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

키워드

로그인을 하시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받으실 수 있습니다.

[유재일 기획시리즈 14] 혜성처럼 나타났다가 유성처럼 사라진 정치지도자들의 공통점은..멘토는 왜 꼭 필요한가...

  • 유재일 교수 기자
  • 입력 2026.03.23 11:17
  • 글자크기설정

  • 존슨, 트뤼도, 마크롱, 그리고 루스벨트...나르시시즘 없고 성찰하며 멘토가 있는 정치지도자가 성공한다..

〔기획시리즈 14〕 통합정치와 리더십

- 통합정치와 관련한 정치지도자의 성찰과 설득 -

 

유재일(사회공헌연구소 대표)

 

성공하는 정치지도자에게는 성찰이 필수

 

동서고금을 돌아보면, 통치자들의 영화(榮華)는 무상하고, 권력은 덧없음을 알 수 있다. 다만 그 가운데 일부만이 영예를 남긴다. 그런데 최근 혜성같이 등장했다가 유성처럼 사라졌거나, 또는 사라져가고 있는 비교적 젊은 정치지도자들을 보면 묘한 페이소스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영국의 보리스 존슨 총리(1964∼, 재임 2019∼2022), 캐나다의 쥐스탱 트뤼도 총리(1971∼, 재임 2015∼2025),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1977∼, 재임 2017∼)이 그런 사례다.

 

보리스 존슨 1-1.jpeg
보리스 존슨 전 영국총리

존슨 총리는 어린 시절부터 조지 2세(1683∼1760)를 닮은 ‘세계의 왕’(world king)이 되는 꿈을 꾸었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런던 시장을 8년간 역임하고 임기를 마칠 때쯤 자신을 소재로 한 코미디 연극 Boris: World King을 보며 자신의 꿈을 되새겼고, 기적처럼 3년만에 총리의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정작 유럽연합을 탈퇴하는 브렉시트(Brexit)에 발목을 잡혀 ‘세계의 왕’의 언저리에도 가지 못했다. 그는 보수당 동료의원들에 대한 무례, 잦은 거짓말 시비,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관저 음주 파티 등과 같은 ‘악동’(bad boy) 행태가 반복되면서, 결국 당내 반발에 밀려 총리직에서 쫓겨나다시피 물러났다.

 

튀르도 쥐스탱 총리 1-1.jpeg
쥐스탱 트뤼도 전 캐나다 총리

트뤼도 총리는 정치 입문과 동시에 스타가 된 인물이다. 두 차례 총리를 지낸 부친 피에르 트뤼도(1919∼2000)의 후광, 알렉산더 대왕(B.C.356∼323)의 조각상과 닮은 외모, 미국의 버락 오마바 대통령(1961∼)을 연상시키는 SNS 감성정치가 결합되며 제3당에 머물고 있는 자유당을 단숨에 집권 세력으로 끌어올렸다. 그는 한때 경제이민 확대, 기호용 대마초 허용, 환경정책 강화 등을 통해 진보적 자유주의의 상징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다. 이해충돌과 뇌물 의혹 등 각종 스캔들이 불거지면서 두 차례 총선에서 과반수에 미달해 소수 정부를 이어왔고, 결국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1946∼)이 재집권하자 총리는 물론 정계 자체를 떠나야 했다. 그는 존슨 총리와 마크롱 대통령과 함께 트럼프 대통령을 험담하는 영상이 공개되는 바람에, 백악관으로부터 “이중적 인물”이라고 비난을 받은 적이 있었다.

 

마크롱 1-1.jpeg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마크롱 대통령은 경제 분야 장관직 이외 선출직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신당 돌풍과 정치적 행운을 발판으로 일약 40세에 최고 권좌에 오른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상관이자 전임 대통령인 프랑수아 올랑드(1954∼)의 유약한 이미지를 경계하며, 자신의 이름과 발음이 비슷한, 달콤한 과자 마카롱(macaron)이 아니라 위엄있는 주피터(Jupiter) 같은 통치자로 여겨지기를 원했다고 한다. 나폴레옹(1769∼1821)의 서거 200주년을 계기로 황제의 이미지를 자신에게 투영하려는 시도를 했던 것도 그 연장선이었다. 하지만 낡은 신보수주의적 정책 기조로 “부자들의 대통령”이라는 비판을 낳았고, 2022년 재선에는 성공했지만 2024년 총선에서는 자신이 소속된 정치연합인 앙상블(Ensemble)이 불과 2위(의석률 27.5%)에 그치면서 정치적 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세 사람은 비슷한 시기에 정계에 파란을 일으키며 화려하게 등장했다가, 마치 태양에 가까이 날다가 밀납 날개가 녹아내려 추락한 이카로스(Icaros)처럼 자신의 오만과 어리석음을 뼈져리게 후회했을 것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꽤 분명하다. 비교적 젊고 좋은 교육을 받은 금수저 출신이며, 미디어 정치와 이미지 전략에 능숙해 세련된 포퓰리즘(populism)을 구사하는 데 있어 남다른 재주를 지녔다는 점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공공선을 실현해야 하는 정치의 본령을 잊은 듯,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거나 국정 운영을 비판하는 야당이나 반대 세력을 설득하는 데 소홀했다. 이 같은 한계는 대부분의 정치인이 크고 작게 지니고 있는 ‘나르시시즘’(narcissism, 자기애)이 지나치게 과하거나, 해럴드 라스웰(1902∼1978)이 Power and Personality(권력과 인격, 1948)에서 밝힌 ‘정치적 인격’(politicai personality)이 과도하게 발현된 데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사실 정치지도자의 나르시시즘 자체를 무조건 탓할 수는 없다. 정치 세계는 생존투쟁이나 인정투쟁의 영역이기 때문에, 지나치지 않는 자기애는 오히려 인간적인 면모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또한 정치적 인격이란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이 충족되지 못할 때 그 보상으로 권력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기질이기도 하다. 나르시시즘적 속성은 비단 이 세 사람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자신을 “매우 안정적인 천재”(a very stable genius)라고 자찬(2019)한 트럼프 대통령, 여성들에게 “여덟 명, 또는 그 이상의 자녀를 낳으라”고 촉구(2023)해 러시아의 수호자로 자임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1952∼),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에 관한 시진핑 사상”을 헌법에 명기(2018)토록 한 시진핑 국가주석(1953∼)에게서도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최근 한국의 전임 대통령 일부가 재임 시절은 물론 퇴임 후에도 “모든 것은 역사가 평가한다”는 말을 되풀이하는 것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읽힌다.

 

그렇기에 정치지도자가 정치의 본령을 잊지 않고 나르시시즘에 빠지지 않으려면, 무엇보다 끊임없는 성찰(省察, reflection)이 필요하다. 정치과정이나 국정 운영에 대한 성찰은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121∼180)의 <명상록>(Meditations)이나 당나라 정치인 위징(580∼643)의 <군서치요>(群書治要)에 나오는 주옥같은 조언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권력을 추구하는 정치인에게는 ‘최대의 이익’(maximum benefit) 만큼이나 ‘최소의 위험’(minimal risk)을 고려하는 일이 중요하다. 이는 단순히 윤리적 당위의 문제가 아니라 합리성의 관점에서도 반드시 필요한 덕목이다.

 

성찰은 내적 자발성과 외적 자극이 상호작용해야

 

대체로 정치행위자의 성찰은 다른 영역의 행위자들과 마찬가지로 반성과 자성이 기본이겠지만, 사색과 독서를 통해 평정심을 얻거나, 지혜 있는 사람이나 평범한 시민과의 대화를 통해 균형감각을 기르거나, 명상이나 기도를 통해 직관을 구하는 과정에서 이뤄지기도 한다. 하지만 일부 정치지도자들은 권력을 많이 가질수록 성찰하는 일을 귀찮아하거나 회피하는 경향이 강하다. 나르시시즘이 더욱 짙어지는 데다, 권력 충동인 리비도(libido)의 영향까지 더해지기 때문이다. 때로는 자신의 생각에 부합하는 정보만 골라 취하고, 믿고 싶지 않은 정보는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에 빠지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지도자의 성찰은 내적 자발성과 외적 자극이 서로 맞물릴 때 더욱 실질적이고 효과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 성공했든 실패했든 수많은 정치지도자들의 리더십 사례를 살펴보면, 아래 <표>에 정리한 것처럼 멘토링(mentoring)과 워닝(warning)이라는 외적 자극이 성찰이라는 자기학습 과정에서 무엇보다도 유효하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다만 여기서 멘토링과 워닝이라는 용어나 각 메신저(messenger)의 명칭은 편의상 붙인 것이며, 핵심은 그것이 담고 있는 의미와 역할에 있다. 외적 자극은 성찰 대상의 성격에 따라 멘토링 방식과 워닝 방식으로 나눠 접근하는 것이 실효적이다. 진실, 용기, 관용, 통찰 등과 같은 정치적 덕목에 대해서는 조언이나 지도처럼 포지티브(positive)하게 접근하는 멘토링 방식이 적합하다. 반면 미숙, 폭압, 탐욕, 교만 등과 같은 정치적 악덕에 대해서는 경고나 주의와 같은 네거티브(negative)하게 접근하는 워닝 방식이 어울린다.

 

외적 자극에 의한 성찰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메신저라고 할 수 있다. 멘토링 방식에서는 인성 멘토(character mentor), 처세 멘토(life mentor), 영성 멘토(spiritual mentor) 등 세 가지의 메신저가 필요하다. 각각의 멘토 역할은 다음과 같은 예를 들면, 이해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인성 멘토는 “진실로 나날이 새로워지고 하루하루 새로워지며, 또 날로 새로워지라”(<大學>에서)고 조언할 것이고, 처세 멘토는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고양이는 쥐만 잘 잡으면 된다”(덩샤오핑의 어록에서)고 자문할 것이며, 영성 멘토는 “현생의 선업은 죽은 이후에도 선과로 받을 수 있다”(<숫타니파타>에서)고 충고할 것이다. 멘토의 자격은 멘티(mentee)가 존경하는 지인 중 경륜이 풍부하고 사심이 없는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멘토의 수는 멘티의 내적 자발성에 의한 성찰 정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단 세 명이면 충분하다.

 

워닝 방식에서의 메신저는 개인이 아니라 합의적 논의가 가능한 위원회 조직 형태로 구성된다. 블루팀(blue team), 레드팀(red team), 퍼플팀(purple team), 화이트팀(white team)의 네 가지 경고팀(waring team)이 그것이다. 이 개념들은 원래 군사, 정보기관, 기업 등에서 정책·전략과 사이버 보안을 검증하기 위한 역할 분담 방식에서 비롯되었다. 물론 정치 영역에서는 각 팀의 역할이 명확하게 구분되지는 않지만, 크게 보면 사전 점검과 사후 점검으로 나눠진다. 팀의 수는 ① 의뢰인(client)의 내적 성찰 정도, ② 정치적 위험(political risk)의 정도, ③ 여론조사의 추세 등에 따라 유동적으로 정해질 수 있지만, 적어도 2개 팀을 교차검증 차원에서 운영할 필요가 있다.

 

<표> 정치적 덕목 및 악덕에 대한 멘토링 및 워닝의 유형

성찰 대상

외적 자극

구분

구성

의미

구분

메신저

의미

정치적

덕목

진실

권력을 사익이 아니라 공익을 추구하는 수단으로 여기며, 국민의 삶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태도

멘토링

① 인성

멘토

- 진실한 마음과 태도 조언

- 신언서판(身言書判) 이미지 조언

용기

반대하는 국민을 진심을 다해 설득하되, 책임감을 갖고 결정을 내리는 자세

② 처세

멘토

정치의 본령 자문

진정한 용기와 최선을 위한 타협 자문

공명(功名)의 갈림길 자문

관용

반대세력을 억압하지 않으며, 생각이 다른 국민일지라도 포용하는 태도

통찰

눈앞의 이해득실을 넘어 국가의 미래를 내다보고, 국민의 창의적 아이디어에 귀기울일 줄 아는 능력

③ 영성

멘토

관용과 통찰 자문

인간의 유한성과 인과응보 조언

정치적

악덕

미숙

외침이나 내란을 막지 못할뿐만 아니라 국정수행력을 유지하지 못하는 상태

워닝

 

① 블루팀

정책·전략의 취약성 사전 점검

실현가능성 과대예측 방지

폭압

반대세력에 대한 폭력 행사나 폭력적 위협을 통해 권력을 유지하는 상황

② 레드팀

정책·전략의 취약성 사후 점검

리스크 과소평가 방지

탐욕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을 추구하고, 권력을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행태

③ 퍼플팀

블루팀과 레드팀의 통합

정책·전략의 계획과 개선 연결

교만

지적·도덕적 우월감과 정치적 확신감에서 나오는 겸허함의 결핍이자, 모든 정치적 악덕의 진원지

④ 화이트팀

블루팀·레드팀·퍼플팀의 평가·조정

종합적 워닝

 

여담이지만, 정치학자는 직업 특성상 정치현상의 분석을 통해 정치의 본질을 탐구하는 사람이다. 그만큼 정치 분야의 주요 주제들, 즉 정치의 본령, 권력의 속성, 정치리더십의 조건, 정치적 덕목 및 악덕, 국가 비전 및 국정 과제의 적정성, 국정 운영에 대한 평가 등과 같은 문제 영역에 관해 나름의 전문성을 갖고 있다. 동시에 유기적 지식인으로서 현실 정치에 대한 비판적 대안을 제안해야 한다는 ‘책임 의식’(sense of responsibility)도 지니고 한다. 그런데 선진 국가의 정치지도자들은 정치학자에게 정치적 자문을 구하는 일을 당연하게 여기는 데 비해, 한국에서는 어찌 된 영문인지 국제관계 분야를 제외하고는 정치학자로부터 정치적 조언을 구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아마도 정치학자의 조언이 지나치게 현학적이고 관념적이라고 느껴지기 때문이거나, 잘하는 점을 인정하고 격려하기보다는 잘못을 지적하고 훈계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 아닌가 본다.

 

국정 책임자는 국민과 반대자를 설득해야

 

막스 베버(1864∼1920)는 <소명으로서의 정치>(Politik als Beruf, 1919)에서 정치가의 주요 자질로 열정, 책임감, 그리고 균형적 판단으로 제시하면서, 정치적 선택에 내재된 ‘신념 윤리’와 ‘책임 윤리’ 사이에 있는 깊은 심연과 같은 딜레마에 대해 심오한 혜안을 남긴 바 있다. 그의 논지는 한번 읽어서 단박에 깨치는 돈오(頓悟)의 성격이 아니라, 정치 영역에서 오랜 경험이나 관찰을 쌓아야만 제대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그만큼 그의 논지는 읽는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바가 다를 수밖에 없다. 비록 필자가 박학소재(薄學小才)하지만, 양해를 구하며 나름의 주석을 덧붙여 보고자 한다.

 

막스 베버 1-1.jpeg

 

첫째, 윤리적 지향성을 갖는 정치적 행위에서는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서로 다르고 화해하기 어려운 신념 윤리와 책임 윤리를 동시에 따를 수 있다는 모순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둘째, 신념 윤리는 종교적·도덕적 차원에서 마땅히 존중되어야 하지만, 인간의 실존적 삶을 지키고 개선하려는 정치의 본령을 넘어설 수는 없다. 셋째, 책임 윤리가 모든 결과에 대한 책임이 아니라 ‘예견된 결과’(foreseen consequences)에 대한 책임을 의미하는 것인 만큼, 역설적으로 중요한 정치적 약속이나 국정 과제를 제안할 때는 실현 가능성에 대한 숙고와 반드시 해내겠다는 결기가 전제되어야 한다. 넷째, 정치지도자는 자신의 소명과 책무을 다하기 위해 자신에게 주어진 공권력이나 강제력이라는 이른바 ‘최후의 수단’의 행사를 정당화하더라도, 설득(說得, persuasion)이라는 ‘최상의 수단’을 결코 포기해서는 안된다.

 

잘 알다시피, 설득은 상대방의 믿음, 태도, 행동에 영향을 미쳐 원하는 방향으로 이끄는 소통의 기술이다. 이에 관해 탁월한 지침은 동서고금에 걸쳐 풍부하다. 아리스토텔레스(B.C.384∼322)는 말로 먹고사는 정치인의 필독서인 <수사학>(The Art of Rhetoric)에서 에토스(ethos, 인격 및 신뢰성), 로고스(logos, 논리적 근거), 파토스(pathos, 감정적 호소) 등 세 요소에 기반한 설득 방법을 소개한 바 있고, 한비(B.C.281경∼233)는 제왕학의 고전인 <한비자>(韓非子)에서 ‘설득의 어려움’(說難)을 간파한 바 있다. 로버트 치알디니(1945∼)는 베스트셀러인 <설득의 심리학>(Influence: The Psychology of Persuasion, 1984)에서 여섯 가지의 설득 원칙(상호성, 일관성, 사회적 증거, 호감, 권위, 희소성)을 제시한 바 있다. 대체로 정치 영역에서의 설득은 대상과 쟁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기본적으로 ① 상대방에 대한 인정과 신뢰, ② 대화와 인내, ③ 타협과 양보 등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결실을 맺는다.

 루스벨트 1-1.jpeg

 

흔히 ‘설득정치’(politics of persuasion)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미국 대공황을 극복하고 제2차 세계대전을 승전으로 이끈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1882∼1945, 재임 1933∼1945)이 첫 번째로 소환된다. 라디오를 통한 그의 ‘노변정담’(爐邊情談, fireside chat)은 대통령에 취임한지 8일만에 처음 전파를 탔고, 수많은 청취자들로부터 엄청난 공감과 지지를 이끌어냈다. 노변정담이라는 명칭은 청취자들이 마치 대통령과 화롯가에 둘러앉아서 한가롭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처럼 느끼도록 붙인 것이지만,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연설을 하는 것이기에 ‘라디오 담화’가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는 12년의 재임 기간 동안 모두 31 차례에 걸쳐 노변정담을 했는데, 1회에 대략 15∼25분간 연설했다. 1회 연설을 준비하는 데 4∼5일 걸릴 정도로 내용에 심혈을 기울였고, 연설의 80%를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단어로 구성했다. 이처럼 용의주도한 국민 소통과 더불어 능수능란한 국정 운영에 힘입어 그는 전무후무한 4선 대통령이 되었던 것이다.

 

일반적으로 정치지도자의 설득 대상은 일반 국민만 있는 것이 아니라 외국 정치지도자, 정부 및 의회의 주요 정책결정자, 소속 정당의 구성원, 야당 및 반대 집단 등 그 범위는 넓고 다양하다. 프랑스의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1906∼1996, 재임 1981∼1995)은 실질적인 유럽통합을 실현시키기 위해 독일의 헬무트 콜 총리(1930∼2017, 서독 재임 1982∼1990, 통독 재임 1990∼1998)를 “근 10년 동안 단 한 달도 만나지 않은 적이 없을 정도”<자크 아탈리(1943~)의 C'était François Mitterrand(2005)에서>로 자주 만나, 단일통화인 ‘유로’(Euro)의 발행을 설득해 결실을 맺은 바 있다.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담화’로 잘 알려진 자유민주당의 고노 요헤이 총재(1937∼)는 빙탄불용(氷炭不容)인 일본사회당과의 대연정을 구성하기 위해 무라야마 도미이치 위원장(1924∼2025, 총리 재임 1994∼1996)을 만나, “지금 나라를 구할 수 있는 것은 당신을 총리에 지명하는 일밖에 없다”고 눈물을 흘리면서 호소해(https://www.weblio.jp > content > 河野洋平) 통합정치를 이룬 바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를 도입하기 위해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하지 못한다”고 인식하는 여·야 정치인들과 시기상조라는 이유로 반대하는 경제 관료들을 끊임없이 설득해 복지국가의 토대를 만들어냈다.

 

이처럼 설득정치는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다”라는 속담이나 “Heaven helps those who help themselves”(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경구처럼, 시대적 가치와 과제를 실현하는 데 있어서 단연 ‘최상의 수단’으로 작동한다. 정치지도자가 ‘힘’ 대신에 ‘설득’을 택한다는 것은 그가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는 책임 윤리에 천착하고 있으며, 국민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진실과 반대자를 설득하기 위해 진심을 다하는 용기라는 정치적 덕목을 디서플린(discipline)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국회에서 통과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 개정안(일명 기후위기 약자 보호법)’을 대표 발의한 국민의힘의 조지연 국회의원과, 소속 정당을 책임정당과 국민통합적 정당으로 성장하도록 당원을 설득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의 이언주 최고위원의 행보가 눈길을 끈다.

 

지난 주 이재명 대통령은 ‘단계적 개헌’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개헌은 현 정부가 제시한 123개 국정 과제 중 제1호로 꼽힐 정도로 핵심 중의 핵심 과제다. 다만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이 과제가 ‘예견된 결과’를 충분히 상정하고 제안된 것인가 하는 점이다. 개헌은 여·야 간의 합의가 없으면 성사될 수 없기 때문이다.

 

얼마 전 국정 과제 제49호인 ‘5극(초광역권) 3특(특별자치도)’ 구상의 일환으로 추진되었던 대구경북과 충남대전의 행정통합이 이해당사자들 간의 갈등 속에서 결국 좌절되었다. 지난 해 12월 3일 이재명 대통령이 그동안 일부에서 제기했던 ‘대전시-충남도 행정통합’을 지지하면서 전국적 이슈로 확대된 이 사안 역시 ‘예견된 결과’를 충분히 헤아리지 않은 채 추진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행정통합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 데에는 여·야 지도부의 무능과 무책임이 분명히 한몫했지만, 정부수반이나 국무총리가 이해당사자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의견을 듣고 끈기 있게 설득할 필요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2020)에 나오는 주인공들처럼, 지방 사람들도 서울 사람들도 모두 조금 더 복이 많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유재일 1-1.jpeg

 

필자 유재일 교수는 한국정치와 정당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해온 정치학자이다. 대전고를 나와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30여년간 대전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를 지내면서 국회도서관장, 대전세종연구원장을 역임하였고, 한국정치학회 부회장,한국정당학회장, 한국지방정치학회장을 지냈다. 아울러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회 위원,국회의장자문위원회 부위원장,국회헌법개정특별위원회 자문위원 등을 맡아 국정운영에 대한 실무경험도 쌓았다. 현재 사회공헌연구소 대표로 활동 중이며, 최근에 발간한 대표 저서로 『통합정치와 리더십』(2024, 운주사)이 있다.    

추천뉴스

  • [굿리더뉴스] 서울시내 골목골목으로 몰려드는 해외 관광객
  • [굿리더뉴스] 세계 물리학계를 깜짝 놀라게 만든 한국의 과학자..
  • [굿리더뉴스] 한미동맹, 정보공유 문제 없나?
  • [굿리더뉴스] 백악관 대변인은 반드시 우파 금발의 미인이어야 한다!?
  • [굿리더뉴스] 주춤하던 광주 반도체, SK 최태원이 다시 속도 낸다..
  • [굿리더뉴스] 국힘 6선 조경태 의원이 갑자기 노무현 묘역을 참배한 까닭은?
  • [무주=남상채]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전북 무주의 반딧불이 축제...
  • [굿리더뉴스] 여권 강경파에게 던지는 이대통령의 초고강도의 레드카드..
  • [굿리더뉴스] '벌거벗은 트럼프', 유럽의회에 등장하다..
  • [굿리더뉴스] 손흥민, 차범근을 뛰어넘었다..

포토뉴스

more +

해당 기사 메일 보내기

[유재일 기획시리즈 14] 혜성처럼 나타났다가 유성처럼 사라진 정치지도자들의 공통점은..멘토는 왜 꼭 필요한가...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