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합정치에 성공한 10대 사례&인물...쑨원, 루스벨트,만델라,김대중, 앙겔라 메르켈...지금 대한민국이 벤치마킹해야 할 것은...
〔주간 연재 시리즈〕 통합정치와 리더십 4회
- 통합정치는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예술 -
유재일 (사회공헌연구소 대표)
갈등과 통합의 다이내믹스
통합정치의 구성개념을 본격적으로 살펴보려면, 먼저 그 출발점인 갈등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葛藤’(갈등)이란 한자어는 불경인 <출요경>(出曜經)에 나오는 구절에서 유래했는데, “칡과 등나무가 나무를 칭칭 얽어 끝내 전체를 감는 데 이르면, 나무는 말라 죽는다”는 뜻을 담고 있다. 그리고 영어인 conflict의 어원 역시 흥미로운데, ‘서로’를 뜻하는 con과 ‘때리다’라는 의미의 flictus와 합쳐진 라틴어 conflictus에서 비롯된 말이다. 이 같은 어원을 지닌 갈등이란 “개인이나 집단 사이에 목표나 이해관계가 달라 서로 적대시하거나 충돌하는 행위나 그러한 상태”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상상해보건대, 갈등은 극락이나 천당에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승이나 현실에서는 늘 존재한다. 하나의 갈등이 사라지면 새로운 것이 생겨난다. 전분세락(轉糞世樂,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세상살이는 갈등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과정이다. 알렉산드르 푸쉬킨(1799~1837)이 읊은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1825)의 시 구절처럼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학자들은 갈등의 정치적 의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몇 가지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첫째, 갈등은 이해당사자들이 자신만의 고유한 가치와 이익을 추구하는 한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둘째, 갈등은 순기능과 역기능을 동시에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 해결 방식은 갈등의 성격과 정도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셋째, 갈등은 사회경제적 갈등과 정치적 갈등으로 나눠볼 수 있는데, 사회경제적 갈등이 국가, 권력, 사상 등과 같은 정치적 요소들과 맞물려질 때 정치적 갈등으로 전환된다.
그렇다면 갈등과는 대척점에 있는 ‘통합’(統合, integration)은 무엇일까? 통합은 “개인이나 집단인 행위주체들이 가치와 이익을 둘러싼 갈등과 투쟁을 줄이거나 그러한 상태를 해소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이 관점에서 본다면, 통합은 전쟁과 평화 사이에 수많은 과정과 단계가 있듯이, 불간섭, 협력, 공존, 연대, 일체화 등과 같은 다양한 유형들이 있다. 통합의 정치적 의미에 대해서도 학자들은 몇 가지 점에서 의견을 같이 한다.
첫째, 통합은 가치와 이익을 둘러싼 행위주체들 간의 갈등을 해결하려는 일련의 과정이다. 둘째, 통합은 갈등의 배경이나 원인이 경제적이건 사회적이건 간에 그 과정이 정치적 행위로 이뤄지기 때문에 정부와 정치집단의 매개 역할이 중요하다, 셋째, 통합은 갈등 당사자들이 기존의 기득권을 일정 부분 내려놓고 새로운 이익체계를 수용할 수 있는 메커니즘이 작동할 때 효과가 발휘한다.
어떻게 보면, 갈등과 통합은 개인과 공동체의 삶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며 이어지는 여정 속에서 서로 다른 형태로 나타나는 인간의 선택적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이렇기에 이 둘은 서로 마주하는 대척점에 있기보다는 동전의 양면에 가깝다. 비유하자면, 서로 반대 방향으로 힘겨루기를 하는 괌 섬의 가다오(Gadao) 카누가 아니라 사람과 짐을 싣고 목적지를 향해 가는 수레의 양 바퀴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갈등은 통합과 병행되는 존재이며, 통합은 갈등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수용하는 본질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적대와 배제의 정치’로부터‘경합과 협치의 정치’로의 전환
알다시피, 사회과학의 각 분야의 대가들은 특정의 사회현상을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이른바 ‘일반이론’(general theory)의 수립을 시도해 왔다. 대표적으로 경제학에서는 1936년 존 케인지(1883~1946)가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를 통해 이를 시도했고, 법학에서는 1945년 한스 켈젠(1881~1973)이 <법과 국가의 일반이론>에서, 사회학에서는 1951년 탤컷 파슨스(1902~1979)가 <사회체계>에서 일반이론의 수립을 모색한 것으로 알려진다.
정치학 역시 데이비드 이스턴(1917~2014)이 1953년 <정치체계>를 통해 일반이론을 처음으로 체계화하려고 했다. 그는 ‘정치체계이론’에 관한 일련의 연구를 통해 정치과정을 ‘투입→정치체계→산출→ 환류’ 등과 같이 시계열적으로 순환하는 과정으로 개념화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상호작용하는 정치행위자들의 행위에 주목하며, 정치를 “사회적 가치의 권위적 배분”, 또는 “부, 권력, 지위에 대한 보상의 분배”로 보는 합리적 선택행위로 이해했다.
천학비재(淺學非才)의 필자는 통합정치의 방안을 탐색하기 위한 일환으로 정치체계이론의 트레이드마크인 ‘투입-산출 모델’을 다음 <그림>과 같은 형태로 변용해보고자 한다. 물론 이러한 시도는 필립스 쉬블리(1942~)가 <권력과 선택>(2018)에서 “정치학은 반만 채워진 유리잔의 과학”이라고 지적했듯이, 복잡다단한 정치적 갈등과 통합 현상을 분석하는 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위 <그림>은 정치과정에서의 산물로서 두 가지 상반된 정치양상을 제시하는데, 하나는 ‘경합과 협치의 정치’(politics of agonism and governance)이고, 다른 하나는 ‘적대와 배제의 정치’(politics of antagonism and exclusion)이다. 여기서 ‘경합’과 ‘적대’라는 개념은 각각 “경쟁자 내지 대립자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관계”와 “화해 불가능한 행위자 간의 관계”를 가리킨다. 또한 ‘협치’의 개념은 정치적 협력을 의미하며, 이는 ‘배제’와 대비되는 개념으로서 포용이나 상생의 의미를 내포한다.
대체로 전쟁 상태가 아닌 정상적인 국가들에서는 저마다의 시대적 가치와 과제를 둘러싸고 사회집단 간, 정치세력 간, 그리고 이들 상호 간에 갈등하고 협력하면서 나름대로 발전 경로를 만들어간다. 이 같은 발전과정에서 사회갈등은 정치갈등으로 전환되고, 정치갈등은 다시 사회갈등으로 재생산된다. 이러한 메커니즘 하에서 공공선을 창출하려는 일련의 정치과정이 작동하는데, 이를 통상적으로 ‘정책결정과정’이라고 부른다. 이 과정에서 주요 정치행위자들은 ‘밀고 당기기’(pull and push)를 통해 정치적 산물을 만들어낸다.

문제는 한국을 포함해 많은 국가들에서는 정치적 산물이 제반 갈등을 완화하고 공공선을 증대시키기보다는 오히려 갈등을 증폭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정치과정이 경합과 협치가 아닌 적대와 배제로 이뤄진 데 따른 필연적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심층적인 진단과 현실가능한 대안이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필자도 이 연재를 통해 어떻게 하면 갈등과 분열의 정치가 통합정치로 전환될 수 있는가에 대한 해답을 정치문화, 정치제도, 정치리더십 등의 문제영역을 중심으로 모색해보고자 한다.
아울러 이러한 작업에 더해, 통합의 관점에서 정치공동체의 문제점과 그에 대한 해법을 개진했던 정치사상가들의 사유를 재탐색하는 것도 유의미하다. 예를 들면, 아리스토텔레스(B.C. 384~322)의 혼합정체, 니콜로 마키아벨리(1469~1527)의 공화주의, 존 로크(1632~1704)와 장 자크 루소(1712~1778)의 사회계약, 존 스튜어트 밀(1806~1873)의 개인적 자유(individual liberty), 비어트리스 웹(1858~1943)의 사회복지, 시몬 드 보부아르(1908~1986))의 자유로운 선택(choix libre) 등과 같은 통합을 지향한 다양한 담론들은 오늘날 통합정치에 관한 이론과 실천의 지평을 넓히는 데 중요한 시사점을 줄 것이다.
통합정치를 실천한 사례들
필자는 앞선 논의에서 통합정치를 “정치공동체 내에서 시대적 가치와 과제라는 공공선을 구현하기 위해 경쟁과 협력의 두 축을 바탕으로 정치행위자들이 합리적으로 선택하는 행위”라고 잠정적으로 정의한 바 있다. 그렇다면 이 같은 정치가 과연 권력이 냉혹하게 작동하는 현실세계에서 가능할 수 있겠는가? 통합정치를 말하는 것이 권력을 추구하는 정치행위자가 기반하고 있는 현실주의에 대해 ‘부조리’(absurdité)하게 도전하는 이상주의의 또 다른 버전이 아닌가?
어쩌면 이러한 질문 자체가 반어법일 수도 있다. 통합정치가 실현되기 어렵다는 점 때문에 오히려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점을 수긍하고 싶은 것이 아닌가 본다. 이는 알베르 카뮈(1913~1960)가 『시지프 신화』(1942)에서 남긴 마지막 문장을 떠올리게 한다. “산정(山頂)을 향한 투쟁 그 자체가 한 인간의 마음을 가득 채우기에 충분하다. 행복한 시지프를 마음에 그려보지 않으면 안 된다.”
앞으로 통합정치의 가능성을 실증하기 위해 다음 <표>와 같이 G20 국가들 중 10개 국가에서 통합정치를 실천했던 정치지도자의 사례를 살펴볼 것이다. 이들은 진실, 용기, 관용, 통찰이라는 정치적 미덕(Virtus)을 갖추고, 구조적 제약조건과 주체적 역량의 한계라는 운명(Fortuna)을 극복하면서 시대적 가치와 과제를 제도(Ordini)로 구현해낸 정치행위자이다.
이 중 인도의 네루 총리는 건국과정에서 전(全)인도의 통합 대신에 ‘인도-파키스탄 분리’를 수용한 바 있다. 이 같은 행적의 인물이 통합정치를 실천한 정치지도자의 반열에 들어서는 것이 온당하느냐라는 문제제기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통합정치에 ‘분리의 미학’이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한다면, 이는 오해에 가깝다. 앞으로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당시 네루는 인도를 산산조각내려는 영국 식민제국의 새로운 분할지배 책동에 맞서 “인도가 파괴되는 것보다는 분할이 낫다”라는 냉철하고 대승적인 판단을 했던 것이다. 이처럼 통합정치는 다양성과 유연함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고 하겠다.
<표> 통합정치의 10대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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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지도자 |
재임 기간 |
통합정치 기조 |
대표덕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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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중국의 쑨원 대총통 |
1921∼1924 |
국공합작 (국민당+공산당) |
진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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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미국의 F. 루스벨트 대통령 |
1933∼1945 |
계급타협 (정부+자본+노동) |
용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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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인도의 네루 총리 |
1950∼1964 |
차선통합 (인도-파키스탄 분리) |
진실 |
|
4 |
프랑스의 미테랑 대통령 |
1981∼1995 |
유럽통합 (유로화 발행) |
통찰 |
|
5 |
남아공의 만델라 대통령 |
1994∼1999 |
무지개통합 (인종통합정부) |
진실 |
|
6 |
일본의 무라야마 총리 |
1994∼1996 |
역사화해 (연립정부) |
진실 |
|
7 |
영국의 블레어 총리 |
1997∼2007 |
제3의길 (노동계급+중간계급) |
용기 |
|
8 |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 |
1998∼2003 |
DJP연대 (민주화세력+산업화세력) |
통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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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
독일의 메르켈 총리 |
2005∼2021 |
대연정 (보수+진보) |
통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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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 |
2003∼2010 2023∼현재 |
사회통합 (분배를 통한 성장) |
용기 |
흔히 철혈재상으로 불리는 독일제국의 오토 폰 비스마르크 총리(1815~1898)의 “정치는 가능성에 대한 가르침이다”라는 말은 정치의 긍정적인 측면과 실용주의적인 측면을 부각시켰다고 평가받고 있다. 그는 ‘철과 피’를 통해 독일 통일을 이뤘지만, 통합까지 완성하지는 못했다. 이후 독일연방공화국의 헬무트 콜 총리(1930~2017)와 국민들은 두 번째 통일과 그에 이은 통합을 ‘말과 다수결’, 즉 설득과 민주주의를 통해 이뤄냈다. 이제는 비스마르크에게 가르침을 준 역사가 프리드리히 달만(1785~1860)의 “정치는 가능성의 예술”이라는 테제는, “통합정치는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예술(Integrative politics is the art of making the impossible possible)”이라는 테제로 업그레이드될 시점이 되지 않았나 본다.
여담이지만, 이 연재를 접한 일부 독자는 통합정치가 중도주의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냐고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단언컨대, 통합정치는 다원주의적 가치와 보편적 이념을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이기에 중도주의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통합정치가 진보주의에 의해 실현되면 진보적 통합정치가 되고, 보수주의에 의해 이뤄지면 보수적 통합정치가 되는 것이다. 프랑스 사회당의 미테랑 대통령이 진보적 통합정치를 이뤄냈다면, 독일 기독교민주연합의 메르켈 총리는 보수적 통합정치를 성공시킨 대표적 인물이다.
결례일지도 모르지만, 피렌체의 베키오 궁전 박물관에 있는 산티 디 티토(1536~1603)가 그린마키아벨리의 초상화를 바라보고 있으면, 부드럽지만 냉소적인 미소가 눈에 띤다. 그 미소는 마치 “공화주의자인 나를 더이상 ‘마키아벨리스트’(machiavellist)라고 부르지 말라”라고 조소를 보내는 인상을 주는 듯하다.
필자 유재일 교수는 한국정치와 정당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해온 정치학자이다. 대전고를 나와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30여년간 대전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를 지내면서 국회도서관장, 대전세종연구원장을 역임하였고, 한국정치학회 부회장,한국정당학회장, 한국지방정치학회장을 지냈다. 아울러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회 위원,국회의장자문위원회 부위원장,국회헌법개정특별위원회 자문위원 등을 맡아 국정운영에 대한 실무경험도 쌓았다. 현재 사회공헌연구소 대표로 활동 중이며, 최근에 발간한 대표 저서로 『통합정치와 리더십』(2024, 운주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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