist Intelligence Unit가 발표(2025. 2. 27)한 ‘민주주의 지수’의 순서임.

* 중국공산당 총서기인 자오쯔양(1919∼2005)은 당 기율검사위원회에서 징계를 받았음.

출처: https://www.google.com/search(2026. 3. 31).

 

개인적 예감이지만, 필자는 이재명 대통령이 조만간 김건희 여사를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도록 하는 방향으로 조치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이는 그가 사람의 고통에 대한 깊은 연민과 실용주의를 중시하는 기풍을 지닌 정치지도자로서 관찰되기 때문이다. 관용은 본래 로고스(logos, 이성) 영역보다는 에토스(ethos, 정서) 영역에 속하는 성정(性情)에 기반한 덕목이기에 그 가능성은 낮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치지도자에게서 가장 위대한 업적이 뭐니 뭐니 해도 국민통합이라고 한다면, 관용은 그에게서 가장 우아한 품위일 것이다. 부디 여·야 정치지도자들은 ‘공명의 갈림길’에서 민심을 따르되, 민심은 셰익스피어의 <헨리 5세>(Henry Ⅴ, 1599)에 나오는 “관용과 잔인함이 내기하면 항상 관용 쪽이 승리한다”는 말을 궁극적으로 따른다는 사실을 새기길 바란다.

 

유재일 1-1.jpeg

 

필자 유재일 교수는 한국정치와 정당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해온 정치학자이다. 대전고를 나와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30여년간 대전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를 지내면서 국회도서관장, 대전세종연구원장을 역임하였고, 한국정치학회 부회장,한국정당학회장, 한국지방정치학회장을 지냈다. 아울러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회 위원,국회의장자문위원회 부위원장,국회헌법개정특별위원회 자문위원 등을 맡아 국정운영에 대한 실무경험도 쌓았다. 현재 사회공헌연구소 대표로 활동 중이며, 최근에 발간한 대표 저서로 『통합정치와 리더십』(2024, 운주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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