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의관 정치칼럼 1] 미국의 명문 시카고대에서 14년에 걸쳐 정치학 석사-행정학 석사-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중견 정치학자 장의관 국민대학교 정치대학원 교수가 굿리더뉴스에 정치칼럼을 연재한다. 그는 작금의 한국정치에 대해 따뜻하면서도 날카로운 시선으로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한다.
1류 국민과 3류 정치인의 역설
한 정치인이 사망 후 저승길에서 옥황상제와 대면하였다. 옥황상제는 너그럽게도 죽은 정치인에게 천당과 지옥을 모두 경험한 후 한 곳을 선택할 기회를 주었다. 정치인은 먼저 천당을 경험해 보기로 하였다. 천당은 사람들이 평온한 삶을 누리는 화목한 곳이었다. 하지만 천당은 정치인에게 기대한 만큼 특별한 곳은 아니었고, 다소는 삶이 무미건조하고 지루할 수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정치인은 뒤이어 지옥을 방문하였다. 이곳은 천당보다 혼란하고 갈등이 상존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더 나은 세상을 약속하는 수많은 변화의 외침이 가득한 동적인 곳으로, 미래에 대한 전망은 천당보다 훨씬 밝아 보였다.
옥황상제를 다시 대면한 정치인은 지옥을 선택하였다. 옥황상제는 이 결정이 번복될 수 없음을 강조했지만, 정치인은 자신의 결정을 고수했다. 지옥으로 다시 보내진 정치인은 자신이 마주친 지옥의 모습이 이전에 자신이 본 것과는 너무 달라서 깜짝 놀랐다. 지옥에서 더 나은 세상을 약속하는 이들의 기치는 그저 허황된 거짓말로 자신의 사익을 철저히 감춘 위선이었다. 미래에 대한 장밋빛 전망들은 공허한 눈속임이자 실현 가능성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당혹한 정치인은 지옥의 간수에게 왜 현재 지옥의 모습이 이전에 자신이 방문했던 지옥의 모습과 다른지를 물었다. 간수는 퉁명스럽게 답하였다. “전혀 달라진 것이 없소. 단지 이전에는 당신이 정치인의 신분으로 방문했던 것이고, 이제는 유권자의 신분으로 살아야 하는 것뿐이오.”
앞선 유머조차도 정치인은 당연히 국민을 배반한다는 전제를 토대로 한다. 사익에만 몰두하는 교활한 정치인과 거듭 속임을 당하는 어리석은 유권자라는 대칭적 패러다임은 우리에게 꽤나 친숙하다. 혹자는 말한다. “우리나라의 고질적 문제점은 국민은 1류인데 정치인이 3류라는 사실이다.” 국민은 어질고 착한데, 사리사욕과 권모술수에 능한 질 낮은 정치인들이 나라를 망치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적 혼란과 역기능의 주된 책임이 정치인에게 있음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이러한 정치적 문제에 대해 국민들은 진정 무관한 것일까? 문제 많은 정치인에게 계속 표를 던지는 이들은 과연 누구인가? 우리 정치의 비민주성을 지속적으로 탓하면서 유권자 자신이 민주주의에 무지하고 또한 계속 민주주의를 배신하는 사고와 행동을 지속하는 것은 아닌가? 유권자의 어리석음은 단순히 순진무구함의 결과일까? 아니면 유권자 자신이 어리석음을 스스로 선택한 것일까?
여러분은 국민은 1류인데 정치인이 3류라는 말이 적절하다고 믿는가? 국민이 1류인데 어떻게 3류 정치인이 활개 칠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리 정치 무대에서 자질을 결여한 일부 3류 정치인들이 존재했음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문제는 이들 3류 정치인이 존재한다면, 그 옆에는 반드시 그들을 지지하고 선택하는 3류의 국민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많은 이가 인정하고 싶지 않는 사실일 수 있지만, 그 나라 정치인의 수준은 정확히 그 나라 국민의 수준을 반영한다.
모든 국민이 진정으로 1류라면 그보다 질이 낮은 정치인이 번성하기는 힘들다. 행여 일시적으로 일부 정치인이 국민을 현혹시키며 선거에서 승리했을지는 몰라도, 현명한 1류 국민들에게 이러한 현혹이 오래 작동할 수 없다. 반대로, 국민 대다수가 3류인 국가에서는 1류 정치인의 부상을 기대하기 어렵다. 민주적 정치체제를 유지하는 국가에서 국민들은 자신의 눈높이에 맞는 정치인을 선호한다.
만약 국민의 수준이 2류인 사회에서는 어떠한 일이 발생할까? 국민의 자질보다 미흡한 자질의 3류 정치인들은 자연스럽게 도태될 것이다. 문제는 불행하게도 1류 정치인 역시 2류 국민에 의해 선거에서 선택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2류 국민이 유권자인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적 생존력이 가장 높은 이는 2류 정치인이 될 것이다. 2류 국민들에게 선택받을 확률을 가장 높이고자 희망하는 정치인은 유권자의 눈높이에 맞추어 그 자신이 2류가 되어야 할 것이다.
과거 험난했던 우리의 민주화 과정에서 그 성공의 동력이 많은 국민들의 민주화에 대한 열정과 헌신이었음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이들의 투쟁과 희생 속에서 성장했다는 사실은 우리 국민들의 자질과 역량에 대한 자부심을 갖도록 만든다. 독재의 위정자들과 이에 아부하며 편승하는 수많은 정치인들에게 저항하며 우리의 민주주의를 진전시킨 국민들의 기여를 결코 평가 절하할 수는 없고, 그래서 우리 국민은 1류라는 말로 자부심을 표현하기도 한다.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안착과 더불어 깨어있는 시민층 또한 점차 두터워졌음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의 모든 국민이 민주 시민의 충분한 자질을 갖추었다고 평가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정치인을 3류라고 싸잡아 비하하고 때로는 이들을 희화화하는 것으로 우리 국민의 위상이 1류로 격상되지는 않는다. 보편적 가치와 정의의 원칙을 망각하고, 편파적 파당성이나 이해관계 등에 근거하여, 3류 정치인을 선택하고 이들에게 맹목적인 지지를 보내는 일부 국민들 또한 3류 정치의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우리는 21세기 대한민국이 타 국가들의 모범이 되고 타 국가들이 부러워할 1류 정치가 실현되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정치인들에게 1류가 되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1류 정치인들이 이 나라를 이끌기를 우리가 진정으로 희망한다면, 해답은 우리 국민 스스로가 1류 국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의 일부라도 2류나 3류로 남는다면 이들에게 기생하는 2류나 3류 정치인은 끊임없이 존속할 것이다.

필자 장의관 교수
미국 시카고대학교(University of Chicago)에서 정치학 석사,행정학 석사와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이화여자대학교 정치학과 교수와 국립통일교육원 교수를 역임하고, 현재는 국민대학교 정치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 전공분야인 '정치이론' 분야를 중심으로 다양한 연구 저술이 있으며, 일반인을 위한 인문교양 저서로는 『대통령의 탄생: 우리가 몰랐던 민주적 대통령제 바로 알기』, 『흥부의 딜레마: 흥부전과 사회철학의 만남』, 『생각하는 사회: 사회를 만나는 철학 강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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