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정당학회 회장, 한국정치학회 부회장 지낸 정치학자 유재일 교수가 말하는 한국정치의 현재와 미래
- 매주 월요일 연재...루스벨트, 토니 블레어, 메르켈, 넬슨 만델라. 김대중...내년 6월 지방선거 분석-전망도..
통합정치와 정치리더십의 소환
- 유재일 교수의 ‘주간 연재 시리즈’를 시작하며 -
윤석열, 트럼프, 메르켈의 장면들
세상만사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님은 확실하다. 최근 5년동안 국내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세가지 장면을 꼽아보고자 한다. 첫 번째 장면은 윤석열의 대통령 당선과 불법계엄으로 인한 탄핵-구속, 두 번째는 트럼프의 의사당 점거사태와 화려한 부활, 그리고 세 번째는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감동적인 퇴임 장면이 아닐까? 이 장면들에 대한 사람들의 느낌과 해석은 제각각일 것이다.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를 뜻하는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플라톤의 동굴 이론처럼 인간은 종종 진실을 직시하지 못한 채 그림자에 머무른 ‘결박당한 존재’, 즉 호모 바운드쿠스(Homo Boundcus)일 수도 있다.
팬데믹 때나 지금 이 순간에도 상궤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거나, 반대로 감동과 울림을 주는 정치행위자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윤석열, 트럼프, 메르켈 세 지도자가 보여준 행위는 단순한 정치적 해프닝이나 이벤트성 에피소드가 아니라 사람들의 정치적 인식과 행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그리고 좋든 싫든 간에 새로운 정치적 산물을 결과했다는 점에서 정치학적 탐구 대상이 될 만하다. ‘사실 판단’ 차원에서 보면, 이들은 국가 공동체의 다양한 가치와 이익을 둘러싼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주장하겠지만, 결과적으로 종래의 갈등을 완화하거나 반대로 악화시켰다. 이들에 대한 ‘가치 판단’은 앞으로의 논의를 위해 유보하려고 한다. 분명한 것은 이들의 행위는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라는 속담이나 ‘죄는 지은 데로 덕은 닦은 데로’라는 세익스피어의 말처럼 사필귀정으로 끝날 거라는 점이다.
정치란 무엇인가, 투쟁과 통합의 양면성...
많은 정치학자들은 복잡하고 다의적인 정치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해 저마다 설명해 왔다. 그 가운데 정당과 선거 연구의 최고 권위자 중 한 사람인 모리스 뒤베르제는 '정치란 무엇인가'에서 “정치란 시간과 장소에 관계없이 개인이건 집단을 막론하고 처음부터 투쟁하는 행위와 통합하는 행위가 동시에 작동한다”고 말했다. 즉, 권력을 가진 자들은 불만 세력의 도전을 저지하기 위해서 배제 또는 통합의 방법을 구사하며 자신들의 지배를 강화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불만을 가진 자들은 투쟁의 성공을 위해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과 연대를 도모하거나 통합을 모색한다.
물론 현실 정치에서 상황과 행위주체에 따라 투쟁과 통합의 비중은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정치가 투쟁과 통합이라는 양가적 행위를 통해 권력을 추구하려고 하는 인간의 행위인 것만은 분명하다. 이 같은 정치의 양면성이 바로 정치의 본질이자 고유한 성질인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사실 판단에 근거하고 있는 ‘투쟁’과 ‘통합’이라는 두 가지의 상반된 가치 판단 역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비록 정치가 양면성과 모순성을 지니고 있더라도, 필자는 이를 보다 정교한 ‘구성개념’(conception)으로 명확하게표현할 수 있다면, 정치현상이나 정치적 실천을 이해하는 데 유용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기초해 이 연재 시리즈에서 ‘통합정치’(integrative politics)라는 개념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다. 여기서 통합정치란 정치행위자들이 공동체 내에서 경쟁과 협력을 통해 다양한 가치와 이익을 둘러싼 갈등을 해결하면서, 동시에 다원주의적 공공선을 증대시키는 행위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러한 구성개념을 통해 정치인식에 대한 지평이 확장되고, 정치적 실천이 공적 가치 창출과 공동체적 번영으로 이어지도록 유도하는 것이 이 시리즈의 목표점이다.
근대 이후 선진국가들의 발전과정을 살펴보면, 국가건설, 국민통합, 산업화, 민주화, 복지국가 진입이라는 단계를 거치면서 발전해 왔다. 대한민국 역시 이러한 발전과정에서 예외는 아니다. 한국은 세계시간과의 괴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노고와 희생의 바탕 위에 정치지도자들의 소명과 헌신이 더해져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성취를 이뤄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다른 선진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어둡고 부정적인 유산들이 여전히 남아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우리나라는 2024년 기준으로 경제 규모에 있어서 세계 12위를 차지해 경제적으로 잘 사는 나라이며, 민주주의 지수 또한 ‘완전한 민주주의국가’(2020∼2023)의 범주에 속할 정도로 국민들의 정치의식이 높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날로 심화되고 있는 사회경제적 양극화, 해소되지 않는 정치사회적 갈등, ‘3대 국민 스트레스’(저출산, 북핵, 기후위기) 등으로 행복도가 낮다. 이같은 현실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지금까지 애써 성취해 온 발전이 퇴행할 수 있는 취약성도 있다. 이 분기점에서 정치행위자들의 소명의식과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통합정치에 대한 정치지도자들의 의지와 실천이 여느때보다 절실히 요구된다.
연재 시리즈물의 내용, 이재명 대통령 등 국내외 정치지도자들의 통합리더십 사례분석 및 대안제시..
필자의 연재 시리즈는 통합정치를 위한 방안을 제시하고, 이와 관련한 세계 10인의 정치리더십을 벤치마킹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이를 위해 먼저 통합정치에 대한 정치적 상상력과 아이디어를 얻기 위한 역사적 관조와 정치적 성찰을 하고자 한다. 이어서 통합정치의 핵심적 기제인 ‘정치적 다원주의’와 ‘협의제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한 정치문화, 정치제도, 정치리더십에 대한 해법을 선진 국가들과 비교하며 모색하려고 한다. 끝으로 통합적 정치리더십에 관한 한국적 시사점을 도출하기 위해 G20 국가들 중 10개 국가에서 통합정치를 실천한 정치지도자들– 중국의 쑨원,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인도의 자와할랄 네루, 프랑스의 프랑수아 미테랑,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 일본의 무라야마 도미이치, 영국의 토니 블레어, 한국의 김대중,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브라질의 룰라 다시우바 –를 분석하고자 한다.
아울러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 운영과 리더십 특성도 통합정치의 관점에서 조명할 예정이며,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G20 국가들 중 지방정부 수장에서 정부수반으로 격상한 사례 – 미국의 빌 클리턴(아칸소 주지사), 프랑스의 자크 시라크(파리 시장), 영국의 보리스 존슨(런던 시장), 독일의 올라프 숄츠(함부르크 시장), 이탈리아의 마테오 렌치(피렌체 시장), 멕시코의 로페스 오브라도르(멕시코시티 시장),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구자라트 주총리), 한국의 이명박(서울 시장) - 역시 간략히 다뤄볼 것이다. 바라건대, 이러한 탐구들이 유의미하게 축적된다면, 통합정치의 구성 개념이 보다 풍부해질 것이며, 나아가 희망과 미래의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정치행위자들의 선택과 실천에 작은 단초라도 제공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유재일 교수는 한국정치와 정당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해온 중견 정치학자이다. 대전 출생으로 대전고를 나와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30여년간 대전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를 지내면서 국회도서관장, 대전세종연구원장을 역임하였고, 한국정치학회 부회장,한국정당학회장, 한국지방정치학회장을 지냈다. 아울러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회 위원,국회의장자문위원회 부위원장,국회헌법개정특별위원회 자 문위원 등을 맡아 국정운영에 대한 실무경험도 쌓았다. 현재 사회공헌연구소 대표로 활동 중이며, 최근에 발간한 대표 저서로 『통합정치와 리더십』(2024, 운주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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