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쪽끝 해남의 바람소리,물소리, 꽃과 숲, 사찰 그리고 역사의 숨결까지...
[굿리더뉴스] 중견 경영학자인 필자 김상국 경희대 명예교수는 지금 해남에 머물고 있다. 그는 특유의 혜안과 감성으로 한반도의 끝인 '해남'의 모든 것을 담아냈다. 이 글을 읽어보면, 에세이인지 유적 답사기인지 모를 정도로 감성과 역사가 다정하게 교감하고 있다. 그래서 굿리더뉴스는 필자의 의중과는 상관없이 글 제목을 '해남의 모든 것'으로 정해보았다. 좀 딱딱하긴 하지만, 이름하여 '경영학자가 해남 현지에서 보는 해남의 모든 것'이라고 할까?
'경영학자가 보는 해남의 모든 것'
나는 지금 땅끝 해남, 그리고 땅의 시작 해남에 와있다. 시작과 끝은 항상 연결되어 있는 법이니 땅의 시작 해남이라고 해도 괜찮을 것 같다. 그리고 많은 문물들이 바다를 통해 우리나라에 전달되었기 때문에, 육지에서 보면 땅끝이지만, 바다 쪽에서 보면 땅의 시작 해남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합당할 것 같다.
1. 『땅끝』 해남, 그리고 『땅의 시작』 해남
우리 민족사에 불교는 아주 큰 영향을 미쳤다. 삼국시대 불교 전파 방식에는 여러가지 설이 있다. 고구려는 소수림왕 2년, 전진의 왕 부견이 승려 순도(順道)를 보내 전파하였다는 명확한 사료가 있다. 삼국 중에서 가장 늦게 불교를 도입한 신라도 고구려 사람 아도(阿道)에 의해 전파되었고, 이차돈의 순교로 법흥왕 14년 (527년)에 공식 인정되었다. 그러나 백제 불교는 북방이 아닌 남방을 통해 들어왔다. 침류왕 1년 (384년), 동진의 서역 승려 마라난타(摩羅難陀)에 의해 전달되었다고 한다. 그는 해남 바로 옆 영광(靈光) 법성포(法聖浦)를 통해 백제 땅에 도착하였고, 그가 세운 최초의 절이 바로 영광 불갑사(佛甲寺)다.
여기까지는 정사의 기록이다, 그러나 영광 바로 옆 해남에는 또 하나의 전설이 있다. 바로 달마산 ‘미황사(美黃寺)’다. 미황사는 이름처럼 아름다운 절집이다. 그리고 미황사 전설도 백제 불교는 남방에서 전래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인도 우전국에서 출발한 돌배가 해남 달마산 아래 포구에 닿았고, 꿈에 나타난 신인이 배 안의 경전과 불상을 검은 소에 싣고 가다가, 소가 누워 일어나지 못하는 자리에 절을 세우라고 하였다. 그래서 소가 걷다가 일어나지 못한 자리에 세운 절이 바로 미황사다.
그런데 미황사의 전설은 가야 허황후의 전설과 매우 흡사하다. 허황후(허황옥)는 수로왕 7년 인도 아요타국에서 배에 경전과 불상 그리고 돌탑인 파사탑을 싣고 출발하여 가야 땅에 도착하였다. 그녀는 수로왕비가 되어 10명의 아들과 2명의 딸을 두었다. 첫째 아들, 거등왕은 김해 김씨 시조가 되었고, 아들 중 일곱은 출가하여 성불하였다. 그리고 그 일곱 형제가 성불한 절이 바로 지리산 아자방(亞字房)으로 유명한 ‘칠불사(七佛寺)’다.
인도에서 출발, 돌배, 파사석탑, 불경과 불상 등 두 설화의 내용은 마치 판박이 한 듯이 비슷하다. 이 두 전설이 뜻하는 바는 백제와 가야 불교는 북방 즉 중국을 통해 들어오지 않고, 인도를 통해서 직접 들어 온 남방불교라는 뜻이다.
그래서 땅끝 해남은 땅끝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외래문화가 들어오는 『땅의 시작』 해남도 되는 것이다.
2. 『땅끝』 해남과 토문재
내가 머무르고 있는 곳은 토문재(吐文齋)라는 곳이다. 이름 그대로 ‘글(文)을 토(吐)해내는 정결한 집(齋)’이라는 뜻이다. 해남군 송지면에 인송(仁松) 박병두 선생이 사재로 세운 2,300여평의 전통 한옥으로서, 경제적 여력이 크지 않은 문인들을 위해 무료로 운영되는 창작 공간이다. 그는 지금도 소설가로서 시나리오 작가로서 활동하고 있는 현역 작가다.
그런데 집도 훌륭하지만, 위치가 대단하다. 해남 다도해를 거리낌 없이 내려다볼 수 있는 언덕 위의 집이다. 날이 따뜻한 날 인송정(仁松亭)에서 보는 다도해는 참으로 마음을 평화롭게 한다. ‘경치에 너무 취한 나머지 시 쓰는 것을 잊어버렸다’는 이태백과 사령운(謝靈運)의 고사가 생각날 정도다.
그런데 요즘은 3월이어서 그런지 날씨가 그리 쾌청하지 못하다. 어쩌다 맑은 날도 있지만 대부분 흐리고, 맑은 날에도 바람이 세차게 분다. 따뜻하고 고요한 날의 작년 기억이 무색해진다. 그러나 달리 생각하면 이 맛파람이 나에게는 새로운 창작을 하게 하는 것 같다.
3. 바람 소리를 사랑한 우리 조상님들
(1) 바람 속도에 따른 바람 소리의 변화
내가 살던 시골집도 우리나라 대부분 시골 마을들이 그렇듯이 뒤에는 작은 언덕이 있고, 앞에는 넓은 뜰, 그리고 집 바로 뒤에는 대나무 숲과 큰 소나무가 많았다. 평상시에는 평범한 모습이지만, 지금처럼 바람이 세게 부는 날에는 여러가지 못 듣던 소리가 들린다. 그중에서 대나무의 넓은 잎을 스치며 지나는 바람 소리와 소나무의 뾰족한 잎을 지나면서 내는 바람 소리는 매우 다르다. 그것도 바람이 적당한 세기일 때 나는 소리와, 강한 바람이 불 때 나는 소리는 매우 다르다.
우리 집안 옛 어르신들은 가끔 이런 말씀을 하셨다. “오늘따라 송뢰(松籟) 소리가 매우 듣기 좋구나.” 그때야 그것이 무슨 말씀인지를 몰랐지만, 이제사 나도 나이가 드니 그 소나무를 지나는 바람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겠고, 그 음색의 차이를 구분할 수 있을 것 같다.
(2) 바람길에 따라 달라지는 ‘소나무 숲’ 바람 소리
우리 선조들은 군자의 상징인 소나무와 대나무를 특히 사랑하셨다. 그래서 인지 시서화의 재료뿐만 아니라, 대나무 숲과 소나무 숲을 지나는 바람 소리도 좋아하셨다. 조금 전에 말한 송뢰(松籟)가 대표적이다. 송풍(松風)이라는 평범한 단어도 있지만, 송뢰는 그것과는 좀 다르다. 바람이 어느 정도 이상 강하게 불면 소나무 숲에서는 마치 파도 소리 같은 “쏴아~, 쏴아~”하는 색다른 소리가 난다. 이런 소리를 바로 송뢰라고 한다. 송뢰는 왠지 약간 쓸쓸한 소리이고, 조금은 과거의 아련한 기억을 상기시켜 주는 소리다. 그러면서도 왠지 외롭지만은 않은 평화로운 마음도 들게 한다. 참 복합적인 감정이다.
또한 송락(松落)이라는 말도 있다. 겨울이 되면 눈이 내린다. 그런데 어떤 때 눈이 너무 많이 내리면, 소나무 가지가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딱”하면서 매우 날카로운 큰 소리를 내면서 순간에 부러진다. 그 “딱”하고 부러지는 소리를 송락이라고 한다. 소리도 소리지만 그 부러진 소나무가 갖는 풍경이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뜻이 꺾인 사대부의 모습을 상징하기도 하여, 그림으로도 자주표현된다(그림 1 참조).
<그림1> 부러진 소나무 가지와 뿌리가 드러난 소나무. 선비의 꺾여진 이상을 표현함
(2) 바람길에 따라 달라지는 ‘대나무 숲’ 바람 소리
대나무는 잎이 매우 넓다. 그래서 침엽수인 소나무보다 훨씬 다양한 소리를 낸다. 우선 바람이 약할 때는 ‘사각사각’하는 감미로운 소리를 낸다. 미당 서정주 선생은 이 소리를 ‘고운 아낙네가 걸어 다니며 내는 명주 치마 부딪히는 소리’라고 했다. 나는 이 표현이 정말 적절한 비유라고 생각한다.
대나무 (서정주)
대나무 잎사귀에 바람이 일면
서릉거리는 명주치마 소리가 난다.
그 곁에 서면
내 몸의 피도 어느덧 푸르러져서
손가락 끝을 물고 싶어진다.
대나무 마디마디에 맺힌 눈물은
어느 나라 임금님의 피눈물일까.
아득한 옛날의 전설이 고여서
오늘도 대나무는
저렇게 푸른 하늘만 우러러보고 있다.
그러나 명주치마 소리를 내는 바람은 산들산들한 산들바람이다. 이보다 조금 센 바람이 불면 약간 강한 바스락 소리가 된다. 그때 나는 소리를 죽성(竹聲)이라고 한다. 그러나 더욱 바람이 세지면 죽뢰(竹籟)가 된다, 송뢰와 같이 약간은 칼바람 같은 소리다. 편안하게 사각거리는 소리와는 상당히 거리가 멀다. 더욱이런 바람과 함께 굵은 빗방울까지 대나뭇잎을 때리면 ‘우두둑우두둑, 탁탁’ 소리가 난다. 이때 소리를 우타죽성(雨打竹聲)이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 조상들의 대나무 사랑은 바람 소리에 그치지 않았다. 많은 눈이 대나무에 내리면 그것 또한 장관이다. 그래서 눈이 내린 대나무 숲을 그린 그림을 설죽도(雪竹圖)라고 했다. 그런데 하얀 눈이 덮인 대나무 모습은 달 밝은 밤에 더욱 아름답다. 그래서 눈이 쌓인 밤에 보는 대나무 그림을 월야설죽도(月夜雪竹圖)라는 별도 이름으로 불렀다. 대나무는 사군자 중 하나고, 어려운 환경에서도 변하지 않는 선비의 곧은 절개의 상징이어서 대나무에 대한 우리 조상님들의 사랑은 끝이 없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눈 내린 설죽도는 더욱 많이 그렸었다.
<그림 2> 푸른 대, 하얀 눈, 어려운 환경에서도 변하지 않는 선비들의 지조와 절개의 상징
(3) 해남 윤선도의 고택 녹우당(綠雨堂)
해남에는 고산 윤선도 선생의 고택이 있다. 윤선도 선생은 여러 면에서 참 특이한 분이다. 실학의 선구자이시고, 백성에 대한 지극한 사랑에서 어부들이 따라 부르기만 하면 저절로, 그 계절에 해야 할 일을 알 수 있는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를 지었고, 물, 돌, 소나무 대나무, 달을 의인화하여 친구로 만든 오우가(五友歌)도 지으셨다. 끊임없는 강직한 상소로 생애 대부분을 귀양살이를 하신 대쪽 같은 분이시며, 자신의 묘지를 직접 잡을 정도의 빼어난 풍수지리학자이고, 지역 사람들의 질병을 직접 고쳐주는 의사였다. 고산 선생님은 뭐라고 한마디로 특징지을 수 있는 분이 아니다.
태어난 금수저이기도 하지만 그의 재산 축적 과정은 다른 부자들과는 결이 다르다. 그는 그 옛날 17세기, 400년 전에 사셨으면서도, 직접 간척사업을 벌려 농토를 확장하였다. 그리고 그 땅을 자신이 가진 것이 아니라 상당 부분을 노역에 참여한 지방민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군포(軍布)를 내지 못한 백성들을 위해서는 군포를 대납해 주었고, 전쟁이나 흉년이 들면 곡수를 면하거나 줄여 주었으며, 종자를 나누어 주고, 열심히 구휼사업을 하였다. 그래서 대대로 베푼 은혜로 해남 윤씨 집안은 삼대적선지가(三代積善之家)라는 별칭을 얻기도 하였다. 그래서 사백년이 지난 지금도 그를 위한 제사를 군수가 제관이 되어 당제(堂祭)를 지내고 있다.
그리고 그 고산 선생님의 댁 이름이 바로 녹우당(綠雨堂)이다. 녹우는 말 그대로 푸른색(綠) 비(雨)다. 아니 무슨 비가 푸른색? 녹우당 뒤편에는 비자나무와 편백나무의 우거진 숲이 있다. 그런데 이 숲에 바람이 불면, 마치 비가 내리는 듯한 소리가 난다. 그래서 ‘푸른 빗 소리가 나는 집’이라는 뜻의 녹우당이라는 당호가 지어졌다. 우리 옛 어른들은 이렇게 멋있는 분들이다.
(4) 또 하나의 다른 바람 소리, 하풍(荷風)
우리 조상들이 좋아하는 바람 소리 중 하나는 연꽃잎 사이를 지나가는 바람 소리다. 나의 추측으로 하풍은 여름에 나는 소리가 아니라, 가을에 나는 소리 즉, 연잎이 바싹 말랐을 때 나는 ‘바스락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아닐까 싶다. 나의 경험일 뿐이니 확실하지는 않다.
하여간 여러 이유에서 우리 조상들은 연(荷, 蓮)을 좋아하였다. 연꽃이 필 때는 더없이 아름답고, 연실이 맺힐 때에도 연꽃이 갖는 연화팔덕(蓮花八德)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화려할 때는 세상의 찬사를 받지만, 시들어갈 때는 오직 자기 자신과의 만남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기명절지도(器皿折枝圖)를 보면 볼품이 하나도 없는 연뿌리가 덩그러니 그려져 있다. 연꽃은 대단히 아름답지만 아무리 곱게 보아도 연뿌리는 그렇게 예쁘지 않다. 그래도 그 뿌리는 거의 빠지지 않고, 대부분의 기명절지도에 나타난다. 왜 그럴까? 그 이유를 아는 데는 제법 시간이 걸렸다.
<그림 3> 화려했던 연꽃은 사라지고, 연실과 마른 연잎만이 남아있는 스산한 연밭. 하지만 꽃이 피면 반드시 열매를 맺는 개부구족(開敷具足)의 정신을 볼 수 있다.
우리가 연뿌리를 잘라보면, 그 안에 큰 구멍이 뚫려있다. 여기까지는 다 아는 바다. 그러나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연뿌리의 잘록한 부분에도 동일한 구멍이 뚫려있고, 그 구멍이 연꽃의 긴 줄기인 대에도 연결되어 있다. 즉 연꽃의 모든 구성 요소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구멍이 통(通)하여 연결되어 있다. 우리 조상들은 이러한 끊이지 않은 연결을 『형제간에 변치 않고, 상호 유무상‘통’(有無相通)하는 형제애』를 표현하는 것으로 본 것이다. 그래서 형제 간에는 어떤 때나 상호소통하고, 함께하라는 뜻으로 볼품 없는 연뿌리를 기명절지도에 그려 넣은 것이다. 요즈음 세태에 더욱 많은 의미를 갖는 것 같다.
그래서 충(忠)과 효(孝) 그리고 가족 간의 형제애(兄弟愛)를 무엇보다 중시여겼던 조선사회에서 연꽃은 중요한 의미를 가졌던 것이다. 아마 그래서 연꽃 사이를 지나는 조금은 스산한 느낌이 드는 바람인 하풍(荷風)도 사랑하셨나 보다.
4. 바람 소리에 포함된 소리 이상의 의미들
송풍, 죽풍, 녹우, 하풍 등 우리 조상들은 정말 많은 소리들을 세심하게 분류하였고, 그리고 적절한 이름을 거기에 부치셨다. 그리고 각각의 바람 소리에도 소리 이상의 도덕적 의미를 더하셨다. 선비의 변치 않은 절개, 때를 잃은 선비들의 스산한 마음, 유교적 도덕 가치, 형제애 등이 그것이다.
우리 민족을 흔히 감성(感性, 感情)의 민족이라고 한다. 논리보다는 감정이 앞설 때가 제법 있다. 물론 그것은 단점일 수도 있다. 하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에서 그리고 기능과 함께 감성이 더욱 중요해지는 미래 세계에서는 우리 민족의 풍부한 감성적 정서는 더욱 많은 가치를 발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필자 김상국 교수
-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미국 위스콘신대 대학원 경영학 석사-경영전략 박사
- 한국경영정보학회 회장, 한국지능정보시스템학회 회장, 한국경영학회 이사 등
- 경희대 산업경영공학과 교수, 경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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