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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일 기획시리즈 13] 정치지도자의 겸손, 왜 중요한가.. 통합 리더십의 필수조건...

  • 유재일 교수 기자
  • 입력 2026.03.11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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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탁월한 지도자, 특별한 지도자, 튀는 지도자...이재명 대통령은 '계몽적 승부사'..

〔기획시리즈 13〕 통합정치와 리더십

- 통합정치와 관련한 정치지도자의 겸손과 페이소스 -

 

유재일(사회공헌연구소 대표)

 

특별한 정치지도자와 튀는 정치지도자

 

최근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65%(한국갤럽)에 이르자, 적지 않은 호사가들과 강호제현들이 그 향방을 궁금한 눈길로 지켜보고 있다. 이 수치는 대통령 취임 1년차 4분기에 접어드는 시점에 한정해 볼 때, 민주화 이후 역대 대통령 중 문재인 대통령(68%)을 제외하고 가장 높은 수치다. 참고로 같은 시기 가장 낮은 지지율을 기록했던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22%)으로 나타난다. 이처럼 임기 초반에 높은 지지도가 나타나는 현상은 대개 가시적인 업적에 대한 평가보다는 당면의 난제들을 해결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반영된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 미국 온라인 매체인 The Diplomat(디플로멧)이 이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을 두고 ‘행정적 역량’ 때문이라고 분석한 것 역시 같은 맥락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이재명 (연합) 1-1.jpeg


물론 다른 해석도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렇다 할 업적이 없었음에도 탄핵 사태에 따른 야당의 지리멸렬에 힘입어 비교적 오랫동안 높은 지지율을 유지했던 사례를 떠올려 보면, 이재명 대통령의 지지도 역시 야당에 의한 반사이익과 무관하다고 단언하기에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 점에서 권력의 핵심 인사들은 겉으로는 환호작약하겠지만, 속으로는 노심초사할 개연성이 크다.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1447)에 나오는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흔들려 꽃 좋고 열매 많나니”라는 구절처럼, 국정 책임자에 대한 평가는 결국 성과와 업적으로 귀결되기 마련이다. 따라서 대통령의 지지율은 일희일비의 대상이라기보다는 국정 운영을 점검하는 일종의 참고지표, 다시 말해 위징(중국어 預警, 조기경보를 뜻함)의 신호로 보는 편이 더 타당할 것이다.

 

흔히 정치지도자를 평가할 때, “인물이 시대를 만든다”라는 관점과 “시대가 인물을 만든다”라는 관점이 서로 맞선다. 전자의 관점은 일종의 ‘자질론’으로서, 정치지도자는 리더십의 기본조건인 지적·성격적 탁월성과 필요조건인 정치적 자질, 즉 명예심, 권력의지, 공사구분, 정치기술 등을 갖춰야 최고 권력자가 된다는 것이다. 반면에 후자는 일종의 ‘상황론’으로서, 비록 정치적 자질이 부족하더라도 기회를 잘 만나거나 상황이 유리하면 최고 권력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기회는 ‘준비하는 자’에게 더 잘 찾아오는 법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상황은 늘 가변적이고 역동적이다. 이 변화무쌍한 상황을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권력투쟁의 성패가 갈리게 된다. 이를 일종의 ‘전략론’으로 설명할 수 있는데, 정치지도자가 비전과 정책 제시, 이미지 메이킹, 토론과 유세 등과 같은 포지티브(positive) 전략과 쇼맨십, 선동, 정치공작 등과 같은 네가티브(negative) 전략을 효과적으로 혼용·구사할 때 최고 권력자가 될 수 있다는 관점이다.

 

일반적으로 정치가 대중민주주의 시대에 들어설수록, 또한 적대와 배제의 과정으로 점철될수록 정치지도자가 최고 권력자로 등극하게 되는 배경은 자질론보다는 상황론이나 전략론으로 설명되는 경우가 많다. 자질론에 가까운 정치지도자는 대부분 새로운 왕조나 국가를 세운 영웅적 인물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또한 상황론에 해당하는 정치지도자는 다음 <표>와 같이 혁명, 전쟁, 사회운동 등을 계기로 등장한 불세출(不世出)의 인물들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전략론에 가까운 정치지도자는 미디어 정치와 이미지 전략에 능한, 다소 신출귀몰(神出鬼沒)한 인물일 것이다. 논의를 단순화해 보자면, 이들을 각각 ‘탁월한 자’(excellent person), ‘특별한 자’(special person), ‘튀는 자’(conspicuous person)로 구분할 수도 있다. 여기서 ‘특별한 자’와 ‘튀는 자’는 종이 한 장 차이라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한쪽이 다른 쪽으로 바뀌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비유가 적절할지는 모르겠지만, 로마 공화국 말기 삼두정치(三頭政治, triarchy)를 떠올려 보면 흥미롭다. 군사전략에서 천부적 능력을 보였던 폼페이우스(B.C.106∼48)가 ‘탁월한 자’에 가까웠다면, 미소전략(smile strategy)에 능했던 카이사르(B.C.100∼44)는 ‘특별한 자’에 가까웠을 것이고, 재물을 위해서라면 영혼도 아끼지 않았던 크라수스(B.C.115∼53)는 ‘튀는 자’에 해당했을 것이다. 결국 이들 간의 비정하고 처연한 권력투쟁에서 카이사르가 승리해 황제에 버금가는 ‘종신 독재관’에 등극했다. 하지만 그 역시 한 달 만에 배신의 칼날 앞에서, 플루타르코스(46경∼120경)가 『영웅전』(115경)에서 평한 바와 같이 “운명이라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것”이라는 권력자의 숙명을 깨달을 것이다.

 

3인.png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인물이 시대를 만드는 탁월한 정치지도자는 찾아보기가 어렵다. 하지만 여성 정치지도자가 최고 권력자가 된 배경이 상황론이나 전략론보다는 자질론으로 설명하는 것이 설득력이 있다면, 탁월한 정치지도자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남성 중심의 정치문화에서 여성 정치지도자가 ‘유리천정’(glass ceiling)을 뚫고, 때로는 ‘유리절벽’(glass cliff)에 내몰리면서도 <표>와 같이 최고 권력자로 등극한 것은 자질론 이외의 다른 설명은 부차적일 것이다. 특히 ‘철의 여인’(Iron Lady)으로 알려진, 중동전쟁의 전설인 이스라엘의 골다 메이어 총리(1898∼1978), 두 차례 인도 총리를 역임한 인디라 간디(1917∼1984), 영국의 마거릿 대처 총리(1925∼2013) 등의 강인한 품성과 불굴의 행적을 보면, 탁월한 정치적 자질뿐만 아니라 나름의 정치적 덕목을 갖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참고로 박근혜 대통령은 한때 ‘선거의 여왕’이라는 별칭을 얻었지만, 탄핵이라는 정치적 결말로 인해 ‘철의 여인’이라는 평가를 얻지는 못했다. 앞으로 6선 국회의원이자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역임한 추미애 의원이나 5선 국회의원이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를 역임한 나경원 의원이 앞서 언급한 정치적 자질들을 지닌 만큼 진실, 용기, 관용, 통찰 등과 같은 정치적 덕목을 꾸준히 디서플린(disciplin)한다면, ‘다르크’(Jeanne d'Arc<1412∼1431>에서 유래)라는 여전사에서 ‘철의 여인’으로 성숙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트럼프와 푸틴 (네이버 캡처) 1-1.jpeg

 

여성 정치지도자가 대부분 ‘탁월한 자’의 범주에 들어가는 반면에, 남성 정치지도자 중 ‘튀는 자’, 특히 이른바 ‘악동’(bad boy) 유형도 적지 않다. 대표적으로 세 차례 이탈리아 총리를 역임하는 동안 각종 언론비리와 성추문으로 화제를 날렸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1936∼2023), 동료 의원에게 “피괴한다”(ぶっ壊す)는 독설을 퍼부어 인기를 얻었던일본의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1942∼), 영국 총리 중 재임 3년 동안 가장 많은 스캔들을 낳았던 보리스 존슨(1964∼) 등을 들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러한 ‘악동형’ 지도자라기보다는 한때 국민의 선택을 받았지만, 결과적으로는 무모하고 안타까운 정치적 행로를 보인 인물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무소불위(無所不爲)하게 권력을 남용하고 전쟁을 감행하고 있는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1952∼)과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1946∼) 역시 세계적 악동 대열에서 빠질 수 없을 것이다.


<표> G20 국가별 특별하거나 튀는 정부수반의 현황

체제 유형

국가 / 명칭

혁명·전쟁·사회운동 경력

여성 출신(총리, 부통령, 부총리 포함)

호불호형 또는 악동

완전

민주주의

(10∼8.01)

호주

총리

밥 호크(1983~91):

노동운동

줄리아 길라드(2010~13):

반미소지니 상징

스콧 모리슨(2018~22):

럭비공

독일

총리

콘라트 아데나워(1949~63):

반나치 운동

앙겔라 메르켈(2005~21):

16년 집권

쿠르트 키징어(1966~22):

나치 부역자

캐나다

총리

피에르 트뤼도(1968~79, 80~84):

진보정책 수행

킴 캠벨(1993):

최초 여성 총리

쥐스탱 트뤼도(2015~25):

튀는 남자

일본

총리

요시다 시게루(1946~47, 48~54)

전후(戰後)를 만든 남자

다카이치 사나에(2025~):

일본의 ‘철의 여인’(예상)

고이즈미 준이치로(2001~06):

헨진(變人, 괴짜)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1940~45, 51~55):

제2차 세계대전 영웅

마거릿 대처(1979~90):

영국의 ‘철의 여인’

보리스 존슨(2019~22):

영국의 악동

불완전 민주주의

(8∼6.01)

프랑스

대통령

샤를 드골(1959~69):

레지스탕스 운동

에디트 크레송(1991~92):

최초 여성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2017~):

주피터를 닮고 싶은 남자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1933~45):

제2차 세계대전 영웅

카밀라 해리스(2021~25):

최초 여성 부통령

조지 워커 부시(2001~09):

코믹한 얼간이

한국

대통령

김대중(1998~03):

민주화 운동

박근혜(2013~17):

탄핵

윤석열(2022~25):

탄핵

이탈리아

총리

알치데 가스페리(1946~53):

반파시즘 운동

조르자 멜로니(2022~):

극우 아이콘

베를루스코니(1994~95, 01~06, 08~11): 이탈리아의 악동

인도

총리

자와할랄 네루(1950~64):

독립운동

인디라 간디(1966~77, 80~84):

‘철의 여인’ 원조

라자브 간디(1984~89):

네루-간디 가문의 40세 총리

남아공화국

대통령

넬슨 만델라(1994~99):

반아파르트헤이트 운동

품질레 믈람보-응쿠카(2005~08):

최초 여성 부통령

제이컵 주마(2009~18):

700개 범죄혐의와 대중인기 공존

아르헨티나

대통령

라울 알폰신(1983~89):

민주화 운동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2007~15):

영부인·대통령·부통령(2019~23)

후안 페론(1946~55, 73~74):

대중영합주의 원조

브라질

대통령

룰라 다시우바(2003~09, 23~):

노동운동

지우마 호세프(2011~16):

탄핵

제뚤리스 바르가스(1930~45, 51~54): 빈민의 아버지

인도네시아

대통령

수카르노(1945~67):

독립운동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2001~04):

민주화 운동

수하르토(1968~98):

미소 짓는 장군

혼합주의

(6∼4.01)

멕시코

대통령

로페스 오브라도르(2018~24):

시민운동

클라우디아 셰인바움(2024~):

멕시코시티 시장

비센테 폭스(2000~05):

카우보이

튀르키예

대통령

케말 아타튀르크(1923~38):

공화주의 혁명

탄수 칠레르(1993~96):

최초 여성 총리

레제프 에르도안(총리 2003~14, 14~): 21세기 술탄

권위주의

(4∼0)

중국

국가주석

덩샤오핑(1981~89):

개혁개방

류옌둥(2013~):

국무원 부총리

자오쯔양(1987~89):

천안문 사태로 실각 후 16년 연금

사우디아라비아 왕

압둘아지즈 알사우드(1932~53):

건국

노라 알 아이즈(2009~15):

최초 여성 차관

살만 알사우드(2015~):

1대 국왕의 24번째 아들, 79세 즉위

러시아

대통령

보리스 옐친(1991~99):

민주화 운동

발렌티나 마트비옌코(1999~03):

부총리, 연방평의회 의장(2011~)

블라디미르 푸틴(2000~08, 12~, 총리 08~12): 현대판 차르

(괄호 안은 재임기간)

* 국가순은 Economist Intelligence Unit가 발표(2025. 2. 27)한 ‘민주주의 지수’의 순서임.

* 덩샤오핑의 직책은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장 주석이고, 자오쯔양의 직책은 중국공산당 총서기임.

출처: https://www.google.com/search(2026. 2. 28).

 

 

평범함과 겸손 속에서의 뛰어난 정치지도자

 

대부분 뛰어난 정치지도자나 성공한 정부수반은 위에서 살펴본 ‘탁월한 자’, ‘특별한 자’, ‘튀는 자’ 가운데 하나의 범주에 비교적 무리없이 포함시킬 수 있다. 그러나 이들 범주에 넣기에는 어딘가 어색하거나 딱 맞지 않는 인물들도 있다. 이들의 공통된 특징을 굳이 꼽자면, ‘평범함’(ordinary)과 ‘겸손’(humility)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ordinary는 한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Eichmann in Jerusalem, 1963)에서 언급한 핵심 개념인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으로 부적절하게 번역된 ‘진부함’(banality)과는 다른 의미임을 미리 밝혀둘 필요가 있다.

 

이들은 대체로 정치리더십의 기본조건인 지적·성격적 탁월성을 지니고 있지만, 필요조건인 정치적 자질 중 명예심, 권력의지, 정치기술 등이 유난히 두드러지지는 않는다. 일부러 언론의 주목을 받으려 하지 않고, 정치적 자리에 그다지 집착하지 않으며, 이따금 동료 정치인들로부터 놀림이나 가벼운 조롱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은 정치리더십의 충분조건인 진실, 용기, 관용, 통찰 등과 같은 정치적 덕목이 체화되어 있다. 관찰해 보면, 이들의 평범함과 겸손은 대체로 세 가지에서 비롯된다. ① 공공선 실현에 대한 소명의식, ② 책임윤리와 균형감각을 중시하는 태도, ③ 정치적 편안함(political comfort)을 지향하는 성향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영국의 클레멘트 애틀리 총리(1883∼1967, 재임 1945∼1951), 미국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1890∼1969, 재임 1953∼1961),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1954∼, 재임 2005∼2021)를 들 수 있다.

 

애틀리는 오늘날 윈스턴 처칠(1874∼1965)에 비해 덜 알려진 정치지도자이지만, 최근 들어 재평가가 활발하다. 그의 자서전인 As It Happened(일어난 일들, 1954)와 수많은 전기 및 평전 중 수작(秀作)으로 알려진 역사학자 존 뷰(1980∼)의 Citizen Clem: A Biography of Attlee(시민 클램<클레멘트 애칭>: 애틀리 전기, 2016)에 따르면, 그는 옥스퍼드대 출신의 ‘조용한 변호사’이자 “겸손할 만한 이유가 충분한 겸손한 작은 사람”이었다. 어떻게 보면, 카리스마도 없고 화려한 언변도 없는 너무나도 평범한 정치인이었다. 그의 정치적 라이벌이었던 처칠은 유머와 위트로 치장된 독설과 조롱으로 틈 날 때마다 그를 멸시하곤 했는데, 자가용 대신에 노란 택시를 타고 다니는 그를 비웃었던 일화는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과 노동자의 친구인 애틀리는 이에 전혀 개의치 않고 야당과 반대세력에 대한 설득과 합의를 통해 ① 복지국가의 기반 조성, ② 영국과 미국 간의 ‘특별한 관계’(special relation) 구축, ③ 세계평화를 위한 탈식민지화 추진 등과 같은 괄목할 만한 업적들을 남겼다. 이 점에서 그는 20세기 영국의 최고 총리로 평가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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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젠하워 대통령의 백악관 공식 초상화

아이젠하워는 그의 자서전 3부작인 Crusade in Europe(유럽의 십자군, 1948), Mandate for Change, 1953-1956(변화를 위한 위임, 1963), The White House Years: Waging Peace 1956-1961(백악관 시절: 평화를 위한 투쟁, 1965)과 수많은 전기 및 평전 중 최고의 저작으로 알려진 정치학자 진 에드워드 스미스(1932∼2019)의 Eisenhower in War and Peace(전쟁과 평화 속의 아이젠하워, 2012)에 따르면, 웨스트 포인트 사관학교 출신으로 육군 원수와 컬럼비아대 총장을 지낸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는 8년간 대통령직에 있으면서 겸손과 균형감각으로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의 상처를 치유하고 국민통합을 이루려 노력했다. 그가 보여준 정치적 태도는 “평범함 속에서의 비범함”이었다. 그는 스스로를 ‘보통사람들의 친구’로 여겼으며, 실제로도 그러한 모습으로 기억된다. 물론 당시 냉전체제 하에서 그 역시 역사적 한계를 벗어날 수는 없었지만, 소속 정당인 공화당의 보수성과 군산복합체(military-industrial complex)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용기와 사려깊음을 지녔던 정치지도자였다. 이러한 이유로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모범적인 대통령 가운데 한 사람으로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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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켈 독일 총리

메르켈 총리 역시 비슷한 유형에 속한다. 그의 자서전 『자유』(Freiheit: Erinnerungen 1954–2021, 2024)와 그의 공인전기인 케이티 마튼(1949∼)의 ????메르켈 리더십: 합의에 이르는 힘????(The Chancellorhe: Remarkable Odyssey of Angela Merkel, 2021)에 따르면, 그는 라이프치히대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친 후 동독과학아카데미에서 물리학 박사를 획득한 연구원 출신이기에 정치와 전혀 무관한 평범함 그 자체의 인물이었다. 사실메르켈이라는 정치인을 접할 때 종종 의아해하고 흥미로운 지점은 동독 과학자이자 이혼 경력이 있는 아주 젊은 51세의 여성이 어떻게 유럽 최대 강국인 독일의 총리가 되었으며, 어떻게 그 자리를 16년간 유지할 수 있었는가일 것이다. 그는 자유에 대한 희구로 “물결을 거슬러 자신의 길을 갔고”, 겸손과 대연정(Große Koalition)으로 “독일을 ‘강건한 국가’(strong state)로 만들었으며”, 관용과 통찰로 “통합리더십의 향기를 퍼지게 했던” 정치지도자였다. 물론 평생 사회주의자로 살았던 그의 부모가 딸에게 한 번도 표를 던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의 삶에 안타까움과 페이소스를 남겼을 것이다. 이 때문에 그는 부모의 인정과 사회적 신뢰를 동시에 얻기 위해, 보다 겸손하고 더욱 포용적으로 국정을 펼친 측면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라는 상상의 나래를 펴본다.

 

대체로 오늘날과 같은 적대와 배제의 정치 상황에서 이처럼 평범함과 겸손 속에서 뛰어난 정치지도자를 기대하는 일은 연목구어(緣木求魚)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특히 권위주의적이고 승자독식적인 정치문화가 온존해 왔던 한국에서 이 같은 인물이 실재하기에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럼에도 겸손이라는 덕목과 유사한 품성을 지닌 인물들을 반추하고 성찰하는 차원에서 몇 사람을 거론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정부수반으로 장 면 국무총리와 노태우 대통령을 들 수 있다. 장 총리는 민주주의자로서 겸손과 염치를 아는 인물이었기에, 그의 불운에는 다소간의 페이소스가 느껴진다. 자신의 비서였던 김대중 대통령이 그에게 ‘건국훈장’을 추서(追敍)한 것은 늦었지만 의미있는 복권이 아닌가 본다. 노 대통령은 200만호 주택 건설과 북방정책의 성과를 통해 대선 캐치프레이즈인 ‘위대한 보통사람’을 닮고자 했던 비교적 겸손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아마도 이러한 평가 덕분으로 그의 아들인 노재헌 박사가 이재명 대통령에 의해 주중대사로 임명받은 것이 아닌가 회자되고 있다.

 

국회 다선의 정치인 가운데서는 정세균 전 국무총리와 황우여 전 새누리당 대표를 떠올릴 수 있다. ‘미스터 스마일’이라는 별명을 지닌 정 총리는 “분열은 최악이고, 연대는 차선이며, 통합은 최선”이라는 그럴듯한 어록을 남겼으며, 별명이 ‘어당팔’(어수룩해 보여도 당수가 8단이라는 뜻)인 황 대표는 “정치인의 말은 영향력이 커서 한번 실수하면 정치생명이 끝나기도 한다.”라는 의미심장한 어록을 남긴 바 있다. 두 사람 모두 평범함과 겸손의 인물임에는 분명하지만, 정치적 의미에서 ‘특별한 지도자’로까지 평가받지는 못했다. 앞으로 5선 국회의원인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과 4선 국회의원인 김태호 전 경남도지사가 이러한 유형의 지도자로 성장할지 지켜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여담이지만, 필자는 이 연재 앞 시리즈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리더십 스타일을 인상적으로 볼 때, ‘계몽적 승부사형’이 아닌가 언급한 바 있다. 이 스타일은 이미 눈치챘겠지만, 김영삼 대통령의 ‘공격적 승부사형’과 김대중 대통령의 ‘계몽적 설교형’을 혼합한 것으로서 긍정적 뉘앙스가 짙다. 또한 이 스타일에는 ‘특별한 정치지도자’와 ‘튀는 정치지도자’의 속성이 함께 담겨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하지만 실용주의가 요구되는 시대적 상황과 비주류 출신인 이 대통령의 정치적 개성을 고려한다면, 그는 평범함과 겸손을 이미 일정 부분 깔고 있는 정치지도자가 아닌가 싶다. 이 같은 판단의 진위 여부는 그의 정치적 상식과 국민통합적 행보에 달려 있다. 국민의 주권은 대통령뿐만 아니라 국회의원에게도 위임되어 있다는 점과 국민통합은 야당 및 반대세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데서 시작한다는 점을 받아들이는 데 달려 있다고 하겠다.

 

유재일 1-1.jpeg

 

필자 유재일 교수는 한국정치와 정당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해온 정치학자이다. 대전고를 나와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30여년간 대전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를 지내면서 국회도서관장, 대전세종연구원장을 역임하였고, 한국정치학회 부회장,한국정당학회장, 한국지방정치학회장을 지냈다. 아울러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회 위원,국회의장자문위원회 부위원장,국회헌법개정특별위원회 자문위원 등을 맡아 국정운영에 대한 실무경험도 쌓았다. 현재 사회공헌연구소 대표로 활동 중이며, 최근에 발간한 대표 저서로 『통합정치와 리더십』(2024, 운주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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