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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일 기획시리즈 11] 역사속에서 보는 통합의 정치..10인의 역사가들이 말하는 통합정치..

  • 유재일 교수 기자
  • 입력 2026.02.10 17:22
  • 글자크기설정

〔기획시리즈 11〕 통합정치와 리더십

- 통합정치에 관한 역사적 관조와 정치적 사유 -

 

유재일(사회공헌연구소 대표)

 

 

권력은 덧없고, 정치는 때로는 인과응보적이다

 

정월 초하루 설날을 앞둔 섣달 막바지가 되면, 분주한 가운데서도 뭔가 페이소스를 느끼게 되는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인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중국 시인 고적(704~765)은 「除夜作」(제야작)에서 “서리 맞은 귀밑머리, 내일 아침이면 또 한 살 먹네”(霜鬢明朝又一年)라고 읊었고, 영국 시인 존 클레어(1793~1864)는 The Old Year(지난해)에서 “새해 전날 밤, 지난 한 해는 모두에게 잊혀진 해로 남았네”라고 노래했다. 백석(1912~1996) 역시 「古夜」(고야, 1936)에서 “섣달 냅일날 밤에 눈이 오면 냅일눈 약눈을 받는다”고 어린 시절을 회상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설날은 양력 새해에 이어 다시 한번 한 해의 마음가짐을 새로이 다지는 날이다.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며 한 해의 시작을 경건하게 맞이하고 명절이 주는 여유 속에서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온고지신(溫故知新)을 되새긴다. 물론 대통령을 위시한 국무위원들, 국회와 정당의 주요 지도자들, 시장·도지사들도 역시 이 때만큼은 갈등의 언어를 잠시 내려놓고, 국민들에게 희망과 격려의 메시지를 보내면서 겸손하고 환한 미소를 짓는다. 이러한 모습은 ‘합리화의 상징’(symbol of rationalization)이나 ‘동일시의 상징’(symbol of identification)으로 해석될 수 있을지라도, 그 진정성까지 의심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해럴드 라스웰(1902~1978)과 아브라함 카플란(1918~1993)은 『권력과 사회』(Power and Society: A Framework for Political Inquiry, 1950)에서 개인이나 집단의 동기, 열정, 그리고 욕망을 ‘가치’라는 개념으로 설명하며, ‘권력’이라는 가치에 대한 속성을 설득력 있게 분석한 바 있다. 그들은 가치를 건강 · 부 · 기술 · 개명과 같은 복지가치(welfare value)와, 권력 · 존경 · 덕의(德義) · 애정과 같은 존숭가치(respect value)로 나누었다. 그리고 이처럼 다양한 가치들은 저마다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데, 특히 권력은 타인에 대해 가치를 ‘부여’(indulgence)하기보다는 가치를 ‘박탈’(deprivation)하는 방식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보았다. 그러나 권력이 가치 박탈에 지나치게 의존할수록 다른 가치들의 반작용에 직면하고, 결국 스스로 몰락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흥미롭지만, 민주주의 국가에서 강력한 권력을 지닌 정치지도자가 갑작스럽게 물러나는 사례가 종종 있다. 대표적인 첫 번째 사례는 ‘프랑스 영광’(Les Glorieuses français)의 재현자로 칭송이 자자했던 샤를 드골 대통령(1890~1970)이 임기를 3년 8개월을 남겨두고 사임한 사례다. 드골은 1958년 제4공화국의 의회제 하에서 정국수습 차원으로 총리에 추대되었지만, 곧바로 제왕적인 준대통령제를 골간으로 하는 제5공화국 헌법안을 국민투표로 통과시켜 대통령 선거인단에 의해 7년 임기의 대통령에 선출되었고, 1962년 또다시 국민투표로 헌법을 개정해 1965년 결선투표제로 대통령에 재선되어 탄탄대로를 걸었다. 하지만 그는 1969년 ‘지역 생성 및 상원 개혁에 관한 법안’이 국민투표에서 부결되자 다음 날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당시 국민투표의 결과에 대통령의 신임을 걸겠다는 그의 이른바 ‘친위쿠데타’<프랑수아 미테랑(1906~1995)의 Le Coup d’État permanent(영원한 쿠데타, 1964)에서>는 권력기반이 탄탄했음에도, 공화주의의 전통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국민들의 존숭가치를 침범하는 행위에 다름이 없었을 것이다.

 

 

드골 (나무위키) 1-1.jpeg
프랑스의 샤를 드골 대통령

 

다른 사례는 영국의 ‘철의 여인’(Iron Lady)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었던 마거릿 대처 총리(1925~2013)가 차기 총선을 1년 5개월 앞두고 사임한 사례다.대처는 1979년 보수의 아이콘으로 총리가 된 후 1983년 총선과 1987년 총선에서 연이어 승리하며,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그는 1990년 유럽통화연합 가입을 둘러싼 각료들과의 불화와 당내 의원들의 이탈로 보수당 대표선거에서 승산이 없게 되자, 그동안 자신으로부터 혜택을 적지 않게 받았던 각료들과 동료 의원들에 대한 배신감에 화가 난 채 눈물을 흘리면서 다우닝 10번지 총리 관저를 떠났다<필리다 로이드 감독(1957~)의 영화 The Iron Lady(2011)에서>. 당시 그의 강퍅(剛愎, fastidiousness)스런 성격과 인하무인적 태도는 국민들로부터 높은 인기를 받고 있었음에도, 점잖고 남성우월적인 성향이 강한 각료들과 당내 원로들의 존숭가치를 위협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마가렛 대처 1-1.jpeg
영국의 마가렛 대처 수상

 

근래 한국에서도 이와 유사한 경우를 박근혜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을 통해 겪은 바 있다. 두 차례의 탄핵은 헌법재판소의 판결로 최종적으로 이뤄졌지만, 위헌·위법에 대한 국민들의 항의와 국회의 탄핵 소추에 의해 추동되었다. 이 과정은 집권당 의원 중 일부가 탄핵 소추에 찬성함으로써 가능해졌던 것이다. 아마도 이들의 이러한 선택에는 최소한의 정치적 자존을 지키려는 판단이 작용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권력은 타인에 대한 ‘가치 부여’보다는 ‘가치 박탈’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관성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권력의 소유자인 정치지도자는 ‘가치 박탈자’라는 숙명에서 벗어날 수 없기에 항상 자제와 관용을 생각하고 통합정치를 모색해야 한다. 또한 권력은 다른 가치들과 달리 자신의 자리에서 물러나는 순간 어떠한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다. 권력의 덧없음은 이 지점에서 분명해진다. 그리고 권력은 정치과정에서 타인의 가치를 박탈하거나 또는 박탈하겠다고 위협한 만큼 인과응보적 평가가 뒤따른다. 이렇기에 권력의 자리에서 물러난 사람은 왔다 갔다 하지 말고, 가급적 관조나 성찰을 하는 것이 분수에 맞을 듯하다.

 

 

통합정치에 관한 역사적 관조

 

잘 알려져 있듯 통합이라는 정치행위는 갈등과 함께 인류가 공동체를 이루기 시작한 이래로 줄곧 이어져 왔다. 인류의 역사는 인류학과 역사학에서 밝히듯이, 갈등과 투쟁 속에서도 협력과 통합을 끊임없이 모색해 온 과정이었다. 이러한 역사를 성찰적으로 관조한 역사서와 인간 중심의 정치를 대안적으로 사유한 정치사상을 통합정치의 관점에서 다시 음미해 보는 일은 설 명절에 어느 정도 어울리는 온고지신이자 법고창신(法古創新)의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먼저 인간공동체의 갈등과 통합, 정치의 본령, 정치행위자들의 선택, 나아가 통합정치의 성패(成敗)와 같은 주제에 천착했던 역사가들의 통찰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인간과 정치에 관한 문제를 균형 있게 관찰하고 진실되게 성찰함으로써 후대에 깊은 지적 영감과 역사적 교훈을 남긴 역사서를 부족한 식견이나마, 다음 <표 1>과 같이 추천하고자 한다.

 

<표 1> 통합정치를 관조한 10대 역사가

 

역사가

대표 저서

개요

1

헤로도토스

(B.C.485경~425경)

역사(B.C.424경)

최초의 역사서로서 B.C.492~479 사이 세 차례 벌어진 일명‘페르시아 전쟁’으로 불리는, 그리스와 페르시아 간의 대규모 문명전쟁의 원인과 과정을 다룸.

2

투퀴디데스

(B.C.460경~400경)

펠로폰네소스 전쟁사(B.C.400경)

B.C.431~404 사이 세 차례에 걸친 아테네 중심의 델로스 동맹과 스파르타 중심의 펠로폰네소스 동맹 간의 그리스 패권전쟁 중 B.C.411년까지의 과정을 다룸.

3

사마천

(B.C.145~90)

사기(B.C.93)

중국 전설인 황제시대를 개괄하고, 역사 기년(紀年)이자 공화 원년인 B.C.841년부터 B.C.87까지의 역사를 실증주의적 서술 원칙에 따라 기전체로 다룸.

4

리비우스

(B.C.59~A.D.17)

로마사(17)

로마 도시국가가 창건된 B.C.753년부터 로마제국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재임 중인 A.D.9년까지의 역사를 다룸. 총 142권 중 35권만 남아 있음.

5

사마광

(1019~1086)

자치통감(1084)

중국 전국시대가 개막되는 B.C.403년부터 송나라 건국 직전인 959년까지 역대 왕조의 흥망성쇠의 원인과 과정을 치도(治道)의 지침으로 편년체로 다룸.

6

에드워드 기번

(1737~1794)

로마제국 쇠망사(1788)

로마제국 초기인 2세기부터 동로마제국이 몰락한 1453년까지의 역사를 풍부한 사료, 균형 잡힌 역사관, 유려한 문제로 방대한 분량을 서술함.

7

필원

(1730~1797)

속자치통감(1801)

송나라가 건국된 960년부터 원나라가 멸망한 1367년까지 송, 요, 금, 원 등 네 왕조의 역사를 편년체로 다룬 것으로서, 중국 최초의 통합사로 평가받음.

8

앙드레 모루아

(1885~1967)

영국사(1937), 미국사(1947),

프랑스사(1947)

영국, 미국, 프랑스의 통사를 각각 다루고, 국가별 특성을 밝히고 있음, 즉 영국: 지속성·순응성·타협, 미국: 개척·통합·창의성, 프랑스: 당파성·저항·지성.

9

에릭 홉스봄

(1917~2012)

혁명의 시대(1962), 자본의 시대(1975),

제국의 시대(1987), 극단의 시대(1994)

프랑스 혁명이 발발한 1789년부터 소비에트 시대가 종식된 1991년까지의 세계사를 세계주의자로서의 비판정신에 입각해 방대한 4부작으로 다룸.

10

조너선 스펜스

(1936~2021)

현대중국을 찾아서(1990),

천안문: 근대중국을 만든 사람들(1981)

1600년대 초 명나라의 쇠퇴부터 1989년 천안문 민주화운동까지의 역사를 중국인의 ‘문화’라는 창을 통해 민중의 삶과 저항을 중심으로 다룸.

 

이상의 역사서들은 명불허전(名不虛傳)이라고 불릴만한 ‘고전’(古典, Classics) 중의 고전이라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고전이라 함은 시대와 국가를 초월해 변함없는 가치를 지닌 책을 뜻한다. 한번 펼치면 깊이 빠져들기 쉽지만 끝까지 읽어내기에는 상당한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윤장대(輪藏臺, 경전이 들어 있는 통을 한 바퀴 돌리면 해당 경전을 읽는 것과 같이 지혜를 얻거나 죄업이 하나씩 없어진다고 하는 불교의 법구)를 돌릴 수는 없는 일이다. 일단 이 가운데 한 책을 읽기를 권하라면, 망설임 없이 투퀴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권하고 싶다.

 

이 책은 인간의 실존이 조금도 허용되지 않은 전쟁에 관한 원인과 과정을 실증적이고 냉정하게 서술한 작품이다. 동시대의 장군으로서 전쟁에 참전했다가 패전의 책임으로 추방된 저자가 집필한 기록이기에 비장미와 함께 관조의 미학을 함께 전한다. 이 책에 대해, 그리스어 원전을 번역한 천병희(1939~1993)는 “아주 특별한 비극”이라는 에피그램(epigram)을 붙었고, 정치학자 이삼성(1958~)은 “근대적 국제관계의 현실과 인식의 원형을 풍부하게 보여주며 우리 세계와의 동시대성을 드러낸다”고 평가한 바 있다.

 

이 책에서 통합정치의 관점에서 던지는 핵심 메시지는 아테네 민주정의 취약성이 최종적으로 전쟁 패배로 이어졌다는 점일 것이다. 투퀴디데스는 B.C.404년 아테네가 스파르타에게 항복한 직후에 사면되어 귀국했음에도, 역사 서술을 B.C.411년(제21년차)에서 멈췄다. 아마도 이는 아테네 민주정에 내재한 민주파와 과두파 간의 갈등과 분열이 외적의 침략 속에서도 대화와 타협으로 극복되지 못하고, 급기야 동족살육과 상호보복으로 이어지는 목불인견(目不忍見)적 형국을 외면하려고 한 것일지 모른다. 이러한 점에서 이 책은 오늘날 미국-중국 간의 신냉전체제가 주는 미증유의 도전에 직면한 한국이 어떻게 응전해야 하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투키디데스 1-1.jpeg
투퀴디데스의 동상

 

통합정치에 관한 정치적 사유

 

다음으로 인간 중심의 정치와 통합정치의 관점에서 정치공동체의 문제점과 그 해법을 개진했다고 판단되는, 다음 <표 2>와 같이 일곱 사상가의 정치적 사유를 다시 음미해 보는 것 역시 온고지신이리라. 수많은 정치사상가 가운데 이들을 선별한 기준은 ① 공화주의와 민주주의의 수용, ② 전업적인 지적 활동, ③ 글로벌 영향력 등이라는 세 가지 요건이다. 이 때문에 통합정치의 관점에서 반드시 주목할 만하지만 여기에 포함되지 못한 사상가들의 정치적 사유는 아쉽지만, 다른 기회에 따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범주에 해당되는 정치사상가와 핵심 화두는 플라톤(B.C.428~347)의 철인정치, 맹자(B.C.372~289)의 왕도정치, 볼테르(Voltaire는 필명, François-Marie Arouet, 1694~1778)의 관용, 이마누엘 칸트(1724~1804)의 영구평화, 토머스 페인(1737~1809)의 상식, 카를 마르크스(1818~1883)의 노동해방, 최시형(1827~1898)의 평등, 마하트마 간디(1869~1948)의 비폭력, 엘리너 루스벨트(1884~1962)의 인권, 넬슨 만델라(1918~2013)의 화해, 마틴 루터 킹(1929~1968)의 민권 등을 들 수 있다. 그리고 국제회의체인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 1946~)의 다양성 역시 함께 주목할 수 있을 것이다.

 

<표 2> 통합정치를 사유한 7대 정치사상가

 

정치사상가

대표 저서

화두와 구성개념

1

아리스토텔레스

(B.C.384~322)

정치학,

니코마코스 윤리학

혼합정체 : 법의 지배, 중간계급, 중용

2

니콜로 마키아벨리

(1469~1527)

군주론(1513),

로마사 논고(1518)

공화주의 : 자유, 공화국, 비르투, 좋은 법률과 제도

3

존 로크

(1632~1704)

통치론(1689),

관용론(1689)

사회계약 : 관용, 생명·자유·재산에 대한 권리, 제한정부

4

장 자크 루소

(1712~1778)

인간불평등 기원론(1754),

사회계약론(1762)

사회계약 : 자유, 공화주의, 일반의지, 직접민주주의

5

존 스튜어트 밀

(1806~1873)

자유론(1859),

대의정부론(1861)

개인적 자유 : 개별성, 표현의 자유, 대의정부

6

비어트리스 웹

(1858~1943)

영국 협동조합운동(1891),

산업민주주의(공저, 1897)

사회복지 : 빈민의 국가구제, 산업민주주의, 남녀동일임금

7

시몬 드 보부아르

(1908~1986)

제2의 성(1949),

보부아르의 말(공저, 1983)

자유로운 선택 : 선택의 자유, 남녀협력, 참여와 연대

 

혹자는 이상과 같은 정치사상가의 반열에 비아트리스 웹과 시몬 드 보부아르를 포함시키는 것이 다소 뜬금없거나 견강부회(牽強附會)가 아닌지 의문을 가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잘 알려져 있듯 비아트리스는 산업자본주의 사회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빈곤과 실업이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사회제도의 문제에서 비롯된다고 보았고, 모든 사람에게 최선의 이익이 되는 ‘사회복지’(social welfare)라는 국가의 역할을 평생 탐구하며 실천했던 지식인이었다. 마찬가지로 보부아르 역시 여성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획득해야 비로소 진정한 남녀 협력이 가능하고, 나아가 사회통합과 통합정치가 실현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인습과 편견과 위선에 맞서는 삶을 통해 정치사상의 지평을 넓힌 대표적 ‘앙가주망’(engagement), 즉 사회참여 지식인이었다.

 

필자는 페미니즘이나 여성운동에 관심 있는 학생이나 젊은이에게 비어트리스의 문제의식과 접근방법에 대해 관심을 가질 것을 권했던 기억이 난다. 더불어 그가 사회적 진보를 위해 힘없고 차별받는 이들과의 연대를 왜 그렇게 중요하게 여겼는지를, 또한 그의 정치적 사유의 산실인 페이비언 협회(Fabian Society)의 상징인 거북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함께 생각해 보자고 조언한 바 있다. 여기에 한국의 ‘성별 임금격차’가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이래 줄곧 30% 수준으로 39개 국가 중 가장 높다는 사실도 덧붙였다.

 

보부아르는 프랑스 지성사에서 루소 이후에 등장한 최고의 천재형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프랑스 남성들이 자유, 평등, 우애라는 프랑스의 가치를 의인화한 마리안(Marianne)의 닉네임을 넘어 진실한 인간인 영웅(Héroïne)이라는 찬사와 명예를 받을 만하다. 필자는 그에게 ‘인간 아테나’(Athena d’humaine)라는 별칭을 붙이고 싶다. 아테나는 지혜와 용맹으로 무지와 야만과 어리석음의 상징인 거인족 기간테스(Gigantes)를 퇴치한 지혜와 전쟁의 신이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 아테나’라는 표현은 결코 신들의 주사위 놀이나 운명의 신인 포르투나(Fortuna)가 변덕스럽게 돌리는 수레바퀴(Rota Fortunae)의 대상이 아니라 운명과 맞서는 주체적 인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어 그에게 적합하지 않나 생각한다.

 

사람은 누구나 존재와 의식에 관한 어려운 문제 앞에 서게 된다. 사람은 존재 상태와 처한 상황에 의해 의식과 생각이 영향을 받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그런지 이미 고귀해진 왕후장상도, 세상의 이치를 아는 강호제현도, 착하디 착한 선남선녀도 세간의 권력, 명예, 재물 따위를 절제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권력이 덧없고, 명예가 허망하며, 재물 역시 한 줌 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아는 듯하지만, 그것을 온전히 깨닫기는 쉽지 않다. 다만 관조와 성찰이 있다면, 어렴풋이나마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독자 여러분께, 설 명절을 맞아 더욱 건승하시고 복 많이 받으시길 기원드린다. 새해 선물로 쿠르트 마주어(1927~2015)가 지휘했던 베토벤의 「에그먼트 서곡」 (https://youtu.be/ChcrZX2rZ1M)의 동영상을 추천한다. 이 곡은 네덜란드 독립운동의 지도자인 라모랄 에그먼트 백작(1522~1568)의 영웅적 희생을 기린 괴테의 희곡 『에그먼트』를 베토벤이 오페라곡으로 작품화한 것이다. 아마도 이 음악은 정치의 본령과 오늘날의 시대정신을 되새기는 데 잔잔한 영감을 줄 것이다.

 

유재일 1-1.jpeg

 

필자 유재일 교수는 한국정치와 정당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해온 정치학자이다. 대전고를 나와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30여년간 대전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를 지내면서 국회도서관장, 대전세종연구원장을 역임하였고, 한국정치학회 부회장,한국정당학회장, 한국지방정치학회장을 지냈다. 아울러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회 위원,국회의장자문위원회 부위원장,국회헌법개정특별위원회 자문위원 등을 맡아 국정운영에 대한 실무경험도 쌓았다. 현재 사회공헌연구소 대표로 활동 중이며, 최근에 발간한 대표 저서로 『통합정치와 리더십』(2024, 운주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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