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리더뉴스=김한식의 철학 에세이] '김한식의 철학 에세이'는 분주한 일상속에서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커피 한잔 마시며 역사속의 철학자들과 소통하는 작은 공간입니다. 그들은 우리와 다른 시대를 살았지만, 그들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불안과 혼란, 사랑과 상실 속에서 질문을 붙들고 살았던 인간이었습니다. 플라톤은 정의로운 공동체가 무엇인지를 고민했고, 칸트는 인간의 존엄성이 무엇인지 물었으며, 한나 아렌트는 악(惡)이 어떻게 평범해질 수 있는지를 성찰했습니다. 그리고 하이데거는 존재의 의미를, 아도르노는 문명의 균열을, 푸코는 권력과 자유의 관계를 각각 묻고 또 물었습니다. 그들의 언어는 낯설지만, 그 질문은 놀라울 만큼 오늘날의 우리에게 가까이 닿아 있습니다.
이 연재는 철학자가 시공을 훌쩍 뛰어넘어 우리 곁에 다가와 다정스럽게 말을 건네는 형식으로 풀어나가려 합니다. 복잡한 이론은 간결하게 정리하되, 생각의 깊이는 놓치지 않겠습니다. 철학은 정답을 제시하는 학문이 아니라 사람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힘이라는 점을 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제1회 ― 소크라테스는 왜 ‘너 자신을 알라’고 말했을까?
우락부락한 사내, 전장(戰場)에서 칼과 방패를 들고 버티고 서 있는 병사, 온몸은 진흙투성이에 피 냄새가 물씬 풍기는 중장비의 보병...그의 이름은 소크라테스였습니다. 흔히 떠오르는 가냘픈 철학자의 이미지와는 영 딴판이지요.
“너 자신을 알라!” 오늘날 많은 현대인들이 인용하는 이 말은 어디서 어떻게 나온 것일까요? 고대 그리스의 델포이 신전 기둥에 새겨진 이 격언을 수천년동안 온몸으로 밀고 나간 사람은 오로지 소크라테스 한 사람 뿐이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참전해 혹독한 전투를 치렀습니다. 혹한 속에서도 맨발로 버텼고, 혼란한 후퇴 속에서도 동료를 지켜냈습니다. 그는 사유 이전에 삶의 무게를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질문은 공허하지 않았습니다.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은 서재에서 쉽게 나온 명제가 아니라, 죽음과 마주한 자리에서 길어 올린 처절한 물음이었습니다.
소크라테스가 살던 아테네는 민주주의의 자부심으로 가득했지만, 동시에 선동과 오만, 무책임이 뒤섞인 도시였습니다. 사람들은 정의를 말하면서도 각자의 이익을 좇았고, 지혜를 자랑하면서도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모순투성의 상황을 수없이 목도한 소크라테스는 광장으로 뛰쳐나갔습니다. 그리고 묻기 시작했습니다. “당신이 말하는 정의란 무엇입니까?” “당신은 정말 그것을 알고 있습니까?”
그의 질문은 상대를 무너뜨리기 위한 공격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했습니다.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압니다.” 이 고백은 겸손이 아니라 용기였습니다. 자신을 안다고 믿는 순간, 우리는 타인을 재단하고 시대를 단정해 버리기 쉽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자신이 모른다고 인정하는 순간 타인을 존중하고 시대앞에 겸허해질 것입니다. 정치인도 지식인도 CEO도 그 누구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오늘날 우리는 누구보다 많은 정보를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내가 왜 분노하는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어떤 욕망에 끌려 판단하는지 스스로 묻는 일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속도와 확신이 미덕이 된 사회에서, 모른다고 말하는 일은 오히려 약함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용감하게 그 약함을 선택했습니다. 그 선택 때문에 결국 재판을 받고, 사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는 도망칠 수 있었지만 도망치지 않았습니다. 법이 완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평생 지켜온 신념을 배반하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는 영혼을 돌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영혼을 돌보는 일...
“너 자신을 알라.” 이 물음은 인간의 지성과 이성에 대한 깊은 성찰입니다. 이 물음은 우리를 작게 만들기 위한 명령이 아닙니다. 오히려 타인을 판단하기 전에 자신의 이성(λόγος)과 지성(νοῦς)을 성찰하라는 요청입니다. 공동체를 바꾸려고하기 전에, 내 삶의 기준을 묻는 일부터 시작하라는 권유입니다. 전장의 흙먼지 속에서 동료들의 죽음을 보며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던 한 병사는, 결국 인간의 내면을 향한 가장 깊은 전투를 시작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전장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리고 우리는, 우리 자신을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철학자 김한식]
BEST 뉴스
-
[이상규 칼럼 27] 당신은 요즘 무엇을 관찰하고 있는가?
사물에 대한 주의 깊은 관찰은 새로운 창조의 출발이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유명한 수채화가 이경희 선생님에게 미술을 배웠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분의 미술 수업은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이었다. 반은 장난 같았고, 반은 엉뚱해 보였지만, 그 수업에서 배운 ‘사물을 바라보는 ... -
[신성욱 마음산책 15] 당신이 가장 먼저 드려야 할 기도
필자인 신성욱 아신대 설교학과 교수 내가 드려야 할 최우선의 기도 [1] 사람이 인생에서 가장 절박한 순간을 만나면 자신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절감하게 된다. 평소에는 많은 것이 필요해 보인다. 돈도 필요하고, 건강도 필요하고, 좋은 직장도 필요하고, 자녀의 출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