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재일 교수, 이승만에서 윤석열까지 역대 대통령의 리더십 특성 비교...콤플렉스와 스타일, 장단점, 통합정치...이재명 대통령의 리더십은...

〔주간 연재 시리즈〕 통합정치와 리더십 3회
- 통합정치의 관점에서 바라본 한국 역대 대통령의 리더십 -
유재일 (사회공헌연구소 대표)
대통령의 취임 연설
특정의 정치인을 뛰어난 정치지도자로 평가할 때 그의 업적뿐만 아니라, 시대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주요 연설 역시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된다. 아마도 가장 회자되는 명연설로는 미국 남북전쟁의 전사자를 추도한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1809~1865)의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라는 명언을 남긴 게티즈버그 연설(1863), 대통령 취임과 동시에 경제대공황을 극복해야만 하는 프랭클린 루스벨트(1882~1945)의 “두려움 그 자체가 두려움이다”라는 명귀가 나오는 취임사(1933), 제2차 세계대전에 직면한 윈스턴 처칠 총리(1874~1965)의 “피, 땀, 눈물, 그리고 노력”이라는 어휘가 나오는 첫 전시연설(1940) 등이 아닐까 싶다.
이들 연설은 극심한 고통과 절망에 빠져있던 국민에게 희망과 자신감을 불어넣는 메시지로서, 마치 영혼의 울림과 같이 다가갔을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명연설들이 그리스 역사가인 투퀴디데스(B. C. 460경~400경)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B.C. 400경)에서 소개된, 아테네의 황금시대를 열었던 페리클레스 집정관(B.C. 490경~429)의 전사자 추도사로부터 기조와 핵심 어휘를 차용했다는 것이다. 이 추도사는 민주정의 우수성과 국민통합을 호소력 있게 설득하고 있어 명연설의 범례로 자리잡아 왔던 것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라는 격언대로 정치인의 명연설 역시 창조적 모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정치사에서도 정치지도자들의 감동적이고 사자후와 같은 연설이 적지 않다. 그중 가장 주목되는 연설은 뭐니 뭐니 해도 대통령의 취임사가 아닌가 한다. 역대 대통령은 취임사를 통해 시대적 가치와 과제뿐만 아니라 구조적 제약조건과 주체적 역량수준을 고려한 국정 비전과 실행 방안을 나름대로 제시했다. 특히 국민의 신뢰와 지지와 협력을 구하기 위한 통합적 담론을 개성 있는 메시지로 던졌다.
역대 대통령의 취임사 중 ‘통합’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는 이는 노태우 대통령으로 한 번 언급했다. 이후 노무현 대통령은 네 번, 이명박 대통령은 한 번, 문재인 대통령은 두 번, 이재명 대통령은 다섯 번을 사용했다. 물론 다른 대통령들 역시 통합이라는 단어를 직접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합심, 단결, 단합, 화합, 화해, 협력 등 유사한 의미나 뉘앙스를 지닌 표현을 통해 국민통합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여담이지만, 역대 대통령의 취임사 중 가장 수준이 높은 순으로 세 가지를 꼽자면, 1순위 노태우 대통령, 2순위 김대중 대통령, 3순위 박정희 대통령이 아닐까 한다. 이들은 극심한 정치사회적 갈등과 취약한 지지 속에서 대통령에 당선되었기 때문에 그만큼 열과 성을 다해 취임사를 준비했을 것이다. 실제로 노 대통령은 대선에서 36.6%를 득표했고, 김 대통령은 40.2%를 득표했으며, 박 대통령은 156,026표 차이로 신승을 거두었다.
역대 대통령의 리더십
한국의 역대 대통령 대부분은 국민통합을 강조하는 정치적 언술과 통합정치라는 국정 운영방식을 구사하면서, 각자가 직면한 시대적 가치와 과제를 실현하기 위해 전심전력을 다했다. 이 과정에서 어떤 이는 괄목할 만한 업적을 냈고, 어떤 이는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를 보여주기도 했다. 퇴임 이후에는 영예나 칭송을 받기도 했고, 오명이나 응보(應報)에 직면하기도 했다. 특히 민주화 이후에도 어떤 이는 재임 중에 있었던 시대착오적인 폭정이나 퇴행적인 인치로 인해 신권위주의자나 ‘공정치 못한 리더’라는 비판적 평가를 받기도 했다.
다음 <표>는 김대중 정부에서 노동부 장관을 역임한 김호진 교수(1939~)의 '한국 대통령과 리더십' (2008)에 수록되어 있는 ‘역대 국가경영자의 리더십 비교’를 필자가 일부 수정·보완한 것이다. 그는 ‘위대한 정치인’이란 자신의 운명 그 자체인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승화한 인물이라는 테제를 갖고, 역대 정부수반들이 처했던 권력 욕망과 대의에의 열정 간의 모순, 이상주의와 현실주의 간의 괴리, 시대적 제약조건 속에서의 고뇌와 선택 등을 냉철하게 분석했다.
<표> 역대 정부수반의 리더십 특성 비교
|
시대과제 |
정부수반 |
콤플렉스 |
스타일 |
단점 |
역점과제 |
종합 평가 |
|
국민형성 |
이승만 |
선지자적 우월콤플렉스 |
가부장적 권위형 |
제왕적 군림 |
국민통합 한국전쟁 |
추방당한 건국의 아버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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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화 |
장면 |
기회주의 콤플렉스 |
민주적 표류형 |
우유부단 |
1공청산 경제건설 |
민주주의를 지키지 못한 민주론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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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
친일 및 좌익 콤플렉스 |
교도적 기업가형 |
관용의 빈곤 |
경제개발 자주국방 |
밥과 자유를 바꾼 근대화의 기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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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
전두환 |
주변인 콤플렉스 |
저돌적 해결사형 |
군사적 전투주의 |
사회정화 정치안정 |
한다면 하는 무단론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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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
편모 콤플렉스 |
소극적 상황적응형 |
정치적 보신주의 |
5공청산 북방정책 |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낸 지역패권론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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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
외아들 콤플렉스 |
공격적 승부사형 |
감각적 결정 |
과거청산 세계화 |
문민정치의 꿈을 이룬 국가경영의 실패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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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국가 |
김대중 |
출생 콤플렉스 |
계몽적 설교형 |
완벽주의 |
환란극복 햇볕정책 |
국가경영의 우등생이자 남북화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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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
학력 콤플렉스 |
탈권위적 실험실습형 |
과도한 이상주의 |
개혁통합 균형발전 |
이념을 좇다가 실용을 놓친 개혁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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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
비도덕 콤플렉스 |
독단적 CEO형 |
불도저식 독선 |
선진화 4대강 |
사익편취의 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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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
트라우마와 스티그마 |
측근의존 과거회귀형 |
오만과 불통 |
국민행복 창조경제 |
국정농단의 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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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
노무현 죽음 트라우마 |
선한 군주형 |
좌고우면 |
적폐청산 포용국가 |
내로남불의 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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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
배반 콤플렉스 |
나르시시즘형 |
관료적 반정치 |
지성주의 반국척결 |
내란 우두머리의 오명 |
* 최규하 대통령은 제외함.
위 <표>에 없는 이재명 대통령의 경우 임기 초반이기 때문에 리더십 특성을 언급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보는데, 인상적으로 볼 때 ‘사법 콤플렉스’와 ‘계몽적 승부사형’의 스타일을 띠고 있는 것이 아닌가 본다.
잘 알다시피 역대 대통령은 봉건 군주의 두 가지 전형인, 즉 명군과 혼군의 자질인 겸손과 교만 혹은 영민함과 아둔함을 지니기도 하고, 절영지연(絶纓之宴)으로 상징되는 아량과 이른바 ‘밴댕이 소갈머리’에 비유될 만한 협량을 드러내기도 하며, 업적과 성과에 따라 유능함과 무능함 혹은 노련함과 미숙함과 같은 다양한 평가를 받고 있다.
이 같은 평가 기준을 정리하면, 권력 획득기에는 ① 시대정신, ② 정치력, ③ 공감력 등의 지표가, 국정 수행기에는 ① 성과, ⓶ 지지도, ⓷ 후계관리 등의 지표가 적용된다고 본다. 결국 정치지도자에 대한 평가는 궁극적으로 정치적 산물에 의해 결정된다. 그리고 정치적 산물은 앞으로 구체적 사례를 통해 살펴보겠지만, 통합정치를 실질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정치리더십의 존재 여부에 달려 있다고 단언할 수 있겠다.

통합정치의 부재와 성공
흔히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라는 언술이 존재하는데, 이는 상당히 일리가 있는 표현이다. 왜냐하면 역사는 과거의 사실을 다루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는 상상의 미래를 다루기 때문에 가상의 시나리오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러한 전제에서 역대 정부수반의 통합정치에 관한 단상이 가능할 수 있다.
권위주의 시대에서의 통합정치는 그 자체가 형용모순에 가깝다. 그럼에도 당시의 정치적 선택을 재구성해 보면, 나름대로 상상이 가능하다. 예컨대 이승만 대통령은 1956년 정·부통령선거에서 부통령에 당선된 야당인 민주당의 장면에게 부통령의 권한과 역할을 부여했더라면, 85세의 노년에 하와이로 망명은 가지 않았을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1978년 총선 득표율에서 야당인 신민당에게 1.1% 포인트 차이로 졌을 때 최소한의 자유화 조치를 취했거나, 영화 「남산의 부장들」(2020)에 나오는 대사처럼 “정치를 좀 대국적으로” 했더라면 비극적 결말은 피했을 것이다.
전두환 대통령은 1987년 6월민주항쟁이 발발했을 때 자유화 조치인 6·29선언을 여당인 민정당의 노태우 대통령후보 대신에 자신이 발표했더라면, 눈감기 전에 5·18민주화운동의 희생자들과 광주시민들에게 사죄할 수 있는 계제를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한편, 권력기반이 비교적 양호한 상태에서 출발했음에도, 통합정치를 외면하는 바람에 재임 중이나 퇴임 후에 불명예를 안은 정부수반이 적지 않다. 제2공화국의 의회제 정부 하에서 정부수반이었던 장면 국무총리는 4월혁명 이후 민의원에서 224명 중 117명의 찬성(52.2%)으로 겨우 총리 인준을 받았다. 만약 거국내각이나 여당인 민주당과 야당인 신민당과의 연립내각으로 국정을 운영했더라면, ‘경제건설제일주의’를 속도감 있게 추진했을 것이다.
김영삼 대통령은 보수대연합인 민자당에서 김종필 대표를 축출하고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을 구속함으로써 보수세력과의 단절을 시도한 만큼 인치가 아닌 민주적 시스템을 통해 국정을 운영했더라면, 정경유착이 견제되어 외환위기를 미연에 방지했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야당인 한나라당에게 지역구도 해소를 위한 선거제도 개편이라는 조건을 달지 말고 국민통합이라는 대의에 입각해 조건 없는 대연정을 제안했더라면, 역사적 타협의 계기를 마련했을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대선에서 제1야당 후보보다 530만여 표(22.5% 포인트) 차이로 압승한 것을 기화로 정치보복의 악습을 끊었더라면, 사익편취의 오명에서 벗어났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6년 총선에서 여당인 새누리당이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에게 1석 차이로 패배했을 때 국정 쇄신과 여당 내 비주류와의 소통을 추진했더라면, 탄핵은 면했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촛불 시민집회의 성과를 기반으로 집권한 만큼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에 찬성한 각 정파의 지도자나 대선 후보들을 내각에 포함시키거나 그들이 추천한 인사를 기용했더라면, 보다 뚜렷한 국정 성과를 거두었을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자유라는 단어를 35번이나 언급한 반면에 통합이라는 단어를 “너무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언급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는데, 때때로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라는 속담이 일리가 있다는 걸 보여준다.
이 같은 정부수반들과 달리 통합정치를 나름대로 성사시켜 비교적 안정적인 국정을 이끌었을 뿐만 아니라 주목할 만한 정치적 산물을 낳은 이들도 있다. 노태우 대통령은 ‘3당 합당’(민정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민자당)을 통해 취약한 권력기반을 확대한 데 힘입어 주택 200만호 건설과 재벌 부동산 개혁을 추진할 수 있었고, 사회주의권과의 수교와 ‘남북기본합의서’의 체결과 같은 외교적 업적을 이룰 수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 역시 민주화세력과 산업화세력의 연대인 ‘DJT연대’(김대중-김종필-박태준)를 통해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를 도입해 복지국가의 초석을 마련했다. 아울러 민주주의와 인권을 진전시키고, 사상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켜 남북화해의 첫 걸음을 내디뎠다.
이상의 단상은 역대 정부수반에 대한 평가를 다룬 것이라기보다는 통합정치와 관련한 시사점을 찾기 위한 가상적 성찰에 불과하다. 이를 통해 국정책임자로서의 정치지도자가 시대적 가치와 과제를 실현하기 위한 정치리더십을 어떻게 발휘해야 하는가에 대한 단초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앞으로 이 해답을 찾기 위한 본격적인 작업이 이어질 것이다.
끝으로 이재명 대통령의 통합정치에 대한 코멘트는 취임한 지 6개월 밖에 안 되었기 때문에 개략적인 인상이 좋을 듯하다. 이 대통령의 통합적 행보는 그동안 산적한 국내외의 당면 현안을 해결하느라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담대한 인사를 통해 국민통합이라는 상징성을 일정 부분 확보하지 못한 점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국무위원 구성시 12·3 내란에 반대했던 야당 의원들이나 그들로부터 추천받은 인물을 기용하려는 시도가 거의 보이지 않았고, 장관급이나 대통령실 수석비서관 직급에 여성 기용도 지나치게 적다는 인상이 든다.
어쩌면 통합정치에 대한 이재명 대통령의 현재적 스탠스는 취임사에서 언명한 ‘통합정부’ 대신에, 취임 이틀만에 ‘국민주권정부’를 별칭으로 사용한다고 밝혔을 때의 마인드가 아닌가 본다.

필자 유재일 교수는 한국정치와 정당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해온 정치학자이다. 대전고를 나와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30여년간 대전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를 지내면서 국회도서관장, 대전세종연구원장을 역임하였고, 한국정치학회 부회장,한국정당학회장, 한국지방정치학회장을 지냈다. 아울러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회 위원,국회의장자문위원회 부위원장,국회헌법개정특별위원회 자문위원 등을 맡아 국정운영에 대한 실무경험도 쌓았다. 현재 사회공헌연구소 대표로 활동 중이며, 최근에 발간한 대표 저서로 『통합정치와 리더십』(2024, 운주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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